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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

사이버 바다를 지배하는 e-바이킹

3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에 대한 기대가 크다.하지만 기술적인 방식에 대해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다.그러나 전세계 통신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에릭슨은 느긋하다.두가지 방식 모두 특허권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의 낙카스트랜드에 개설된 연구소와 건물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구급요원이 카메라가 장착된 IMT2000 단말기로 다친 환자의 이곳저곳을 비춘다. 병원 응급실에서는 의사가 전송되는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응급조치 명령을 내린다. 구급차가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응급실에서는 화상으로 전송되는 환자의 상태를 계속 주시하며 치료를 준비한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바다. 요트 위에서 젊은 남녀가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곤 음악파일이 첨부된 e메일을 뉴욕 화랑가를 거닐고 있는 친구에게 보낸다. 이 친구는 인터넷에서 만난 동양인 여자친구에게 다시 이 음악을 보낸다.

이것은 에릭슨이 제작한 ‘IMT2000 가상 현실’ 비디오 테이프 내용이다. 에릭슨 관계자는 “이 내용은 가상이 아닌 곧 현실화될 장면입니다”라며 자신있게 말한다. 이처럼 세계 1위의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은 3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 서비스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젊은 사람을 신뢰하는 경영진


차세대 통신을 주도하고 있는 에릭슨의 최고경영자 라스 램비스트


에릭슨이 차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느긋하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탄탄한 연구개발(R&D) 인력을 믿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부사장 호칸 에릭슨(39)을 만나면 이런 생각을 저절로 가지게 된다. 연구개발 총 책임자로는 너무 젊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그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최고 경영진에서 젊은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 같다. 이것이 에릭슨의 힘이다”라고 거침없이 표현한다.

전세계적으로 6백50명 정도의 연구인력. 이중 절반은 스웨덴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있다. 스톡홀름 시스타 지역에만 연구원이 2백명 정도가 된다. 그리고 연구인력의 30% 정도가 박사학위소지자다.

“연구개발은 항상 10년을 앞서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4세대 이동통신을 연구하고 있다. 최초의 이동전화서비스인 NMT가 시작됐을 때인 1981년에 GSM연구를 시작했고, 1991년 GSM서비스가 시작됐을 때는 3세대 이동전화 연구에 착수했다.”

전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에릭슨은 스웨덴 경제의 주축이다. 에릭슨의 연구개발본부가 위치한 스톡홀름의 시스타 지역은 무선통신기술의 핵심지역으로 떠올랐다. 국제적인 기업들이 이곳에 연구소를 설치하고 세계 각국의 기술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정보통신산업의 급속한 발전에 부응하기 위해 시스타에 학생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대 설립을 추진할 정도다.

넓은 지역, 적은 인구가 통신 발달 유도

스웨덴이 이렇게 젊고 활기차게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된 비결은 뿌리 깊은 기술의 역사와 최근의 기술적 발전이다. 스웨덴에서는 예로부터 통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스웨덴 전체 인구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수인 1천만명보다 적은 약 8백90만명인데, 한반도에 두배가 넘는 넓은 땅덩어리에 흩어져 살다보니 통신이 삶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전화가 처음 등장하자 이를 그것을 애용했다. 1900년 스톡홀름에는 런던이나 베를린보다 더 많은 전화가 있었다. 나중엔 그 열기가 무선전화와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교육과 상업적 사고방식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돼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디어와 기회를 얻기 위해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현재 인터넷시대 공용어가 된 영어를 몇세대 전부터 배워왔다. 자금이 풍부한 국가 교육기관에서는 영어뿐 아니라 과학과 공학도 중시했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초고속 교환망 ATM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40여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1996년말 스웨덴의 양대 통신회사인 텔리아와 테리트보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3백Mbps 이상의 용량을 갖는 통신회선을 해저에 설치했다. 유럽의 인터넷 회선 80% 정도가 이를 거침으로써 스톡홀름은 정보고속도로의 중요한 통로가 됐다. 이에 따라 IT분야는 스웨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부상했다.

일은 경쟁 속에서 즐거워야 한다
 

정열과 기술로 회사를 키운 창립자 에릭슨.(왼쪽) 전기와 통신에 관련된 많은 제품을 발명,통신기술발전에 큰 기여를 한 니콜라 테슬라.(오른쪽)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별칭은 ‘물위의 미녀’(Beauty on Water)다. 스톡홀름은 14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수상도시로, 1998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될 만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인구 약 80만의 스톡홀름은 1250년 건설된 도시로 교통, 문화, 경제, 정치 등 스웨덴의 중심지다. 해마다 노벨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콘서트홀 같이 국제적인 문화시설로, 제1·2차 세계 대전시 중립국 수도로 국제외교 측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세계 통신산업을 두고 핀란드의 노키아와 경쟁하는 에릭슨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1876년 4월 에릭슨(Lars Magnus Ericsson, 1846-1926)은 스톡홀름에서 전기기계수리점포를 시작하면서 가게 명칭을 에릭슨으로 결정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 알렉산더 그라함 벨(Alexander G. Bell)은 전화기 특허를 얻었고, 그 이듬해 스웨덴에서도 미국산 전화기가 팔렸다. 이에 에릭슨은 수입에 의존하던 전화기를 개량할 필요성을 느끼고, 사업영역을 넓혀 전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에릭슨은 1878년 성능이 향상된 전화기를 디자인했다. 1880년 미국의 벨사가 스웨덴에 진출하자, 에릭슨은 벨사와 국제시장에서 경쟁하는 한편 스웨덴 전화시장에서 뿌리를 확고히 내렸다. 에릭슨은 계속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고, 1890년대 이미 종업원 5백명에 달하는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에릭슨은 일찍부터 제품을 해외에서 팔았고, 러시아와 폴란드 등 여러나라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고된 육체작업과 정신적 능력 발휘에 뛰어났던 에릭슨은 1901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일이란 남과 경쟁하는 가운데서도 즐거워야만 하네.”

활대신 전화로 사랑을 엮는 큐피드

에릭슨의 1999년도 매출액은 2백15억 달러. 지역별로는 미국 24%, 중국 19%, 영국 16%, 스웨덴 8% 등이다. 제품별로는 통신장비가 65%, 휴대폰을 포함한 소비자 제품이 20%, 기업 솔루션이 8% 등이다. 에릭슨은 전화기, 교환기, 레이다, 케이블, 신호기, 라디오 등 국내외 60여개 공장을 소유하고 있고, 1백40여개국에 제품을 팔고 있으며, 매출액 90% 이상을 해외에서 달성한다. 에릭슨은 휴대폰으로는 노키아와 쌍벽을 이루지만, 전화교환기지 설비업체로는 세계 1위다.

이런 에릭슨의 성장 요인은 창립자 에릭슨의 정열과 기술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에릭슨의 성장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한명 있는데, 그가 바로 크로아티아 출신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다.

테슬라는 전기와 통신에 관련된 많은 제품을 발명했고, 무선통신주파수 시스템을 개발했다. 테슬라의 발명특허는 7백개가 넘는데, 대부분 통신기술과 관련해 현대문명의 진보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런 그의 업적을 나타내주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력 선속 밀도의 국제단위로 사용되고 있는 테슬라(T)다.

현재 전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903년에 완공한 에릭슨 특별기념관이 있다. 원래는 회사의 제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초기의 전화와 부품에서부터 전화와 관련된 모든 최신 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안에서 천정을 바라보면 전화기를 들고 통화중인 큐피드 조각을 볼 수 있다.

10년후 비전 설정 위해 5백명 투입

1995년 에릭슨은 10년 후의 정보통신 산업 환경 변화를 전망하고 이에 따른 자사의 비전을 재설정하는 프로젝트 ‘2005 - 21세기를 향한 에릭슨’을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2년간 전문가 5백여명이 투입된 대규모 작업이었다. 결국 에릭슨은 이 작업을 통해 향후 정보통신 환경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새로운 정보통신 환경에서의 승자가 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장기적인 수익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장기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에릭슨의 기업사명은 고객의 기대와 요구를 파악하고 어떤 경쟁자보다도 우수한 통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새로운 추세에 민첩하게 대응한다. 새로운 통신 세계는 산업, 기술, 그리고 서비스가 융합되고, 전세계적으로 10-15개 회사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인터넷과 관련 기술이 모든 산업과 회사의 운영방식을 바꿀 것이고, 무선기술과 이동성에 대한 요구도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 기술, 서비스의 융합’ ‘무선’ ‘이동성’ ‘통합’ ‘인터넷’ 등은 21세기 정보통신시장의 주된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이런 흐름에 부합하면서 통합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정보통신 시장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이에 근거해 에릭슨은 시스템 분야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사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새롭게 부각되는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무선통신과 인터넷 관련사업에서 리더쉽을 구축하려는 생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에릭슨은 세가지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첫째 인수합병, 둘째 제휴, 셋째 조직구조의 재구축이다.


통신과 네트워크 시스템에 사용되고 있는 데이타 교환장치인 AXI540.


리더쉽을 발휘해라

에릭슨은 인터넷기반 솔루션 장비 업체와 기업 라우팅 업체 등 데이터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한 중소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1998년 이후 관련업체인 ACC, 텔레비트, 마리포사 등을 인수했으며, 토렌트, 터치웨이브 같은 인터넷 프로토콜 업체도 매수했다.

작년 12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무선인터넷 제품인 스마트폰 개발을 제휴했다. 정보통신 대기업들이 무선인터넷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휴대전화 가입률이 매년 50% 이상 급성장하면서 이동통신을 이용한 인터넷 사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 개발하는 스마트폰은 MS의 이동통신 웹브라우저인 모바일 익스플로러(ME)와 에릭슨의 무선통신기술을 결합한 것으로 오는 2001년 시판될 예정이다. 스마트폰은 인터넷 접속은 물론 기업네트워크, 전자우편, 데이터 전송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또한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회사인 미국 델피 오토모티브 시스템즈와 자동차에 장착하는 무선인터넷 통신기기 개발을 위해서도 제휴했다. 무선인터넷 통신장비를 장착하면 차 안에서 교통정보, 오락, 다운로드, 화상정보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와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스웨덴의 텔리아, 일본의 NTT도코모, 독일의 만네스만 등과도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에릭슨의 무선통신부문 이사 키이쓰 생크는 “에릭슨은 이렇게 개발된 응용기술을 캘리포니아 뉴욕 등지의 사이버랩 등을 통해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로 통합하고 있다”면서 “통신표준과 관계없이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표보다 작은 단파 무선장치를 통해 이동전화, 노트북PC, 카메라, 전자수첩 등 각종 단말기간에 음성과 영상 등 각종 데이터 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는 블루투스 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동 중에 노트북PC로 작업하면서 긴급한 전자메일을 다른 장치없이 바로 무선으로 받을 수 있으며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블루투스를 활용할 수 있는 장치모듈.


이동통신 표준 두가지 모두 보유

그러나 이렇게 적극적인 에릭슨도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뛰어난 기술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쟁업체인 실리콘밸리에 있는 시스코처럼 빠르게 일들을 진행시키지는 못한다. 여러 사업부문을 포괄하다보니 덩치가 커져 통신업계의 핵심인 기동성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또 에릭슨의 핵심 주주들인 스웨덴의 발렌버그 가문과 은행이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서 세계적인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1990년대초 스웨덴을 비롯, 북유럽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에릭슨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에릭슨의 연구개발 총괄 부사장은 “에릭슨은 오래 전부터 통신분야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타격이 적었다. 또 텔리아와 같은 안정적인 통신서비스업체와 협력한 것이 오늘날 이동통신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며 에릭슨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걱정할 것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런 자신감은 주식시장에서 나타났다. 1999년 12월 에릭슨의 주식은 스톡홀름 증시에서 거래가 중단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에릭슨의 주식은 이날 스톡홀름 증시에서 5백49스웨덴크로나(SEK, 한화 약 7만원)에 거래돼 전날보다 12%이상 수직상승했다. 이로써 에릭슨의 주가는 1999년 7월 최고경영자가 교체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을 때보다 5배나 급등했다.

1989년 유럽통신표준기구가 에릭슨이 상당부분 특허기술을 보유한 GSM(비동기식방식)을 선택한 이후, 이 방식은 급속히 확대돼 전세계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이의 경쟁상대인 퀄컴이 독자개발한 CDMA(동기방식)는 북미지역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표준으로 선정됐다.

전임 최고경영자 닐슨은 미국 퀄컴의 텔레콤 인프라사업 부문을 1억2천만달러에 사들여, 특허권 문제로 오랫동안 지속됐던 퀄컴과의 분쟁을 끝냈다. 두 기업은 특허에 대한 교차인정 협약을 맺었다. 이것은 유럽에서 표준화된 비동기식 이동통신 기술방식을 보유한 에릭슨이, 미국과 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동기식 기술까지도 보유하게 돼 3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노키아가 단말기 사업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면,에릭슨은 이동통신 네트워크분야,스위치,라우터,기지국 등의 인프라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정보통신 분야에서 선두에 있는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은 노키아가 있는 핀란드,그리고 노르웨이와 함께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해,정보통신으로 전세계를 공략하는 e-바이킹으로 불린다.통신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겠다는 에릭슨의 야심찬 계획은 21세기 바이킹의 부활로 인식되고 있다.

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에릭슨
  • 이재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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