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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물치 크기의 슈퍼미꾸라지 해양식량난 대안, '프랑켄피쉬' 비판도

유전자변형 전성시대, 인간의 미래는?

45억년 전 지구가 태어난 이후,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제2의‘신의 손’이라 불리는 생명공학이 이들을 차례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 시대에 동물과 인간은 어떻게 바뀌고 있으며 문제점은 없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2010년 어느 날, 평범한 회사원인 K씨는 아내와 함께 수산시장을 찾았다. 그의 아내가 요즘 해산물에 입맛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시장 곳곳의 수조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수조에는 가물치인지 미꾸라지인지 구별이 안가는 대형물고기가 가득하며, 아기몸짓 만한 대형 연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한쪽 수조에는 새우가 가득한데, 모두 어른 팔뚝만하다. 반대편 수조에는 넙치와 참돔이 담겨있는데,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 모두 암컷이란다. 옆 수조에는 여름철인데도 불구하고 먹음직스런 참굴이 다닥다닥 수조벽을 채우고 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자리를 잡은 그는 광어회 한접시에 새우 튀김, 연어 샐러드까지 조금은 넉넉하게 주문한다. 가격은 전혀 부담 없다. 점심에 먹은 냉면 한그릇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상 푸짐하게 먹은 그는, 돈이 없어 횟집은 엄두도 못냈던 학창시절 추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산시장을 나온다.

물론 이 얘기는 단지 상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지 모른다. 최근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한 유전자변형 물고기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연어의 탄생 비밀

저렴하고 풍족한 미래의 먹거리로서 검증을 받고 있는 첫 유전자변형 물고기는 대서양 연어다. 사실 연어는 고급요리의 재료로 쓰여 서민들이 가까이 하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어에 생명공학기술을 접목한 ‘슈퍼연어’가 개발됐다. 이 연어는 흔히 식품점에서 볼 수 있는 연어와 모습이 같지만, 그칠 줄 모르고 성장호르몬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18개월만에 3㎏이 넘게 자란다. 이는 보통 연어보다 4배나 빠른 성장속도며, 다 자라면 웬만한 아기만 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선 특정 물고기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연어에 주입한다. 그뒤 이 유전자가 쉽게 발현되도록 성장호르몬 활성화 유전자를 ‘도우미’로 이식하면 슈퍼연어가 탄생한다. 이 연구의 주인공은 캐나다 생명공학회사 A/F프로틴의 초이 휴와 가스 프레처 박사다.

사실 이 방법은 말로는 쉽게 들린다. 하지만 슈퍼연어가 탄생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10여년에 이른다. 이 기간 동안 프레처 박사가 주목한 점은 ‘안티프리즈’(Antifreeze)라는 단백질이었다. 안티프리즈란 얼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느날 프레처 박사는 한류성 어종인 파우트(pout, 대구의 일종)를 연구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물고기는 영하 2-3℃의 차가운 물에서도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아닌가. 보통의 물고기는 단백질로 이뤄진 성장호르몬이 영하의 물속에서 그 생리적 효능을 잃어 성장할 수 없다. 연구를 계속한 그는 이 물고기의 성장호르몬이 바로 안티프리즈 단백질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물고기는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구조가 파괴되지 않는 안티프리지 단백질로 이뤄진 성장호르몬을 갖고 있어 온도에 영향받지 않고 계속 클 수 있는 것이다.

굉장한 발견에 흥분한 그는 이 물고기의 성장호르몬을 어떻게 이용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겨울철에는 성장을 멈추는 연어가 떠올랐다.

다음 날, 프레처 박사는 이 물고기의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추출해 연어의 성장호르몬과 재조합시켰다. 이렇게 변형된 연어는 사시사철 성장호르몬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따스한 계절에만 성장호르몬을 만들어내는 보통 연어에 비해 슈퍼연어가 빨리 성장하는 것이다.

 

(그림1) 슈퍼연어의 탄생과정


가물치일까 미꾸라지일까

유전자변형 물고기는 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찾는 추어탕도 앞으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비밀은 바로 ‘슈퍼미꾸라지’의 개발.

지난 1997년 부산 부경대 양식학과의 김동수 교수팀은 미꾸라지의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이용해 가물치크기의 미꾸라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슈퍼미꾸라지는 6개월만에 크기 35cm 무게 2백50g의 초대형으로 급속 성장한다. 6개월 정도 자란 보통 미꾸라지가 10cm안팎의 길이에 10g정도의 무게를 갖는데 비하면 성장속도가 무려 25배나 빠른 것이다. 또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삽입한 슈퍼연어와는 달리 슈퍼미꾸라지는 같은 어종의 유전자를 이식한 세계최초의 사례다.

김교수팀은 4천여개의 미꾸라지 수정란에, 미꾸라지 세포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주입해 그 중 3백개를 슈퍼미꾸라지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그가 이용한 방법은 가느다란 유리관으로 수정란에 유전자를 넣어주는 미세현미경주입법. 유전자가 성공적으로 이식된 슈퍼미꾸라지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 양은 일반 미꾸라지보다 30배가량 많은 양이었다. 당연히 슈퍼미꾸라지가 일반 미꾸라지에 비해 거대해질 수밖에 없다.
 

(그림2) 슈퍼미꾸라지의 탄생과정


최근 연구경향 세가지

사실 슈퍼연어와 슈퍼미꾸라지는 유전공학을 이용한 신품종 어류 생산기법 중 하나다. 지금 생명공학계에서는 유전공학을 이용한 수산물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의 연구경향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다른 종 또는 같은 종의 성장호르몬을 이식해 크기나 성장속도를 증가시킨 신품종 연구가 있다. 슈퍼연어나 슈퍼미꾸라지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성장호르몬을 이용한 슈퍼새우 연구도 진행중이다.

두번째는 유전자를 조작해 우량품종을 개발해내는 방법(선발육종)이다. 산란기의 참굴은 독성이 강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겨울철에만 채취하는 참굴은 고가의 고급요리로 취급된다. 이러한 참굴의 유전자를 조작, 산란기를 없앤 불임성 참굴이 개발돼 많은 이의 각광을 받고 있다. 더구나 바이러스에 약한 굴의 유전자를 변형한 항바이러스 굴도 미국에서 개발중이다. 모두 선발육종의 예다.

마지막은 성장이 빠른 암수어류 중 한가지 성만을 집중적으로 양식해내는 성전환법이다. 이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넙치나 참돔 등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횟집의 단골 메뉴인 이들 물고기는 수컷보다 암컷이 맛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암컷의 성장속도가 빨라 경제성이 높다. 최근 이들 물고기의 수컷 유전자를 완전 제거해 암컷만을 선택적으로 생산해내는 기술이 김동수 교수팀에 의해 개발됐다.

2025년 해양식량 현재의 절반

생명공학자들이 물고기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뭘까. 미국 매릴랜드대 생명공학연구소의 요나선 조하르 교수는 “앞으로 해양식량을 인류에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유전자변형 물고기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물고기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식량 자원이고 지구상 단백질의 16%를 담당하고 있다. 인류는 연간 소비되는 2억5천3백만t의 동물단백질 중 6천5백만t의 단백질을 물고기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따르면 전세계 대양에서 이뤄지고 있는 고기잡이의 60-70%가 남획으로 위협받고 있으며, 이같은 추세라면 2015-2025년 사이에 전세계 어획량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많은 생명공학자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변형 물고기의 개발과 인공양식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경대 김동수 교수는 “유용한 유전형질을 양식어류에 부여하는 기술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수산물의 전세계적 부족분(2025년에 5천5백t)을 중추적으로 해결해 나갈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기술은 영양실조와 기아에 허덕이는 제3세계국가와 아프리카 난민에게 저렴한 단백질을 공급할 유력한 방안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고기연구가 손쉬운 이유

그러면 소나 돼지 등의 육상가축으로는 이같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을까. 사실 육질이 뛰어나고 성장속도도 빠른 ‘슈퍼돼지’가 개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성공확률이 작고, 성공했을 경우에도 2세대 수가 너무 적어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다.

이에 비해 물고기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국립수산진흥원 유전공학과의 김경길 연구원은 “물고기는 육지동물에 비해 조작이 쉽고 세대수도 많아 이식된 유전형질이 2세대에 나타나면 대박”이라고 말한다.

식용으로 사용되는 육지동물은 대부분 조작할 난자의 수가 적을 뿐더러 채취하기도 힘들다. 또한 유전자가 이식된 난자를 다시 어미 자궁 속에 넣어야하므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더욱이 성공률도 매우 낮다. 하지만 물고기는 알의 수도 많고 구하기도 쉬울 뿐더러 조작된 알을 다시 어미 뱃속에 이식할 필요 없이 수조 속에서 관리하므로 훨씬 간편하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연구원은 물고기의 경우 “안전한 어미 뱃속이 아니라 인공 수조에서 부화된 치어를 관리해야 하는데 그 적절한 환경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애로사항 때문에 지금까지의 유전자조작 물고기연구는 바다고기에 비해 환경적응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민물고기에 치중됐다. 슈퍼연어와 슈퍼미꾸라지는 모두 민물고기다. 그러나 최근에는 넙치나 참돔 등의 바다고기에 성장호르몬을 주입하는 유전자변형 연구가 차츰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생물 시한폭탄’ 주장 제기

그러나 유전자변형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슈퍼연어와 슈퍼미꾸라지는 시판 허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 실제 판매되고 있는 유전자변형 물고기는 없다. 슈퍼연어와 슈퍼미꾸라지 모두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유전자변형 물고기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안전성’이다. 구체적으로 환경에 대한 영향과 인간에게 미칠 파장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환경에 대한 영향은 유전자변형 물고기가 기존의 생태계를 교란·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환경단체들은 슈퍼연어를 ‘생물 시한폭탄’ ‘프랑켄피쉬’라 부르며 시판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슈퍼연어가 양식장의 그물을 뚫고 바깥으로 나갈 경우 토종 연어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뉴질랜드의 가장 큰 태평양연어 공급업체인 킹 새먼사와 스코틀랜드의 오터 페리 새먼사는 환경단체의 반발을 의식, 유전자변형 실험을 보류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도 유전자변형 물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시판과 연구를 금지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슈퍼미꾸라지도 마찬가지다. 슈퍼미꾸라지의 슈퍼형질은 2세대까지 유전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통 미꾸라지보다 몸집이 크고 왕성한 식욕의 잡식성 장수어종인 슈퍼미꾸라지가 생태계에 유출될 경우, 생태계 교란은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동수 교수는 “슈퍼미꾸라지가 2세를 생산할 수 없도록 불임화 시킨뒤 대량양식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슈퍼미꾸라지의 생식능력 상실을 100% 보장하기 어려운데다, 슈퍼연어의 경우에도 변종의 출현 등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양식어종으로 도입한 블루길이나 베스가 양식장 그물을 뚫고 나가 참붕어 등 한반도 토종 민물고기를 몰아낸 적이 있다. 유전자변형 물고기도 이처럼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생태계를 파괴·교란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변형 물고기의 산업화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환경운동연합의 생명안전담당 최준호 간사는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위험성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인간과 같은 동물인 유전자변형 물고기는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미생물을 이용해 증폭한 성장호르몬을 소에 주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변형 물고기의 성장호르몬도 인체내로 들어와서 알레르기나 광우병 같은 치명적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적 안전장치 발효중
 

환경단체는 유전자변형 농산물뿐만 아니라 유전자변형 물고기에 대해서도‘프랑켄피 쉬’라 부르며 시판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유전자변형 물고기의 실제 시판에는 좀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인간과 환경 모두에게 안전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초 우리나라에선 유전자변형 동물 안전성에 관한 지침을 마련했다. 시민단체와 생명공학자 등 각계의 대표로 구성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생명윤리기본법이 바로 그것이다. 기본법에는 동물의 유전자변형 연구와 활용에 관한 지침이 포함돼 있다. 지침에 따르면 동물의 유전자변형 연구를 상시적으로 감독할 동물연구특별위원회가 설치된다. 이 위원회는 인간과 생태계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변형 동물의 연구와 그로부터 생산된 물품을 구체적 규정과 지침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생명공학자는 엄격한 연구규제가 미칠 경제적 손실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현재는 이에 대한 다양한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유전자변형 동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있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의 보호장치만 마련됐다고 안심할 순 없다. 미국의 슈퍼연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종연어를 멸종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비한 국제간 보호장치가 마련됐다.

지난 1월29일 캐나다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특별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생명공학안전성 의정서가 바로 그것이다. 카르타헤나 의정서라고도 불리는 이번 의정서는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절차 등에 관한 지침을 규정하고 있다. 지침에 따르면 유전자변형 생물체는 수출되기 전에 수입국의 위해성 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수입국 입장에서는 이런 사전통보제를 활용해 유전자변형 생물체를 선별해 수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산업자원부를 주축으로 의정서에 규정된 위해성 평가 및 관리 등에 필요한 법안의 기초가 마련돼 있다.

과학의 기준만으로 유전자변형 물고기의 위험성이나 유용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건강과 직접 관련이 있는 먹거리 문제인 만큼 안전하고 건강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200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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