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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질병, 최면으로 치료한다

시험불안, 금연에도 효과톡톡

최면의학은 오래 전부터 의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아왔다. 고대의 모든 문화권에서 마법사나 주술사, 성직자들은 최면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했다.

1700년대 오스트리아의 의사 메스머는 고대 치료사들의 치료방법을 다시 응용해 의학적인 치료를 행한 의사로 유명하다. 19세기 중반에는 최면마취가 많은 외과수술에 적용됐으며, 이때부터 최면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최면으로 치료한다


신경정신과 치료에 이용

프로이트 또한 최면유도방법을 19세기 후반의 최면연구가들에게 배웠다. 프로이트 이후 최면은 의학적 적용범위가 줄었으나 현대 들어 최면치료의 다양한 효과들이 다시 보고되면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났다.

최면에 대한 연구가 미국을 비롯한 구미 각국에서 활발해지면서 1958년 미국의학협회는 최면술을 공식 의료기술로 인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면을 치료에 응용하는 병원은 몇몇에 불과하지만 최면요법은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최면치료가 주로 쓰이는 곳은 불안신경증, 공황장애, 공포장애, 전환장애, 강박장애, 우울증, 조울병, 정신분열병, 해리장애, 성격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질환들이다.

최면요법에서는 최면상태에서의 암시를 통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무의식 상태의 갈등을 해소시켜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갖게 한다. 아울러 반복적인 행동치료로 강박증 등 조건반사화된 기작을 풀어주고 새로운 조건 반사의 기작을 각인시켜 치료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주인공은 강박장애를 보이는 환자다. 주인공은 매일 같은 곳에서 밥을 먹어야 안심이 되고, 걸어다니면서 보도블럭의 이음선을 밟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는 아무리 의식적으로 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최근 클로미프라민이라는 강박증 치료약이 개발됐으나 치료율은 30-40%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강박장애에 최면을 통한 정신적인 이완훈련이 도입되면서 치료 성공률이 50-60%까지 높아지고 있다. 약물과 최면치료를 병행하면 치료율이 70%를 넘는다.


강박증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살빼기도 시도해볼만

신경과 질환 중 많은 부분이 불안심리에서 기인한다. 최면치료는 이러한 불안에 대한 환자의 사고를 바꿔주는 일에서 시작된다. 최면상태에서의 불안은 보통 때 느끼는 불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보통 때의 불안은 그저 불안일 따름이지만 최면상태에서 느끼는 불안은 편안함의 와중에 있는 불안이다. 환자는 최면상태에서 똑같은 불안체험을 반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불안이 실제로 무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불안의 강도가 감소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불안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최면은 신경정신과분야에 직접 관련된 치료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학습능률 향상, 시험부담감 극복, 금연, 다이어트, 스트레스 해소 등에 효과적이다. 최면으로 비만을 치료하는 경우 최면상태에서 날씬해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자신의 식욕과 식습관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최면을 이용한 비만치료는 현재 미국에서 많이 응용되고 있는데, 임신한 후 체중이 무려 1백kg 가까이 불어난 여성이 최면치료로 정상체중을 회복하고 1년 이상 정상체중을 유지하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자신의 기호나 버릇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최면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생활의 활력을 얻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면요법이 수험생의 시험불안을 해소하고 학습능률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최면이 가벼운 불안감을 해소하거나 긴장을 이완시켜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면을 통해 자신의 공부습관을 통제하고 목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면 자연스럽게 학습능률이 향상될 뿐 아니라 불안으로 인한 불면증도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에도 최면시의 긴장이완으로 환자의 맥박이 느려지고 혈압이 정상을 회복하는 치료사례가 많이 나타난다.


전화로 최면치료 희소식

그러나 최면치료에 앞서 너무 큰 기대나 혹은 너무 불신하는 선입견을 갖는 것은 좋지 않다. 전문가들은 최면에 임할 때 그저 '무슨 소리를 하는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임해 달라고 조언한다. 최면은 무의식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므로 무의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최면의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던 변영돈박사(변영돈 신경정신과 원장)는 96년 하반기부터 전화를 이용한 자동응답(ARS) 최면치료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일부 단순한 질병은 의사와 환자가 대화할 필요 없이 일방적으로 최면을 걸고 암시만 주어도 치료가 잘 된다. 변박사는 자신의 병원에서 행하는 일반적인 최면치료과정을 단계별로 컴퓨터에 입력시킨 후에 자동응답전화(700-6995)로 연결했다.
전화 최면치료는 이용자가 집에서 스피커 폰 혹은 핸스프리 폰으로 안내에 따라하기만 하면 되도록 고안돼 자기최면 요법보다 훨씬 쉽고 절차가 간단하다.

특히 효과가 있는 질병은 시험불안, 불안, 대인공포, 불면증 및 금연이다. 전화 최면치료는 특히 대인공포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변박사는 일반적으로 대인공포 환자들이 최면감수성이 높고, 밖에 나가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전화 최면이 잘 맞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거짓 기억 조심해야

그러나 좀 더 심각한 무의식의 저변을 다뤄야 하는 질병은 꼭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 흔히 과거 퇴행최면요법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데, 이때의 과거기억은 '거짓 기억'일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거짓 기억 증후군'(false memory syndrome)이라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가정주부였던 에일린 플랭크린은 지난 1989년 우연히 자신의 어린 시절의 끔찍한 일을 기억해내고 깜짝 놀랐다.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20년전 어린시절의 살인사건 기억이 우연히 떠오른 것이다.

그 살인사건의 범인은 그녀의 의붓아버지였고 살해당한 사람은 자신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녀는 경찰에 이 일을 신고했고, 의붓아버지는 기소돼 살인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물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그녀의 기억에 의한 진술과 당시의 사건기록이 일치한다는 것뿐이었다.

이 사건은 사회적인 관심으로 떠올랐고,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그런데 이 사건은 워싱턴대학 인지심리학교수인 로푸터스박사의 문제 제기로 원점으로 돌려졌다. 로푸터스 교수는 플랭크린이 당시 최면치료를 받고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그녀의 기억이 어린시절의 실제 기억이 아니라 만들어진 기억이라고 주장했다.

플랭크린의 기억은 사건 당시 매스컴의 보도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시 매스컴은 범인이 매트리스를 차 트렁크에서 꺼냈다고 보도했지만 매트리스는 차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컸다. 보도는 명백한 오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플랭크린의 기억은 매스컴의 보도대로였다. 그녀의 기억이 보도자료를 토대로 구성된 거짓 기억이라는 강력한 증거였다. 의붓아버지는 결국 무죄방면 됐다.

무의식이 만든 끔찍한 기억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과거 퇴행최면치료 도중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나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억을 떠올린 수많은 유사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환자는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서 상대자를 고소하고 상대자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환자와 최면의사를 맞고소하는 일이 현재 수백건을 넘어서고 있다.

최면전문의사들은 이러한 거짓 기억이 환자의 무의식에 도사린 특정 대상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이 평소 적대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최면시에 책이나 영화에서 본 기억을 토대로 그 대상과 관련지어 끔직한 기억을 구성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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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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