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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만나는 수문학
수문학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학문이다. 물의 순환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땅 위 또는 땅 속을 흐르던 물이 바다로 가고, 증발해 하늘로 올라간 뒤 다시 비가 돼 내려온다. 이 과정에서 물은 인간에게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문학을 달리 말하면 수자원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의 하나지만 이름 때문인지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연암 박지원의 물을 연구하고 싶다’며 찾아온 학생도 있었어요. ‘문학’이라는 이름만 보고 온 거죠. 댐의 수문(水門)을 연구하는 줄 아는 사람도 많아요.”
수문학은 생활과 가장 가까운 학문이다. 우리 삶에 필수적인 물을 다루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듯이, 물에 대한 연구 역시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위해서는 필수다. ‘생활을 디자인하는 공학’인 셈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는 생활의 여러 부분을 변화시킨다. 김장철을 앞당기거나 과수원의 나무를 사과나무에서 커피나무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댐을 개방해야 하는 의무기간인 ‘법정 홍수기’처럼 생명과 재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분까지 바꿔야 한다. 이런 결정을 하려면 구체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 이런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수문학 전망 자료다.
“2009년 12월, 전국 9개 대학과 연구소 4곳 등 13개 기관을 모아 정부 지원으로 ‘기후변화에 의한 수문 영향분석과 전망 연구단’을 꾸렸습니다. 기후변화가 우리나라 수자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할 수 있는 국가 표준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죠.”
2007년,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패널(IPCC)은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으며 영향에 대한 시나리오를 함께 발표했다.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단은 이 가운데 한반도의 미래 수자원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선정해 검증하고 있다. 현재 5개 시나리오를 정해 오는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 시나리오만 확보된다면 향후 한반도가 겪을 기후변화 영향은 물론, 그 피해와 대비책을 상세히 전망할 수 있다. 기후 변화 시대에 우리 일상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해 생활을 디자인한다
김 교수가 이렇게 수문학과 기후변화 연구 분야에 뛰어든 계기 역시 순전히 물의 매력에 빠져서다.
“유체역학과 같은 분야는 무척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유학 시절이에요. 통계학을 공부하는데 세상에 그보다 재미있는 게 없더군요. 며칠 밤을 지새워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미국 신시네티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김 교수는 워싱턴대로 자리를 옮겨 박사과정을 밟았다. 당시 워싱턴대는 기후변화를 수자원과 접목시킨 연구를 처음 선보이며 사실상 세계 기후변화 연구를 선도하고 있었다. 김 교수 역시 자연스럽게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구에 뛰어든 것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할 때다. 수자원과 기상자료를 점검하고 연구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 때 쌓은 연구 경험이 결국 그를 우리나라 기후변화 연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었다.
최근 김 교수의 연구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단순히 수자원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데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는’ 데까지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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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수문학은 강수량 자료 등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추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과거 상태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실제로는 자료의 변동 폭이 대단히 크고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예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김 교수는 불확실성을 고려한 새로운 연구 방법을 세웠다. 현상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했던 기존 모형 대신, 예측 값과 실제 측정 값을 끊임없이 비교해 가며 오차를 수정하는 ‘피드백’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한 번에 완벽한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반복을 거치며 그만큼 정확하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통계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희귀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짜릿한 경험 때문에 이 고생을 사서 하겠다는 연구 지망생들도 많다.
이렇게 해서 얻은 귀한 예측 자료는 우리의 삶을 디자인할 주요 정책 결정에 쓰인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를 막거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에 기후변화 예산의 거의 대부분을 씁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통제 못할 자연적인 요인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그 영향을 100%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 생활의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즉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그 바탕에 수문학 연구 자료가 있습니다.”
정책 결정에 필요한 연구를 한다는 점은 연구실 식구들에게도 큰 자부심이다. 박사과정 이재경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후변화 정책에 기여하는 연구”라며 “기후변화를 잘 모르는 대중들도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공간 개념을 더한 물 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역통합관리’다. 강의 본류와 지천을 함께 관리하고, 상류와 하류를 동시에 정비하며 수량과 수질을 함께 향상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장단기 계획을 모두 추진해 긴 안목으로 수자원을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이를 위해 소규모 지천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재난과 관련한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와 전문가, 시민들이 함께 소통하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도 신경을 쏟고 있다. 안전한 삶을 결정하고 생활을 디자인하는 수문학자로서, 긴 안목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역과 호흡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김 교수의 최근 연구 경향을 한마디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통합’이다. 통합은 ‘흐르고 흘러 한자리에 모여 바다를 이루는’ 물의 대의를 닮았다. ‘구정물도 받아주는’ 포용력과도 비슷하다. 물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어느덧 물의 덕목을 닮은 과학자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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