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없고 맑은 가을밤 별빛을 주의깊게 관찰해보자.의외로 별들도 여러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별의 색깔은 온도와 나이를 말해준다는데….그 깊은 사연을 들어보자.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들어서는 만추의 밤하늘은 차가워진 공기가 주는 상쾌함만큼 투명하게 보인다. 이 때문에 별빛의 색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시기다.
11월의 저녁, 동쪽하늘 높이 붉은색으로 빛나는 별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겨울을 알리는 오리온자리의 1등성 베텔게우스다. 다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푸르게 빛나는 남쪽물고기자리 1등성인 포말하우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별은 확연히 다른 색의 대조를 느낄 수 있다. 색의 대비가 아름다운 별의 조합으로는 서쪽 지평선 위에 걸려있는 백조자리의 베타별인 알비레오도 유명하다. 맨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주황색 별 옆에 푸르게 빛나는 별이 달라붙어 있어 보석처럼 아름답다.
파란 별이 더 뜨겁다
조선시대의 문물을 백과사전처럼 묶어놓은 ‘동국문헌비고’의 ‘상위고’편에는 별의 등급을 정의한 체대론과 별의 색깔에 대한 기록인 색론(色論)이 있다. 색론은 “별의 적기(積氣)는 색깔로 구별한다. 북하(北河, 쌍둥이자리 폴룩스)는 노랑, 낭성(狼星, 큰개자리 시리우스)은 하양, 심수대성(心宿大星, 전갈자리 안타레스)은 빨강, 노인(老人, 용골자리 카노푸스)은 파랑”이라고 적고 있다. 노랑·하양·빨강·파랑의 4가지 색깔은 희미한 별빛으로도 식별이 가능한 대표적인 색깔이다. 선조들도 별빛의 색으로 별의 종류를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별의 색깔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별의 표면온도와 관계가 있다. 일상적 색감으로는 푸른색이 추워보이고, 붉은색은 따스하게 느껴지는데, 별의 경우는 반대다. 별의 표면온도가 높을수록 별 에너지의 대부분이 나오는 빛의 파장은 짧아지기 때문에 파란색을 띠게 된다. 따라서 파란 별일수록 별의 표면온도가 높고 붉은 별일수록 표면온도가 낮다.
예를 들어 밝기가 조절되는 전등을 생각해보자. 전등의 조절스위치를 약간만 돌려 불을 켜면 처음에는 필라멘트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나오고 더 돌리면 노랗게 보이다가 끝에서는 흰 불빛을 내며 가장 밝아진다. 별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붉은색 별은 표면 온도가 약 3천K(절대온도)로 낮고, 태양과 비슷한 주황색에서 노랑색 별은 5천-6천K, 흰색에서 청백색 별은 1만-수만K나 된다.
나이 따라 달라지는 색깔
도심의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은 단지 하얀빛의 점으로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불빛이 없는 시골 밤하늘에서는 색깔을 알아볼 수 있는 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붉은색 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띌 것이다. 별의 표면온도가 제일 낮은 붉은 별로는 오리온자리 베텔게우스, 황소자리 알데바란, 전갈자리 안타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태양보다 수십배나 큰 적색거성으로, 별의 일생 중 종말에 가까운 별이다.
세페우스자리 오각형 아래에 있는 4등성 뮤(μ)별은 지구로부터 거리가 약 5천3백광년 떨어진 별인데 맨눈에 볼 수 있는 가장 먼 별 중 하나다. 이 별은 하늘에서 가장 붉게 보이는 별로 천왕성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이 진홍빛을 띠는 ‘석류석 별’로 이름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태양과 비슷한 노란색 별로는 마차부자리 카펠라와 쌍둥이자리 폴룩스가 있다.
한편 큰개자리 시리우스, 오리온자리 리겔, 거문고자리 직녀성 등은 청백색 별로 표면온도가 1만K가 넘는다. 이들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별로서 가장 밝고 뜨거운 별에 속한다. 그런데 시리우스의 색깔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온다. 2천년 전 로마의 문학가 키케로나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모두 시리우스를 떠오르는 태양이나 화성보다 더 붉은 별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시리우스는 청백색을 띠는데 어찌된 일일까. 사연을 간단히 말한다면 시리우스의 색깔이 바뀌었다는 얘긴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시리우스에는 9등급의 어두운 동반성이 50년 주기로 돌고 있는데, 이 별은 최초로 발견된 백색왜성이기도 하다. 천문학자들은 시리우스 곁에 있는 동반성이 당시에는 불규칙적인 팽창이나 폭발을 일으켜 수백년 간 붉은 적색거성과 비슷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붉은 별로 보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스펙트럼 통해 대기성분 조사
천문학자들은 별의 색깔을 좀더 정량적으로 결정할 방법을 연구했다. 푸른 별에서는 붉은빛이 약하고, 붉은 별에서는 푸른빛이 약하다. 별의 색깔을 결정하는 요인은 가시광선 부분에서 최고강도의 에너지를 내는 파장이다. 예를 들어 태양은 노란색 파장의 강도가 제일 강한 빛을 내는 별이다. 그래서 사람의 눈도 노란빛에 민감하다.
빛의 파장에 따른 강약을 알기 위해서는 프리즘 등을 통해 빛을 무지개 빛으로 분해해보면 된다. 1666년 뉴턴은 창문에 지름이 약 8mm인 작은 구멍을 내고 프리즘을 놓아 반대쪽의 흰 벽에 비친 무지개 색의 띠를 관측했다. 그 빛의 띠를 ‘스펙트럼’이라 했다.
그렇지만 별빛은 너무 어두워서 오랫동안 프리즘으로 스펙트럼을 관측할 수가 없었다. 2백년이 지난 뒤인 1870년대에야 별빛의 색을 분해할 수 있는 항성분광기가 만들어졌다.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긴스는 1876년 망원경의 대물렌즈 앞에 얇은 프리즘이 포함된 대물프리즘 분광기를 장치하고, 직녀성의 별빛 스펙트럼을 사진으로 찍어내는데 성공했다. 이같은 분광관측을 통해서 별의 온도와 색깔의 관계를 알아낼 수 있었다. 즉 별은 온도가 높을수록 밝기가 증가하고, 최고강도의 파장이 짧은 파장으로(스펙트럼 상에서 파란색 빛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별빛의 스펙트럼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연속적인 무지개 색깔에서 막대같은 검은 선들을 볼 수 있다. 이 선들은 별의 대기 속에 있는 원자나 분자들에 흡수된 부분이다. 원자나 분자는 종류에 따라 특별한 파장의 빛을 흡수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흡수선의 위치를 지구상의 알려진 원소에서 나타나는 스펙트럼과 비교해 별의 구성원소나 성질을 알아내기도 한다.
현재는 여러 별들을 특징적인 스펙트럼별로 분류한 체계를 사용한다. 보통 별의 스펙트럼형은 헨리 드레이퍼의 분류법에 따라 고온의 별부터 순서대로 O, B, A, F, G, K, M 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별의 색과도 연관되는데 O, B, A형은 청색에서 청백색을, F형은 흰색, G형은 노란색, K형은 주황색, M형은 붉은색과 대응된다. 그리고 각 스펙트럼형은 고온에서 저온까지 0-9까지의 숫자를 붙여서 다시 10단계로 세분한다. 이 방식으로 별들을 분류하면 태양은 G2형, 시리우스는 A0형, 베텔게우스는 M2형으로 표기된다.
별의 맥을 짚는 방법
별의 스펙트럼형(표면온도)을 가로축으로 그 별의 절대광도를 세로축으로 잡고 별들의 분포를 나타내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게 된다(그림). 이런 그림을 ‘HR’도 라고 부르는데 처음 만든 덴마크의 헤르츠스프룽과 미국의 러셀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가장 많은 별들의 위치들은 왼쪽 위(밝고 고온, 청색)에서 오른쪽 아래(어둡고 저온, 적색)로 뻗은 띠 모양의 직선으로 나타난다. 이 직선을 ‘주계열’이라 부르고 이 위에 늘어선 별들을 ‘주계열성’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별들이 주계열성이다. HR도의 오른쪽 윗부분은 저온의 큰 별인 적색거성을 나타내고, 왼쪽 영역의 훨씬 아래에는 고온의 작은 별인 백색왜성을 나타낸다.
HR도를 통해서 각 별들의 현재 상태와 일생을 추측해볼 수도 있다. 태양의 경우는 현재 주계열성이다. 태양은 일생의 대부분을 주계열성으로 보내다가 말기에 주계열을 벗어나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적색거성이 되고 그후 왼쪽으로 옮겨가 불안정한 변광성의 시기를 지나 주계열을 가로지르게 될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폭발해 크기가 작아져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지막에는 백색왜성으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
한의원에서 진맥을 통해 신체의 질병을 알아내는 것처럼, 간단해 보이는 별빛의 색을 통해 그 별의 표면온도에서부터 일생까지 알려주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