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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전자와 인간 특성, 어떤 관계인가

'병든 유전자'와 '병든 인간'은 다른 말


대장암 유전자를 분석해서 그 발전단계를 알 수 있다.


오늘날 분자생물학, 특히 분자유전학의 눈부신 발전(가령 인간게놈계획)은 경이로운 장미빛 미래를 꿈꾸게 한다. 심지어 그것은 '신'의 영역을 넘볼 수 있을 만큼의 이미지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존재 자체나 인간 활동의 산물인 과학도 결코 자연의 법칙을 초월할 수 없으며, 다만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파악함으로써 인간(집단)의 한계를 확장시킬 따름이다. 또한 인간이 자연법칙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자연법칙의 '의미'까지 온당히, 그리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의어로 쓰일 수는 없다. 따라서 과학기술, 특히 첨단적인 것일수록 그 현실적 적용과 응용에 대해 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흔히 분자유전학에서는 '이상이 있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시킬 수 있는 유전자 전이기술' '병든 유전자를 찾아내 이를 제거, 교정해 주는 유전자 치료법'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서 '이상이 있거나 병든' 유전자와 '정상' 유전자의 판별 기준은 무엇인가?

'이상'과 '정상', '병든 상태'와 '건강한 상태'에 관한 논의는 과학과 의학, 그리고 철학의 역사를 통해 줄곧 언급돼 왔지만 이는 오늘날까지도 결코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만일 '이상'과 '정상', '병든 상태'와 '건강한 상태'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또는 이것이 '순수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판별 가능한 것이라면 그런 유전자 기술과 치료법은 존재 근거를 당당히 확보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전자 수준의 어떤 상태에 대한 판단에는 인간의 주관적 가치가 개입된 것은 아닐까. 즉 개체 전체에 대한 판단 기준과 똑같은 기준이 유전자 차원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분자생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분자생물학 스스로가 판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 사고의 패러다임을 변경시키는 것도 아니다.

한편 '정신분열병은 5번 염색체, 우울병은 11번 염색체, 노인성치매(노망)는 21번 염색체, 헌팅톤 무도병은 4번 염색체에 이상'등의 분자유전학적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예컨대 5번 염색체의 이상이 곧 정신분열병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가.


생명체는 하위 단위로 환원될 수 있을까.


흰피부 유전자≠흰피부

이런 문제들과 관련, 환원론(reductionism)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집단은 개체로, 그것은 다시 조직계통으로, 세포로, 세포 구성분자를 제조하는 설계도인 유전자를 환원될 수 있는가. 즉 '하위 단위'에 대한 이해가 '상위 단위'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온전히 해명할 수 있는가. 아니면 상위 단위는 하위 단위로 구성되고 그것의 제약을 받지만, 상위 단위는 나름대로의 특성과 논리를 갖는 것인가.

가령 "물 분자는 2개의 수소원자와 1개의 산소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진술이 "물 분자의 특성은 2개의 수소원자와 1개의 산소원자가 나타내는 특성의 합이다" 혹은 "수소원자와 산소원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물 분자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가.

이 물음을 유전자에 관한 언급에 적용시켜 보자. "정신분열증과 관련되는 유전자가 있다"는 진술(A)이 곧바로 "그 유전자의 발현이 정신병이다"는 사실(B)로 치환될수 있는가. 또 "동성애와 관련되는 유전자가 있다"는 진술(A)이 "그 유전자의 발현이 곧 동성애다"는 사실(B)로 연결될 수 있는가.

그러한 관련 유전자의 존재 여부도 확실하지 않지만, 현 단계에서 진술(A)을 사실(B)로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비약이며 과학적 태도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이데올로기적으로 가능한 선택일 따름이다.

인종별로 나타나는 피부색깔과 같이 일견 단순해 보이는 현상에서도 '흰피부 유전자=흰피부', '검은피부 유전자=검은피부'의 등식으로 부인된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아. 그리고 혈액형도 유전정보대로 발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단계와 과정을 뛰어넘어 유전자와 '행동'을 직접 결부지으려는 것은 대단한 도박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행동'이라는 복합적 현상의 특성도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199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황상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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