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는 종양억제 단백질이란 분자가 있다. 이 단백질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암이 발생한다. 도대체 종양억제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일까. 이것은 구조생물학자 조윤제 교수의 호기심이기도 하다. X선 결정법으로 종양억제 단백질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블랙박스로 취급받던 종양억제 단백질의 기능을 설명하는 그를 만나본다.
한국이나 세계의 학생들이 과학자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많은 학생들에게 과학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이론물리학자이지만 학생들은 과학자를 실험 장면과 연결시킨다. 그래서인지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과학자’하면 대부분 실험복을 입은채 플라스크를 들고 있으며 머리카락 반쯤 사라진, 안경을 낀 40대 이후의 남자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학자들은 재미가 없으며 이기적이고 너무 잘난 사람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학생들과 과학자 사이의 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조윤제 교수(37, 포항공대 생명과학부)를 만나면 과학자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은 쉽게 사라진다.
늘 실험을 직접 하기 때문에 실험복을 입고 있지만 그 이외의 것은 정반대다. 대학원생들도 자랑할 만큼 수려한 외모에 유머있는 말투, 자상한 면은 동료들에게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과 동료인 김경태 교수도“조교수는 상당히 유머가 있어요. 종종 긴장된 분위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탁월하죠”라며 조교수의 재치를 추켜세운다. 덧붙여 부인이나 아이들한테 신경쓰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가정적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기대가 컸냐는 질문에 조교수는 학교다닐 때 주목받던 천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공부 못한다고 구박받던 처지였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눈에 띄지 않았던 터라 커다란 꿈을 키우지도 않았으며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기를 보냈다며 겸연쩍어 한다. 지금도“윤제에게 우리들의 세금이 흘러간다는 말이야”하면서 농을 주고받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눈에는 평범했던 학창시절 조교수의 잔상이 더 강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데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듯이 자신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데는 언제나 적극적이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택을 믿고 지켜봐준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생체 분자의 구조로 기능을 밝힌다
실험하는 것이 참 좋다고 말하는 조교수의 실험실 이름은 종양억제분자연구실. 한마디로 암을 억제하는 단백질 분자들의 3차원적인 구조를 밝혀 그 기능과의 관계를 추적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0만명 이상의 암환자가 새로 생기고 있으며 약 5만명 정도가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공포로 여겨지는 암은 지난 20세기의난치병으로 21세기로 넘어온 난제다. 최근 스위스의 제약회사 노바티스사가 개발한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인 글리벡이 시판되면서 암정복에 서광이 비친 것처럼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글리벡을 개발한 브라이언 드러커 박사가“글리벡 개발의 출발점이 인간게놈지도를 이용해 백혈병 세포를 정확하게 공격할수 있는 표적을 알아낸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암의 근본적인 원인은 유전자의 변화다.
그래서 지난 1997년부터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와 영국의 생거센터 등 세계 10여개 기관이 함께 수행해온 암게놈분석프로젝트(CGAP)에서도 암발생과 성장에 관련되는 암의 원인 유전자를 판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포스트게놈시대의 주역으로 단백질이 주목받듯이 암의 경우도 단백질의 변이을 이해하는 것이 유전자의 발현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단백질은 세포 건조중량(세포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을 제외한 중량)의 50%를 차지하는 세포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세포내에서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한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겨 각종 질환이 발생한다. 몸 속에서 각종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을 이해하려는 이유다. 그렇다면 단백질의 기능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은 김성호 교수(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가“건물도 기능과 모양이 일치해야 쓸모가 있듯이 단백질이나효소 같은 생체분자도 입체구조와 그 기능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생체분자의 3차원 구조에 대한 이해가 그 분자의 기능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구조생물학의 관점이다. 지금은 보편화된 사실로 여러 분야에서 단백질의 기능을 밝히기 위해 그 구조를 결정하지만 구조생물학은 약 15년 전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다.“ 당시에 구조생물학 하면 생소한 학문이었어요. 구조생물학 분야의 리더로 계신 김성호 박사님조차 저한테 어디 가서 구조생물학 한다는 말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도 그런거 해서 뭐하느냐고 하던 때였어요.”단백질의 구조를 밝히기 위한 실험 장비가 너무 고가였고 그 결과의 파급효과는 미지수였기 때문에 구조생물학이란 분야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모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암 억제 단백질의 비밀 탐색
조교수의 관심은 단백질 특히 종양억제 단백질에 있다. 1993년부터 미국의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에서 박사후과정을 할 때 암과 관련된 기초연구를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우리 몸 속에는 여러 종류의 종양억제 단백질이 존재한다. 이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암이 발생한다. 이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단백질의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겨서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단지 추측을 할 뿐이다. 이러한 블랙박스의 비밀을 풀어 헤치는 사람이 바로 조윤제 교수다. 조교수는 단백질 분자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분자들 간에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암을 억제하거나 또는 암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생체 드라마를 단백질 분자의 구조를 해석하면서 보여준다.
이를 위해 조교수는 세포에서 원하는 종양억제 단백질 분자를 분리하고, 결정형태로 만든다. 그리고 X선을 쪼여 나온 데이터를 가지고 분자를 모델링하면서 종양억제 단백질의 기능을 분석한다. 이 모든 과정이 조교수의 손을 거친다. 주로 대학원생들이 실험하고 조교수는 해석만할것같지만그렇지않다.“ 제가 실험하는 것이 당연하죠. 저는 실험이 참 저한테 맞는다고 생각해요”라면서 실험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실제로 그의 손에서는 피펫(화학약품을 적정량 떨어뜨리는 실험기구)을 포함한 실험기구들이 떨어질 날이 거의 없다. 이것은“다른 연구실에서는 대부분 박사과정 선배한테 배우지만 저희는 실험을 선생님께 직접 배워요. 어렵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노하우를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죠”라는 김현철씨(석사과정)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교수는 무서운 선생님으로 통한다. 이 점은 조교수도 인정한다.“ 늘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는 편이니 욕 좀 먹겠죠 뭐. 저는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발휘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조금 더 편하려들면 연구능력은 하향평준화 될 수밖에 없어요”라며 자신이 보기에 학생들의 능력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우수하니까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정열은 동료들에게서도 유명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동료로 일했던 김기선 박사는“조교수는 어떤 일에 한번 매달리면 집중적으로 해요. 그런데 뭐든지 열정적으로 하려는 모습은 연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묻어나요. 한번은 치악산에 갔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하고 또 가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니까요”라며 조교수의 열정을 칭찬한다. 그러면서 그의 연구실에 있던 제자들이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 모두 감사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인다.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즐거움
조교수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공부를 안한다고 부인이 다그치면 덩달아 혼내다가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화를 낼 수 없다고 한다. 조교수도 초등학교때공부 안한다고 어머니께 무던히 혼났다고 살짝 귀띔하면서“놀기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저도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러니 애들은 오죽하겠어요”라며 노는맛에 사는 아이들을 이해한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교회에서 연극을 해본 후에 연극을 하고 싶었다고 주저하며 얘기한다.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연극이 재미있게 느껴졌다며 큰아들이 학교에서 연극을 해본 후로 자신감있어 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기회가 주어지면 연극을 하고 싶냐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이제는 연구가 본업인걸요”하며 웃는다. 하지만 아들이 폴뉴먼 같은 대배우가 된다면 적극적인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조교수는 틈나는대로 팝송, 가요, 클래식을 즐겨듣는다. 근래에는 김장훈의‘혼잣말’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좋아한다며 왠지 쑥스러워한다. 그러면서“하느님이 재미있게 살라고 삶을 주셨는데 열심히 살아야죠”라며 노는것도 잘해야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 또 조교수가 시간만 있으면 하려는 것이 있다. 바로 달리기다. 건강때문이기도 하지만 달리는 것 자체가 상쾌하다며 달리기 유익론을 편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점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에서 현재 포항공대로 부임하게 된 모든 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식품공학과로 대학의 전공을 정할 때까지만 해도 전공에 대한 특별한 선호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때 생화학을 들으면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해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듯이 생화학으로 전공을 바꾸는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그 기쁨이 커다란 추진력이 됐기 때문이다.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결정할 때도 자신의 연구가 사람들과 관련됐으면 하는 바램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어 이름난 곳보다는 실제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로 지원했다. 또 국내로 들어올 때도 독립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대학이 아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갔으며 포항에 내려올 때도 자신의 연구를 지원해줄 수 있는 여건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 친구들이 서울을 떠나 어떻게 살겠냐고 했지만 아이들 학교도 좋고, 자연환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학생들도 우수하고 제가 연구하고 싶은 여건이 이곳만큼 잘 된 곳도 없으니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어요” 라며 사람들이 조금 그립기는 하지만 현재의 생활에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성경책 읽는 과학자
조교수는 하루를 숨가쁘게 보낸다. 상큼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들어선 연구실에서 실험 계획 세우고 대학원생들과 회의하고 직접 실험하고 결과 해석하고 강의 준비하다보면 어느덧 하늘엔 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강의실에서나 집에서나 시시때때로 그의 손에 들려지는 것이 있다. 바로 성경책이다.
“연구실에 나오자마자 볼 때도 있고 강의 끝나고 볼 때도 있는데 일이 너무 바쁘면 보지 못할 때도 많아요”라고 말하지만 신앙생활이 그 자신을 지탱하는 큰 축임을 느낄 수 있다.
포항 충진교회 청년부 지도 집사이기도 한 그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대로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는 푹 쉬어야죠. 물론 뜻대로 안될 때가 많지만 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가지려는 것이 중요해요”라며 자신의 일에 전문가가 되려면 일상 생활이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것들 이 결국에는 하느님의 말씀에 다 담겨 있다고 설교한다. 이 점은 그가 대학원생들에게도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기초적인 소양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일까.
호기심이라는 무지개를 찾아서
조교수는 현재 유방암과 난소암에 관련된 BRCA2 유전자에 의한 종양억제 단백질의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이 BRCA2 단백질에 어떤 분자들이 붙음으로써 기능이 변하는지를 밝히려고 한다. 이 연구 이외에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냐는 질문에“하나라도 잘 해야죠”라며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종양억제 단백질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수명연장 단백질에 대한 연구는 병행하고 있다.
그는 암과 관련된 단백질 분자를 분석하던 중 알게된 수명연장 단백질을 미생물에 넣었더니 수명이 두세배 연장되는 것을 발견했다. 미생물의 경우지만 그 결과는 놀라워 벤처기업 크리스탈 지노믹스와 신약 개발과 관련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어찌보면 행운과 같은 결과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산업적인 응용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 궁금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매달린다. 연구 결과가 신약개발과 연결될지 여부와 같은 응용성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감하다. 하지만 그의 뿌리깊은 호기심은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의 커다란 열매를 맺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에 신이 선물을 내려준 것일까. 그의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연구가 중요한 까닭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어떻든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 호기심
이란 무지개를 좇는것이 그에겐 더 없는 기쁨인가 보다.“ 돈벌이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기초 연구란 생명체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가장 큰 역할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라면서 앞으로도 구조생물학에서 해결해야하는 기초적인 문제에 매달리겠다니 말이다. 시원한 포항 호미곶 해안을 달리며 호기심이란 무지개 뒤편의 세상에서 인류의 꿈인암정복과 노화 문제해결의 초석을 놓는 조윤제 교수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