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핵폭탄은 물론 핵잠수함을 보유한 국가가 아니다.그래서 지난 8월의 러시아 핵잠수함 침몰사고는 우리의 관심사와 멀다고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남의 일로만 바라볼 수 없다.우리의 서해와 동해에 중국과 러시아의 잠수함이 정탐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2일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승무원 1백18명 전원을 죽음으로 몰고 간 러시아의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사건은 전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더욱이 일부 환경론자들은 이 핵잠수함의 원자로로부터의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해 세계적인 어장인 주변해역뿐만 아니라 대서양과 태평양까지도 방사능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래식 잠수함과의 차이
이번 사고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총 7건(미국 2건과 러시아 5건)의 핵잠수함 침몰사건이 발생했다. 칭다오에 기지를 둔 중국의 핵잠수함 몇척이 서해를, 블라디보스톡에 기지를 둔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일부 핵잠수함들이 동해를 정탐하는 현재 우리나라 주변해역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은 단순히 먼나라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방사능 누출에 대한 위험을 안고서도 핵잠수함이 해저를 누비는 것일까. 재래식 잠수함과 핵잠수함의 비교를 통해 이를 알아보자.
재래식 잠수함의 추진원은 디젤기관. 수면근처를 항해할 때 디젤기관을 통해 발전한 전기를 축전지에 저장해 수중에서 전기로 항해한다. 그러므로 재래식 잠수함은 축전지의 용량한계와 산소를 필요로 하는 디젤로 인해 장시간의 수중항해가 불가능해서 자주 수면근처까지 떠올라야 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 1954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핵잠수함은 연료인 핵분열물질(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이 중성자에 의해 핵분열해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산소가 필요 없어 장시간 수중항해가 가능하다. 또한 한번의 핵연료 장전으로 수십년, 최근 미국에서 제조된 핵잠수함은 30년 정도의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핵연료의 교체가 필요없다.
사고로 6백40명 사망
그러나 이런 장점과는 달리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에서 걱정할 필요없는 승무원들에 대한 방사선 피폭의 위험 가능성이 항상 따라다닌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지난 37년간 미국과 러시아의 핵잠수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거의 6백40명. 핵잠수함이 군사적인 목적에서 쓰이는 점을 감안하면 알려지지 않은 사고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70기가 넘는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50여기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1955년부터 2백50여기의 핵잠수함을 제작해왔다. 지난 1995년 1월에 운전 개시한 쿠르스크호의 규모는 오스카급으로서 배수량 1만8천t, 길이 1백54m, 높이 18m, 폭 9m다. 최고 속도가 시속 28노트(52km/시)이며 핵탄두를 탑재한 크루즈 미사일을 비롯해 갖가지 현대무기들을 장착하고 있다. 쿠르스크호는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가압경수형원자로(이하 경수로) 2기를 장착했고, 열출력이 1백90MW(190,000,000W)다. 이 정도의 출력은 일반적인 원자력발전소 열출력의 약 15분의 1에 해당한다. 러시아 핵잠수함 원자로의 열출력은 배수량 2천t 이하 미니 핵잠수함의 10MW에서 최근 제작중인 4세대 핵잠수함의 2백MW까지 다양하다.
러시아 핵잠수함의 특징은 1기당 원자로 2기를 장착한다는 점. 핵잠수함 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은 핵잠수함들에 1기의 원자로를 장착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발된 러시아의 핵잠수함은 1세대에서 4세대, 액체금속냉각원자로 장착 핵잠수함, 그리고 기타 특수 핵잠수함들로 나눠진다.
핵물질을 장착하고 다니는 핵잠수함에는 어떤 안전장치가 있을까. 핵잠수함의 기동은 원자로 내 핵연료에서 발생한 열을 냉각수가 증기발생기로 전달해 증기를 발생시키면 이 증기가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하거나 프로펠러를 돌린다. 그래서 핵분열반응 결과 생성된 방사성물질로 오염되는 원자로용기 및 증기발생기 등은 수cm 두께의 철제 용기인 원자로 격납용기가 밀폐하고 있다.
4중방호벽 구조의 안전장치
그렇다면 침몰한 쿠르스크호는 과연 안전할까. 원자력발전소 원자로의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에 대한 안전분석은 수만페이지에 이를 만큼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반면 핵잠수함 원자로의 관련자료는 대부분 군사기밀에 해당돼, 이에 대한 안전분석은 거의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현재 가동중인 전세계 원자력발전소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수로(우리나라의 경우도 가동중인 16기의 원자력발전소 중 12기가 경수로임)가 핵잠수함 원자로를 원형으로 개량된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할 때 핵잠수함 원자로로부터의 방사성물질의 누출 문제는 기존의 발전용 경수로의 경우에 비추어 추론 가능하다.
이로부터 유추되는 쿠르스크호의 방사능 유출 가능성은 두가지. 첫째는 쿠르스크호의 침몰 원인인 선체 앞부분의 파괴로 인한 충격이 핵연료와 주변 구조물을 손상시킨 경우다. 핵잠수함은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막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4중의 방호벽 구조로 돼 있다. 제1방벽은 핵연료피복관. 핵연료를 싸고 있는 관으로 발생하는 방사성물질들을 가두며 발생한 열을 냉각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제2방벽은 원자로용기와 핵연료에 의해서 뜨거워진 냉각수가 흐르는 파이프부분. 제3방벽은 원자로 격납용기인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감싸고 있다. 제4방벽은 잠수함 선체로, 일반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잠수함은 한겹인데 비해 러시아의 잠수함들은 두겹 구조다.
핵잠수함에서 원자로용기는 선체 후반부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다. 따라서 선체 앞부분의 파괴에 의해 두께 20cm 이상의 강철로 만들어진 원자로용기에 물리적 손상을 입히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원자로 격납용기 내 냉각수 파이프의 접속부분이 물리적 손상을 입게 돼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누출될 가능성까지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제까지 사고해역에서 방사능 누출의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볼 때 파이프와 격납용기 모두에 손상이 없는 것인지, 또는 파이프에 손상은 있지만 격납용기에는 손상이 없는 것인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핵연료가 녹아 내릴 가능성
두번째 가능성은 가열된 핵연료를 제대로 냉각시켜주지 못해 핵연료가 녹아 내리는 경우다. 이로 인해 방사성물질이 누출된 경우는 1979년 미국의 드리마일과 1986년 옛소련의 체르노빌 사건으로 가열된 핵연료를 제대로 냉각시키지 못했던 것이 주원인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침몰된 쿠르스크호 핵연료에서의 열발생과 열제거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선 열발생에 대해 분석해보면 핵분열 정도를 조절하는 제어봉을 원자로 내에서 빼내는 일과 같은 조작을 하지 않는 이상 이미 침몰로 인해 정지된 원자로가 아무 이유 없이 다시 핵분열을 시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침몰된 쿠르스크호 원자로에서는 더이상 핵분열로 인한 열발생은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원자로의 운전 중에 누적된 핵분열 생성물질이 안정된 원소로 바뀌어가면서 붕괴열을 발생시킨다. 높은 가동률로 오랜 기간 동안 운전한 원자로의 경우는 누적된 핵분열 생성물질의 양이 많아 원자로가 정지 후에도 붕괴열의 발생이 상대적으로 높다.
쿠르스크호의 경우 지난 1995년 1월에 운전을 시작해 지난 8월 12일 사고 발생 전까지 신핵연료를 교체한 적이 없다. 그리고 각각의 원자로에 1백15kg의 우라늄 235을 장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평균 10%의 원자로 가동률을 가정할 때 필자의 계산에 의하면, 사고 당시의 정지된 핵연료로부터 발생된 붕괴열은 각 원자로당 열출력의 약 7%인 13MW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높은 붕괴열을 발생시키는 짧은 반감기(방사성 원소의 양이 원래의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의 핵분열 생성물질이 짧은 기간 내에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붕괴열의 발생 또한 단기간 내에 크게 줄어든다. 쿠르스크호의 경우 각 원자로당 정지 10일 후엔 0.7MW, 한달 후엔 0.4MW, 1년 후엔 0.05MW 정도의 붕괴열을 발생시킬 것으로 필자는 예측한다. 짧은 반감기 원소들의 효과가 사라지는 2-3년 후부터 1백여년 간은 반감기가 약 30년인 세슘 137 및 스트론튬 90의 두 원소가 발생시키는 붕괴열이 전체 열발생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핵연료의 온도는 서서히 식어간다.
그러므로 정지된 원자로라도 핵연료가 녹아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붕괴열로 인해 발생한 열을 제거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피동형안전설비를 갖추고 있는 쿠르스크호의 경우, 이번 침몰 때 원자로 내의 냉각수가 파이프로부터 새어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을지라도 배터리의 작동여부에 상관없이 비상냉각수가 자동적으로 원자로 내에 주입된다.
심지어 냉각재 순환펌프가 고장났다 하더라도 냉각수는 자연대류에 의해서 핵연료의 붕괴열을 식혀 나간다. 핵연료피복관이 녹아 내리는 온도는 1천8백℃ 정도이므로 자연대류에 의한 냉각이 유지되는 한 붕괴열로 인해 핵연료가 녹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쿠르스크호의 원자로로부터 방사성물질의 누출 가능성은 단기간 내에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속수단 없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하지만 바닷물 속에서의 금속의 부식 정도가 아직 문제로 남아있다. 부식정도는 염분농도와 온도에 크게 좌우되는데, 염분농도와 온도가 높을수록 부식율이 높다. 그런데 어느 정도 빨리 부식이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쿠르스크호 원자로를 바다 속에 그대로 방치한다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부식으로 인한 방사성물질의 누출 가능성은 커져만 갈 것이다. 따라서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다.
따라서 현재 쿠르스크호를 빠른 시일 안에 처리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해 몇가지 안이 제시됐다. 먼저 육지로 인양하는 방법으로서 선체 전체를 인양하는 방법과 원자로 격납용기만 따로 떼어내어 인양하는 방법 두가지가 있다. 그러나 두가지 모두 막대한 소요경비(선체인양의 경우 약 1억달러 소요 예상)와 수심 1백여m 깊이의 북극해에서 1만8천t 배수량의 핵잠수함 선체와 작업해야 하는 기술적인 난제가 큰 과제거리로 남아있다.
다른 제안으로는 침몰된 선체를 그대로 방치해두는 안인데, 원자로 격납용기 부분만을 러시아가 이미 개발한 특수 물질로 밀봉해버리면 이후 5백여년간은 방사성물질 누출의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러시아 정부는 쿠르스크호 선체를 1년 내에 인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당시에 활약했던 1백90여기 러시아 핵잠수함이 현재 50여기로 줄어든 것은 그 역할의 중요성 감소도 한 원인이겠지만 예산 부족이 더 큰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때문에 퇴역한 핵잠수함으로부터 방사성폐기물의 처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많은 양의 사용후 핵연료가 퇴역한 핵잠수함 선체에 그대로 장전된 채 방치되는 등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그런데도 핵잠수함의 사용후 핵연료는 핵무기 보유국의 군사영역에 속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감독을 받지 않으므로,러시아의 부실한 관리현황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아무런 구속의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상황에서 과연 러시아가 쿠르스크호를 제대로 빠른 시일 안에 인양할지가 걱정이다.
러시아 핵잠수함의 계보와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