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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애덤 킹의 아름다운 시구

의공학

오늘날 두다리가 절단된 장애인도 의족 덕분에 각종 스포츠를 즐긴다. 의사는 내시경, MRI와 같은 각종 첨단 의료장비를 이용해 수술하지 않고도 환자의 체내를 들여다본다. 의공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다. 의공학은 과연 어떤 학문일까.

지난 4월 5일 2001년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잠실 야구장. 한 소년이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에게 시구를 던진다. 그 소년의 이름은 애덤 킹(9). 각종 방송과 신문은 이날의 일에 대해‘가장 아름다운 시구’였다고 보도했다. 왜일까.

애덤 킹은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으로 두다리가 없는 장애아다. 그는 어떻게 선동열에게 공을 던질수 있었을까. 휠체어에 앉아서였을까. 아니다. 그는 멀쩡하게 서서 던졌다. 자신의 몸을 지탱해주는 의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의 시구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두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서…. 

하지만 이를 보고‘아! 참으로 놀라운 과학의 결과이구나!’라고 생각한사람은 아마도 별로 없었을것이다. 특히 의공학의 발전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애덤킹이 30년전쯤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과거에는 불의의 사고로 두다리를 잃는 일은 곧 평생 인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었다.

무릎 이하로 한다리를 잃었을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리 모양만을 본따 만든 나무 의족을 이용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 의족은 단지 목발 수준에 불과했다. 오랫동안 나무 의족을끼고 다닐 수 없었다.

사람은 두다리로 몸 전체를 지탱한다. 걷거나 뛸 때 다리의 뼈, 근육, 그리고 관절은 제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다리는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무 의족은 단지 외형만 본땄기 때문에 다리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장애아애덤킹의아름다운시구


미래에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가능한 이유

그러나 오늘날 의족은 첨단과학기술 덕분에 다리의 기능을 상당히 닮아가고 있다. 애덤 킹처럼 두다리가 절단된 사람도 의지만 있다면 의족을 달고 장애를 극복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이클, 등산, 스키, 마라톤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다. 또한 일반인 못지 않은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난해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때에 한쪽 무릎 아래에 의족을 착용한 장애인 선수가 1백m를 11초09에 주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점점 장애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미래에는 결국 장애인과 일반인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다. 오히려 일반인의 신체보다 인공적으로 만든 장치가 더 놀라운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마치‘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말이다.

이같은 연구를 하는 분야가 바로 의공학이다. 말 그대로 의학과 공학이 결합한 학문이다.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탄생하려면 의학적 지식은 물론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재료공학 등 각종 첨단공학기술이 동원돼야 한다. 의공학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의공학은 매우 광범위한 영역을 다룬다. 의공학은 장애자용 보조기구를 개발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병원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의료장비의 개발도 의공학의 영역이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이뤄지는 각종 검사에 쓰이는 장비가 모두 의공학 발전의 결과라고 말할 정도다.

예를 들면 뱃속의 태아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초음파 진단기,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이 의심스러울 때 체내의 정밀 영상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장비가 있다. 의사는 이들 영상정보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수술하지 않고도 알아낸다. 영상진단장비는 의사의 또다른 눈이 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심장박동, 혈압 등을 측정∙분석하는 장치, 생체합성물질로 만들어진 인공치아, 그리고 전산화된 병원자료까지도 의공학의 관심사다.

학문분야에 따라 접근방식 다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영역을‘의공학과’라는 명칭이 있는곳에서만 연구하는 것일까. 아니다. 의공학과에서 연구∙개발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할까. 각종 관련학과에서 부분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전기전자, 기계, 재료 분야에서도 의공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각 분야마다 다른 방식으로 의공학에 접근하고 영역도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영상진단이나 심장박동과 같은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각종 계측장비는 주로 전기전자공학의 관심분야다. 대부분의 의료장비가 전자기적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체가 밖으로 표출하는 정보가 전자기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전기전자공학에서는 인간의 생체신호의 전자기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측정하는 장치를 개발해내고 있다.

기계공학에서 접근하는 의공학의 주요 연구주제 중 하나로 사고나 질병에 의해 손실된 인체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개발하는 분야가 있다. 이 분야를 재활공학이라고 부른다. 애덤 킹을 지탱해주는 의족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먼저 인체를 역학적으로 분석해야만 한다. 기계공학은 인체를 기계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인공장기와 같은 각종 장비에 어떤 소재의 물질을 이용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우리 몸에 들어와서 체내 물질과 반응해서는 안된다. 너무 무거워도 안된다. 인간의 몸으로 구성된 재질에 가장 가깝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각종 의료장비에 어떤 재질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재료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학문이 독립적으로 각종 의료장비를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한 장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분야가 통합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시경을 예로 들어보자. 최근 내시경은 기존 것에 비해 훨씬 가늘어져 환자의 불편을 줄여주었다. 또한 내시경 끝에 수술가위와 같은 간단한 기계가 부착돼 의사는 조직을 채취하거나 간단한 수술까지도 해낼 수 있다. 이때 의사는 내시경과 연결된 모니터로 수술과정을 볼 수 있다. 내시경 수술은 기존 수술보다 적은 상처만을 남긴다.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내시경이 발전하기까지 여러 학문이 참여했다.

우선 장비의 기능적인 설계를 비롯한 전체 설계와 제작은 기계공학이 담당한다. 내시경의 각종 제어장치나 전기전자 부품은 전기전자공학에서 맡는다. 내시경과 모니터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의료영상처리 기술이 필요한데, 컴퓨터와 전기전자 분야가 관여한다.

그리고 내시경은 몸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쓰느냐는 문제도 중요하다. 가능하면 지나가는 체내 부위를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재료공학자가 적합한 재질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편 내시경이 인체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지식을 가진 의사의 참여는 당연하다.
 

현재 개발된 의족은 신체적인 장애 를 상당히 극복시킬 수 있다.


공학 전공 후 의공학의 길 걷는다

이처럼 의공학은 다양성과 복합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 최근 학문간 경계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하지만 의공학은 자체가 그렇다. 의공학자는 학문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어야 한다. 때문에 의공학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마련이다.

한 예를 살펴보자. 포항공대 염영일 교수(60)는 기계공학에서 접근하는 의공학자다. 그는 미국 유타대에서 기계공학 학사, 그리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역시 기계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그가 언제부터 의공학에 관심을 가졌을까.

염교수가 위스콘신대에서 석사학위를 시작하기 바로 전인 1968년 여름의 일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의공학 분야가 막 태동하고 있었다. 그는 위스콘신대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찾아갔다. 입학 전부터 미리 연구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 학과장은 그에게 체육과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소개했다. 어린아이, 어른, 그리고 프로선수가 공을 차는 동작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연구는 의공학 연구주제는 아니지만, 이때 염교수는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기계공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여러 방향으로 관심을 갖던 그는 인간을 정밀한 기계로 보는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염교수가 본격적으로 의공학 연구를 수행한 때는 1975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다. 이때 현재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인 임관 박사를 만났다. 당시 임박사는 아이오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와이오와대는 의과대학으로 유명한데, 임박사는 당시 의학과 공학을 연결하는 학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의공학이다. 이때 임박사는 연구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계속 갖고 있던 염교수는 임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아이오와대 생체공학 연구실의 책임연구원으로 가게 됐다.

염교수는“기계공학자가 중공업으로만 진출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여러 방면으로 공학자가 진출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과 다양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의공학은 여러 학문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개의 의공학자는 염교수처럼 우선 공학을 전공한 후 본격적인 연구활동 과정에서 의공학의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학 이외의 분야에서 학부를 마친 후 대학원 과정으로 의공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공부에 나서
 

병원에는 각종 의료장비가 배치돼 있다. 첨단의료장비 개 발도 의공학의 연구주제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대학원 과정에 있는 임병희씨(30)는 학부과정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기계공학을 부전공으로 택했다. 세포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던 중공학적으로 이를 연구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현재 생명과 공학의 접합점을 찾고 있다. 하지만“아직은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 임씨의 관심사는 현재 기계공학에서 접근하는 의공학의 큰 주제 중 하나다. 이제까지 세포에 대한 생화학적 연구는 많이 이뤄졌다. 이와 비슷하게 기계공학에서 접근하는 의공학에서도 뼈, 근육, 관절, 각종 장기 등 인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에 대한 연구가 세포 단위에서 이뤄지는 추세다. 예를 들어 잡아 늘리는 것과 같은 외부의 기계적인 자극에 대해 세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다.

한편 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의공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다. 안형수씨(36)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현재 병원을 나와 유학을 준비중이다. 그에게“왜 의공학을 공부하길 원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안씨는“의공학이 미래에 전망있는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의공학의 성과물을 이용하는 의사로서 의공학에 대해 거의 모르기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미국에서는 안씨와 같은 예가 종종 있다. 의공학자 중 의학을 전공하고 공학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의학적 지식이 실제 의공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대개 의사로서보다는 연구소나 대학에 재직하면서 연구활동을 한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임상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안씨는“자신이 아마 의사로서 의공학자가 되려고 하는 최초의 한국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포항공대 최현기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주요 의공학 연구소가 병원과 연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의공학의 결과물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은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과의 연계성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또다른 특징은 여러 의공학 관련 대학과 연구소들이 컨소시엄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의공학의 광범위한 범위를 통합적으로 연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다. 아직까지 의공학의 중요성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각종 의료장비가 국내에서 연구∙개발된 것이 아니라 전량 수입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200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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