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바다 동탄습지
2002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동탄 습지의 총 넓이는 326km2.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람사르습지인 고창·부안 갯벌의 넓이 45.5km2 보다 7배 이상 넓다. 게다가 동탄 습지는 매년 100m 이상 동쪽으로 늘어나고 있다. 충밍섬이 위치한 양쯔강 하구에는 하구둑이 없어 퇴적물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하구마다 하구둑이 버티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동탄습지를 덮고 있는 것은 사람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자란 황금빛 갈대숲이다. 그래서 ‘금빛 바다’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금빛 바다를 가로지르는 여정은 친환경적으로 만든 나무다리에서 시작해 나무다리에서 끝난다. 난간이 없어 불안해 보이지만, 물 깊이가 30cm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지 않다. 또 갈대숲 사이로 뻗어나간 다리 자체가 고즈넉한 옛 나루터를 떠올리게 한다.
나무다리를 건널 때 갈대숲 속에서 흘러나오는 새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새를 찾을 수 없었다. 함께 습지를 방문한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은 “결코 새들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갈대숲 속에서 먹이를 찾는 데 한창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탄습지는 호주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동해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에서 여름을 나는 철새들에게 중요한 ‘주유소’ 역할을 한다. 철새들이 동탄습지를 선택하는 까닭은 식생이 다양해 먹잇감이 많기 때문이다. 식생이 다양한 데는 하구둑이 없는 덕이 크다. 주 연구원은 “양쯔강 하구에는 둑이 없어 밀물·썰물에 따라 담수와 해수가 자연스럽게 섞이기 때문에 민물 생물과 바다 생물이 함께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는 보지 못하고 새 소리만 들어 잔뜩 약이 오른 관광객을 위한 배려일까. 갈대숲 안쪽에는 조류박물관이 있었다. 물 위에 목재로 지어올리고 지붕에는 갈대를 얹어 주변 경치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번식하는 도요물떼새를 비롯해 흑두루미 가창오리, 오리기러기 등 수십 종의 새모형을 볼 수 있었다.
또 바깥 쪽으로는 직접 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설치돼 있었다. 기자는 마침내 망원경으로 물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도요새를 볼 수 있었다. 황해 건너 동탄 습지까지 와서 철새떼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 조류 박물관을 떠나 갈대숲 더 깊숙한 곳에
들어서자 기자는 처음으로 날아오르는 새 떼를 볼 수 있었다. 도요새, 천둥오리…. 기자는 망원렌즈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부리나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몇 장 정도 찍었을까. 한꺼번에 날아올랐던 새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황금빛 갈대숲에는 또 다시 새는 없고 새 소리만 남았다.
한국과 중국이 함께 지켜야할 황해
동탄 습지를 방문하기 하루 전인 11월 28일. 중국 상하이시 에펠톤 호텔에서 제4회 황해생태지역 한·중 교류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일본 파나소닉이 공동으로 착수한 황해생태지역 지원사업의 성과를 각국의 연구자와 관계자가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황해는 대한민국과 중국 중 한 나라가 단독이 아닌 공동으로 관리해야 할 영역이라는 점이 부각된 게 이번 포럼의 큰 의미였다.
한·중의 여러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바로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다. 지속가능성의 의의는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과 지역주민들의 경제생활이 서로 이득을 보는 윈-윈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최소한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갯벌에서 조개양식을 하는 어민들은 조개를 먹는 물새로부터 상품을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물새 또한 갯벌에서 먹이를 찾을 권리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날 포럼에서 송룬 중국 랴오닝해양수산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압록강 하구 연구를 토대로 ‘어민과 물새가 사실은 경쟁관계가 아니다’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송 연구원은 “물새를 관찰해 어떤 조개류를 먹는지 살펴본 결과, 어민들이 양식용으로 쓰지 않는 작은 조개를 주로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단, 예외인 조개도 있었다. 가리맛조개는 사람도 물새도 즐겨 먹는 조개였다. 그렇다면 이 조개에 대해만큼은 어민과 물새 모두 서로에게 양보할 여지가 없을까.
송 연구원은 “물새가 가리맛조개를 즐겨 먹는 것은 맞지만, 가리맛조개가 어느 정도 자라서 갯벌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면 더 이상 잡아먹을 수 없다”며, “가리맛조개가 어린 시기에만 어민들이 신경 쓰면 그 이후로는 싸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압록강 하구의 어민과 물새의 싸움은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일까. 송연구원은 “어민들이 가리맛조개가 어린 시기에만 폭죽을 터뜨리는 식으로 새를 쫓고 있으며 만조 때는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만조 때는 바닷물이 깊어져 새들이 조개를 잡기가 쉽지 않다. 또 송 연구원은 “가리맛조개는 물새가 즐겨 먹는 여러 조개 중 하나뿐이라 이를 먹지 못하게 한다 해서 큰 타격을 입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황해생태지역을 보존하고자 하는 연구가 물새와 어민들 사이의 화해를 주선한 것이다.
황해를 공유한 우리나라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정부는 2001년 전남 무안갯벌을 국내 제1호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안갯벌의 어민들은 자발적 참여로 작업량을 제한하며 서식 생물들과의 지속가능한 공생과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황해생태지역 보전사업 연구책임자는 “황해를 공유하는 나라의 지속적인 협력이 훼손된 황해환경을 개선하는 데 필수”라고 강조했다.
돈을 벌어야 환경도 지켜진다?
“내가 배부르면 널 먹지 않겠다. 내가 배부르면 널 팔지 않겠다. 내가 배부르면 널 잘 기르겠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 있는 증도갯벌생태전시관의 정영진 사무처장이 이번 포럼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나’란 갯벌 최상위 포식자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 해당 지역 주민이기도 하다. 정 사무처장은 “지속가능한 환경보전을 하려면 지역주민들이 잘 사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생활이 궁핍하지 않아야 자발적으로 자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정 사무처장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유지해야 관광객 유입이 늘고, 마을 수입도 는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게 되는 것이 지속가능한 환경보전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처장의 말처럼 당위성만으로 자연환경을 지키려는 시대는 어쩌면 이제 끝났는지도 모른다. 당위성만으로 지역주민들을 옭아매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런데 경제적 가치만으로 환경을 지킬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 또한 가혹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 정부는 동탄습지가 있는 충밍섬을 ‘에코-시티’로 개발할 계획이다. 에코 시티란 사용하는 에너지양과 배출하는 오염물질량을 최소로 하는 ‘지속가능한 환경보호’를 골자로 하는 도시다. 지난 11월 29일 기자를 감탄하게 했던 동탄 습지의 금빛 갈대숲이 에코 시티에서 그 모습을 잘 지켜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