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에서는 손과 발의 머리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다양한 방법으로 동작시켜 보고,어떻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학과 친구가 된다.
"내 소리 들려?” “ 와! 신기하다. 소리가 굉장히 잘 들려!”
사람들은 3m나 떨어진 거리에 설치된 포물면의 초점을 통해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꽤 신기해한다. 그러면서 파동인 소리가 포물면을 통해 멀리까지 보내지고 다른 포물면에 반사되면서 다시 초점에 모인다는 것을 확인한다. 덧붙여 위성수신안테나가 포물면인 이유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수학시간에 배운 포물선의 초점과 물리시간에 배운 포물면에서 파동의 반사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과학관의 전시물을 보고 이 정도를 느낀다면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과학관을 찾을 기회가 많아진다. 하지만 많은 경우 과학관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 국립중앙과학관의 전관수 연구관에 따르면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전시물을 대충 훑고 지나가거나 전시물 앞에 붙어있는 안내만을 노트에 베끼는 예가 많다. 그러면서 전시물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과학관의 전시물들은 관람자들과 호흡하기를 원한다. 관람자들은 전시물을 통해 궁금증을 갖고 다양한 동작을 상상해보거나 직접 체험해보면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과학관에서는 손과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과학관을 방문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시물들 중에 자신이 직접 만지고 해볼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 점을 고려해 과학관을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본다.
첫째 질문을 잘 만들어야 한다. 주어진 상황을 보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될까?” 를 고민해보라는 말이다. 대형 수조 속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를 보고 “와! 소용돌이다”고만 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 소용돌이가 만들어질까?” “소용돌이의 모양이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원통 수조의 위쪽 가장자리에서 펌프로 유속이 빠른 물을 일정한 방향으로 공급하면 물은 원운동을 한다. 이때 밑바닥의 구멍으로 물을 빠지게 하면 물은 수직으로 하강하고 회전하는 물은 바깥으로 쏠리면서 공기기둥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왜 공기기둥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늘어지는 것일까. 바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압이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본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관의 모든 것들을 다 봐야 하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전시물을 다 보기는 하지만 전시물과 갖는 시간은 적다. 하지만 과학관에서 중요한 것은 전시물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얻는 것이다. 그러려면 전시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가지고 물체의 위치를 다르게 했을 때 만들어지는 상의 종류를 실험해볼 수 있는 ‘렌즈 놀이’라는 것이 있다. 교과서에 그려진 그림으로만 익숙한 렌즈로 물체의 상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렌즈와 스크린을 이동시켜가면서 만들어지는 상의 크기와 모양을 보면 자연스럽게 빛의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렌즈를 만져보다가 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그냥 지나친다. 볼록렌즈가 광원과 스크린의 중앙에 있으면 스크린에 실물과 같은 크기의 실상이 생기며, 광원과 렌즈 사이의 거리를 멀게 하면 상이 생기는 위치는 렌즈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크기는 작아진다는 것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셋째 의문나는 것을 기억해둔다. 전시물의 모든 것을 한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전시물이 뭘 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욕심을 버리고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회전하는 계의 각운동량이 보존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이로스코프라는 전시물이 있다. 의자에 앉아서 바퀴를 세게 돌리고, 손잡이를 좌우로 돌려보면 전체가 회전한다. 이때 회전방향은 손잡이를 돌리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대개 자이로스코프를 신기해하지만 그 원리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럴 때는 사전이나 책을 찾아 자이로스코프가 어디에 쓰이는지, 어떤 원리가 지배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책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속에 궁금증을 간직할 수 있으므로 언젠가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린다. 이것이 과학관을 2백배 이상 즐길 수 있는 지름길이다.
탐구관 인기코너
과학관에서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것은 크고 화려한 전시물이 아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만져보는 것을 좋아한다.그래서인지 직접 동작시켜 볼 수 있는 전시물이 모인 탐구관은 늘 붐빈다. 과학관과 시·도교육과학연구원에 설치된 탐구관은 작은 면적이지만 재미있으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많다. 그 중에 인기있는 전시물들을 살펴보자.
소리반사경
소리반사경의 초점에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면 이 소리는 포물면에서 반사된 후 다른 포물면에서 도달하고,여기서 다시 반사된 후 초점에 모인다.따라서 초점에 귀를 대면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소리가 잘 들린다.포물면은 초점에서 나온 파동을 반사시켜 멀리까지 보낼 수 있고 한 점에 집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심분리기
큰 원통형 그릇에 밀도와 색깔이 다른 두가지 액체가 들어있다.누구나 알다시피 밀도가 큰 액체가 가라앉아 있고 밀도가 작은 액체는 위쪽에 있다.그런데 이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면 아래쪽에 있었던 액체가 회전축 바깥쪽으로 밀려난다.회전하는 액체에는 원심력이 작용한다.이때 원심력은 회전하는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회전속도가 빠를수록 커진다.따라서 밀도가 큰 액체가 더 큰 원심력을 받아 바깥쪽으로 밀린다.
무중력거울
자신의 왼쪽 몸을 이용해 나머지 오른쪽 몸을 만들 수 있을까.무중력 거울일 이용하면 가능하다.거울의 모서리에 거울과 90도 각도로 서서 몸의 반쪽을 거울 뒷면에 감추고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연출할 수 있다.
방전구
유리구 속에서 춤추는 불꽃의 정체는 무엇일까.진공인 유리구 속에는 헬륨-네온 기체가 채워져 있다.여기에 고전압을 걸어주면 코로나방전이 일어나 사방으로 플라스마 불꽃이 생긴다.이때 손을 가까이하면 한쪽으로 전기장이 형성돼 방전광이 한쪽으로 모인다.
자이로스코프
의자에 앉아서 바퀴를 세게 돌린 후 양축을 손으로 잡는다.축을 좌우로 기울이면 앉아있는 의자가 회전한다.바퀴축을 기울이면 사람이 앉아있는 전체 계의 각운동량은 변화한다.계는 원래의 각운동량을 보존시키기 위해 의자를 회전시킨다.
회전관성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회전할 때 팔을 안쪽으로 모으면 빨리 돌아가고 팔을 바깥쪽으로 펴면 천천히 돌아간다.회전하는 물체는 그 물체의 질량분포에 따라 회전하는 성질이 다르다.이를 회전관성 모멘트라 한다.회전하는 바퀴의 겉모양이 같더라고 질량분포가 다르면 회전속도에 차이가 생긴다.작은 철판을 큰 원판의 안쪽과 중간,그리고 바깥쪽에 붙인 것을 경사면에서 굴려보자.철판이 안쪽에 붙은 원판이 가장 빨리 굴러내려온다.회전관성모멘트가 가장 작기 때문이다.
공명관
바닷가에서 소라껍질을 주워 귀에 대보면 ‘쏴아~’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바다소리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공명에 의한 자연스러운 소리다. 짧은 관부터 긴 관에 차례로 귀를 대보자. 왜 길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릴까. 짧은 관일수록 높은 음이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떠보이는 반지
눈에 보이는 반지를 만져보지만 반지는 만져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목거울에 의해 만들어진 실상이다. 반지는 오목거울면 바닥에 놓여있다.
소용돌이
대형 원통 수조의 위쪽 가장자리에 순환펌프로 유속이 빠른 물을 공급하고 밑바닥의 구멍으로 물을 빠지게 하면 물은 수직으로 하강한다.이때 회전하는 물은 바깥쪽으로 쏠리면서 공기기둥이 생긴다.아래로 갈수록 수압이 커지므로 공기기둥은 가늘어져 깔대기 모양이 된다.
요술수도꼭지
빈 수도꼭지에서 계속 물이 흘러나온다.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비밀은 흘러내리는 물줄기 속의 투명한 유리관.유리관속으로 물을 흘려보내 수도꼭지에서 되돌아 나오게 하면 빈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재 속에서 과학을 본다
대개 과학관에 가면 많이 보고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다시 갈 기회가 적어서일까.과학관으로 불릴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일까.사실 과학관은 동네 놀이터와 같은 곳이어야 한다.언제라도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하는 곳이 과학관이다.그리고 과학관은 학생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누구라도 쉽게 과학전시물들과 교감하며 생활 속에서 과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하지만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서울시내만 해도 과학관으로 불리 수 있는 곳은 국립서울과학관과 서울시교육과학연구원 두 곳뿐이고 지방에는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과 지역마다 있는 16개의 시·도과학연구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과학 전시물이 아닌 문화재 속에서 과학을 찾으려는 시도가 이뤄져 주목받고 있다.1998년 APEC청소년 과학축전 프로그램으로 개발된 '과학문화탐방'이 그것이다.박승재교수(서울대 물리교육과)가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 고유의 문화재속에서 과학을 발견한다는 독창성이 돋보인다.창덕궁,수원성,해인사 등과 같은 유적지를 비롯해 이천 도예마을,고인쇄박물관,세종대왕기념관 같은 곳에서 탐구할 수 있는 문제를 개발해 문화재를 과학적인 안목으로 살펴보고 있다.그러면 과학탐방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과학탐방은 과학사와 관련된 유물과 유적지를 과학적인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이때 관찰,어림,측정과 같은 초보적인 과학활동이 포함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개방적인 탐구 문제를 개발하고 문제에 매달리는 끈기다.예를 들어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화성과 관련해 수원성의 평균 높이,수원성에서 가장 큰 돌의 무게,돌의 무게를 저울을 사용하지 않고 알 수 있는 방법,높이4.4m,폭1.7m인 거중기가 돌을 들어올리려면 어떤 과학적인 원리가 필요할까,수원성 밖5km지점에서 돌을 수원성까지 옮겨 온 방법 등 탐구문제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답을 구할 수 없어 보이는 것까지 다양하다.이뿐만이 아니다.창덕궁 돈화문의 지붕 속에서도 탐구 문제를 찾을 수 있다.기둥 하나로 무거운 지붕과 처마를 지탱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공포(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도록 기둥 위에서부터 대들보 아래까지 짧은 부재를 중첩해 짜맞추어 놓은것)의 구조를 살펴본다.문화재가 있는 곳이 아니라도 좋다.광릉수목원 같은 곳에서는 삼림욕 이외에 얻을 것이 많다.예를 들어 습지에는 다른 곳과 달리 많은 종류의 생물이 서식한다.곤충들의 유충이 많고 그것을 먹이로 하는 먹이사슬이 생겨 작은 생태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이것은 관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강화도의 갑곶돈대 성벽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면 생각해볼 것이 많다.성벽의 연결부위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특별한 구조를 하고 있다.또 성벽 윗부분의 화살구라는 구멍은 먼 곳을 보기 위한 것인지,가까운 곳을 보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르다.이외에도 덕수궁의 물시계와 해시계,그리고 천상열차분야지도,세종대왕기념관의 측우기와 수표 등 이미 과학문화재로 알려진 것도 다시 보면 새로운 것이 새록새록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이를 위해 자료도 찾아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탐구를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화재를 볼 수 있는 안목도 얻을 것이다.이것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기 어려운 살아있는 탐구학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