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두드려 메시지를 확인하고, 길을 걸으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전기 자동차들은 소리 없이 도로를 가로지르죠. 이 평범한 일상은 지구의 깊은 지각에서 찾아낸 17개의 특별한 원소, 희토류가 만들었습니다.

현대 산업의 마법 가루로 불리는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명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하나를 분석해볼까요. 접촉을 감지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스크린과 시끄럽지 않게 알림 진동을 주는 리니어 모터, 그리고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는 마이크와 스피커의 작고 강력한 자석까지. 모두 희토류가 없다면 만들 수 없습니다. 가능하더라도 지금보다 수십 배나 큰 휴대폰을 백팩처럼 메고 다녀야 할지 모릅니다.
지구에서 희귀하지 않은, 희토류

찾기는 쉬워도 모으기가 어려운 희토류
희토류란 이름은 직관적으로 오해를 일으킵니다. 희귀한, 혹은 희소한 흙으로 해석되는 탓이죠. 희토류 원소가 금(Au)이나 백금(Pt)처럼 지구 전체에 극미량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혹스럽게도 진실은 다릅니다. 가장 흔한 희토류인 세륨(Ce)은 지각 내 함유량이 구리(Cu)와 비슷할 정도로 풍부합니다. 모든 전자제품의 전선을 만들고 다양한 합금에 사용되는 구리와 비슷할 정도면 세륨도 상당한 양이죠. 심지어 희토류 중 매장량이 가장 희귀한 원소조차 매장량이 은(Ag)의 수백 배입니다. 희소하다는 글자가 붙은 이유는 희토류가 인간이 사용 가능한 형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워서입니다.
대부분의 금속 원소는 특정 지역에 높은 농도로 뭉쳐서 ‘광맥’을 이룹니다. 그래서 금광이나 은광을 찾으면 금, 은을 많이 얻을 수 있죠. 한국에서도 철광석, 텅스텐(W) 같은 유용한 금속의 광맥을 다양하게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희토류는 광맥을 만들지 못한 채, 지구 지각 전체에 먼지처럼 아주 옅고 고르게 흩뿌려져 있습니다. 희토류를 모은다는 건 백사장에서 노란색과 빨간색 모래 알갱이만 골라내는 일인 셈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희토류끼리는 산소까지 함께 뒤엉켜서 엉망진창으로 뭉쳐 있곤 합니다. 희토류 원소들은 각각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화학적 성질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화학의 상징인 원소 주기율표에 일정한 규칙과 공통점이 숨어 있듯, 희토류 원소들도 가장 바깥쪽 전자껍질의 배치가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잡하게 뒤섞인 희토류 원소들을 분리하려면 수십 번의 화학 처리가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희토류가 귀한 이유는 우리가 사용할 양만큼 희토류를 추출하기가 과학적, 경제적으로 모두 어려워서입니다. 지구에 묻힌 희토류 원소의 양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희토류의 특성은 현대의 우리가 마주할 자원 전쟁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희토류의 성지, 이테르비섬
현재도 희토류의 추출이 이처럼 쉽지 않다면, 희토류의 비밀을 처음 풀어낸 18세기 과학자들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희토류가 얼마나 다루기 까다로운 흙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학자들이 희토류를 발견한 곳은 어디일까요. 희토류가 지각 전체에 넓게 퍼진 원소라는 점에서 어느 광활한 평원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북유럽의 조용한 마을로 가야 합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작은 섬 마을인 ‘이테르비(Ytterby)’가 바로 희토류의 성지입니다. 당시 인구가 수백 명에 불과했던 이 작은 광산 마을은 모든 희토류의 출발점이며 희토류 중 무려 4개의 원소, 이트륨(Y), 터븀(Tb), 어븀(Er), 이터븀(Yb)에게 자신의 이름을 고루 나눠줬습니다.
희토류의 발견도 여느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작은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1787년 스웨덴 육군 중위이자 아마추어 지질학자였던 칼 악셀 아레니우스는 이테르비의 한 장석 광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검은색 돌을 발견합니다. 이 당시 유럽은 연금술의 시대가 저물고 분석의 역할이 중요한 근대 화학이 기틀을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아레니우스는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과 묵직한 무게에서 이 돌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당대 북유럽 최고의 화학자 중 한 명이었던 핀란드의 요한 가돌린에게 분석을 의뢰했죠.
가돌린은 이 검은 돌에서 이전에 알려진 적 없던 새로운 산화물을 분리하는 데 성공합니다(금속 원소 등이 산소와 결합한 물질을 산화물로 구분하는데, 당시엔 이를 흙(Earth)이라 불렀습니다). 이 산화물에 인류가 처음 발견한 희토류 원소, 이트륨이 들어있었죠. 이후 이 검은 광석은 가돌린의 이름을 따서 가돌리나이트라 불렸고 희토류 탐험 시대가 열립니다. 하지만 이 탐험은 쉽지 않았습니다. 화학적 성질이 너무나 닮은 희토류 원소들을 서로 하나씩 순수하게 분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두뇌 퍼즐에 종종 등장하는, 무게가 1g씩 다른 여러 개의 추를 최소한의 저울질로 구분해내는 작업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다만 이번엔 17종의 추가 눈앞에 수억 개 쌓인 막막한 상황입니다.
당시의 희토류 분리법은 분별 결정이라는 단순하며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광석을 곱게 갈아 강한 산성 물질에 녹인 뒤 온도나 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결정이 생기면 걸러내고, 남은 용액을 또 처리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입니다. 가돌린이 발견한 이트륨도 사실은 서로 다른 3가지 원소가 섞인 상태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함께 숨어 있던 다른 두 원소가 이테르비 섬의 이름을 나눈 어븀과 터븀이죠.
뒤섞인 희토류 원소들을 하나씩 벗겨내는 작업은 여러 화학자의 도전으로 조금씩 성공합니다. 과학자들에게 이테르비 섬의 검은 광석은 보물과도 같았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계속해서 새로운 원소가 세상에 튀어나왔죠. 안타깝게도 수만 번의 광석 화학 처리를 거치며 연구자들은 시력과 건강을 잃었지만 말입니다. 지금의 주기율표 아래쪽에 떼어놓은 란타넘족이란 한 줄의 원소들이 그런 영광의 기록입니다.
이 발견의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가장 과학적인 노력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튀어나오는 모든 새로운 원소와 사실들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자연의 요소를 규명하려는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이 지난한 분리 작업이 수십 년간 화학자들의 손을 거쳐 묵묵히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대했습니다. 이트륨 발견으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런 고생 끝에 얻어낸 순수한 희토류 원소들은 디스플레이의 색채를 만들거나 화폐의 진위를 감별하고, 암을 치료하며, 가장 강력한 자석을 만드는 핵심입니다. 이테르비의 작은 광산 속 검은 돌은 그렇게 21세기 문명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반이 됐습니다.
화학적 반전의 공간, f-오비탈
화학적 성질이 비슷하고 서로 분리하기 어렵지만, 각자 여러 분야에서 쓰이는 희토류의 특별함은 그들의 독특한 전자 배치, 더 구체적으로는 f라는 오비탈(Orbital)에서 비롯됩니다. 오비탈은 전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방입니다. 이 방에 새로운 전자가 들어오거나 있던 전자가 나가려면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의 전자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이 가장 바깥쪽 방(전자껍질)의 전자 개수가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희토류가 속한 란타넘족 원소들은 구조가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원소는 바깥쪽 전자껍질부터 전자가 드나드는 반면, 란타넘족 원소들은 f-오비탈이란 안쪽의 넓은 방에 전자가 갑자기 채워집니다. 희토류 원소들마다 바깥 전자껍질은 비슷하지만 각 원소 안쪽에서 차이가 있으니, 뒤섞인 희토류들을 분간하기 어려울 수밖에요. 하지만 이 차이를 이용해 강력한 자기적 및 광학적 특성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희토류 중에서 네오디뮴(Nd)은 f-오비탈에 홀로 채워진 전자들을 여럿 가지고 있어서 강한 자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유로퓸(Eu)이나 터븀(Tb)은 그 구조 덕분에 외부의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특정한 색의 빛으로 방출하는 성질이 탁월해서 디스플레이 색상을 보여주는 데 사용됩니다. 이런 작은 세계의 신기한 설계 덕분에 희토류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인류가 물질의 한계를 돌파하는 ‘치트키’가 된 거죠.
이처럼 희토류는 발견의 역사부터 물리적 성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습니다. 17종이나 되는 희토류는 이제껏 발견된 118개의 모든 원소 중에서도, 무려 15% 가까운 비율을 차지합니다. 스웨덴의 한 광산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꾸준하고 다양한 연구를 거쳐서, 이제 전 세계 공급망을 뒤흔드는 전략 자산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화석 연료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전기 자동차와 신재생 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이 마법의 가루,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전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17개의 희토류 원소가 그려낸 첨단 산업의 빅 픽처들을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장홍제
용어 설명
란타넘족 15개 원소에 스칸듐(Sc), 이트륨(Y)을 더한 17개 원소 묶음. 중국의 바이윈어보와 미국의 마운틴패스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표적 희토류 생산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