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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에 등장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2백원, 포렐은 67만원

노벨상 수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바로 화폐 인물로 선정되는 것이다.

미달: “의찬아, 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의찬: “응, 나는 노벨상을 타는 훌륭한 사람. 미달이 너는?”
미달: “음… 그럼 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아냐아냐, 난 돈에 나오는 사람이 될거야!”
의찬: “그게 뭐냐, 돈에 나오면 구겨지고 그럴텐데?”
미달: “그래도 난 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쁜 내 얼굴을 볼 수 있잖아. 히히.”

의찬이처럼 대부분의 과학도나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타고 싶어한다. 또한 문학, 평화, 그리고 경제학 분야의 상도 있어서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다. 노벨상은 지적인 업적에 수여되는 상들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화폐에 등장한다는 미달이의 장래 희망이 훨씬 이뤄지기 어렵다.

화폐 인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어야 한다. 또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도 소개되므로 그 업적이 세계적으로 인정될만큼 탁월해야 한다.


미국 1백달러(Dollars).1971년 이후 사용^전기장의 선구자로 전하보존을 처음으로 제안한 과학자로 그가 발명한 난로가 아직도 생산됨.


뛰어난 과학자일수록 저액 화폐에?

과학자 가운데에도 그런 인물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이 그렇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세기 최고의 인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선정했다. 모든 분야의 인물 중에서 상대성이론으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이끈 아인슈타인에게 최고의 영예를 부여했다. 더욱이 아인슈타인은 미국의 권위있는 과학지 ‘피직스 월드’에서도 최고의 과학자로 뽑혔다. 당연히 화폐에도 등장했다.

그런데 얼마짜리 화폐의 주인공이었을까? 아인슈타인은 우리나라 돈으로 불과 2백원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5리로트(Lirot) 지폐에 등장했다. 그나마 이 화폐는 1984년까지 쓰이고 지금은 사라졌다.

‘피직스 월드’에 선정된 과학자로 지폐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이 있다. 17세기 과학혁명의 대표인물인 아이작 뉴턴이다. 1978년에서 1982년 사이에 발행된 영국 1파운드 화폐에 뉴턴의 초상이 쓰였다. 아인슈타인보다는 고액인 2천원이다.

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이들은 매우 낮은 액수의 화폐에 등장했다. 프랭클린은 피뢰침의 원리를 밝힌 과학자로 무려 우리나라 11만원에 해당하는 고액 화폐인 미국 1백달러 지폐에 나타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에 비해 과학적 업적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왜 ‘준과학자’에 속하는 프랭클린이 아인슈타인이나 뉴턴보다 더 비싼 화폐에 등장하는 것일까?

고액 화폐라면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기 어렵다. 또 들고 다닐 때 분실될 걱정이 들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반면 저액 화폐는 그런 부담이 적으면서 일반인들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화폐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일수록 낮은 액수의 화폐에 등장해 자주 보면서 존경심을 갖도록 유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화폐 액수가 높아질수록 그 인물에 대한 평가도 높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의 사례에서 한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업적보다는 정치가의 역할이 더 크게 평가됐기 때문에 그만큼 높은 액수의 화폐 인물로 선정됐다.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에 이바지한 정치외교가로 조지 워싱턴과 함께 미국에서 존경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잠깐 여기서 돌발 퀴즈를 풀어보자. 과학자 중에서 가장 액수가 큰 화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후보로 근대역학과 실험물리학을 정립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전기와 자석의 원리를 밝힌 마이클 패러데이, 양자이론의 선구자 닐스 보어, 파동이론을 세운 에르빈 슈뢰딩거, 그리고 정신의학자 오이쿠스테 포렐을 제시한다. 당신은 이 중에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의외로 정답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포렐이다. 그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스위스의 1천프랑, 우리나라 67만원에 해당하는 고액 화폐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프랭클린의 경우처럼 과학적인 업적 외에 알코올중독과 같은 정신병 연구를 통해 사회개혁에 힘쓴 공로가 높이 평가된 것이다. 이처럼 과학자가 고액 화폐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업적보다 사회와 정치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최고액인 1만원권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은 오히려 정치가가 과학 발전에 기여해서 고액권에 등장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한글, 자격루 등의 과학적인 업적을 남겼다.


뛰어난 과학자일수록 저액 화폐에?


시대에 따라 바뀌는 존경받는 인물

과학자 중에는 몇 명이 화폐에 등장했을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소속된 국가 중에서는 20여명, 전세계적으로는 30여명의 과학자들이 화폐 인물로 선정됐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화폐를 분석해보면 대부분의 국가가 화폐 인물로 정치인, 문화예술인, 과학자, 시인, 작가 등의 인물 초상을 고르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용된 화폐가 수천종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과학자는 매우 적게 선정된 편이다.

화폐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수천년 동안 이어온 역사 속에서 수많은 경쟁 인물들, 즉 해당 국가의 역사적인 인물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특히 과학분야만이 아니라 예술, 정치 등 다방면의 인물들 속에서 선정돼야 하므로 일반인들에게 덜 친숙한 과학자가 화폐에 등장하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아인슈타인처럼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한 인물이 아닌 경우에는 화폐 인물로 선정될만큼 존경을 얻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OECD 국가의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을 직업별로 구분해보면 문화예술인이 38.5%, 정치인이 35.9%, 학자와 과학자가 16.7%로 분포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과학자의 분포가 낮게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의 존경 대상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변화한다. 정치가 중요하던 냉전시대에는 정치인이 주요 인물이었고, 1980년대 이후부터 문화와 과학이 중요시되면서 문화예술인과 과학자가 중요하게 부각됐다. 이는 화폐 인물이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제 과학기술이 세계를 주도하는 21세기에는 과학자가 화폐에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경제환경에 맞게 우리나라도 화폐의 액면체계와 도안의 변경이 필요해지고 있다. 과학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한국 화폐 속에도 과학자 한명쯤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새 화폐에 추천하고픈 과학자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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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응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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