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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학일기] ‘고등학교 4학년’ 거쳐야 비로소 시작되는 전공생활

◇술술 읽혀요

 

 

도쿄대는 학과가 정해진 유학생들을 제외하고 학생 대부분이 이과 1~3류, 혹은 문과 1~3류 등 반이 정해진 상태에서 입학한다. 1~2학년은 교양학부라고 하며, 제2외국어, 영어, 수학 등을 전공에 상관없이 함께 공부한다. 이후 각자 원하는 전공을 15개 정도 지망하면, 1~2학년 때 받은 성적순으로 전공이 정해지고 전공과정에 진학한다.
교양학부와 전공과정은 수업을 듣는 캠퍼스가 달라 수업 분위기도 꽤 다르다. 교양학부 때는 코마바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데, 실험실과 연구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강의실이다. 그래서 대학에 막 입학한 신입생은 대형 재수학원에 온듯한 인상을 받는다. 1교시부터 내내 강의실에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이 많은데, 일본인 친구들마저 “마치 이건 고등학교 4학년 같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앉아서 듣기만 하는 수업은 수업을 하는 쪽도 지루했는지, 교수님 중에는 “대충 강의해도 어차피 너희는 공부를 잘하니까”라며 잡담만 하다 수업을 마치는 분도 있었다. 잡담이라 했지만, 그중엔 유익한 이야기가 꽤 많았다. 교수님이 요즘 하는 연구라든가, 도쿄대 졸업생들이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등이 소재가 됐다. 드물지만 “이 정도 레벨로는 심심하죠, 여러분”이라며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내용을 가르쳐주는 교수님도 있었다. 
전공과정에 진학한 후 들은 이야기인데, 교양학부생은 열심히 가르쳐도 대부분 다른 전공으로 진학할 학생들로 보여 교수님들도 의욕이 안 생긴다고 한다. 반면 전공과정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대충 가르치면 혹시 우리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내가 고생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열과 성을 다하신다고 들었다. 
나는 교양학부 때 수업이 지루하긴 했어도 수업도 열심히 나가고 과제도 꼬박꼬박 냈다. ‘일본어도 어눌한 학생이 성실하기라도 해야 공부를 못해도 교수님들이 좋게 봐 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로 항상 아슬아슬하게 과락을 면할 성적을 받았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4월 학기 첫 수업부터 대면 강의가 전부 금지됐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을 활용한 온라인 강의만 진행되고 있다. 안 그래도 일방적인 강의는 더 일방적인 방식이 됐다. 나였다면 105분 동안 진행되는 교양학부 수업을 절대로 눈뜨고 못 버텼을 것이다. 지금 ‘고등학교 4학년’을 보내고 있을 1~2학년 학생들에게 건투를 빈다.
반면에 3학년에 진학해서 전공과정으로 들어가면 수업들이 전반적으로 재밌어진다. 교수님들의 수업 의욕이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필자가 속한 전자정보공학부 같은 공학부에서는 실험과목이 본격적으로 늘어나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3학년 때는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4학년 때 졸업논문을 쓰기 위한 준비도 시작해야 한다. 이때 평소 관심 있던 연구실 견학을 하거나, 공학부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각종 프로젝트 경진대회에 도전하기도 한다. 
전자정보공학부 전기과에는 특히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이어지니 꼭 해보길 바란다”며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는 교수님들이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에 관심이 쏠렸다.
나는 마음이 맞는 학과 친구 한 명과 팀을 짜 아이디어를 모은 뒤, 그 내용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학내 교수들에게 e메일을 돌렸다. 그리고 답변을 보내준 교수님에게 연구실 방문 허가를 얻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찾아갔다. 
덕분에 전기과뿐만 아니라 건축학과, 물리공학과, 의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후두암 수술 후 성대를 잃은 사람이 다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1년 내내 친구와 둘이서 학내는 물론이고 학교 밖 경진대회까지 휩쓸고 다녔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학교 공작실이 폐쇄돼 작업을 거의 못 하고 있지만, 학교가 문을 열면 다시 바빠질 예정이다.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안재솔 일본 도쿄대 전자정보공학부 3학년
  • 에디터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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