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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한 조건 실험 대행 핵폭발 시뮬레이션

태양 핵융합반응 사이버공간서 실현

미·소의 냉전체제에서 수천건의 핵실험이 행해졌지만,최근 전세계는 핵실험을 금지하는 분위기다.이로 인해 핵실험은 슈퍼컴퓨터 안으로 무대를 옮겼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9-1940년 사이. 몇몇의 과학자들은 독일이 원자핵분열을 이용해 새로운 신무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워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은 독일의 항복 후인 1945년 8월 6일 새벽, 일본 히로시마의 하늘에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8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2차 세계대전의 마침표를 찍게 했다.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악을 안겨다준 원자폭탄의 잔해가 가시기도 전인 1940년대 후반. 냉소체제의 두축을 이룬 미국과 소련은 더욱 강력한 폭탄을 비밀리에 먼저 개발하고자 분투했다. 다름 아닌 중수소(원자핵이 양성자 1개와 중성자 1개)와 삼중수소(양성자 1개와 중성자 2개)를 핵융합해서 만들어지는 수소폭탄이 그 주인공.

미국 1천30회, 소련 7백15회 핵실험


지난 1992년까지 미국 1천30회.소련은 7백15회의 핵실험을 지상과 지하에서 수행했다.사진은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 패인 핵실험 흔적.


당시 미국은 뉴멕시코주 깊은 사막에서 에드워드 텔러 박사를 중심으로 극비리에 수소폭탄 개발을 서둘렀다. 한편 소련도 모스크바에서 4백km 떨어진 비밀 격납고에서 쿠르차토프 박사 주도하에 같은 연구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스파이와 과학자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음해와 기만이 난무한 가운데 수소폭탄 개발 경쟁이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었다. 원자폭탄의 개발로 아픔을 겪은 많은 과학자들의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가 수반들의 절대적인 비호 아래 결국 수소폭탄은 1952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은 1952년, 소련은 1953년에 성공한 수소폭탄은 지구촌에 첫 굉음을 내며 인류가 목격한 가장 큰 버섯구름을 대기 중에 만들었다. 수소폭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던 아름다운 산호초 섬이 통째로 지도상에서 종적을 감출 정도였다.

이후 미소 양국은 핵탄두 개발과 재고에 열띤 경쟁을 벌였고 미국은 1965년을 정점으로 3만여개, 소련은 출발이 좀 늦었지만 1985년을 정점으로 4만여개를 보유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1945-1992년 사이에 1천30회, 소련은 1949-1990년 사이에 7백15회의 핵실험을 지상 또는 지하에서 수행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여론과 비판에 밀려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나 핵실험전면금지조약(CTBT) 등 핵무기감축과 핵실험의 전면금지 분위기가 지구촌 전체에 확산됐다. 그러면서 실제 핵실험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핵실험 연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유는 핵실험의 장소를 실제 공간에서 슈퍼컴퓨터의 가상공간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핵실험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 1990년대 들어, 실제 핵실험보다 가상공간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초고속 대용량 슈퍼컴퓨터와 핵폭발 시뮬레이션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초의 원자폭탄을 탄생시킨 미국 뉴멕시코주에 소재한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 ‘열반의 기계’(SGI Origin2000)는 이론적으로 1초당 1조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세계 12위를 자랑하는 병렬형 슈퍼컴퓨터다. 이 슈퍼컴퓨터는 핵실험과 관련된 신형가속기 설계, 플라스마 난류 시뮬레이션에 쓰이고 있다. 기존의 이론이나 실험으로 접근하는 방법에서 슈퍼컴퓨터는 제3의 탐구영역을 개척했다. 즉 실제의 한계를 넘어 극한 상황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이는 분명 새천년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신비를 파헤치는 경이로운 도구로서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열반의 기계를 사용해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과학자들은 가속기의 양성자 빔 후광효과를 실제와 똑같이 시뮬레이션 해내는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슈퍼컴퓨터에는 20억개의 가상입자를 투입해야 했다. 이로 인해 얻은 결과는 가속기 물리학자들이 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냈다는 것이다. 가속기에 고속으로 투입된 양성자들은 서로 양전하를 띠고 있어 그중 일부가 빔 주위 공간으로 튕겨 나가게 된다. 이러한 양성자들은 대단히 높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 빔 주위를 메우고 있던 원자핵을 이온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빛이 발생해 빔 주위에 밝은 띠가 둘러진 것처럼 소위 후광을 갖게 된다. 이 결과에 힘입어 가속기 물리학자들은 여태까지 신의 영역에 속하던 자연의 깊고 오묘한 자락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고 있다.

열반의 기계에는 또한 10개의 그래픽 엔진이 부착돼 6억개의 영역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도시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같이 핵과 관련된 연구를 선도하는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래픽의 균형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대규모 슈퍼컴퓨터 모의실험의 가속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소폭탄실험 안전하게 재현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연구소에 소재한 국립에너지연구과학전산원(NERSC)은 미 전역 슈퍼컴퓨터의 선두주자로 자리잡고 있다.특히 올 12월까지 설치될 IBM POWER3+ SMP는 2천48개의 프로세서를 통해 초당 3조회 이상의 연산 능력을 갖추고 대규모 고에너지 및 핵물리 계측연구,데이터 분석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다.

한편 슈퍼컴퓨터는 인간으로 치면 두뇌를 1개가 아닌 여러개, 경우에 따라서 1천개까지 갖고 있다. 그래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핵공학 문제를 잘게 나눠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병렬로 수행할 수 있다. 원자핵공학 분야에서는 주로 원자폭탄 및 수소폭탄 성능, 토카막 핵융합 플라스마난류(고온의 전하를 띤 유체의 불규칙한 흐름), 원자로내 수십조개가 넘는 중성자의 거동 등의 모의실험에 활발히 쓰이고 있다.

한 예로 수소폭탄과 관련해서 슈퍼컴퓨터의 역할을 알아보자.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보다 2배 무거운 중수소와 3배 무거운 삼중수소가 수억도에 이르는 고온 플라스마 상태에서 융합하면 헬륨 원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진다. 이때 극미량의 원자질량이 줄어들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에 따라 사라진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돼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수소폭탄이다.

이런 핵융합 반응은 태양에서도 일어나 지상의 에너지원이 된다. 태양에서의 핵융합 반응은 태양 자체의 질량으로 발생하는 엄청난 만유인력 때문에 양전하를 띠는 수소 원자핵간의 반발력을 감소시켜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핵융합 반응은 태양보다 더 높은 수억도에 이르는 플라스마 상태가 요구된다.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초고온을 지상에서 얻기 위해서는 플루토늄과 같은 원자폭탄을 수소폭탄 내부에서 터트린다. 이때 플루토늄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분열하면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해 초고온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플루토늄의 일부가 먼저 분열해 나머지 플루토늄이 핵분열하기 전에 흩어져버리면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얻지 못해 마치 총알이 불발해버리는 것처럼 아무 효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순간이란 것이 10-12초일 정도로 매우 짧다.

플루토늄의 적절한 배치를 실제로 여러번 해보고 알아낸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까. 만약 슈퍼컴퓨터에서 이를 재현해낼 수 있다면 인간과 환경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도 여러번 실험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수소핵융합을 이용한 대체에너지가 개발될 날이 더욱 가깝게 되지 않겠는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95년 미국 에너지부는 인텔사와 합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슈퍼컴퓨터 개발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연방예산 총 4천6백만달러(약 5백억원)가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에서 인텔사는 자체 개발한 P6라는 암호를 가진 최신, 초고속 마이크로프로세서를 9천6백32개를 조합해 1999년에 완성했다. 이 컴퓨터는 현재 최고 성능으로 평가받고 있는 ASCI Red. 개발 당시 지상에 존재하는 5만여대의 대형 컴퓨터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하다.


수소폭탄실험 안전하게 재현


가상실험 실제와 얼마나 동일한가

이 컴퓨터가 설치된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는 인류 역사상 수학적으로 가장 풀기 어려운 계산문제 중의 하나를 풀고 있다. 즉 재고 핵무기의 성능을 평가하고 노후화 되는 기능을 점검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가지 안전 현안 문제와 신뢰도를 가상 실험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슈퍼컴퓨터는 가로, 세로 13m×13m의 면적을 차지하고 눈 깜작할 사이에 4백억번, 즉 초당 3조번의 연산을 수행한다. 이는 인류가 달성한 과학업적 중 인간의 달착륙에 버금가는 일이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본인은 미국의 재고 핵무기를 핵실험이 아닌 과학계산을 통해 유지·보수가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라고 천명함에 따라 1980년대 초반 한때 주춤하던 슈퍼컴퓨터의 개발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게 됐다. 과학적 진보와 더불어 핵실험금지라는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슈퍼컴퓨터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하드웨어 개발과 아울러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핵폭발 현상을 현실과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또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아직까지 핵실험의 가상화 기술은 관련 소프트웨어의 개발단계 수준이다. 슈퍼컴퓨터에서 가상으로 핵실험이 과연 실제와 동일한지, 어느 정도의 신뢰도로 믿을 수 있는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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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서균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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