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코 브라헤는 망원경을 사용하기 전,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정확한 관측을 했다.그는 신성을 발견하고 혜성이 지구대기권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밝혔다.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최전선에는 천문대와 망원경이 있다. 인간이 지닌 시각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빛을 모아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망원경이 사용되기 이전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관측 자료를 남긴 티코 브라헤(1546-1601)의 능력은 더욱 돋보인다. 그의 정밀한 관측자료를 통해 그 전까지 기술하기 어려웠던 행성들의 움직임을 쉽게 그릴 수 있게 됐다.
일생을 바꾼 일식
티코 브라헤는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뜬 3년 뒤인 1546년 12월 14일 스웨덴의 스카니아에서 태어났다. 스웨덴은 당시 덴마크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티코는 덴마크의 귀족으로 태어났다. 자식이 없던 삼촌은 티코를 데려다 키웠다.
부유한 삼촌 덕에 티코는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고, 열세살 되던 1559년부터는 삼촌이 바라는 변호사가 되려고 코펜하겐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 8월 21일 코펜하겐 상공에서 티코의 운명을 바꿀 일식이 일어났다. 둥근 태양을 달이 서서히 가리면서 밝은 대낮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에 모두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티코는 일식을 예견한 천문학자들에게 큰 흥미를 느꼈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것에 매료돼 천문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전집을 사서 꼼꼼히 읽었다. 나중에 티코는 스스로 일식 계산법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티코를 삼촌이 좋아할 리 없었다. 티코가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자 삼촌은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없애려고 법률 교사를 딸려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티코는 스승이 자는 동안에 몰래 밖으로 나가 별을 관측하곤 했다.
1563년 목성과 토성이 서로 가까워지는 행성의 합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미 알려진 방법으로 행성의 합이 일어나는 시기를 예측했다. 하지만 직접 관측을 한 티코는 합이 일어나는 시간이 계산결과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티코는 계산의 기준으로 사용됐던 ‘알마게스트’와 기타 책들의 별 목록에 틀린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한 별 목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1565년 삼촌이 죽자 다시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천문학 공부에 몰두했다. 이듬해에는 결투를 하다 코의 일부를 날렸다. 그래서 티코는 평생 금속으로 된 보철을 코에 붙이고 다녔다. 오랫동안 이 보철이 금이나 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됐지만, 1901년 유해를 발굴할 때 구리가 포함된 금속임이 밝혀졌다.
초신성의 발견으로 이루어진 꿈
티코는 연금술에도 관심을 기울여 연금술로 번 돈으로 천문대를 세우려고도 했다. 1572년 11월 11일 연금술 실험실에서 일을 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온 티코는 헬리즈바크 수도원 근처를 걷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습관적으로 밤하늘을 올려 본 티코의 날카로운 눈에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는 옆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소리치며 그 별이 보이는 지 묻기까지 했다.
이 별은 이미 2-3일 전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띄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티코는 이것이 별인지 꼬리가 없는 혜성인지를 알아내려고 꾸준히 관측하기 시작했다. 한달이 지나도 위치는 바뀌지 않은 채 밝기는 목성만큼 빛났다. 혜성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몇달에 걸쳐 별의 색깔이 흰색에서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변해가는 것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듬해 초가 되자 5등성으로 어두워지더니 3월에는 눈으로 볼 수 없게 어두워졌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붙박이별이 있는 천구는 완전하므로 아무런 변화도 생길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믿고 있었다. 티코가 관찰한 새로운 별에 대해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새 별은 붙박이별이 있는 천구가 아니라 그 보다 훨씬 가까운 행성들 사이에서 빛을 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이 별이 목성에 의해 불질러 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세심한 관찰 능력을 지닌 티코는 시차를 정밀하게 측정해 시차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이 별이 행성보다 멀리 있음을 알아냈다. 티코는 1573년 관측 결과를 정리하여 ‘신성에 관하여’이라는 책을 펴냈다. 신성의 발견으로 완전하다고 생각되던 천구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화려한 천문대의 건설
26세에 신성의 발견으로 일약 유명해진 티코는 덴마크의 왕 프리드리히 2세의 눈에 띄었다. 1576년 티코는 왕의 도움으로 스웨덴 남부의 스코네와 셸란 섬 사이에 있는 흐벤이라는 작은 섬을 얻었다. 여기에 하늘의 성을 뜻하는 우라니보르그와 별들의 성을 뜻하는 스테르네보르그 두 천문대를 세웠다. 천문대에는 거대한 사분의와 회전 혼천의 등의 관측기구들을 갖추었다. 그는 이를 이용해 20여년 동안 그때까지 이루지 못했던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관측을 수행했고, 망원경이 사용되기 이전에 가장 뛰어난 관측능력을 지닌 천문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다.
1577년에 커다란 혜성이 나타났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혜성은 대기의 높은 곳에 떠다니는 가스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코는 혜성까지의 거리를 구하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혜성은 달 보다 훨씬 멀리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티코는 빈과 프라하 두 곳에서 얻은 관측 결과로 이런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또한 혜성은 행성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알았다. 이로써 전통적인 우주론이 수정돼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1577년에 나타난 혜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운동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것은 태양중심설이 맞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티코 자신도 이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태양중심설을 따르기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을 약간 변형해서 태양의 역할을 강조하는 타협안을 택했다.
티코는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중심설이 복잡한 행성의 움직임을 간단히 설명하는 것을 보고 호감을 가졌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세계관에 전적으로 찬성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면 지구는 6개월 동안에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보다 두 배만큼 멀리 떨어지므로 붙박이별들에서 시차가 관측돼야 했다. 그러나 티코는 아무리 거대한 장치를 써도 별의 시차를 관측할 수 없었다. 별의 시차는 19세기에 이르러 베셀에 의해 처음으로 관측됐다. 베셀의 관측기구는 티코가 사용한 장치보다 정밀도가 2백배 이상 높은 것이었다.
하지만 티코는 행성들이 밤하늘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설명하려면 지구중심설보다 태양중심설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을 절충한 새로운 우주구조를 만들었다. 즉 태양 주위를 행성들이 돌고, 태양은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티코의 세계관에 몇몇 사람들이 찬성했으나 인류의 우주관 전체를 바꿀 만큼 설득력 있지는 않았다.
케플러와의 만남
티코의 막강한 후원자였던 프리드리히 2세가 1588년에 죽자 1597년 흐벤섬을 떠나 프라하로 옮겼다. 그는 그곳에서 이전과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후원을 받았다. 1600년 케플러가 그의 조수로 들어오면서 천문학사에 길이 남을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둘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티코와 케플러 둘 다에게 유익한 관계였다. 역대 최고의 관측가와 이론가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1601년 티코는 세상으르 떠나면서 평생에 걸쳐 모은 관측자료를 케플러에게 넘겼다.케플러는 티코의 정밀한 관측자료 덕분에 천문학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행성들은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운동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티코가 남긴 관측자료가 없었다면 케플러는 행성들이 타원궤도를 따라 태양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다.
해보기
16세기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붙박이별이 있는 천구는 완전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신성한 곳이라고 여겼다.또한 꼬리를 그리며 불쑥 나타나는 혜성은 지구의 대기권에서 일어나는 현상쯤으로 생각했다.그러나 티코가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신성을 관찰하고,혜성까지의 거리를 구해 그것이 달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밤하늘의 변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관측장비 없이 맨눈으로도 붙박이별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변광성 알골이다.페르세우스자리에는 영웅 페르세우스가 잡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나타내는 베타(β)별 알골이 있다.알골은 사실 이중성이며 두 별이 서로를 가려 밝기가 변하는 식변광성이다.2일 21시간
마다 2.1등급에서 3.4등급으로 밝기가 뚝 떨어진다.
7월에는 자정이 지난 후 북동쪼에서 떠오르는 페르세우스 자리를 볼 수 있다.먼저 알골을 찾은 후 그와 비슷한 밝기를 가진 별을 주변 별자리에서 골라 놓고 이틀 후 다시 비교해 보면 알골의 밝기가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간단히 별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비가 있으면 여러날 반복해 같은 조건으로 찍어보면 밝기 변화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밤하늘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또다른 천체가 혜성이다.혜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 지나므로 티코 브라헤가 예상한 대로 대부분 달보다 훨씬 먼 하늘에서 움직인다.7월은 리니어 혜성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7월 22일경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면,밝기는 3.7등급이 될 것이다. 이 때 북두칠성이 속해 있는 큰곰자리 근처를 지나게 된다.성도를 보면서 저녁8시30분경 북서쪽 지평선 근처에서 혜성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