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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21세기 첫 노벨상 수상자들 : 화학 - 거울대칭 두 물질에서 유용한 쪽만 합성

2001 화학상 놀즈·노요리·샤플리스

광학이성질체는 오른손과 왼손처럼 똑같은 입체구조를 갖지만 겹칠 수 없는 물질로, 교과서에는 거울상 이성질체(광학이성질체), 학계에서는 키랄 물질이라고 부른다. 광학이성질체는 구성 원자, 결합 순서, 그리고 결합 방법이 같기 때문에 쉽게 분리하기 어렵다. 200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3명의 화학자 미국의 윌리엄 놀즈(William S. Knowles)와 일본의 료지 노요리 (Ryoji Noyori), 그리고 미국의 배리 샤플리스(K. Barry Sharpless) 박사는 두 광학이성질체 중 유용한 한쪽만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왼손 장갑은 오른손에 맞지 않는다

유기화합물은 모두 탄소원자가 중심 골격을 이루지만, 그렇다고 이들 물질이 모두 시커먼 가루로 돼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왜냐하면 탄소원자는 네개의 팔로 다른 원자들과 화학결합을 이루면서 다양한 성질의 유기화합물을 무한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는 다른 원자들과 화학결합을 이룰 때 삼차원적인 공간에서 특정한 배열을 한다. 즉 네개의 원자들이 정사면체(삼각뿔)의 네 꼭지점에 위치하고, 탄소는 그 중심에 있다. 어떤 유기물질을 합성하거나 유기화학반응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탄소화합물의 이러한 입체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림 1) 탄소에 서로 다른 네개의 원자가 결합돼 있는 화합물^입체성을 무시하면 같은 물질처럼 보이지만, 다섯개의 원자가 모두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이 둘은 서로 다른 구조다. 다섯개의 원자(C, X, Y, Z, W) 중 가운데가 탄소원자(C)다.


예를 들어 탄소에 서로 다른 네개의 원자가 결합돼 있는 화합물을 상상해보자(그림 1). 유기화합물의 입체성을 무시하고 보면 두 구조는 같은 물질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구조를 삼차원적인 공간에서 서로 포개지도록 노력하면 아무리 해도 다섯개의 원자(C, X, Y, Z, W)가 모두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즉 이 두 구조는 서로 다른 구조인 것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구조는 서로 거울상의 관계에 있다. 마치 왼손을 거울에 비추면 오른손으로 보이는 것처럼 ‘왼손-오른손’의 관계를 형성해 하나를 거울에 비추면 다른 하나가 얻어진다. 얼핏 보면 같은 것 같지만, 왼손의 장갑이 오른손에 맞지 않듯 분명 서로 다르다.

가령 그림자로만 보면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이 이 두 화학구조 사이의 관계와 같다. 이처럼 어떤 물질이 그의 거울상과 겹치지 않을 때 우리는 이 물질을 키랄(chiral)성이라고 말한다. 키랄이라는 말의 어원도 그리스어의 손을 뜻하는 단어 ‘케이어’(cheir)에서 유래됐다.

또한 키랄 물질의 두 거울상(그림 1)을 화학에서 L-/D-형으로 표시하는데, 이 역시 왼쪽/오른쪽을 뜻하는 라틴어의 첫 글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거울상 L-/D-형은 물리·화학적 성질은 같으나, 편광(광파의 진동방향이 한쪽으로 기운 빛)을 각 물질에 쪼였을 때 한 물질은 편광을 시계방향으로, 그의 거울상 물질은 반시계방향으로 돌리기 때문에 이 두 물질을 광학이성질체라 부르기도 한다.

앞서 광학이성질체의 물리·화학적 성질이 같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화학적 성질이 다른 경우가 있다. 두 광학이성질체가 각각 또다른 광학이성질체와 반응할 때이다. 두 광학이성질체가 다른 광학이성질체와 반응할 때 서로 다른 화학적 성질을 보인다는 사실은 특히 이들이 우리의 몸 안에 들어올 때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물질의 맛이나 냄새를 느낀다는 사실은, 각각의 분자가 혀나 코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단백질과 만나 반응한 후 일련의 화학반응을 통해 신호가 뇌로 전달돼 느낀다는 의미다. 그런데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이라는 물질 역시 키랄성이며, 따라서 이들 아미노산으로 돼있는 단백질 역시 키랄성이다. 또 자연계에는 모두 L-형의 광학이성질체만 존재한다.
 

거울대칭 관계인 광학이성질체^오른손과 왼손은 그림자로 나타낼 경우 서로 구별할 수 없지만, 악수할 경우 전혀 다르다. 왼손의 장갑이 오른손에 맞지 않 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광학이성질체는 이렇듯 오른손-왼손 관계를 형성하는 물질이다.


입체성 모르면 부작용 초래할 가능성

맛이나 냄새를 갖는 분자가 키랄성이라면, 그 분자의 L-형 광학이성질체가 혀나 코에 있는 단백질과 반응하는 현상이 D-형 광학이성질체가 반응하는 현상과는 다를 것이다. 따라서 두 광학이성질체 L-/D-형은 서로 다른 맛 또는 냄새를 갖는다. 실제로 ‘리모닌’이라는 키랄성 물질은 왼쪽형(L-형)은 레몬향, 오른쪽형(D-형)은 오렌지향을 가지며, 다이어트음료의 인공감미료로 쓰이는 ‘아스파르탐’이라는 물질은 왼쪽형은 단맛이 있으나, 오른쪽형은 오히려 쓴맛을 갖는다.

맛이나 냄새의 경우와 같은 원리이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의약품에 종종 있다. 광학이성질체 중 하나는 몸 속에 들어가 목표가 되는 단백질과 작용해 원하는 약효를 보인다. 하지만 그 거울상이 원치 않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실례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은 1970년대 초에 개발된 신경안정제로, 그 중 D-형에만 약효가 있고, L-형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이 약이 시판될 당시에는 이 화합물의 입체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L-/D-혼합물로 판매된 결과, 입덧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임산부들이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출산해야 했다. 이런 비극적 사실은 정밀유기합성, 특히 의약품 합성 분야에서 입체화학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키랄 의약품을 개발할 때, 두 광학이성질체 중 약효가 있는 한쪽만 얻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물리·화학적 성질이 거의 같은 두 이성질체를 실험실에서 보통의 방법으로 합성하면 이 두 이성질체가 1:1의 혼합물로 얻어지며, 이들을 분리해 한쪽 광학이성질체만 얻는 일이 쉽지 않다. 또한 나머지 반은 버리게 되니 비경제적이기도 하다. 실로 바람직한 방법은 두 광학이성질체 중 원하는 쪽 하나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일이며, 이런 방법을 ‘비대칭 합성’이라 한다. 200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인, 놀스, 노요리, 그리고 샤플리스 박사들은 이러한 비대칭 합성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수상했다.

놀스 박사는 미국의 화학회사인 몬산토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탄소-탄소 이중결합에 수소를 비대칭적으로 첨가시키는 비대칭 환원 반응을 개발했다. 이로 인해 파킨슨씨병 치료제인 도파의 L-형 광학이성질체의 합성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후에 일본 나고야대의 노요리 교수는 이러한 비대칭 환원반응을 더욱 개량해 항생제 등의 합성에 응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놀스 박사와 노요리 박사는 2001년 노벨화학상의 반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2001년 노벨화학상의 나머지 반은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샤플리스 교수에게 돌아갔다. 샤플리스 교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스탠포드대-MIT-스크립스연구소 등지에서 탄소-탄소 이중결합에 산소를 비대칭적으로 첨가시키는 비대칭 산화 반응을 개발했으며, 이는 심장질환 치료제나 페로몬의 합성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됐다.

샤플리스 교수의 연구 결과, 그전까지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비대칭 합성이 통상적으로 가능해졌다. 또한 오늘날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비대칭 합성연구의 기반이 바로 샤플리스 교수가 개발한 비대칭 산화반응으로부터 마련됐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업적은 실로 최근 수십년 동안의 유기화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200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놀스, 노요리, 샤플리스 박사 등의 선도적인 연구와 그뒤를 잇는 여러 화학자들의 노력으로 이제 과학적 무지로 인한 기형아 출생과 같은 비극은 사라지게 됐다. 샤플리스 교수는 화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런 충고를 즐겨했다고한다.“ 항상 네자신이 분자인것처럼 생각하라. 그리고 분자는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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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고수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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