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가 제시한 파동역학은 고전역학의 중요한 문제를 비롯해 수소원자의 에너지 문제를 풀어나갔다.그 후 원자 이론에서 가장 관심을 끌던 제만 효과와 쉬타르크 효과도 해결했다.그러면서 양자역학은 화학결합의 원리를 설명하고 양자장이론으로 성장하면서 전성시대를 이뤘다.
1926년 1월 27일에 베를린에서 발간되던 학술지 ‘물리학 연보’는 취리히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인 슈뢰딩거가 제출한 논문 한편을 받았다. 같은 해 3월 13일에 ‘물리학 연보’에 실린 그 논문의 제목은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 제1부’였다. 슈뢰딩거는 이후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 제4부’를 비롯한 일련의 논문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파동역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이론을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에게 널리 알렸다. 이 이론은 1925년에 선보였던 하이젠베르크, 보른, 요르단의 ‘행렬역학’과 함께 이른바 ‘양자역학’의 가장 중요한 형식 중 하나가 됐다.
양자역학의 손과 발 파동방정식
슈뢰딩거가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업적은 1925년 겨울 두주 동안의 크리스마스 휴가 때 이루어졌다. 슈뢰딩거는 밤잠도 제대로 안자고 담배연기 가득한 방 안에서 쉴새없이 논문을 써나갔다. 물론 이미 오랫동안 정리해 온 연구노트가 있었기 때문에 논문을 써나가는 작업은 순조로왔다. 이 연구노트의 발단은 취리히 대학에서 슈뢰딩거가 발표했던 한 강연이었다.
1924년 프랑스의 드브로이는 보어의 원자모형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물질은 파동이며, 그 파장은 운동량에 반비례한다는 물질파 가설을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했다. 아인슈타인을 통해 이 논문을 입수한 슈뢰딩거는 이 새로운 가설을 취리히 대학의 한 콜로키움에서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소개했다. 강연을 듣고 있던 드바이가 대뜸 질문했다. “물질이 모두 파동이라면, 그 파동을 기술하는 파동방정식은 뭐죠?” 파동방정식이 없는 파동은 마치 야구장도 야구선수도 없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야구공 마냥 막연한 것임을 당시의 물리학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저도 물론 그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어느 정도 생각에 가닥이 잡히고 있습니다. 곧 그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라고 슈뢰딩거는 대답했다. 그 뒤 몇달이 채 지나지 않아 ‘파동역학’이라는 새로운 역학이론의 전체 틀이 발표됐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유값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1924년 쿠랑과 힐버트는 ‘수리물리학의 방법’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는 물리학의 여러 문제들을 미분방정식으로 나타내고 그 풀이를 해설한 것이었다. 물리현상에 관한 법칙 중 상당수는 우리가 관심을 갖는 물리량과 그 물리량이 변화하는 척도(변화율)들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말해준다. 이것은 수학적으로 보면 어떤 함수와 그 함수의 도함수(f(X)=x²인 경우 f(X)의 도함수는 2X)들 사이의 관계와 같으며, 이렇게 함수와 그 도함수들 사이의 관계가 주어져 있을 때 함수를 구하는 문제가 바로 미분방정식이다. 뉴턴방정식도 시간이 독립변수이고 위치가 종속변수인 함수에 대한 미분방정식이다. 쿠랑과 힐버트는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모든 미분방정식을 분류하기 위해, 스뛰름-류비유(Sturm-Liouville) 이론을 써서, 방정식에 포함돼 있는 어떤 숫자가 풀이를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을 밝혔는데, 바로 이 숫자가 그 방정식의 고유값이다. 이 때 미분방정식의 풀이 중에서 그 고유값에 대응하는 것을 고유함수라 한다. 예를 들어 $\frac{d²}{dx²}$sin ax=-a² sin ax라는 식은 $\frac{d²}{dx²}$f(x)=kf(x)와 같은 미분방정식의 풀이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미분방정식의 고유값은 -a²이고 그에 해당하는 고유함수는 sin ax이다.
슈뢰딩거는 드브로이의 물질파에 대한 파동방정식을∇2ψ(x, y, z) + $\frac{8π²m}{h²}$[E-U(x, y, z)]ψ(x, y, z)=0와 같은 꼴로 썼는데, 여기에서 E의 값이 바로 이 파동방정식의 고유값이 된다.
파동역학으로 풀린 조화진동자와 수소 문제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은 하이젠베르크-파울리-요르단의 행렬역학보다 훨씬 급격하게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행렬이라는 추상적인 수학은 아직 물리학자들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미분방정식은 당시의 물리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풀린 문제는 위치에너지가 평형점으로부터의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는 1차원 조화진동자 문제였다. 슈뢰딩거는 양자 조화진동자의 에너지가 En=${hν}_{0}$(n+$\frac{1}{2}$) (n=0, 1, 2, … )와 같이 됨을 밝혔다. 여기에서 h와 ${ν}_{0}$는 각각 플랑크 상수와 조화진동자의 기본진동수이다. 조화진동자는 고전역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는데, 슈뢰딩거의 결과는 고전역학의 풀이와 거의 일치했다. 그 다음에 파동역학으로 풀린 것은 위치에너지가 거리에 반비례하는 경우인 수소원자 문제였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방정식을 풀어서 수소원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E}_{n}$ = - $\frac {2{π}^{2}{m}_{e}{e}^{4}}{{h}^{2}}$ $\frac{1}{{n}^{2}}$ = (-13.6eV) $\frac{1}{{n}^{2}}$ (n=1, 2, 3 … )와 같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음을 밝혔다. 여기에서 me와 e는 각각 전자의 질량, 전자의 전하량이다. 이 결과는 보어의 원자모형으로부터 나온 이전의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후 다른 문제들이 차근차근 풀려나갔다(그림1).
행렬역학은 탁월하고 엄밀한 이론이었지만, 실제 문제를 풀기에는 매우 불편했다. 조화진동자 문제가 풀렸고, 아주 힘들게 수소원자 문제가 풀린 정도였다. 행렬역학은 물리량을 행렬로 나타낸 뒤에, 이 행렬을 대각화하는 방법을 사용해 물리량이 가질 수 있는 값을 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에서 파동방정식이 정확히 풀리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에 접근하기 힘들어 보였지만, 근사적 방법을 이용한 해결방법이 개발되자 파동역학은 적용 폭이 넓어졌다.
깨끗하게 해결된 제만 효과와 쉬타르크 효과
그렇다면 파동역학과 행렬역학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당시에 아인슈타인이 “이제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양자이론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두개의 전혀 다른 이론이 나타났습니다. 겉보기에 이 두이론은 서로 상반된 이론인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곧 슈뢰딩거, 파울리, 디랙, 에커트 등이 두이론이 정확히 같은 이론임을 증명해냄으로써, 명실공히 새로운 양자역학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원자이론에서 가장 관심을 끌던 문제는 제만 효과와 쉬타르크 효과였다. 수소기체를 진공관에 넣고 에너지를 주었을 때 수소원자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것은 19세기부터 잘 알려져 있었지만, 자기장 속에서 그 선이 여러 가닥으로 쪼개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1897년 네덜란드의 제만이었고, 마찬가지로 전기장 속에서 스펙트럼 선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쉬타르크 효과는 1913년에야 발견됐다. 고전양자이론(보어-좀머펠트 이론)으로는 이 효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더욱 악명 높았던 것은 헬륨원자였다. 관측결과에 따르면, 헬륨원자의 에너지 수준은 두 종류로 나뉘어지며,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빛을 내며 옮겨가는 일이 있을 수 없음이 알려져 있었다. 고전양자이론으로는 이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을 통해 악명높은 헬륨원자 문제도 깨끗하게 풀렸고, 제만 효과, 쉬타르크 효과 등도 해명됐다. 원자번호에 따라 원소들을 배열한 주기율표도 양자역학으로 그 구조와 성격이 분명해졌다. 1921년 쉬테른과 게를라흐는 균일하지 않은 자기장을 통과한 전자빔이 정확히 두갈래로 갈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1925년 울렌벡과 굿스미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핀 각운동량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파울리는 배타원리를 써서 새로운 양자역학의 틀 안에 스핀 각운동량이 매우 자연스럽게 도입됨을 밝혔다.
화학결합에서 양자전기역학까지
양자역학에 따르면, 원자 주변의 전자는 마치 양파껍질처럼 흩어져 있다. 맨 밑바닥의 껍질(K껍질)에는 두개의 자리가 있고, 다음 껍질(L껍질)에는 8개의 자리가, 다음 껍질(M껍질)에는 18개의 자리가 있다. 예를 들어 원자번호가 11인 나트륨 원자에는 전자가 모두 11개 있다. 나트륨 원자가 바닥상태에 있다면,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라, 맨 밑바닥에 둘, 그 다음에 8개의 전자가 있게 되고, 마지막 전자는 셋째 껍질에 있게 된다. 그래서 나트륨원자는 좀더 자유로운 전자(최외각전자)가 하나이며, 이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1가의 이온이 된다. 이렇게 맨바깥껍질의 전자의 수에 따라 화학적 성질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를 족(family)으로 분류하면, 여덟 족의 화학원소 분류가 가능해지며, 이를 체계적으로 배열한 것이 바로 주기율표다.
하이틀러와 론돈은 처음으로 화학결합의 양자이론을 완성했다. 수소분자를 비롯해서 원자들의 공유결합과 이온결합의 성질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폴링은 양자이론을 여러 화학이론에 적용해 화학의 양자혁명을 일으켰다(그림2, 그림3). 전통적인 분야도 여전히 활발히 연구되고 있긴 했지만, 화학은 양자역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만 전자가 여럿 있을 때에는 전자가 하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현상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 1930년대 이후에 물리학의 발전은 고체와 같은 응집물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양자역학을 써서 이해하는 쪽으로 진행됐다.
양자역학이 고고지성을 울리며 태어난 직후 쌍둥이 동생인 양자장이론이 1928년 함께 태어났다. 캠브리지 대학의 디랙은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요르단, 슈뢰딩거와 독립적으로 변환이론을 써서 양자역학을 정식화했다. 디랙은 곧 광전효과나 전자기장이 관련돼 있는 현상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를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이라 한다. 양자전기역학은 전자기학의 양자이론이며,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결합시킨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양자전기역학이 탄생할 무렵에 세상에 알려져 있던 기본입자는 전자와 양성자와 광자뿐이었지만, 곧 양전자를 비롯해서 대단히 많은 기본입자들이 발견됐다. 현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는 기본입자를 쿼크와 렙톤으로 본다. 쿼크와 렙톤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이론은 양자장이론의 형식을 띤다. 양자역학은 비상대론적 극한에서 적용된 양자장이론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은 에너지의 수준 또는 대상의 크기에 따라 원자물리, 원자핵물리, 입자물리로 크게 대별할 수 있다. 가장 에너지가 높고 크기가 가장 작은 대상인 기본입자에 대해서는 양자장이론이, 원자에 대해서는 양자역학이 적용된다면, 원자핵물리에서는 이 두이론이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변형되거나 선택돼 적용된다. 원자핵에서는 원자물리에서처럼 원자핵을 껍질로 보기도 하고 물방울 비슷한 것으로 보기도 하며, 쿼크들의 모임에 대해 양자장이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원자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양자가설이 1925년 무렵에는 양자역학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원자, 응집물리, 원자핵, 기본입자에 두루 적용되는 보편이론으로 부쩍 성장한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끝까지 양자역학에 의심을 품었지만, 적어도 ‘모든 실제적인 목적에 대해서’(for all practical purpose, FAPP) 양자이론은 물리학의 황제이론이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양자 홀 효과(quantum Hall effect), 고온초전도체, 양자중력이론과 같은 문제들이 양자이론에서 주된 과제가 되고 있는데, 아마도 한동안은 양자이론의 전성시대가 계속되리라는 것이 많은 물리학자들의 믿음이다.
◆용어설명◆
불확정성 원리
고전역학에서는 대상의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의 값으로 나타내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 양자역학에서는 위치에 대한 표준편차와 운동량에 대한 표준편차의 곱이 플랑크 상수의 값 정도보다 더 크다는 미결정성 관계식을 유도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를 일반화해 어떤 물리량들은 동시에 원하는 정밀도로 그 값을 확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제안했다.
상보성 원리
보어는 광자가 때로는 입자처럼 때로는 파동처럼 행동하는 듯이 보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상보성 원리를 도입했다. 자연세계 특히 미시세계를 볼 때에는 A라는 측면과 B라는 측면을 볼 수 있고, 이 두 측면 모두 각각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두 측면을 보는 것은 모순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이 때 이 두 측면은 서로 상보적이라고 하고, 자연에 이러한 상보성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상보성 원리이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모호한 면이 많고 과장된 부분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