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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업군단 거느린 소프트 뱅크

야후를 비롯해 세계 수백개의 인터넷기업에 투자한 소프트뱅크.한 달만에 일본 주식시장 6위에서 3위로 성장한 초단기 성장기업이다.'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따라잡아 세계 최대기업으로'라는 목표를 가진 이 기업의 성장배경은 무엇일까.


아시아 최고의 갑부를 넘어 세계 최고에 도전하고 있는 손정의.


우리 민족 가운데 제일 부자는 누구일까.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과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한민족 피를 이어받은 사람 모두를 합쳐 최고의 갑부를 꼽으라면 단연 손정의(孫正義,43세,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다.

호주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언’은 지난 1월말 손정의사장을 아시아 최고의 갑부라고 발표했다. 손사장의 재산은 3백80억달러(약 42조원)로 2위인 일본 히카리통신의 시게타 야스미쓰(重田康光)사장보다 80억달러나 많다.

세계 주식시장 흔들다

재일교포 3세인 손사장의 돈벌이 솜씨는 한마디로 전광석화 같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81년 맨손으로 창업한지 19년 만에 세계 경제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90년대 중반 손사장이 소프트뱅크 한국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는 매스컴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작년 말 한국의 인터넷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서울에 왔을 때는 국내 주요 일간지들이 1면톱으로 그의 움직임을 보도할 정도로 화제의 인물이 됐다.

그는 일본 총리의 자문기관인 일본산업경쟁력회의 위원이며 총리가 공식모임 외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정보혁명시대를 설계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회장이나 미디어의 제왕이라 불리는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과 사업파트너로 자주 만난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수상을 비롯해 손사장과의 면담을 기다리는 각국 지도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도 그의 명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소프트뱅크가 월스트리트에서 발을 뺀다면 세계 주식시장이 흔들릴 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손사장의 주력회사인 소프트뱅크는 2월 16일 현재 일본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으로 따져 18조엔. 3위의 업체다. 통신업체인 NTT도코모(약 35조엔)와 NTT(약 25조엔)가 1, 2위를 차지했고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자동차가 소프트뱅크에 추월 당해 4위에 머물고 있다. 소니, NEC, 미쓰비시 등 쟁쟁한 일본기업들이 소프트뱅크에 멀찍이 뒤쳐져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소프트뱅크의 성장속도다. 작년말 손사장이 방한했을 때만 해도 그는 “소프트뱅크가 일본에서 6번째 가는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불과 한달반 만에 시장가치가 3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1년전 소프트뱅크는 일본의 30대 기업에도 들지 못했다.

1주 가격이 1억엔(약 11억원)을 넘어 화제가 된 일본 야후는 소프트뱅크가 51%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최근 반도체업체인 도시바와 닛폰코교(日本興業)은행을 제치고 30대 기업에 진입했다. 미국기업에 대한 투자는 더욱 놀랍다. 소프트뱅크는 뉴욕 증시에서 시가총액으로 3위인 인터넷 통신장비업체 시스코와(마이크로소프트와 제네럴일렉트릭이 시가총액 1 ,2위) 세계 최대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야후의 주요 주주다. 더구나 조그만 벤처기업일 때 투자했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소프트뱅크가 시스코와 합작으로 설립한 샌프란시스코시스템즈는 시가총액이 NTT보다 많을 정도로 커졌다. 이외에도 세계 최대의 컴퓨터전시회 전문회사인 컴덱스와 인터넷미디어업체인 제프데이비드도 사들였다. 어떻게 해서 소프트뱅크는 이처럼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협상을 하기 전에 이뤄지는 철저한 준비는 손정의의 성공전략이기도 하다.


2주만에 얻은 대학입학 자격

손정의는 1957년 8월 11일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사가현(佐賀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간 광원이었고, 아버지는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가난한 집안의 4형제중 차남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사업가로 성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학비가 넉넉지 않아 스스로 벌어 써야할 형편과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유학생활을 꾸려간다. 그의 사업가적 자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 두가지.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지 2주일만에 대학입학 자격을 얻은 것이고 또 하나는 버클리대학 재학시절 세계 최초의 자동번역기를 개발해 학생 신분으로 1백만달러라는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손정의가 머리 좋고 일본에서 명문 고교를 다녔다지만 영어실력도 충분치 않고 낯선 교육환경에서 어떻게 2주일만에 고교과정을 끝낼 수 있었을까.

그는 전학하자마자 서둘러 전과목 교과서를 훑어보고, 일본어로 된 교과서라면 전과목 A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손정의는 교장을 찾아가 “저는 영어실력이 충분치 않지만 교과내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2학년에 편입시켜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의 자신 있는 태도에 교장은 수긍하고 2학년으로 올려줬다. 나흘 뒤 다시 교장을 찾아가 “2학년도 수준이 낮으니 3학년으로 올려주세요”라고 졸랐다. 그것도 허락을 받아 1주일 뒤에 3학년이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셈 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학교측은 깜짝 놀랐다. 일본에서 전학 온지 열흘밖에 안되고 영어도 잘 못하는 학생이 고교과정을 전부 이해한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그건 곤란해.” 손정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학교측은 “대입검정시험에 합격하면 고교과정을 마친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시험 당일 교과서만큼 두꺼운 시험문제지를 받았다. 손정의는 다시 시험관과 교섭을 벌였다. “이건 영어실력을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학력평가를 위한 것이니까 사전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시험시간도 연장해주십시오.”

시험관이 거절하자 손정의는 주정부의 교육담당자에게 찾아가 끝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남들이 하루 4시간씩 보는 시험을 그는 사흘내내 밤늦게까지 시험관과 둘이서 사전과 씨름하며 치렀다. 그리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어릴 적부터 누구한테나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하고싶은 것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손정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1주 가격이 1억엔을 넘는 일본 야후.소프트뱅크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1일 1아이디어

대학시절 손정의는 ‘일본 최고의 사업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미국에서 벌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자신에게 하루 한가지씩 발명하는 과제를 부여한다. 발명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수첩에 적었는데 그 수첩에는 수백가지 아이디어가 빼곡하게 씌어 있었다. 자동번역기도 그중 하나였다. 영어를 잘 모르는 일본인이 외국 여행할 때 일본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번역돼 영어로 말해주는 음성번역기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경제학부 학생이던 그는 컴퓨터에 흥미를 갖고 몇과목을 듣기는 하였으나 혼자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버클리대학에는 세계적인 연구수준을 가진 교수와 연구진이 즐비하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물리학과의 모더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지금은 제게 자금이 없지만 시제품이 완성되면 일본으로 가서 계약금을 받아와 그 때 보수를 지불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처음에 교수는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동양 청년의 허무맹랑한 얘기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하였다. 그러나 교수도 점차 손정의의 얘기에 끌리면서 마침내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하는데 동의했다.

이런 식으로 손정의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8개월후 도시락 크기의 자동번역기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일본으로 갖고 와 샤프사에 1억엔을 받고 팔았다. 이 기계는 나중에 샤프에서 세계 최초의 휴대용 번역기 IQ3000이란 이름으로 판매된다. 물론 계약금을 챙긴 손정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약속한 돈을 나눠줬다.

일본인 부인 유미를 만난 것도 미국 유학시절이었다. 버클리법원에서 결혼서약을 마친 후 그는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나는 세계 제일의 비즈니스맨이 될 것이다. 20대에 깃발을 올리고, 30대에 1천억엔의 군자금을 마련한 후, 40대에 큰 승부를 벌여, 50대에 완성시키고, 60대에는 후계자에게 물려준다”고. 그러나 물리학을 전공한 부인은 “당신은 규모가 작아요. 드넓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 말은 그렇게 거창하다고 볼 수 없어요”라고 한술 더 떴다고 한다.

1979년 대학을 마친 손정의는 고향 규슈로 돌아와 1년반 동안 어떤 사업을 시작할지 철저히 연구한다. 그리고 1981년 일본 최초의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인 소프트뱅크를 창업한다. 당시 일본은 아키하바라(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 같은 곳)에서 가전제품의 유통은 활발했으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유통분야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손정의는 미국에서 PC붐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컴퓨터 분야의 유통이 큰 시장을 형성할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사업을 구상한 1년여 동안 미국에서 생각해온 수백가지 사업 아이템 가운데 40여가지를 골라내 충분한 시장조사와 사업전망을 검토한 끝에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고르는 신중함도 가졌다.

창업초기 손정의는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회사를 차린 직후 원룸 사무실에서 2명의 종업원을 불러모은 후 사과상자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10년안에 매출액이 5백억엔을 넘고 종업원이 1만명이 되며 그후 시장가치도 1조엔을 넘을 것이다”는 내용으로 30분 이상 아침조회를 했다. 연설을 들은 종업원 중 1명은 기가 질려 며칠후 회사를 그만뒀다.

그의 호언장담은 현실로 나타났다. 때맞춰 일본에서 전자오락 열풍과 PC붐이 일어났고 잇따라 창간한 컴퓨터잡지들도 히트를 쳤다. 80년대말에는 연매출 5백억엔을 넘어섰고 그는 일본PC소프트웨어협회를 만들어 회장에 취임했다. 일본 주간지들은 그를 ‘괴물 실업가’ 또는 ‘신데렐라 보이’ 등으로 소개했다.

5분 협상을 위한 2만페이지 자료

시련은 빨리 찾아왔다. 26살이던 1983년 그는 중증 만성간염 판정을 받는다. 정밀검진 결과 최악의 경우 5년 이내에 사망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3년간 병원에서 치료에 전념하면서 사업구상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완쾌될 때까지 4천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때 손자병법을 자신의 경영전략에 맞춰 고친 ‘손의 제곱병법’을 만든다.

손정의의 사업에는 ‘공장’이 없다. 이 때문에 그의 비즈니스를 ‘모래위에 쌓은 성’으로 비유하고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사회변화와 비즈니스 전망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인프라’(하부구조)만 확실하게 잡고 있으면 사업은 안정적인 기반 위에 성장한다고 확신했다.

가령 어떤 사업 아이템 한가지에 집중한다면 그 사업의 성공여부에 따라 100% 또는 0%의 가능성을 갖게 되지만 인프라를 잡고 있으면 그 산업이 성장하는 한 단일 아이템의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손정의는 디지털시대의 성공산업을 ‘인터넷’으로 지목했다. 그것도 남들보다 한발짝 먼저. 그리고 4, 5년전 남들이 ‘모험’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미친 사람처럼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996년 손정의가 설립된지 1년밖에 안된 적자투성이 기업 야후에 1억달러를 투자해 35% 지분을 인수했을 때 사람들은 ‘얼빠진 사람’이라며 비웃었다. 실리콘밸리의 조그만 제리 양의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손정의는 그 자리에서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야후는 손정의에게 수천배의 이익을 안겨줬다.

1995년 4월 손정의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전시회인 컴덱스를 사들이기 위해 컴덱스측 셀던 아델슨회장과 단둘이 마주 앉았다. 인사말이 오간 후 그는 느닷없이 단판승부를 제안했다.

“당신이 받고싶은 가격을 딱 한 번만 말하시오. 그 가격이 타당하면 군말없이 지불하겠소. 그러나 무리하게 부른다면 흥정은 끝이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델슨은 8억달러를 불렀고 손정의는 “오케이”를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협상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컴덱스 매수를 위해 검토한 자료는 2만페이지가 넘었다. 철저한 사전검토를 통해 8억5천만달러까지 지불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둔 상태였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패러다임’ 창조

손정의의 단판승부는 유명하다. 1991년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 로스 페로와 합작회사를 만들 때 혼자 댈러스로 날아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사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가 일본에서 영업하는 한 사장은 일본에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2주일에 한번 정도 일본에 올 수 있다면 사장을 맡아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사장을 맡고 출자도 과반수 이상 하겠습니다.”

이듬해 대통령 후보로서 ‘페로 선풍’을 일으킨 텍사스의 거물 페로를 상대로 이처럼 과감하게 자기 주장을 한 동양인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소프트뱅크는 현재 미국에 1백40개, 일본에 50개, 한국과 중국에 1개씩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들 기업들을 관리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손정의는 작년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앞으로 한국과 중국에 투자를 늘여 5년 이내에 소프트뱅크는 세계적으로 7백80개의 인터넷기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정의는 5년전 경제인에게 주어지는 상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재일한국인으로 겪었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일본 기업계가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주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런 차별이 있었기에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지만 1991년에는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꿨다. 자신의 어린 두 딸이 일본인으로 티없이 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을 찾았을 때 “저의 조상과 가족은 한국인이고 이런 혈통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발전속도를 매우 빠르다고 보고 1억달러 이상을 투자, 인터넷기업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모국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업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벌써부터 주식투자가들은 손정의가 어떤 기업에 투자할 지를 점쳐보고 거기에 투자하려고 정보입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손정의는 최근 일본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10-15년 이내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잡아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 위주로 비즈니스를 하는데 비해 소프트뱅크는 정보통신 분야는 물론 금융, 유통, 전자상거래 등 경제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꿀 인터넷 비즈니스에 집중 투자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 비즈니스계의 겁없는 도전자 손정의의 도약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자못 궁금하다.


21세기 손자병법 손의 제곱병법


손정의의 경영전략을 엿볼 수 있는 '손(孫)의 제곱병법'.2000년전 손자의 병법을 현대 기업의 경영전략에 맞게 고쳐 그의 성이 손자와 마찬가지로 '손'씨인 것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다.


이 병법을 보면 그의 경영전략이 잘 나타난다. '일류공수군'(一流攻守群).즉 1등이 될 수 없는 싸움에는 처음부터 손대지 말고 공격하고 수비하면서 사업군을 형성하라는 의미다.소프트뱅크 본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투자를 통해 알짜배기 기업군을 거느리는 것이 안정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지름길이 된다.


'정정칠약투'(頂情七略鬪)는 싸움(비즈니스)에 임해 장수(최고경영자)는 정상에 서서 주위를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철저하게 수집하며 만약 7할의 확률이 있으면 거침없이 승부를 걸라는 뜻이다.승패의 확률이 5할일 때 승부를 거는 것은 어리석고,9할이면 안전권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앞서나가 디지털 세계에서 뒤지게 된다는 것이다.승률 7할의 목표에 맞춰 준비하되 그 시점이 되면 즉시 실행에 옮기라고 한다.


이외에도 손정의는 장수의 마음가짐을 나타낸 도천지장법(道天地裝法)과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싸움을 하는 방식을 표현한 풍림화산해(風林火山海)를 포함한 25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사업이 새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이 원칙에 맞춰 결정을 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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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벤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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