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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내 감성공학 연구의 현주소

시청자 선호하는 채널 먼저 찾는 TV


국내 감성공학 연구의 현주소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감성공학은 국내에도 일찍 알려져 이미 다른 선진국보다 빠르게 시작됐다. 1995년 시작한 G7 감성공학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남보다 앞서서 시작한 감성공학에 대한 연구는 과연 어디까지 왔을까.

자동차를 타고 집안에 들어서자 차고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가니 역시 문이 저절로 열리고, 불이 켜진다. 거실에 있는 전화기가 지금까지 메모된 메시지와 집안 상황에서 특별히 지적해줄 사항을 얘기해준다. 저녁시간 즈음이라 부엌에선 밥솥이 가열되기 시작하고 있고, 욕탕에 가니 이미 따뜻한 물이 준비돼 있다. 다 씻고 나오자, 밥솥의 밥은 뜸이 들고 있다.

이런 미래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와 같은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여겨지고 있다. 감성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일까. 이것은 감성시스템의 아주 초보적인 단계 수준일 뿐이다. 감성공학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는 사람 개개인에 맞춰서, 그날그날,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 최적 시스템

즉 주인의 기분을 파악해서 기분이 좋을 때는 애완견 로봇이 마중나오고, 기분이 나쁠 때는 적당히 모른척해서 더이상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한다. 또한 저녁 식사를 했는지를 옷에 배인 냄새를 센서로 파악하거나, 그날 움직임을 기록한 자동차나 개인 단말기의 일정시스템의 정보를 받아들여 여기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커피 같은 음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표정과 눈빛 등 다양한 개인 자료를 토대로 그날 기분에 맞는 음악을 틀어준다. 물론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등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다. 음악은 더 슬프게, 또는 더 즐겁게, 또는 슬픔을 달래주며 좀더 밝은 모습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을 감성시스템이 선택해 적절하게 들려준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흔히들 기계에 얽매인다고 한다. 그 예를 들어보자.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자명종 시계를 한시간 앞으로 조정한다. 하지만 아침을 먹기 위해서는 전기밥솥과 커피메이커의 작동시간도 일일이 조정해놓지 않으면 안된다. 반면 어머니에게 다른 날보다 한시간 일찍 깨워달라고 했을 때는 이미 이에 맞게 아침을 준비해주신다.

이렇게 기계와 사람은 월등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에게 한가지 사실의 변화는 수반되는 많은 일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기계는 전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기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이다.

자명종만 바꿔놓고 나머지를 조정하지 않았을 때, 보통 자신을 탓하게 된다. 왜 나머지도 조정하지 않았을까 하고. 인간을 위한 기계가 오히려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는 꼴이 아닌가. 감성공학은 이와 같은 기계 중심적인 현재의 과학기술을 인간중심의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감성공학(Human Sensibiltiy Ergonomics)은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는 감정과 기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상쾌함, 불쾌함, 세련됨, 우울함 등 애매모호하고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상태를 데이터로 처리해 소비자의 감성에 맞는 제품과 환경을 만드는데 활용하고 있다.

사람의 감성은 나이, 성별, 자연환경, 국적에 따라 다르므로 이를 데이터로 처리하려면 많은 조사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주축이 돼 한국인의 체형, 음성, 표정, 향기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연구는 1995년 G7프로젝트에 감성공학이 선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현재 ‘인간 중심의 제품개발’이라는 목표로 실용성 높은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고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감성공학 관련 기술의 개발이 최근 발표되고 있다. 대우전자 디자인연구소는 조명 등 외부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최적의 화질을 찾고, 시청자가 자주 찾는 채널을 기억해 뒀다가 우선적으로 틀어주는 ‘감성 퍼스널 TV’를 개발했다. 연구소 김상용 이사는 “디지털TV 시대에는 채널수가 수백개”라며, “따라서 사용의 편리성은 디지털TV 판매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개인화된 편리성이 가전제품의 초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 눈에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은행과 주차장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정해진 한쪽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이 감시카메라 방향을 피해서 도둑이 침입한다. 하지만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김재희 교수팀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하면 감시카메라로 현장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언제든지 움직여 이와 같은 일은 불가능해진다.

감시모니터 위에 설치된 카메라로 감시자의 시선과 얼굴 움직임을 파악해 이에 따라 감시 현장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각도와 줌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응용해 가상 미술관의 작품을 직접 걸어다니면서 감상하고, 가상 쇼핑몰의 매장을 사용자가 원하는 각도로 원하는 방향에서 둘러보며 물건을 주문할 수 있는 3차원 가상현실도 가능한 응시위치에 따른 이동시스템도 개발했다.

한국인의 얼굴과 체형을 분석해 표정과 몸짓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정찬섭 교수팀은 배우 24명을 대상으로 1천5백장의 표정 표본과 발레리나 4명으로부터 1백가지 기본 제스처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표정과 제스처의 표현 시스템이 완료돼 사진 한장만으로도 어떤 사람의 표정이나 제스처도 손쉽게 연출할 수 있다. 정찬섭 교수에 따르면 이 시스템의 개발로 우리나라도 영화나 애니메이션, 사이버캐릭터 등 첨단 영상산업을 꽃피울 수 있는 특수효과 처리가 가능해졌다.

이 외에도 향기나는 시스템, 생체신호를 이용해서 작동하는 마우스를 장착한 감성컴퓨터, 건축구조와 감성에 맞는 음향시스템, 색채감성을 적용한 디지털카메라, 생체신호를 이용한 감성적응형 전자게임기 등 다양한 제품과 시스템에 대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감성공학 연구는 일본에서 시작

선진국에서도 제품과 환경설계에 인간의 감성을 고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감성공학 연구를 제일 먼저 시작한 일본은 통산성 주도로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총 예산 2백억엔(약 2천2백억원)이 소요된 ‘인간감각계측 응용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현재 후속사업으로 1998년부터 5년간 ‘인간 행동 적합형 생활 환경 창출시스템 기술’을 수행하고 있다. 1989년 통산성과 기업체의 산업기술진흥협회가 공동으로 설립한 인간생활공학연구센터가 감성공학과 인간공학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미시간대 교통연구소(UMTRI)에서 운송수단과 관련한 다양한 인간공학과 감성공학 연구결과를 집적하고 있다. 인간공학이라는 범주에서 감성공학 관련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에 응용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MIT의 미디어랩에서는 감성컴퓨터, 감성완구 등 다양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인공현실감 기술, 인간컴퓨터상호작용(HCI) 기술은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연합도 자동차관련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와 컴퓨터관련 프로젝트 ‘에스프리트’ 등 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감성공학과 인간공학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영국 럿보로우대의 CES, 네델란드 아이트호벤의 인간감각연구소(IPO) 등에서도 인간의 감각연구결과를 제품에 응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주관적인 감성과 객관적인 감정

호기심이 많은 독자라면 여기서 의문을 하나 제기할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데 어떻게 감성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두사람이 지나가다 한여인을 보고, 한사람은 예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이때 이들에게 각각 왜 다른 느낌이 드냐고 물으면 ‘그냥’ 또는 ‘왠지 모르지만 그렇다’라는 모호한 대답을 듣게 된다.

이렇게 감성은 직관적이고 주관적이며 모호하다. 자기자신도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감성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논리적이고 계산적으로 따진다면 좋아해서는 안될 대상을 보는 순간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그 예다.

인간의 감성은 감정과는 구분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감정은 감각기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강도가 높은 현상으로 화가 났을 때처럼 혈관이 굵어지는 생리현상과 손이 덜덜 떨리는 신체적 반응을 동반한다. 반면 감성은 강도가 낮고 겉으로 뚜렷이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가 없다. 또한 감정은 교통사고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퍼하듯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공통성과 객관성을 갖지만, 감성은 같은 구름을 보고도 꽃을 연상하는 사람과 곰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듯, 즉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도 개인에 따라, 시간과 환경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과기부 감성공학 프로젝트 관리위원인 이구형 박사는 “감정은 일반성, 객관성, 반복성과 같은 학문적 연구대상의 조건을 만족시키지만 감성은 학문이나 연구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모호해서 연구대상이 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 “현재의 감성공학 연구는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못해, 감성이 아니라 감각에 대한 연구를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에서 개발된 아이보 로봇이 애완용 으로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 에 따라 반응을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 다. 즉 아이보는 사람의 특성을 인식하 고 이에 맞게 반응하는 초보적인 감성 시스템이다.


각 분야별로 모아진 데이터를 통합

현재 국내 감성공학 데이터베이스는 감성공학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감성연구의 기본적인 데이터로 활용되는 한국인의 인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는 기초적인 조사만 하면 가능해 이미 수만명의 표본을 통해서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 연령, 성별, 학력, 키, 그리고 몸무게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하는 한국인의 체형을 감성공학 사이트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감성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즉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음성, 음향, 얼굴표정, 향과 같은 데이터를 수치나 지표로 변환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웹기반 감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표준과학연구원의 박수찬 박사는 “사실 감성 자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보다는 사람들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과 같은 특성의 변화도에 대한 지표를 만들고 있다”며 감성의 객관화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승차감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다면 먼저 연구논문과 자료 등을 토대로 승차감에 필요한 자동차 자체가 지니는 디자인요소, 설계, 안정감 등을 기본적으로 항목화해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의 평가도를 넣게 되는데, 이때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느냐는 해당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자가 결정한다. 감성을 객관화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느낌이나 생리 신호 등으로 대신해서 측정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동차에 타보고 사람들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0, 아주 좋다고 생각하면 10점을 주도록 하는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차에 탔을 때 나오는 뇌파와 같은 생리적인 신호의 패턴을 구분해서 이용할 수도 있다. 또 몇시간 동안 차에 있게 하고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회수를 측정해서 평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이미 연구된 결과를 토대로 기본적인 항목을 만든 다음, 이후에 진행되는 연구에서 얻어지는 결과를 추가해 최종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몇몇의 평가도와 느낌으로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속되는 연구와 실험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계속 필요로 한다.


사용자 개인의 습성과 특성에 따라 자주 보는 채널을 찾아주고, 주변의 조명 등을 분석해 최적의 화질을 찾아주 는 감성퍼스널 텔레비전과 리모콘.


감성공학에 앞서 감성과학 연구 시급

현재 제품의 외형과 기능, 사용성을 나타내는 감성지표, 제품평가에 필요한 감성언어지표, 평가자의 생리적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 평가자의 감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명, 소음, 진동, 온도 등의 환경지표 등으로 분류해서 감성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화된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감성은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각각 따로 떨어진 편재화된 방식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연계성이 떨어져 활용하기 어려워진다. 국내 데이타베이스는 나이와 체형 등은 함께 측정하지만, 지역과 자동차에 대한 평가도는 따로 측정한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베이스에서 30살이고, 키가 1백70cm인 남자의 체형은 구할 수 있어도, 같은 남자 중에서 서울 출신이 느끼는 자동차에 대한 평가도는 찾을 수 없다.

이구형 박사는 “성별, 교육정도, 전통과 생활문화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개인의 감성이 나타난다”며, “그런데 국내 연구는 인구사회학적인 기초연구는 소홀히 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개별적인 데이터 구축에 급급하고 있어, 단순한 패턴인식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국내 감성공학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기초 연구가 장기간 진행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로 성과를 얻어낼 수 없어, 상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공학에 치중하는 국내 연구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감성공학에 대한 연구에 앞서 감성에 대한 기초 연구, 즉 감성과학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응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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