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성균관대 자연과학대 질소 누출 사고, 4월 3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실험실 화학약품 사고. 대학교 실험실 안전 사고는 잊을 만하면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다. 왜 실험실 안전사고는 반복적으로 연구자들의 생명을 위협할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가 대학 실험실 특유의 분위기에 있다고 대답한다. 과학동아가 현장을 직접 가보며 해답을 찾아봤다.
“원칙은 코트 입고 정리도 해야 하는데 시간 없고 급하니 그냥 (실험)하는 거죠.”
5월 2일 찾은 지방의 한 국립대 배터리 연구실. 연구실은 ‘연구실’이라는 안내판이 없었다면 허름한 노포 식당의 주방이라 생각할 정도로 난잡했다. 한쪽 싱크대에는 씻지도 않은 계량 용기가 그득 쌓였다. 쓰고 버린 라텍스 장갑은 쓰레기통이 아니라 실험실 바닥에, 누가 밟아 미끄러지기 딱 좋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돌아다니는 줄곧 공기 속 매캐한 화학물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닫혀 있어야 할 시약품 보관함의 후드 역시 버젓이 열려 속을 훤히 보이고 있던 탓이다. 독성 물질이 언제 노출돼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박사 과정 대학원생 권모 씨는 안전 장구 하나 없이 맨발에 반팔 차림으로 주말 실험 중이었다. 그가 다루는 물질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 공정에 필수적이지만 휘발성이 높은 발암물질의 일종인 유기탄산염(Organic carbonate). 실험실 안전 수칙은 유해 약품이나 고온에 노출되기 쉬운 실험실에서 맨살이 노출되는 복장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권 씨는 실험복이나 보안경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권 씨는 “두세 달에 한 번 학교에서 점검하러 올 때 잠깐 복장을 갖춰 입는다”고 자조했다.
직접 돌아본 대학교 실험실의 모습은 사고가 안 나면 이상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최근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자동차 공장 화재 등 산업 현장의 대형 참사가 이어지며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과학 기술을 책임질 대학 실험실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과학 기술의 최전선에서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예비 과학자들의 일터가, 역설적으로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방치되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폭발과 누출… ‘화약고’ 된 대학 실험실
실험실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연구실에서 일어난 사고는 총 1470건으로 1년에 294건 꼴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사고가 일어날 정도라는 것이다. 최근에 헤드라인에 나온 사고도 여럿이다. 3월 18일 성균관대에서는 질소가 누출돼 8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4월 3일 서울대의 한 실험실에서는 화학약품 폭발 사고가 발생해 학생 1명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실험실 안전 사고의 다수가 대학 연구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간 연구실 사고 중 대학 실험실 사고가 절반이 넘는 59.6%를 차지했다. 원인의 1순위는 ‘보호구 오용 및 미사용(412건)’이었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281건이 대학에서 발생했다.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 권력 구조가 안전을 위협한다
왜 유독 대학 실험실에서 안전 사고가 많이 발생할까. 첫 번째 이유는 시설 문제다. 이근원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대학 실험실은 공간이 좁고, 여러 장비가 밀집돼 있으며 환기가 불량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 때문에 폭발이 발생하면 주변 가연물에 의해 화재가 순식간에 확대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 주요한 이유는 대학 실험실 특유의 권위적인 분위기다. “대학 내에선 ‘안전이 연구 생산성을 방해하고, 생산성이 낮은 학생은 교수의 지도를 수월히 받지 못할 것’이란 잘못된 전제가 퍼져있어요.” 크레이그 머릭 미국 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UCLA) 화학과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도교수(PI)와 대학원생 사이의 권력 역학이 안전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UC 실험실안전센터 사무국장으로, 미국 대학 연구실 안전 문화 정착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머릭 교수의 주장은 대학원생이 처한 현실에 기반한다. ‘실험 성과를 내는 게 안전보다 우선’이라는 유무형의 압력이 안전을 등한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원생들은 실질적으로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핵심 인력이지만, 법적으로는 ‘학생’ 신분에 머물러 있다. 2021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학생 연구원은 사고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법이 개정된 현재도 현장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준영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지부장은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학생 연구원의 이중적 신분은 법적 보호에 실질적인 장벽”이라며 “학생으로서 산재 신청 등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기도 하고, 연구자로서도 지도교수의 영향력 아래 있다 보니 자구책을 적극 고려하지 않는다”고 내부의 목소리를 전했다.
“실험실에서 다쳐도 눈치가 보여서 개선하긴 어렵습니다. 자칫 연구실 분위기를 흐리거나 프로젝트에 지장을 준다는 낙인이 찍혀 학위를 못 받을까 봐 두려운 거죠.” 2025년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현재 한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윤모 씨도 과학동아에 씁쓸한 고백을 전했다. 이 지부장은 이에 더해 “대학원생은 연구와 실험에 익숙하지 않아 사고 노출 위험이 많은데, 지도교수와의 위계 관계 때문에 사고를 축소하기도 한다”고 덧붙여 꼬집었다.
현행법상 대학은 지도교수를 ‘연구실 안전관리책임자’로, 학생들을 ‘안전관리담당자’로 지정한다. 지도교수가 연구실 내 안전관리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학생들이 실무를 수행하는 구조다. 이렇게 폐쇄적인 실험실 환경에서 자체 관리에 의존하다 보니 규정 위반이 일상화된다. 서울대 학내 신문에 따르면, 정기 안전 교육의 학내 이수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법적으로 미이수 연구자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불이익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정기 안전 교육은 ‘노룩패스(보지 않고 넘기기)’가 된 지 오래다. 윤모 씨는 “연구실 사람들끼리 안전교육 홈페이지 소스 코드를 수정해 스킵하는 방법을 공유한다”며 “유해가스 누출 시 환기법조차 모르는 후배도 있더라”라고 털어놨다.
대학 연구실의 권위적 체계가 사고를 부른다
해외는 담당자 강력 처벌, 한국은 역주행?
해외는 어떨까. 18년 전인 2008년 12월, 미국 UCLA 화학 실험실에서 발생한 셰리 상지 연구원의 사망 사고는 미국의 연구실 안전 문화에 큰 전환점으로 작동했다. 당시 23세였던 상지 연구원은 자연발화성 물질인 t-부틸리튬을 다루다 화재가 발생해 전신 화상을 입고 18일 만에 숨졌다. 조사 결과, 그는 적절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고, 실험복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캘리포니아주 직업안전보건청은 UCLA에 약 3만 2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지도교수인 패트릭 하란은 중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에서 연구실 사고로 교수가 형사 기소된 첫 사례였다. 머릭 교수는 “사건 이후 미국 학계는 연구실 안전을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닌 ‘핵심 가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안전 교육이 대폭 강화됐고, 실험 전 위험성 평가는 의무화되며 규정을 위반할 경우 엄한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이 교수는 “(상지 연구원 같은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중대 사고 발생 시 지도교수의 관리 소홀이 드러나면 경력이 끊길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가해진다”며 “연구책임자의 인식 변화가 연구실 안전 자원 투자의 기반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연구 성과에 밀려 안전 투자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2026년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원 수준으로 확대하며 ‘고위험·도전적 연구’를 장려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예산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삭감되는 추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연구실 안전 환경 구축 예산은 2022년 135억 원에서 2024년 102억 원으로 2년간 33억 원 넘게 줄어들었다. 과학동아가 만난 대학원생들이 전한 “R&D 예산 삭감 여파로 연구비가 부족해 사비로 비상전력 장비를 구매한다”는 촌극마저 벌어지는 이유다.
“안전한 과학이 곧 좋은 과학”
잇따른 사고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를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고 강경한 대책을 지시한 와중,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KAIST와 서울대 사고 현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11월 내 실효성 있는 연구안전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과기정통부는 2026년 5월 시행을 목표로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연구실 사고에 대비한 보험 가입 시 연구활동종사자의 신체상 손해뿐만 아니라 정신상 손해에 대해서도 보상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실제 2024년 학생연구노동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의 우울증 진단율은 30.7%로 일반인의 6배를 상회한다. 이 지부장은 이에 대해 “연구 현장에 필요한 대책”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보상 대상이 모호해 자살 등 극단적 사례가 아니면 실질적 보상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고, 피해보상 중심의 제도가 대학원생의 구조적 취약성을 가릴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머릭 교수는 실험실에서 갖춰야 할 필수 인프라 목록 중 1번으로 “안전이 우선순위임을 보장하는 리더십”이라 꼽았다. 이 교수는 “현재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매뉴얼 수준을 넘어 연구실 안전에 관한 기준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며 “R&D 평가 항목에 연구실 안전 부분을 지표화해 점수를 반영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대학 연구실은 미래 과학기술의 산실이다. 그러나 그 혁신의 과정이 젊은 연구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이뤄지고 있다. 연구실의 시한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연구자와 대학 본부, 그리고 정부가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임을, 많은 랩실이 적나라하게 알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