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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자생식물이용기술 개발사업단장 정혁

교통사고 시련딛고 일어선 사격선수

 

자생식물이용기술 기밸사업단장 정혁


“박사님, 이건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인데요…”라고 하면서 요즘 자생식물이용기술 개발사업단의 정혁 단장(46)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사는 한 농민은 ‘헛개’라 불리는 나무의 열매를 달여 먹으면 숙취 해소에 그만이라 하고, 경기도 동두천의 한 건설회사 이사는 어느 식물을 찧어 바르면 무좀에 특효라고 귀띔을 해주러 사업단을 직접 찾아온다고 한다. 정단장은 이들 모두의 아이디어를 소중하게 기록하고 실제 어떤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하려 한다.

첨단 동의보감을 만든다

정단장이 이끄는 사업단의 최종목표는 한마디로 말하면 ‘첨단 동의보감’을 만드는 일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용식물의 작용에 대해 다양한 경험적 자료를 제시했는데, 사업단에서는 이런 약용·특용식물에 대해 현대의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해 유전자 규모까지 연구하려는 것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환경회의에서 생물다양성협약을 채택한 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에서만 살고 있는 동식물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이들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 개발하기 위해 각 민족의 전통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식물분야에서는 우리나라도 인삼과 같은 전통약재(자생식물)를 이용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우리 것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정단장에게 자생식물에 대해 이런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생명공학연구원의 이형규 박사였다. 현재 이박사는 사업단의 주요사업인 자생식물의 표준추출물은행을 구축하려고 노력중이다. 또한 정단장은 사업단을 결성하는데 자생식물을 유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같은 연구원의 최도일 박사의 역할도 컸다고 덧붙였다.

사실 정단장은 인공씨감자 연구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1989년 정단장은 바이러스 병이 전혀 없는 무병·우량 씨감자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세포·조직 배양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우리만의 인공씨감자 기술은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러시아, 유럽 13개국에 특허로 등록돼 있다.

정단장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선뜻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이라고 대답했다. 약간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곧바로 서장관이 차관시절이었던 90년대 정단장이 인공씨감자를 연구하는데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동포의 생명과 직결된 연구

과수나무에 대한 세포조직 배양으로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정단장이 인공씨감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사실 처음에 정단장은 감자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귀국하자 국내에서 인공종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정단장은 마늘과 감자 분야를 맡게 됐고 그후 감자에 주력했다. 이후 15년간 감자분야의 한 우물을 팠다. 앞서 말한 서정욱 장관의 재정적 지원도 있었지만 정단장의 의욕과 끈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단 감자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한 정단장은 감자에 관한 모든 책을 섭렵했다. 1988년에는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피에서 다룬 감자관련 특집을 감명깊게 읽었다고 한다. 빠타타(Patata, 인디언 말로 감자라는 뜻)라는 제목으로 감자의 역사와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정단장은 감자에 대해 “고비사막과 같은 오지에서는 세끼를 연명하는 수단이지만, 선진국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의 포테이토칩”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정단장이 세계 최초로 인공씨감자를 개발한 이후에는 오히려 주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특히 중국 대련 농업연구소의 장화명 박사가 정단장의 혜택을 받았다. 처음에 장박사는 좋은 품종의 감자를 개발했지만 기존의 기술로는 농민들이 종자를 구하는데 10-15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정단장의 조직배양기술 덕분에 ‘초백’이라는 이름의 이 감자는 2-3년만에 농민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박사는 크게 감동했고 은퇴한 지금도 정단장을 친형제처럼 생각하며 연락하고 있다고 한다.

인공씨감자 기술을 북한에 제공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정단장은 1998년과 1999년에 북한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함경북도 나진·선봉지역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보며 “저의 연구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북한동포의 생명 연장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느꼈죠”라고 정단장은 설명했다. 이때 정단장은 자신의 연구가 중요한 일이라는 사명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손이 아니면 왼손으로

사실 정단장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던 김승진이라는 이름의 동네형(지금은 대학교수라고 한다)이었다. 정단장이 학교를 다니던 때는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시험을 쳐서 입학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과외를 하며 명문 중학교에 합격했는데, 이후에 정단장은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중학교 때는 공부는 뒷전이고 운동만 했다고 한다. 당연히 끝에서 몇등을 할 정도로 낙제점을 받았고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갔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승진이형을 쫓아 한달 동안 절로 들어갔다. 물론 공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달만 공부하고 오면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유혹 때문이었다. 절에 들어간지 1주일이 지나자 승진이형이 절에 와서도 계속 빈둥거리기만 하던 정단장을 꾸중했다고 한다.

그때 승진이형의 어깨 뒤로 색이 바랜 벽지의 한부분이 정단장의 눈에 띄었다.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하라고 방안을 새 벽지로 도배했는데, 승진이형이 1주일간 꼼짝도 않고 같은 자리에서 벽에 등을 댄채 공부만 하자 그 자리 뒤의 벽지 색이 바래진 것이었다. 정단장은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후로 정단장은 스스로 깨달아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물론 실력과 성적이 급성장했다. 여름방학 후에는 꼴찌에서 맴돌던 성적이 반에서 6등까지 올랐다. 이후로 정단장은 ‘뭐든지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는 점을 깊이 느꼈다.

정단장의 삶을 바꾼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정단장은 구기운동을 좋아했는데 특히 테니스는 수준급이었다. 그런데 군대 시절 훈련중 오른쪽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물론 테니스를 할 수 없었다. 이때 정단장은 스포츠잡지에서 독일의 한 사격선수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한마디로 인간승리의 드라마였다. 속사부문에서 오른손으로 금메달을 땄던 이 선수는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절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왼팔로 연습해 8년 뒤에 또다시 금메달을 획득했던 것이다. 정단장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왼손으로 테니스를 시도했다. 처음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극복했다. 정단장은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지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의 성공은 수없이 많은 실패의 경험을 꾸준히 쌓아올린 결과’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정단장은 사업단을 이끌 때도 성실하고 정직한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실패한 자료도 정직하게 행한 자료라면 귀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종식물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자생식물이용기술 개발사업단

2000년 7월 출범한 이 사업단은 국내에 서식하는 4천여종의 다양하고 특이한 자생식물 자원과 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접목시켜 세계적으로 독창적이고 경쟁력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최근 들어 화학합성에 의존한 신약개발에 한계를 느낀 선진국들은 천연식물에서 유래한 신약개발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일반인들도 천연식물에서 얻은 의약품과 건강보조제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전세계 시장규모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또한 자생식물자원을 제대로 파악하고 유지·보존하며 효율적으로 활용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사업단은 한반도 종합식물지를 발간하고, 자생식물 종자은행과 표준추출물은행을 구축하며, 자생식물로부터 유용한 유전자를 발굴하고 기능을 연구한다. 예를 들면 인삼의 유전자지도를 작성하는 일이다. 나아가 자생식물을 이용해 신기능성식품, 식품의약, 약용물질, 그리고 고부가가치 형질전환식물을 개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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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창호
  • 장미경 기자
  • 진행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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