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의 계절, 여름이다. 요즘은 백옥 같은 피부보다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의 ‘건강미인’이 주목받는 듯하다. 그런데 햇빛에 피부를 지나치게 ‘그을리면’ 미모 유지에 치명적이다. 바로 자외선 때문. 자외선은 적외선과 가시광선을 포함한 전체 태양광선 중 약 2%에 불과하다. 그러나 양이 적다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태양이 만드는 기미와 잔주름
자외선에 많이 노출된 피부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늙는 것보다 더 빨리 노화가 진행되는데, 이런 현상을 ‘광노화’라고 한다. 광노화는 어떻게 일어나며, 예방이나 치료도 가능할까.
같은 나이라도 야외에서 오래 일할수록 피부에 주름이 많아진다. 잔주름이 광노화의 대표적 증상. 피부는 바깥쪽부터 표피, 진피, 피하지방층으로 구성돼 있다. 표피세포와 진피세포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MMP를 만들어내고, MMP는 진피에서 세포와 세포를 연결해주는 콜라겐을 분해하는 효소를 활성화시킨다. 이렇게 콜라겐이 분해되면 피부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콜라겐을 합성해 보충한다. 이때 새 콜라겐이 기존 콜라겐의 결과 다른 방향으로 합성되면서 겹쳐진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일반적인 피부 주름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자외선은 표피세포와 진피세포를 자극해 MMP를 더 많이 만들게 한다. MMP가 많아지면 진피에 콜라겐 분해효소가 증가하고, 결이 다른 콜라겐이 계속 합성돼 주름이 늘어나는 것이다.
피부가 거뭇거뭇하게 변하는 기미나 검버섯(지루각화증)도 광노화의 주요 증상. 피부색은 표피의 멜라닌세포가 만드는 색소인 멜라닌 양에 따라 결정된다. 멜라닌이 많을수록 피부색이 어둡다. 자외선은 멜라닌세포를 자극해 멜라닌을 더 많이 만들게 한다. 따라서 ‘남아도는’ 멜라닌이 쌓여 기미나 검버섯이 되는 것이다. 동양인이나 흑인은 백인보다 멜라닌세포가 많아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면 기미, 검버섯 등이 더 잘 생긴다.
하이드로퀴논과 트레티노인은 멜라닌이 쌓이는 걸 방해하는 성분. 하이드로퀴논은 멜라닌이 생성되는데 필요한 효소의 작용을 차단하고, 트레티노인은 뭉쳐 있는 멜라닌을 퍼뜨려 한곳에 쌓이지 않게 한다. 특히 트레티노인은 콜라겐 분해효소의 작용을 방해해 잔주름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기도 한다. 주름개선용 화장품에는 비타민A인 레티놀 성분이 들어있는데, 레티놀은 피부로 들어가 트레티노인 형태로 바뀐다. 미국계 제약회사 스티펠 한국지사의 김혜령 제품매니저는 “화장품 속 레티놀이 트레티노인으로 바뀌는 양은 극히 적다”고 설명한다.
트레티노인은 1994년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기미와 주름을 없애는 광노화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지난해 5월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도 국내 첫 광노화 치료성분으로 트레티노인을 승인했다.
피부의 천적, 자외선A
자외선에는 A, B, C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광노화와 관계있는 건 자외선A와 B다. 셋 중 파장이 가장 짧은 자외선C는 지표면에 도달하기 전 오존층에서 흡수되므로 인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외선B는 표피 또는 진피 윗부분까지 침투한다. 맑은 날 정오에서 오후 4시 사이, 4계절 중 여름에 특히 강하다. 보통 “햇빛에 탄다”는 건 자외선B의 영향. 심하면 피부가 벌겋게 되고(홍반) 따가우며 물집이 생긴다. 백인 피부가 동양인이나 흑인보다 자외선B에 더 민감하다. 그러나 자외선B는 피부에 닿는 전체 자외선의 5%에 불과하다. 결국 자외선A가 문제란 얘기. 자외선A는 세 가지 중 파장이 가장 길어 표피는 물론 진피 깊숙이 침투한다. 자외선A에 오래 노출되면 잔주름이나 기미가 생기고 피부의 면역력이 약해진다. 홍반, 두드러기, 발진, 수포, 알레르기 같은 피부염이 생기기도 한다. 심하면 피부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
사실 자외선A의 이 같은 ‘파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시간~수일 내에 피부를 그을리거나 붉어지게 하는 자외선B에 비해 자외선A의 영향은 금방 눈에 띠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자외선A는 비슷한 정도의 홍반을 일으키는데 자외선B에 비해 더 많은 양이 필요하다.
자외선B는 유리나 커튼에 차단되기 때문에 실내에 있으면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자외선A가 유리나 얇은 커튼 뚫기란 식은 죽 먹기. 실내에 있어도 자외선A를 피할 수 없단 얘기다. 게다가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일출에서 일몰까지, 4계절 내내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받은 영향이 수년에 걸쳐 축적돼 나타난다. 젊었을 때 ‘탱탱했던’ 피부가 점점 ‘쭈글쭈글해지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햇빛인 것이다.
선크림 차단지수는 절반 효과
기미나 주름만 생기면 그나마 다행. 문제는 피부암이다. 최근 부시 미국 대통령이 걸려 치료를 받은 건 기저세포암. 피부암 중 가장 예후가 좋고 치료도 가능하다. 가장 위험한 건 흑색종. 최근 미국에서 흑색종으로 인한 사망이 여러 차례 보고됐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피부과 박현정 교수는 “동양인이나 흑인보다 백인이 피부암이 더 많다”며 “호주에선 약 5명 중 1명꼴로 피부암에 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1년에 100명 정도가 피부암으로 우리 병원을 찾아온다”고 말한다.
피부를 보호하려면 자외선차단제, 즉 선크림을 부지런히 바르는 게 최선. 선크림에 들어있는 산화아연, 이산화티타늄, 산화철, 산화마그네슘 같은 물리적 차단성분은 피부에 막을 씌워 자외선을 ‘반사’시킨다. 선크림을 발랐을 때 하얘지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바로 이 성분 때문이다.
PABA, 시나메이트, 벤조페논 같은 화학적 차단성분은 자외선A나 B 중 하나를 ‘흡수’한다. 프랑스의 화장품기업 로레알의 인공피부연구센터는 1998년 자외선 A와 B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화합물인 ‘멕소릴’을 개발했다. 이 성분은 자외선에 의해 파괴되는 속도가 다른 성분들보다 느려 차단 효과를 좀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고. 자외선 차단효과는 SPF라는 지수로 나타낸다. SPF는 선크림을 발랐을 때 피부에 홍반이 생기기까지 걸린 시간을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을 때 걸린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박현정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SPF30짜리 선크림을 바르면 15 정도 효과밖에 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실험실에서 SPF를 측정할 때는 피부 1cm2 당 2mg 정도로 두껍게 바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선크림에 표기된 것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SPF는 자외선B만의 차단지수다. 요즘 출시되는 선크림에는 SPF 외에 +, ++, +++ 같은 표시도 있는데, 바로 이것이 자외선A 차단지수. 그러나 자외선A 차단지수는 아직 표준화돼 있지 않아 나라나 회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리 신뢰할 건 못된다.
파리의 겨울 평균 자외선A 양이 1이라면한국은 2 정도다. 피부미인 소릴 듣고 싶다면 ‘감히’ 자외선을 무시하지 말라. 대신 외출 전 항상 선크림을 바르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물론 차단성분이 피부에 잘 스며들도록 집을 나서기 30분 전에 말이다.
자외선에 대한 오해 3가지
▶ 하나, 몸에 꼭 붙는 옷이 자외선 차단효과가 더 높다?
아니다. 헐렁한 옷이 더 높다. 옷이 몸에 딱 맞으면 자외선이 옷감 사이로 더 잘 침투하기 때문이다. 미국피부과학회저널에 따르면 옷을 물로 세탁해 말렸을 경우 차단효과가 최고 5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옷감이 줄어 촘촘해져서다. 단, 젖은 옷은 물기가 많을수록 차단효과가 떨어진다. 옷 색깔에 따라서도 차단효과가 다르다. 흰 셔츠가 SPF5~9 정도 효과를 준다면, 새로 산 푸른색 청바지는 1000 정도다. 일반적으로 옷 색깔이 진할수록 자외선을 잘 차단한다. 챙이 7~8cm 이상 넓은 모자는 이마에 SPF20, 코에 7, 등과 목에 5 정도의 효과가 있다.
▶ 둘, 햇빛을 받아야 몸에서 비타민D가 필요한 만큼 합성된다?
자외선은 체내에서 뼈 건강에 필수인 비타민D를 합성한다. 그래서 선크림을 바르면 비타민D가 줄어든다고 일부러 과한 일광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톨릭대 피부과 박현정 교수는 “심한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비타민D는 일반적인 식생활을 통해서도 충분히 합성돼 필요한 양이 유지된다”며 “과한 일광욕은 오히려 피부를 더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고개를 젓는다. 또 “시중에 나와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크림도 비타민D 합성을 도울 정도의 태양광선은 통과시킨다”고 덧붙인다. 미국 국립암센터는 자외선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피부암에 걸리는 색소성건피증 환자들을 수년 동안 자외선에서 차단해봤다. 그래도 환자 모두 체내에 적정 수준의 비타민D가 있었다고. 지난 5월 미국피부과학회도 “비타민D를 충분히 얻으려면 태양을 찾는 대신 건강한 식사를 할 것”을 권고했다.
▶ 셋, 어릴 땐 햇볕에서 뛰어놀아야 건강해진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린이 피부는 스스로 보호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양의 자외선에 노출되더라도 성인보다 피해가 클 수 있다. 로레알코리아 신성희 차장은 "특히 3세 이하 어린이는 모자나 옷으로 노출을 최소화하고 어린이용 선크림을 바르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