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인간 사회를 이해하려면 동물의 세계를 보라. 동물의 세계에도 성비 편향성이 존재한다. 동물도 아들·딸을 가려 낳는 걸까? 이 현상에 대해 생물학계에서는 다양한 관찰과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사회나 보편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우렁찬 빵빠레가 울리지만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경시되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우리 속담만 보아도 남자를 존중하고 여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많다.

"딸자식은 도둑년이다"
"아들 집에서 밥먹고 딸네집 가서 물 마신다"
"영감밥은 누워 먹고, 아들밥은 앉아먹고, 딸의 밥은 서서 먹는다"

이런 속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왜 우리 사회가 남자아이를 선호했는지 알 수 있다. 갖은 정성을 다하여 키워 놓으면 기둥뿌리 하나 뽑아 다른 집으로 싸들고 나가는 딸이 환영받을리 없다.

또 남의 집으로 시집간 딸은 우리 식구가 아니니 노후를 의탁할 수도 없다. 투자만 했지 나올 것이 없는 딸을 우리 사회에서 아들보다 귀여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사내아이를 몹시 선호했고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은 칠거지악 중 하나라 해서 소박을 맞기도 했다.

이런 남아선호가 비단 옛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아들을 낳게 해준다며 사기를 쳐 2억 1천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의사가 구속된 바 있다. 잡지에 젊은 세대 사이에 아들선호 정도가 아니라 아들 골라낳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 특집기사가 개제된 적도 있다. 이런 경향은 교육받은 젊은 세대일수록 더욱 심하다고 했다.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 센서스 조사에 따른 연도별 출생 성비 변화 추세를 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1960년 여아 100을 기준으로 성비가 105.8정도로 정상적인 상태라 한다면 점차 남자아이의 비율이 커져서 1990년에는 112.5에 달하고 있다. 물론 올해에 조사를 다시 해봐야 알겠지만, 최근 분위기로 봐서 그 수치가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보사부가 국회에 제출한 결혼적령인구 성비 변화자료에 따르면 내년부터 남초현상이 야기되어 99년엔 21% 정도의 남성이 남아 돌게 된다고 한다. 이런 극심한 남초현상은 어떻게 야기된 걸까? 자연스런 현상일까, 아니면 인간의 조작을 통해 이루어진 일일까?
 

동물이 통계적으로 아들, 혹은 딸을 더 낳고 덜 낳는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극심한 남초현상

재미있는 사실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성비 편향성이 종종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며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도 인간처럼 후손중 어느 특정 성을 키우는데 투자만 하지 나오는 게 없기 때문에, 혹은 노후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특별히 한 성을 경시하거나 다른 한 성을 선호하는 것일까?

이런 성비편향 현상에 대해선 여러 동물에서 상당한 자료가 축적돼 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의 자료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생태학과 진화에 있어서의 경향'(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이라는 잡지에 실린 '영장류에서 편향된 출생성비에 관한 연구'는 이런 면에서 시사적이었다(TREE(1993) vol. 8, 395-400쪽).

생물의 세계에 있어서 성비를 조절하는 방법은 후손을 기르는데 투자하는 에너지를 달리하는 것이다. 한쪽은 늘 젖먹이고 다른 한쪽은 팽개쳐 둔다든지 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그럴 듯하게 성에 따른 부모의 투자에 대해 최초로 설명한 사람은 영국의 생물통계학자인 로널 피셔(Ronal A. Fisher)경이다.

피셔는 유성생식하는 배수체에서 모든 개개의 종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그 유전물질의 절반씩을 얻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투자하는 부모를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아들과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데 같은 비용이 든다면 같은 수의 아들과 딸이 생산될 것이다.

반면, 만약 딸과 아들에 같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자연선택이 부모의 총투자가 양성에 똑같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기 때문에, 보다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성의 후손이 보다 많이 생산될 것이다. 가령 아들이 딸을 키우는 것보다 절반 정도의 비용만 들어간다면, 그 개체군에 있어서의 평형 성비는 각 암컷당 수컷 두마리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식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의하여 후손 수가 결정될 것이고 그 결과가 외면적으로 선호도란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피셔의 성비 원리'라고 불리는 위 첫번째 아이디어는 어떤 부모에게서 나온 어떤 후손이든지 모두 똑같은 생식 가능성을 가진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같은 성 후손 가운데 생식 가능성이 다양하다면 어떨까? 이 질문은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라이버스(Robert Trivers)와 수학자 댄 윌러드(Dan Willard)에 의해 제기됐다. 이것이 두번째 가설이다.

트라이버스와 윌러드는 많은 종에서 수컷의 생식적 성공은 암컷의 그것보다 변화가 많고 부모의 투자기간(돌보는기간) 동안 환경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물론 상태가 좋을 때 암컷과 수컷 후손은 아이를 가지는데 똑같이 이득을 얻지만 수컷이 보다 큰 생식 가능성 때문에 더 큰 이득을 얻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상태가 나쁠 때는 반대의 경우가 된다. 암수 후손은 둘다 생식적으로 고통을 받지만 수컷은 항상 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주어진 조건 하에서 좋은 상태라고 판단한 부모는 최선을 다하여 아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안 좋은 상태라고 판단하면 보다 많은 후손을 가지기 위하여 딸에게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것이다.

영장류 가운데 트라이버스-윌러드 효과의 가장 좋은 증거는 긴꼬리원숭이의 일종인 거미원숭이의 연구결과다. 암컷 거미원숭이는 태어난 집단을 떠나는 반면 수컷은 출생 집단에 머무르기 때문에 수컷의 생식적 성공은 사회계층에서 어미의 지위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지않은 낮은 지위의 원숭이는 대체로 딸을 생산하는 반면, 높은지위의 어미는 균형된 성비를 가진다. 높은 지위의 엄마 원숭이는 또한 딸보다 아들을 낳은 후 더 오래 있다가 임신함으로써 키우는데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다.
 

'Genetics&IVF협회'의 지니레빈슨박사. 그는 정자의 인공수정을 통해 아들,딸중 원하는 성을 골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젖먹이고 돌보느냐, 팽개쳐 두느냐

성비 불균형에 관한 세번째 설명은 자성(雌性) 세습우위설(Rank inheritance and the advantaged daughter hypothesis)이다. 이는 노란개코원숭이(Papiocyno cephalus)와 벵갈원숭이(Macaca mulatta)에서 보여지는 성비 편향성을 설명해준다. 이 경우 지배계층 어미는 아들보다 딸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지위가 낮은 종속계층 어미는 딸보다 아들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 영장류의 경우에 딸이 그 집단에 남아서 어미의 지위를 세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배계급 새끼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물려받아서 생식적으로도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수컷은 성적으로 성숙하기 전에 그들의 출신 집단을 떠난다. 그러므로 다음에 그들이 참여하는 집단에서 각자의 지위는 어미의 계급과 독립적이다. 이런 모계쪽 사회적 지위 세습체계에서는 지위가 높은 어미는 딸이 더 좋은 방책이 될 것이고 반면 하층인 어미에겐 아들이 더 좋은 방책이 되는 것이다.

네번째 설명은 클라크(Clark)의 지역자원 경쟁설(local resource competition hypothesis)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영장류인 갈라고원숭이(Galago crassi caudatus)에게는 수컷에 편향적인 성비가 표준이다. 이것은 어미와 딸 사이 지역자원경쟁 때문이라고 한다.

갈라고 수컷새끼는 출신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나 암컷새끼는 어미의 지역 안에 밀접하게 남게 된다. 따라서 어미와 후손 사이에 자원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만약 자원이 빈약하고 생식에 이것이 중요하다면 미래의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보다 적은 수의 딸을 선호한다.

다섯번째 설명은 위 설을 약간 변형한 실크(Silk)의 지역자원경쟁설(Silk's local resourse competiton hypothesis)이다. 보닛 원숭이(Macaca radiata, 남인도산 마카카 속 긴꼬리원숭이)의 경우에 우세한 암컷은 아들과 딸 비율이 비슷하나 열등한 암컷은 이들을 더 많이 생산한다고 한다.

이 경우 식량자원에 대한 경쟁으로 열등한 암컷의 미성숙한 암컷새끼를 학대함으로써 그 집단에 남는것을 어렵게 하고 또한 학대와 공격의 결과로 미성숙한 암컷들 가운데 사망율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낮은 지위의 암컷은 보다 적은 딸을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실크의 가설은 지역자원경쟁 하에서 딸을 보호하는 어미의 차별적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클라크의 지역자원경쟁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자성세습우위설과 실크의 가설은 열등한 어미가 딸보다 많은 아들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트라이버스-윌러드 가설과 대비된다. 그러나 자성세습우위설은 딸을 가지는 우세한 어미에 대한 이익에 강조점을 둠으로써 그 적응을 설명하는 반면 실크의 가설은 딸을 가지는 열등한 어미의 비용을 강조한다.

아무튼 위에서처럼 성비 편향성을 설명하는 가설도 여러가지고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 논란도 많다. 한가지 설이 아니라 두가지 혹은 그 이상이 함께 작용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우리의 편향된 성비는 어떤 설명에 그럴 듯하게 들어 맞는 것일까.

인간의 성비 변화에 관해서는 (표1)에서 보듯 다양한 자료가 있다. 대체로 남아쪽으로 기운 성비다.우리나라의 성비 112.5는 (표 1)을 참고로 했을때 가장 심한 남아편향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트라이버스는 그의 책 '사회진화'(Social Evolution)에서 인간 집단의 성비 편향성을 분석하면서 몇가지 중요한 요인을 제시했다.

부양과 환경, 사회경제적 위치

그 첫째는 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부계사회냐 아니면 처가살이를 해야하는 모계사회냐에 의해 성비의 편향성이 다른 모습을 띤다고 하는 것이다. 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사회는 출생성비가 남아 쪽으로 편향되고 처가살이를 해야 하는 사회면 성비는 거의 1:1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두번째 요인은 환경적인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강수량이 많으면 사내아이가 많이 태어나고 포르투갈에서는 풍년에 사내아이가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비가 많이 내리고 풍년이냐 흉년이냐가 성비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는 않는다.

세번째로는 사회경제적인 위치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경제적 위치를 구분해보니 높은 사회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약 8% 정도 더 사내아이를 낳는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경향은 인도와 영국에서도 발견되었다 한다.

우리의 편향된 성비를 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그런 문화형태에서 강화되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핵가족화된 지금보다 예전에 더 편향성이 심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최근 몇년간 비가 많이 내리고 계속 풍년이었나. 우리 쌀이 예전보다 많이 생산되고 충분히 자급자족할 정도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전반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남아에 편향된 성비를 보이는 것일까? 사실 우리 사회가 50-6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살게 되기는 했다. 따라서 트라이버스가 설명하는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잘 살게 되어서 아들을 많이 낳는 경향성을 띤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포르투갈에서는 흉년에는 성비가 90.7이었는데 풍년이 되자 112.1에 달했다고 하니 그 수치는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기도 하다.

그러나 트라이버스의 이 말이 그대로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다. 흔히 학자들은 성비 편향성에 자연적이고 진화적인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편향된 성비가 자연법칙에 의한 진화적 이유에서인지, 혹은 인위적 조작에 의한 것인지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사실 그 짧은 기간동안 성비가 급격하게 증가한 경우도 유례를 찾기 힘들지만 우리 경제 성장도 그 같은 기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으니 트라이버스의 설이 어쩌면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 교육받은 젊은 부부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낙태를 한다는 말을 믿고 싶지 않기에, 더욱 우리의 성비 편향성이 트라이버스가 설명하는 좋은 예이길 바라게 된다.

(표1)다양한 국가에서의 출생시 성비(R. Trivers의 'Social Evolution'에서 인용)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현 박사과정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사회학
  • 문화인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