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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미국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기업 아킬리 인터랙티브가 개발한 비디오 게임 ‘인데버 알엑스(EndeavorRx)’가 그 주인공이다. 인데버 알엑스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 완화에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졌다. 어떤 원리인지, 중독 부작용은 없을지 살펴봤다. 

 

인데버 알엑스, 주의력 향상 임상에서 합격점

 


인데버 알엑스는 호버보트를 타고 진행하는 레이싱게임이다. 길을 따라 이동하며 함정이나 장애물을 피하고, 갑자기 등장하는 성난 몬스터를 잡는 것이 주요 목표다. 태블릿PC에 적합한 환경으로 개발돼 조작은 매우 단순하다. 좌우 이동과 몬스터를 낚아채기 위한 버튼이 전부다. 


FDA는 인데버 알엑스가 ADHD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6월 15일 정식 치료제로 승인했다. 게임이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ADHD는 주의가 산만하고 충동성과 학습장애를 보이는 질환으로 10대에게 흔히 나타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6년 미국에서 17세 이하 청소년 중 9.4%가 ADHD 진단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7~12세 미만 어린이 2만9335명 가운데 8.5%가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대한의학회지(JKMS)’에 실렸다. doi: 10.3346/jkms.2017.32.3.401


ADHD 환자는 증상에 따라 주의력 결핍 우세형, 과잉행동-충동 우세형, 복합형이 있다. 인데버 알엑스는 주의력이 약한 주의력 결핍 우세형과 복합형 ADHD 환자들을 위해 개발됐다. 


제작사인 아킬리 인터랙티브는 7년 동안 미국 듀크대 의대 연구팀과 함께 5차례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8~12세 ADHD 환자 34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만 게임 치료를 했다. 4주 동안 일주일에 5번, 하루 25분 동안 인데버 알엑스를 플레이하게 했다


그리고 주의력을 평가하는 검사인 TOVA(Test of Variables of Attention)를 실시했다. TOVA는 대략 21분 동안 도형을 보며 비슷한 모양을 찾는 단순한 검사로, 응답 시간과 정확도를 기준으로 주의력을 평가한다.


TOVA로 주의력 점수를 매긴 결과, 인데버 알엑스를 플레이 한 그룹은 주의력이 평균 68%(0.93점) 향상됐다. 반면 게임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은 주의력 점수가 0.03점 증가하는데 그쳤다. 게임 치료를 받은 환자 중 일부가 좌절감, 두통, 현기증, 공격성 등의 부작용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연구팀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doi: 10.1016/S2589-7500(20)30017-0 


인데버 알엑스 승인을  발표한 제프리 슈런 FDA 의료기기·방사선건강센터 센터장은 “최근 소아 ADHD 증상을 개선하는 비약물 치료법으로 디지털 치료가 성장하고 있다”며 “환자가 혁신적인 디지털 치료를 적시에 받을 수 있는 허가절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자폐 증상 완화에도 효과


FDA의 승인을 받진 않았지만 게임이 질병 치료에 쓰인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특히 정신질환에서 쓰임이 두드러지는데,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도 그중 하나다.


제임스 타나카 캐나다 빅토리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자폐 아동을 위한 ‘렛츠 페이스 잇(Let’s Face it)’이라는 게임을 태블릿PC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2016년 출시했다. 자폐 환자들은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 부족한데, 렛츠 페이스 잇의 목표는 주어지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매칭하는 것이다. 


게임 시작 전, 자폐 아동의 주변인이나 유명인의 얼굴 사진과 이름을 앱에 등록하면 이들을 재료로 ‘퓨즈(fuse)’ ‘스플래시(splash)’ ‘메모리(memory)’ ‘네임 게임(name game)’ 등 다양한 미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한 예로 퓨즈 게임은 화면을 위아래로 이등분해 주어지는 이름에 맞는 사진을 찾는 게임이다. 가령 위쪽에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배우 ‘김수현’의 얼굴이, 아래쪽에는 배우 ‘서예지’의 얼굴이 주어졌다면 이마부터 코까지 잘린 사진을 보고 김수현을 찾고, 인중부터 턱 부분만 보이는 사진을 보고 서예지를 찾는 식이다. 


이런 게임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2010년 타나카 교수팀은 자폐증 환자 79명을 대상으로 렛츠 페이스 잇의 효과를 알아봤다. 렛츠 페이스 잇을 총 20시간 동안 플레이하게 한 뒤 얼굴 인식 능력을 평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무작위로 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 뒤, 여러 선택지에서 제시된 얼굴을 찾게 했다. 그러자 게임을 하기 전 58% 수준이었던 매칭 정확도는 게임을 하고 난 뒤 약 64%까지 높아졌다. doi: 10.1111/j.1469-7610.2010.02258.x


게임은 자폐증을 진단하는 도구로도 쓰인다. 2016년 조나단 델라필드-버트 스코틀랜드 스트래스클라이드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자폐 진단을 도와줄 수 있는 게임을 개발했다.


자폐증은 대부분 영유아기에 시작되지만 징후 파악이 어려워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자폐증이 진행되면 물건을 움켜쥐는 동작을 조절하지 못하는 등 운동 장애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해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게임을 고안했다. 3~6세 자폐 아동 37명과 일반 아동 45명에게 태블릿PC 화면 위에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색칠하게 한 뒤 이들의 움직임 데이터를 기록했다. 


데이터를 기계학습 기술로 분석한 결과, 최대 93%의 정확도로 자폐 아동을 구별할 수 있었다. 자폐 아동은 일반 아동보다 센 힘으로 화면을 터치하거나 더 빨리 화면을 넘기는 등의 특징을 보였다. doi: 10.1038/srep31107

 

 

치료용 게임, 중독 위험 없을까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했다. WHO는 게임이용장애를 ‘다른 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일상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생겨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경우’로 정의했다. 치료용 게임이 유사한 중독 효과를 유발할 가능성은 없을까. 


ADHD는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긴 질병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중독에 특히 취약하다. 2019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주최한 제4회 ADHD 캠페인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게임 중독 환자 255명을 3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ADHD 환자들은 중독이 만성적으로 진행됐다.

 

ADHD 증상이 없는 사람은 게임 중독 회복률이 1년 뒤 49%, 2년 뒤 58%, 3년 뒤 94%에 이르렀지만, ADHD 환자는 각각 17%, 43%, 61%에 불과했다.  


김붕년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료를 위한 게임은 중독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지루한 쪽에 가깝다”며 “중독을 유발하는 보상체계가 거의 없고 단순한 자극으로 주의력을 높이는 것이 주요 목적이어서 중독 위험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료용 게임의 효과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시중에 개발된 치료용 게임은 무수히 많다. 미국 버밍엄 앨라배마대 정신과학 및 행동신경생물학과 연구팀이 2017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자폐 치료용으로 개발된 모바일 앱이 700개가 넘는다. 이중 렛츠 페이스 잇처럼 임상시험 결과가 있는 것은 4.9%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95.1%는 효과에 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게임 치료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확실한 대조군 검증을 통해 그 효과가 명확하게 검증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과 같은 비약물 치료법은 아직까지 보조적인 치료법”이라며 “ADHD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간접적으로 도파민 시스템의 활성도를 높이는 약물 치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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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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