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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경주 토함산 중턱은 단풍으로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1989년 가을 경주, 남홍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펠로우(당시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면서 불현듯 단풍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마침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된 때라 나만의 연구 주제를 찾고 있었습니다. 한번 연구해볼만 하겠다 싶었죠. 그리고 단풍을 연구한다는 게 왠지 낭만적이지 않나요?”
잘 늙어야 더 잘 사는 식물
남 펠로우가 단풍을 보고 떠올린 연구주제는 노화였다. 가을이 오면 단풍잎은 아름다운 가을색을 띄게 되는데 이는 잎에서 분해된 영양분을 줄기나 뿌리로 보내어 저장하는 이미 예정됐던 노화프로그램의 결과이다. 즉, 잘 늙음으로써 충분히 저장한 영양분을 이듬해 새 잎을 만드는데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삶의 정해진 순서를 따르는 것이 노화”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면 식물의 노화는 식물이 터득한 중요한 진화적 전략이기에 제때에 잘 늙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남 펠로우는 식물의 노화도 분명히 유전자에 의해 조절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유전자에 의한 식물의 노화 조절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주제는 정했지만 실제로 연구를 하는 건 훨씬 험난한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식물 노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었고 참고할 연구도 부족했다. 어려움 속에서 남 펠로우를 이끈 것은 도전정신이었다.
“힘들기보다는 즐거웠습니다. 원래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 생각을 믿고 어려운 길을 따라왔던 학생들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웠죠.”
남 펠로우는 자신을 믿어준 이들에게 연구로 보답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거의 8년 만에 식물의 노화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찾아냈다. 이 연구를 시작으로 해마다 ‘사이언스’, ‘셀’, ‘네이처’ 등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스타 과학자가 됐다. 식물 노화 유전자 연구의 개척자라는 별명도 얻었고, 국가과학자와 석좌교수로 임명되는 영예도 얻었다.
과학자로 많은 것을 이룬 그는 2012년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았다. 20년 넘게 연구와 교육에 매진했던 포스텍을 떠나 신생대학인 DGIST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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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이제 준비는 끝났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이대로 안주하다가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찾고 있었는데, 인연이 있던 신성철 DGIST 총장님이 함께 연구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조건도 좋았죠(웃음).” DGIST로 옮긴 직후에는 기초 과학연구원(IBS) 식물노화수명연구단장에 선임되는 겹경사도 났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지 4년, 남 펠로우는 준비를 끝냈다. 식물을 기르는 것부터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실험실을 갖췄고, 숙원이던 동물과 식물의 노화를 비교할 수 있는 연구팀도 꾸렸다.
“막 연구를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지금까지는 일종의 연습 과정이었고, 이제는 과학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도 감이 잡힙니다. 한 사람의 리더가 연구 방향을 정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연구를 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후배 과학자에게 해줄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꺼낸 단어는 모험이었다. “더 많은 모험을 했으면 합니다. 과학은 자연을 탐험하는 모험입니다. 모험심이 없이는 탐험을 성공할 수 없고, 과학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길이 없는 곳이라야 자신의 길이 만들어지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