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단 600명 참여 기회를 잡는 두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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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독일 린다우시에서 열리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회의(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이하 린다우 미팅)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과 전 세계 우수한 젊은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적인 과학 행사입니다. 1951년부터 개최돼 올해로 73회째를 맞았습니다.
린다우 미팅은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동료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동료가 린다우 미팅과 비슷한 수학 및 컴퓨터과학 분야의 행사인 ‘하이델베르크 포럼(Heidelberg Laureate Forum)’에 참여한 경험을 전해줬는데, 그 경험이 매우 인상깊었거든요. 린다우 미팅의 주제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번갈아 가며 선정되는데, 2024년 6월 30일부터 7월 5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열린 올해 린다우 미팅은 물리학을 주제로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였습니다. 때문에 양자컴퓨터와 양자센서의 근간이 되는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는 저로선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린다우 미팅에 참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각 나라의 학술 파트너로부터 추천을 받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과학기술한림원과 고등교육재단의 추천을 통해 선발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오픈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직접 신청하는 방식으로 미국에서 학업하는 경우 이 방법을 많이 활용합니다. 저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하고 있기 때문에 오픈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지원 자격을 얻었습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딱 600여 명의 젊은 과학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자리에 선발된 것 자체가 영광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린다우 미팅의 강연장 인젤할레(Inselhalle)는 기대한 것보다는 작았습니다. 하지만 그 건물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등 엄청난 학자들이 머물렀을 것을 상상하니 역사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끈이 하늘색인 명찰 목걸이를 매고 있었는데(참가자들은 회색, 후원자들은 붉은색으로 구분돼 있었습니다), 논문과 기사로만 봤던 하늘색 목걸이의 주인공들이 도처에 걸어다니는 모습이 꿈만 같았습니다. 특히 제 연구 분야에 큰 기여를 하셨던 세르주 아로슈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님이나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빈대 교수님 같은 분들을 직접 뵈니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개회식에서는 201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도나 스트릭랜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님의 축사, 199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님의 특강 등이 있었습니다. 좋은 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깊은 생각을 담은 강연들 중간중간에는 빈 필하모닉 앙상블이 멋진 모차르트 곡을 연주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개회식이었습니다.
양자 연구의 전설, 아로슈 교수님과의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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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우 미팅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꿈의 행사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가까이서 함께하며 그들의 연구, 생각,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미팅 기간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노벨상 수상자들이 자신의 연구 내용을 소개하는 ‘강의’, 특정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 ‘아고라 토크’, 노벨상 수상자와 젊은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대담을 나누는 ‘오픈 익스체인지’, 젊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고 소통하는 ‘젊은 과학자들과의 교류’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몇 가지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데요. 사전 신청은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경쟁률을 자랑합니다. 운 좋게도 저는 제 우상인 아로슈 교수님과의 ‘수상자와 점심’ 프로그램에 선발돼 식사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아로슈 교수님은 제가 연구하는 양자센서 및 양자컴퓨터의 근간이 되는 양자 시스템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분입니다. 저는 고등학생이었던 2018년, 노벨 과학 에세이 대회에서 아로슈 교수님의 업적에 대해 에세이를 작성하며 원자-분자-광물리학 분야에 깊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즉 저를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로 이끌어주신 분이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컸습니다.
아로슈 교수님과의 식사는 인젤할레 근처의 독일 음식점에서 새우 요리를 먹으며 진행됐습니다. 10여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고민에 대해 질문하면 아로슈 교수님이 조언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연구 분야와 주제에 대해 고민을 나눴습니다. 대세에 따르는 연구를 해야 할지, 나만의 독자적인 연구 스타일을 구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로슈 교수님은 그런 저에게 자신의 일화를 얘기해줬습니다. 당신이 양자 큐비트 제어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 당시 새롭게 개발된 레이저를 활용한 원자 물리학 연구가 유행했고, 해당 주제에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물리학계에서 유행은 그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이나 발명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에, 유행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보다는, 유행과 겹치더라도 자신이 생각했을 때 중요한 분야를 확신을 가지고 끈기 있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사회를 향한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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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우 미팅에선 과학자들이 모여 물리학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과거의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주제에 대해 뜻을 모아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1955년에 발표된 ‘마이나우 선언’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핵전쟁으로 번질 뻔한 경험을 한 과학자들은 핵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뜻을 모았습니다. 직접 핵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은 누구보다도 핵무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는 기후 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의 마이나우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1955년과 유사하게,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하는 마이나우 선언이 있었습니다. 근래의 분열되고 양극화된 세상에서 핵무기가 비극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매년 당시의 세계 정세에 맞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 연구의 본질적인 목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이번 린다우 미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세션은 199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빌 필립스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님의 강연이었습니다. 필립스 교수님은 2019년에 열린 국제단위계(SI) 재정의 컨퍼런스에서 재정립된 1kg의 단위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이전에는 1kg이 프랑스에 보관된 백금-이리듐 원통(르그랑K)을 기준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르그랑K의 무게가 미세하게 변화했고, 이에 따라 킬로그램의 재정의가 필요했습니다. 1m를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이동하는 거리로 정의하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값들로 정의된 변하지 않는 정의가 필요했던 겁니다.
1kg을 정의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들은 물리 분야가 진보하며 생겨난 개념들입니다. 그 개념들로 더 정확한 단위의 정의가 가능해졌습니다. 즉, 물리 분야가 발전할수록 우리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개념들을 물리학적으로 더 정확하고 엄밀하게 정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메시지는 제 양자센서 연구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자 과학의 원리를 통해서 외부 신호를 더욱 정확하고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양자센서 연구가 발전할수록, 우리 생활 속 단위들에 대한 더욱 엄밀한 정의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박사과정 중에 ‘내 연구가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에 좋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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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재미, MZ 과학자들 네트워크
린다우 미팅에는 학술적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있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를 경험해 보는 인터내셔널 이브닝 행사가 매년 열리는데, 올해는 미국의 텍사스가 콘셉트였습니다. 행사장 복도에는 로데오 기구가 마련돼 있었고 음식도 텍사스 바베큐 스타일로 나왔습니다. 역시 고기가 최고인 걸까요. 미팅 기간 중에 나왔던 식사 중에서 가장 맛있었습니다(참고로 린다우 미팅 내내 식사가 제 입맛에는 정말 맞지 않았는데, 미래에 린다우 미팅에 참여하는 과학동아 독자가 있다면 컵라면을 넉넉하게 챙겨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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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독일의 마이나우 섬에서 열린 ‘사이언스 피크닉’ 행사였습니다(마이나우 선언이 진행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 섬은 린다우 미팅의 이사회장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아프 비스보리 백작부인이 소유한 곳으로, 매년 린다우 미팅의 마지막 날을 이곳에서 피크닉으로 마무리합니다. 마이나우 섬까지는 거대한 크루즈를 타고 이동하는데, 처음 타보는 크루즈는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크루즈에서는 원자-분자-광물리학 분야에서 유명한 실험 분야의 박사후 연구원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아담 쇼 박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의 전공이 마침 저의 우상, 아로슈 교수님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리드베리 원자 배열(Rydberg Atom Array)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화에서 현재 이 실험이 가지는 한계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 알게 됐고, 앞으로 2~3년 후 해당 플랫폼이 가지게 될 특성에 대해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이론물리학 분야 학생으로서 재미있는 실험들을 고안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또한 여러 대화를 나누며 원로 과학자들이 잘 모르는 젊은 과학자들만의 고충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논문 오픈 엑세스를 위한 비용 문제였습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경우 논문 한 편당 약 1만 2000달러(약 1700만 원)를 저널 측에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연구비로 지불됩니다. 즉 돈이 더 많은 그룹이 유명 저널에 더 많은 논문을 게재할 수 있는, 연구비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킵니다. 또한 연구비는 각 나라가 지원하는 비용이므로, 국민들의 세금이 과도하게 저널 회사로 흘러 들어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문제이기에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계도 시간에 따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린다우 미팅은 제가 학부 때부터 공부해 왔고 앞으로 박사과정 중에 오랜 시간 동안 몸담게 될 분야의 근간을 이루신 영웅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연구 동기를 들을 수 있었던,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어떠한 자세로 또 어떠한 동기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 영웅들이신 노벨상 수상자들로부터 지혜가 담긴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큰 힘이 됐습니다.
5박 6일간의 린다우 미팅에 대한 경험담이 과학을 좋아하는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린다우 미팅 참석을 꿈꾸는 자극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