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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십자성과 에타카리나 성운

호주 천문학의 수도 쿠나버러번의 하늘

겨울 밤하늘이 지고 난 북반구의 봄 밤하늘은 습도를 머금은 대기와 때맞춰 불어온 황사로 황량하기만 하다.그러나 이즈음 남반구의 밤하늘은 오리온과 시리우스 아래로 은하수가 이어지고 남중하는 남십자자리 주위로 아름다운 천체들이 모여 절정을 이룬다.

별을 찾는 긴 여정
 

쿠나러번의 입구.호주'천문학의 수도'라고 쓰인 있는 간판과 3.9m망원경 돔 모형.


초가을의 남반구 밤하늘을 보기 위해 3번째 남천하늘 여행을 떠났다. 지난 3월 초부터 2주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북서쪽으로 5백km 떨어진 내륙에 있는 작은 마을 쿠나버러번(Coonabarabran) 으로 출발했다. 4개의 가방에 나누어 넣은 카메라와 망원경의 무게가 65kg, 옷과 아기 기저귀 등 총 무게 83kg의 짐을 끌고서.

쿠나버러번은 시드니에서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며 약 8시간만에 닿는 인구 약 3천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세계적 규모의 천문대 AAO(Anglo-Australian Observatory)와 전파망원경이 있어 ‘호주 천문학의 수도’로 알려진 고장이다. 출발하기 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의 천문학 박사과정에 유학중인 이정규씨와 아마추어 천문가로 AAO에서 일하는 스티븐 리(리혜성(1999L)의 발견자)가 자세한 지역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김포공항에서 도쿄를 거쳐 시드니에 다음날 아침에 도착했다. 시드니에서 쿠나버러번까지는 주민이 거의 없어 버스가 하루에 한 번밖에 운행되지 않았다. 다음 날 기차로 시드니를 출발해서 도중에 장거리 내륙행 버스로 갈아탔다. 화장실까지 갖춘 장거리 버스는 탈 사람이 없어도 정해진 시간까지는 절대로 출발하지 않는다. 승객도 우리 가족 3인을 포함해서 겨우 6-7명 정도. 호주대륙은 동부 해안선에서 내륙으로 2백km 정도까지는 우리나라의 대관령 목장과 비슷한 평균 고도 1천m 전후의 고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간간이 작은 마을과 함께 개인 천체 관측소나 아마추어 천문단체의 관측소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을 출발한 지 꼭 48시간만에 목적지 쿠나버러번에 도착했다.

완전한 어둠

마을 입구 안내 센터에는 ‘호주 천문학의 수도’라는 커다란 간판과 AAO 천문대의 돔 모형이 기념비처럼 서 있었다. 이곳은 3천명의 주민이 서울 만한 넓이에 띄엄띄엄 흩어져 살고 있고, 마을 중심에도 약 3-4백명 정도만 거주하고 있어 도시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더욱이 하늘로 빛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모든 가로등에 갓을 설치해서 광공해가 전혀 없이 밤하늘은 ‘완전한 어둠‘을 보존하고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연간 쾌청일수는 3백일 정도, 강수량은 연평균 5백58mm라고 한다. 숙소는 마을에서 약 10km 떨어져 있고 천문인들의 스타파티가 자주 열린다는 모텔을 인터넷을 통해 예약했다. 호주나 뉴질랜드에는 배낭여행자를 위한 시설이 좋으면서도 값싼(1박에 약 1만5천원 정도) 유스호스텔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에는 어린아이가 있어 1박에 약 3만7천원 하는 넓은 방을 구했는데, 주방과 샤워시설, 수영장이 갖추어진 훌륭한 시설이었다.

현지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전혀 없어 렌터카를 이용했다. 비용은 하루 약 3만5천원 정도. 주인은 동물을 치는 사고를 내면 약 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며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캥거루나 코알라와 같은 동물들을 치지 않게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띄었다.

1974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열었다는 천문대 AAO는 마을에서 약 28km 서쪽에 있었다. 주위 평지보다 약 6백m 솟아오른 해발 1천1백60m에 위치한 사이딩 스프링 산 정상에 있었다. 주변이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전망이 훌륭한데, 호주에 있는 수백개의 국립공원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공원이라고 한다. 위도가 -31도여서 궁수자리 속에 있는 우리은하의 중심부분이 거의 천정에 남중하는 셈이다. 돔 건물은 높이 50.3m(약 17층 높이)에 무게가 5백60t이다. 여기에는 거울의 지름이 3.9m인 초대형 망원경이 설치돼 있는데, 지난 20년간 남반구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이었다. 천문학자 마린이 만든 화려한 슬라이드나 우주 깊은 곳에 숨겨진 별들의 천체사진들이 대부분 이 망원경으로 만들어졌다.

천문대는 크리스마스만 제외하고 1년 내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견학자들은 복도를 따라 망원경과 내부 시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외에도 1.2m UK슈미트 망원경 등 모두 5대의 망원경이 설치돼 있는데 그것들은 공개하지 않았다.

밤이 찾아오다

기대했던 대로 매우 맑고 투명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6등성의 별들이 쉽게 보이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낮에는 뭉게구름들이 보이다가 해가 지면서 마술처럼 사라지며 맑게 개이기 시작했다. 투명한 공기 덕분에 서쪽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햇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방문했던 북쪽의 퀸즈랜드보다 위도가 더 낮아서인지 어두워지면서 온도가 뚝 떨어지고 습도도 높았다. 이 때문에 밤이 깊어질수록 하늘의 투명도가 떨어지고 서리가 많이 내려서 망원경을 설치할 때 가장 기본적인 천구의 남극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천구의 남극을 찾는 기준이 되는 팔분의자리 시그마별이 5등성으로 북극성처럼 밝지 않은데다 지평선에서 고도도 높지 않아 6등성과 마찬가지로 어둡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 사진을 찍을 경우 렌즈에 서리가 끼지 않도록 열을 내주는 핫팩(약국에서 구할 수 있다)이 꼭 필요했다.


남십자자리와 주위의 은하수(펜탁스67카메라+90mmF2.8렌즈,코닥E100필름(+2),노출23분)


남십자자리 등장


에타카리나 성운(펜탁스400mmF4렌즈,코닥E100필름(+2),노출13분)


초저녁 천정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 시리우스와 카노푸스의 등장으로 남천의 밤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 겨울 남쪽 지평선에서 붉은 색의 카노푸스를 잠시 볼 수 있지만, 남반구 하늘에서는 머리 위에서 -0.6등급으로 하얗게 빛나며 시리우스와 밝기를 다투는 강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어 남동쪽 하늘로 머리를 돌리면 이 계절의 주인공 남십자성과 센타우루스자리가 은하수와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남십자자리는 호주, 뉴질랜드, 피지 등 남태평양국가들의 국기에 공통적으로 들어있을 만큼 남반구의 상징으로 취급되고 있다. 88개의 별자리 가운데 가장 작으면서도 각각 두 개의 1등성과 2등성, 한개의 3등성이 남쪽 은하수 속에서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다. 네 별의 대각선이 십자형을 이루지만 중심에 밝은 별이 없어 십자가보다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보인다. 별들의 이름은 천문학자 버릿이 십자가를 뜻하는 크룩스(Crux)에 알파(α), 베타(β)를 붙여 아크룩스(Acrux), 베크룩스(Becrux) 등으로 이름지었다. 알파별 아크룩스는 0.77등급으로 온하늘에서 14번째로 밝은 별이고, 베크룩스는 1.25등급이다. 한편 남태평양 국가의 국기들 속의 남십자자리는 네 별 외에 3.6등성인 엡실론별도 정확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남십자 왼쪽 아래에 보이는 검은 부분은 석탄자루(Coalsack)로 불리는 큰 암흑성운이며, 맨눈으로도 은하수 속에 별들이 지워진 부분처럼 뚜렷하게 보인다. 그 아래는 우리에게 생소한 파리자리이다. 파리자리는 신대륙 탐험 초기 선원들에 의해 알려졌는데, 원래 이름은 남쪽파리자리였다고 한다. 북쪽 하늘 양자리 위에 북쪽파리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파리자리는 뒤에 양자리에 흡수됐고 남쪽파리자리만 파리자리로 불리게 되었다.

남십자성의 서쪽에는 맨눈으로도 보이는 밝은 빛의 구름모양 성운이 몰려 있는데, 이곳에는 NGC3372 에타카리나 성운이 있다. 이 성운은 오리온대성운보다 4배 이상 크고 온 하늘에서 가장 밝은 성운이다. 에타카리나의 오른쪽 위에 보이는 산개성단은 NGC3532이다. 에타카리나라는 이름은 용골자리(Carina)의 에타별을 뜻한다. 망원경이 없던 시절 이 성운이 너무 밝아 별일 것으로 생각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남십자의 동쪽에는 밝은 1등성 두 개가 뒤따라 올라온다.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과 베타별이다. 알파별은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위에는 오메가 성단이 높이 남중하고 있는데, 쌍안경으로도 타원형으로 수십만 개의 별들이 뭉쳐져 있는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밤이 깊어지면서 작업중인 망원경 곁으로 자주 캥거루가 지나다녔다.이때 풀 밟는 소리가 인기척과 흡사해 으스스하게 느껴졌다.이제 남쪽 지평선 위에는 대·소마젤란 은하가 구름조각처럼 걸린다.이 은하들은 10월 밤에 다시 가장 높이 남중하게 될 것이다.새벽이 가까워 오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전갈자리와 궁수자리가 천정으로 올라오면 은하수는 동서로 길게 온 하늘을 가로지르는 장관을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그러나 서서히 동이 트며 별들이 사라지고 아쉬움 속에 카메라와 망원경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다.


3월4일 새벽의 달과 금성(4×5카메라+165mmF2.8렌즈,코닥E100필름(+3),노출8초)

200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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