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환자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긴장 푸세요. 저도 수술은 처음이거든요'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자동차 뒤편에 초보운전이라는 표지를 달고 운행을 하는 초보운전자처럼 의사들도 숙련된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초보의사로 환자를 수술한다. 환자를 수술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실제 수술을 통해 의료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환자의 생명이 달린 수술이기에 의사들은 환자를 수술하기 이전에 수많은 연습과정을 거친다. 생쥐 등을 이용한 동물 실험과 시체를 통한 해부학 실습 등 많은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환자의 수술에 대비한다. 그러나 이런 연습과정은 실제 환자를 수술하게 됐을 때, 즉 질병과 상처에 따른 다양한 환자의 신체적 특징과 구조에 적응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컴퓨터 게임처럼 배우는 수술
영상시스템연구실의 의료영상 시스템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의료 실습 시스템인 메디컬 시뮬레이터(medical simulator)를 연구·개발중이다. 게임을 하듯 컴퓨터를 이용해서 실제와 똑같이 다양한 상황과 신체적 구조에 따른 임상실습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조종사의 생명과 비행기의 비싼 비용 때문에 하기 어려운 비행 실습을 대신할 수 있는 비행 시뮬레이터처럼 메디컬 시뮬레이터도 특정한 의료 시술법을 배우기 위한 교육용 도구다. 질병에 따라 수술할 위치가 다르고, 또 환자의 건강상태나 성별 등에 따라 환자의 신체적 특징이 달라질 수 있는데, 메디컬 시뮬레이터는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 연습이 가능하며, 똑같은 시술을 몇번이고 반복해볼수 있는 장점이 있다.
메디컬 시뮬레이터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의료영상 시스템팀은 그 중 핵심이 되는 3차원 의료영상분할과 의료영상의 시각화 분야를 집중연구하고 있다. 의료영상분할은 X선 같이 신체의 구조를 알아내는데 사용되는 CT나 MRI에서 얻어진 데이터로부터 원하는 장기의 영상만 추출해내는 연구분야다. 이 분야의 연구를 통해 모의 시술이 이뤄질 장기에 대한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료영상의 시각화 분야는 다양한 의료영상 기기로부터 얻어진 데이터를 컴퓨터 소프트웨어만을 이용해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구성해내는 연구분야다. 연구팀은 현재 좀더 실제적인 3차원 모의시술기를 만들고, 더 빠르고 정교한 3차원 영상구성을 위한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얼굴 보면서 전화하는 영상기술 개발
한편 연구실에서 집중하고 있는 또다른 분야가 영상압축과 통신분야다. 2002년 실용화를 앞두고 있는 3세대 통신기술인 IMT2000에서 이뤄질 화상전화와 관련된 영상기술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디지털 영상은 편집이 쉽고, 화질이 변하지 않는 등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크기가 매우 커 저장과 전송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디지털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영상압축이다. 즉 파일의 크기는 최소화하면서도 화질은 그대로 유지되는 영상압축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이에 대한 기술이 발전돼 비디오 CD 등에 사용되는 MPEG-1, 디지털 TV, DVD 등에 사용되는 MPEG-2, 멀티미디어 통신을 위한 차세대 압축 방식인 MPEG-4가 사용되고 있다.
연구실에서는 동영상 통신을 위해 MPEG-4를 최적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저전력칩 개발에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동영상 통신은 한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서 압축하는 과정과 상대방을 보기 위해 영상압축을 푸는 두과정이 동시에 실행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구현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한 동영상을 처리하는데 전력 소모가 커 휴대폰에서 동영상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영상 반도체칩이 필요하다.
현재 연구실에서는 두가지 부문 모두에서 상당한 연구 성과를 얻었다. 6백MHz급 펜티엄 PC에서 고화질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압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돼 시험중이다. 또한 휴대전화에 사용될 수 있게 추진되고 있는 영상 반도체칩도 저전력으로 설계돼 개발완료 단계에 이르고 있다.
영상시스템연구실의 나종범 교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통신에 음성뿐 아니라 동영상서비스를 가능케 하는데 디지털 영상기술은 중요한 요소다. 현재 몇몇 기업들과 함께 연구 개발을 진행중이어서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곧 일반화될" 것이라며 첨단영상기술이 머지않아 실용화될 것임을 시사했다.
현재 연구실에서는 박사과정 12명과 석사과정 5명이 의료영상과 영상압축 분야로 나눠져 해당분야의 영상기술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 연구실에서는 오늘도 의사지망생들에게 의료모의실습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얼굴을 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영상기술의 실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연구원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