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을 가진 열대 나비의 날개를 잘못 만졌다가는 사지를 못 쓰게 될 지도 모른다. 바다달팽이가 쓰는 것과 같은 종류의 독소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의대 배낙현 박사팀은 열대 나비 ‘그라우시페 끝주홍나비(Hebomoia glaucippe)’의 날개에 있는 독 성분이 바다달팽이로 불리는 ‘고둥(Conus marmoreus)’의 독소와 같다는 연구결과를 10월 15일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그라우시페 끝주홍나비는 날개 양 끝이 화려한 주황색이다. 날개 부분에 독이 있어 이 나비를 잡아먹는 새와 개미, 난초사마귀 등은 날개는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동남아시아에서 채집한 그라우시페 끝주홍나비의 몸과 날개에서 얻은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글라콘트리판-M(glacontryphan-M)’이라 불리는 독 성분을 찾아냈다. 이 성분은 지금까지 바다에 사는 고둥에게서만 발견된 독성 물질이다. 고둥은 글라콘트리판-M을 이용해 먹잇감인 작은 생물의 몸을 마비시킨 뒤 잡아 먹는다. 그라우시페 끝주홍나비의 몸에는 이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고 날개와 애벌레 피부에서만 독성물질이 나왔다. 나비는 이 물질을 공격용 대신 방어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나비를 날개째 먹는 도마뱀붙이 같은 생물도 있는데, 연구진은 도마뱀붙이가 진화 과정에서 독성에 관한 면역 체계를 습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바다에 사는 고둥과 땅 위에 사는 나비가 똑같은 독성 물질을 가진 이유를 밝히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