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7분. 가게 문을 열고 분주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문을 펴들고 느긋한 아침식사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낯선 도시의 풍경을 담으려고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 옆으로 자동차를 타고 출근길에 오른 사람이 보인다.
모리스 베나윤은 ‘쏘, 쏘, 쏘’(So, So, So, 2002년)라는 작품에서 원형 파노라마 공간 속에 같은 시각,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저마다의 상황에 놓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참여자들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거나 한동안 유심히 보던 것들이다. 7시 47분이라는 동시성을 가진 사건들이지만 참여자들의 시선에 따라 각기 다른 조합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최근 디지털 기기가 발전하면서 ‘미디어 아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디어 아트는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탄생한 새로운 예술형태다. 초기에는 1960~1970년대 백남준의 작업처럼 TV, 비디오, 인공위성 등 당시 전파력이 강한 대중매체에 대한 예술적인 실험이었다.
반면 최근 미디어 아트는 컴퓨터, 유무선 네트워크 등 첨단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제안한다. 입력과 출력이 용이한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을 이용해 미디어 아트를 경험하는 관객들이 앞에서 소개한 작품처럼 공간을 구성할 시청각적인 요소를 선택하거나 순서를 정하고, 더욱 적극적으로는 공동 창작자로 초대되기도 한다. 최근 미디어 아트의 경향은 이렇게 개인의 의식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기술의 등장으로 도시 전체가 미디어가 되면서 관객들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아트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기존의 미디어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수많은 상상의 세계가 때로는 가상공간에서, 때로는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공간에서, 혹은 도시의 다양한 공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공간의 술래잡기
테리 룹의 ‘드리프트’(Drift, 2004년)는 참여자들이 반경 2km 이내의 지역에서 포켓PC, GPS 수신기 그리고 헤드폰을 지니고 거닐면서 헤드폰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운드를 들으며 실재 공간을 표류한다. 방황의 연속, 방향 상실의 즐거움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을 경험하며 평소 익숙했던 장소지만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블래스트 띠오리의 ‘캔 유 씨 미 나우?’(Can you see me now?)는 일종의 술래잡기 게임이다. 거리의 플레이어는 실재 도시에서, 온라인 접속자는 가상의 도시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이 진행되면 거리의 플레이어는 온라인 플레이어의 위치를 수신 받아 이들을 잡으러 다니고, 온라인 플레이어는 도망 다닌다. 결국 양쪽 모두 도시라는 실재 공간과 온라인의 가상공간이라는 경계를 넘나든다.
자신의 몸을 적극적인 창작의 도구로 사용하는 작업도 있다. 이는 스크린과 카메라 혹은 센서를 사용한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에서 많이 나타난다.
변지훈의 ‘득음’(2003년)에서 참여자는 스크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만개의 빛 입자 폭포 속에 서서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몸을 휘저으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는 실제로 폭포가 떨어지는 효과음이 없지만 자신의 행동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시각 요소를 통해 참여자는 서서히 작품에 몰입하고 마치 폭포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을 경험하기도 한다.
내가 작품이요, 작품이 나이니
아키추구 매바야시의 ‘소닉 인터페이스’(Sonic Interface, 1999년)는 무대를 도시로 넓혔다. 참여자는 노트북, 헤드폰, 마이크로 구성된 개인용 장치를 메고 도시를 걸어 다니며 실시간으로 자신이 채취한 도시의 현장음과 작가가 만들어 놓은 소리를 결합시켜 새로운 사운드 아트의 공동 창작자가 된다.
최근 휴대전화, PDA 등 개인용 디지털 미디어가 보급되면서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2003년부터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보시스의 ‘어번 타페스트리’(Urban Tapestries)는 휴대전화나 PDA를 들고 거리로 나가 특정 장소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참여자는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동시에 지도 위에 아이콘으로 표시된 다른 사람의 기억까지 넘나든다.
줄리안 블리커를 비롯한 3명의 공동 작품인 ‘모바일 스카우트’(Mobile Scout, 2004년)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순간 소멸돼 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을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일종의 집단 사운드 창작 프로젝트다. 누구든 모바일 스카우트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어번 타페스트리’와는 달리 사건이 발생한 위치가 아니라 행동이나 성향에 따라 이야기가 분류돼 저장되기 때문에 참여자는 도시를 감성적으로 그리는 경험을 맛본다.
도시를 공동의 이야기와 역사를 창조하는 공적 공간으로 보는 대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메시지 보드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 허더스필드 미디어 센터에 설치된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는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에서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나 웹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도시에 흘려보낼 수 있다.
조슈아 킨베르그의 ‘바이크스 어겐스트 부시’(Bikes Against Bush, 2004년)는 분필가루 분사기를 단 자전거를 타고 뉴욕의 거리를 다니며 부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무선랜으로 실시간으로 받아 분필 글자로 뿌리고 다닌다.
라파엘 로자노 헤머의 ‘아모달 서스펜션’(Amodal Suspension, 2003년)은 휴대전화나 웹을 통해 전송되는 메시지들이 20개의 서치라이트를 움직여 다양한 빛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이때 참여자는 자신이 보낸 텍스트 형태의 메시지가 빛으로 바뀌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은유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한다. 개인의 메시지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세 작품 모두 유사하지만 그 표출 방식에 있어서는 각기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에 내 얼굴이 뜬다
장가의 ‘피플스 포트리트’(Peoples' Portrait, 2004~2006년)는 서울과 대전의 SK텔레콤 사옥 안팎에 설치된 프로젝트 ‘코모’(COMO)와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호주 아들레이드, 오스트리아 린츠, 중국 베이징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시킨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아트센터 나비가 기획한 ‘코모’를 비롯해 세계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어 보내면 다른 곳에서 인터넷으로 전송된 얼굴 사진들과 연결돼 각 지역의 대형 화면 위에서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나는 서울에 있지만 나의 초상은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거리의 시민과 만나는 것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각 도시의 대형 디스플레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표정을 읽는다는 점에서 텍스트 게시판을 뛰어 넘은 일종의 이미지 게시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아써 엘제나르의 ‘버블 스페이스’(BuBL S pace, 2002년)는 작가가 고안한 주머니 크기 정도의 기기에서 버튼을 누르면 3m 반경의 전화 신호가 차단된다. 지금까지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참여자들이 서로 연결됐던 반면 ‘버블 스페이스’에서는 이 연결을 제한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참여자에게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은 예술가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앞으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더욱 발달해 인간과 미디어의 구별이 불가능한 경우, 즉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미디어 공간에 ‘로그 온’했다가 ‘로그 오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자체가 미디어 공간이 돼버리는 경우 참여자는 과연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또 이들을 상대로 예술가는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를 자극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