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에서만 존재하던 로봇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애완용 로봇에서 사람 형상을 닮은 로봇까지. 앞으로는 설거지하고 청소하며 경비를 서는 로봇을 쉽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21세기 첨단과학 로봇공학을 만나보자.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K군. 평소 로봇에 관심이 많던 K군은 얼마 전 텔레비전 저녁뉴스에서 흥미로운 뉴스를 보았다. 다름아닌 장난감처럼 생긴 강아지가 실제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장면이었다. 이것이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놀랐다. K군은 전에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사람과 악수하는 장면을 본 기억도 떠올랐다.
저녁뉴스가 끝난 후 K군은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비디오 대여점에 들렀다. 진열대에서 우연히 로봇을 다룬 비디오‘바이센테니얼맨’을 발견했다. 비디오에 나오는 바이센테니얼맨은 사람을 많이 닮았는데, 원래 요리하고 설거지하며 청소하는 로봇이었다. 그런데 이 로봇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K군은 비디오가 끝나자 이런 생각에 잠겼다. 장차 로봇공학자가 돼서 바이센테니얼맨과 같은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기계와 차이점은 지능
우리는 K군처럼 흔히 인간을 닮은 로봇이 현대과학으로 곧 실현될 것 처럼 믿는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서 아톰, 씨쓰리피오(스타워즈), 로봇 태권V 등 너무 똑똑한 로봇을 많이 봐온 탓이다.
하지만 실제로 로봇이 활용되는 산업현장이나, 연구자들이 만든 로봇을 볼 수 있는 로봇전시회를 가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팔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있거나 기계부품을 모아놓은 듯한 낯선 모습이 상상속에서 그리던 로봇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로봇이 장난감과 같은 수준이거나, 외형적인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단순한 기계는 아니다. 로봇이 단순한 장난감이나 기계와 다른 점은 바로 지능이다. 제품을 조립하거나 검사하는 단순동작조차도 컴퓨터처럼 상당히 많은 이론적 기반을 갖는 지능알고리듬이 숨어있다. 로봇은 감각 센서로 주변환경을 감지하고 어떻게 움직일지를 계산한 후 각 관절을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실시간 제어와 같은 컴퓨터공학의 기술이 사용되기 때문에 로봇의 지능은 중요하다.
로봇의 모양이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낯설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봇은 원래 자신의 목적에 맞게 생김새를 갖춘다. 특히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로봇이 그렇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조립하는 로봇은 팔 하나면 충분하다. 다른 부분이 불필요하게 있다면 경제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로봇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한다면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도와주고 힘든 작업을 대신해주며 반복적인 일도 처리해주는 지능을 가진 기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로봇을 연구하는 학문이 로봇공학이다. 로봇공학은 기계 전기 전자 전산(컴퓨터) 등 여러 분야가 관련된다. 일례로 포항공대에는 기계공학과와 전기전자공학과에 모두 로봇관련 연구실이 있다.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는 아이보
K군이 저녁뉴스에서 본 강아지 로봇은 무엇일까. 바로 일본 소니사가 개발한 애완용 로봇 아이보(AIBO)2. 1999년에 첫선을 보인 아이보는 개당 3백만원의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으로 시판되자마자 20분만에 3천개가 팔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업그레이드한 아이보2는 지난해 말부터 1백8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한달만에 4만대가 팔려 최근 추가로 4만대를 새로 제작한 것.
아이보가 인기있는 이유는 사람과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보에는 감각센서가 있어 사람이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는 동작을 한다든지, 음성인식 기능이 있어 주인의 말에 따라 적절히 반응한다. 아이보와 같은 애완용 로봇은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가사용 로봇 등과 함께 사람을 위한 서비스 로봇으로 분류될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일본 로봇전시회에서는 인간을 닮은 로봇, 즉 인간형 로봇이 화제를 일으켰다. 일본 혼다 사에서 개발한 아시모(ASIMO)와 소니 사에서 개발한 SDR-3X가 대표적이었다. 물론 전에도 사람 모습을 한 로봇이 있었지만 움직임이 어색했다.
아이가 책가방을 멘 듯한 모습인 아시모는 두 다리로 걸으면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걷는 동작도 거의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사람과 악수할 정도로 손을 미묘하게 움직일 수 있다. 1백20cm 키에 몸무게가 43kg인 아시모는 1997년에 제작된 인간형 로봇 P3보다 키가 40cm, 무게는 87kg가 각각 줄었다.
소니 사의 SDR-3X는 키 50cm에 무게는 5kg에 불과하지만, 24개의 관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연한 동작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예를 들어 음악에 맞춰 한발로 춤을 추거나 90˚각도로 허리를 굽혀 일본식 인사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인간형 로봇이 사람을 위해 힘든 일을 해줄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하다. 단지 아이보와 같이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수준이다.
경비와 심부름 가능한 로봇, 국내 개발중
로봇은 크게 산업용과 비산업용(개인용)으로 나눌수 있다. 비산업용 로봇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가장 집중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다. 앞에서 예를 든 서비스 로봇이나 인간형 로봇은 주로 개인용 로봇이다. 물론 서비스 로봇이 사람의 모습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일에 적합한 형태라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산업용 로봇은 비록 일반인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가장 도움을 주는 로봇이다. 공장에서 하는 많은 작업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때로는 위험한데, 이런 일은 지칠 줄 모르는 로봇이 하기에 적당하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조립하거나 선박을 용접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보수하거나 깊은 바다속이나 우주공간에서 작업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아니면 안된다.
산업용 로봇 분야는 우리나라도 시장규모나 기술면에서 세계수준에 육박한다. 1984년 대우중공업의 아크용접용 로봇‘노바(NOVA)-10’을 개발한 후 본격화된 국내산업용 로봇 규모는 여러 기업과 대학, 그리고 연구소가 참여해 매년 증가했다. 용접용 조립용 운반하역용 도장용 등의 국내 산업용 로봇 보유 대수가 1998년에는 세계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 산업용 로봇의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원자력연구소에서는 방사능에 노출된 관의 내부를 청소할 수 있는 로봇을 연구중에 있다. 포항공대에서는 제철소의 뜨거운 쇳물 양을 노즐로 조절하는데 사용되는 무거운 센서를 커다란 쇳물통에 꽂을 수 있는 로봇시스템을 개발했다. 또한 제철소 굴뚝을 청소하고 뜨거운 쇳물 찌꺼기를 걷어내는 로봇도 개발했다.
이에 비해 비산업용 로봇은 1990년대에 들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1994년 휴먼로봇센터에서 상체가 사람, 하체는 말인‘센토’를 최초로 개발했고, 지능제어연구센터에서 이동로봇(바퀴 발 등이 달려 이동이 가능한 로봇)에 시각장치를 장착한‘카라’(KARA)를 개발중이다. 센토가 단순히 물건을 조작하던 정도라면 카라는 물체를 쫓아갈 만한 지능이 있어 앞으로 집안이나 건물 경비에서 잔심부름까지 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항공대에서도 카라와 비슷한 로봇을 개발중이다. 이동로봇에 시각장치뿐만 아니라 팔과 손을 덧붙여 여러 가지 기능을 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포항공대 정완균 교수(기계공학과)는“이 로봇이 완성되면 KIST의 카라와 배구를 하도록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보다 어려운 감정 창조
K군이 비디오에서 봤던 바이센테니얼맨은 정말 불가능할까. 바이센테니얼맨은 사람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논리적 판단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먼저 로봇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재료 동력원 구동장치 감각센서 인공지능 등이 필요하다. 이들은 현재 로봇공학 분야에서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현재 로봇이 들거나 움직일 수 있는 무게는 자신의 무게의 약 1/10 정도다. 이런 원인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구동장치의 효율이다. 현재 로봇에 사용되는 구동장치는 전기, 유압, 공압 등을 이용한 모터인데, 이런 구동장치를 대신할 고효율의 구동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구동장치가 생물학적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근육에 다가가야 한다.
현재 로봇의 센서는 카메라, 마이크로폰, 레이저나 초음파를 이용한 거리 측정장치 등이 활용되는데 너무 인위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앞으로 인간의 감각기관처럼 효율적이고 고성능인 센서가 개발돼야 한다.
인공지능은 로봇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논리적 판단을 내릴 때도 사용된다.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하고 이에 알맞은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똑똑한 컴퓨터가 필요한데, 현재 인공지능 분야는 로봇공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 중의 하나다.
물론 인간처럼 감정을 갖는 일은 인공지능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정을 프로그램하듯이 넣을 수는 있지만 로봇이 자체적인 감정을 창조하는 일은 요원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로봇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연구는 상당히 미흡하다. 예를 들면 미국 MIT대에서 개발한 키스멧(Kismet)이라는 로봇이 슬픔 분노 놀람 흥미 행복 등의 감정을 단순한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기계연구소에서는 쓰다듬으면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로봇을 연구중이다. 이런 로봇은 병원에서 환자와 친구로 지낼 수 있어 환자의 치료효과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바이센테니얼맨의 가능성에 대해 포항공대 오세영 교수(전자전기공학과)는“물론 계속적으로 연구함에 따라 인간의 속성에 다가가기는 하겠지만 완벽한 인간을 구현하는 일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다.
생명공학만큼 힘든 로봇공학 /포항공대 이진수 연구처장
포항공대 전 전자전기공학과 주임교수였던 이진수 연구처장을 만나 로봇 산업의 과거와 미래를 들어봤다. 이교수는 미국 LA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전기공학 제어계측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후 AT&T 벨연구소에 들어갔으나 1985년 중반 제너럴 일렉트릭 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미국에서는 수많은 로봇관련회사가 설립되면서 로봇산업이 붐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교수가 참여했던 로봇관련 연구는 우주정거장에 사용될 예정이던 원격로봇시스템(RMS)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완성된 우주정거장에서는 연료가 떨어진 인공위성의 연료전지를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다. 무중력상황인 우주공간에서 사람이 이런 일을 하기란 무척 위험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 일은 로봇의 몫이다. 인공위성에서 다 써버린 연료전지를 빼고 새롭게 충전된 연료전지를 끼우는 일을 하는 로봇이 바로 원격로봇시스템이다.
원격로봇시스템에게 다쓴 연료전지를 빼는 작업은 쉬운 일이지만 새로운 연료전지를 끼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만을 동원해서는 끼워넣는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사람이 열쇠를 열쇠구멍에 꽂을 때 감(촉각)으로 하듯이, 로봇도 조심스레 끼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교수가 포항공대로 들어오던 1989년에는 미국의 로봇회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유는 응용 범위가 제한된 단순한 로봇이 인기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최근 사람과 교감을 나누는 애완용 로봇이 등장하고, 사람을 위한 서비스 로봇은 성공가능성이 크기 때문에“앞으로 로봇공학이 새롭게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이교수는 강조했다.
“10-20년 후, 멀리는 50년 후에야 결실을 맺을 생명공학에 지금 많은 투자가 이뤄지잖아요. 마찬가지로 로봇공학도 생명공학처럼 길게 봐야 합니다. 로봇산업과 현실이 만만치 않거든요. 하지만 로봇연구는 학문적으로 재미가 있고 연구 인력이 많을수록 빨리 꽃을 피우기 쉽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물론 로봇공학은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이 밑받침된다는 점도 장점이지요.”
이교수는 5-10년 후에 지금의 애완용 로봇이 가격이 낮아져 보편화될 것이고, 10-20년 후에는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서비스 로봇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50년 후가 되면 눈 귀 손 발 등이 동시에 동작이 가능한 로봇이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