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꿈속에도 그리던 바람은 나라의 독립 그리고 다음으로는 역시 기와집에 하얀 쌀밥과 고기반찬이었다.
이제 세월이 약이라서 보리고개도 영영 잊혀진채 눈덩이 같은 쌀밥과 기름진 고기를 씹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세상만사는 새옹지마라고 했듯이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이 마당에 성인병이란 불청객이 찾아들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래서 사람들을 가난했던 옛날을 못잊어 하듯 허겁지겁 쌀에 잡곡을 섞어 먹기에 이르렀다.
아뭏든 요즘 우리들 주변에는 현미밥을 짓는 집들이 상상 이상으로 늘고 있다. 마치 현미식을 함으로써 암이나 당뇨병같은 성인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과연 현미식은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일까.
현미에는 피틴(phytin)이라는 성분이 있고 이것은 위액산에 의해 분해되어 피틴산(phytin acid)으로 된다. 피틴산은 미네랄을 결합하여 불용성의 염을 만들기 때문에 장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배설된다.
이 피틴산은 현미중에 오염된 수은까지도 그 대부분을 결합하여 배설된다. 그래서 피틴산은 공해시대의 구세주처럼 높이 평가되고, 그것을 많이 함유하는 현미식이 찬미의 대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현미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여기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피틴산은 수은과 같은 중금속을 결합하여 배설시키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인체에 유익하고 필수적인 미네랄인 칼슘이나 철 그리고 셀레늄, 아연, 망간, 크롬, 몰리브덴, 니켈 등의 미량미네랄도 함께 배설시키는 역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미식으로 인해 뼈의 형성이 장애를 받고 빈혈을 유발하며, 각종 효소의 재료가 부족하여 여러가지 영양대사의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파키스탄을 비롯하여 중동지역의 여러 나라에서 사회문제로 제기된 적도 있었다.
어린이들의 성장이 느리고 골절과 빈혈 등 신체적 장애가 일어나 WHO가 역학조사를 해본 결과 피틴산이 그 주범이었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또 최근 북한에서는 성장미(成長米)를 개발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성장미는 현미와 같은 비정백가공의 곡류에 따른 피틴산의 해를 덜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다시마 등 미네랄이 풍부한 식품의 성분을 첨가한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초중교생의 신장·흉위 등 신체적 조건이 남한의 같은 연배의 학생에 비해 열등하다는 보도와 관련이 있는 듯 싶다. 그것은 그들이 먹는 주식이 거의 현미에 가까운 비정백가공의 곡류라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미식 예찬론자는 피틴산의 위력이 마치 모든 농약성분 즉, 유기염소제 유기인산제 성장촉진호르몬제 등에도 미치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유기수은제 농약은 이미 금지된지 오래이다.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농약투성이인 현미를 먹어도 피틴산 덕분에 안심이 된다는 비과학적인 망상에서 깨어날 때가 왔다.
피틴산은 미량미네랄을 결합하여 영양대사에 장애를 초래할 뿐 유기수은제 농약 이외의 어떤 농약성분에 대해서도 하등의 방어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현미식은 잘못된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현미채식으로 대표되는 자연식이요법에서는 현미와 채소그리고 풍부한 해조류, 작은 물고기, 약간의 유즙(乳汁), 난류(卵類) 등을 조화있게 곁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조류에는 미네랄이 매우 풍부하며, 유즙 난류 그리고 작은 물고기에 들어 있는 단백질에는 미네랄의 흡수를 좋게 하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요는 균형이 잘 잡혀진 조화된 식사가 필요한 것이다.
커피 한잔에 토스트 한조각으로 양식을 한답시고 으시대는 어리석음이나 현미밥에다 채소나물을 먹는 것으로 자연식을 했노라고 안심하는 것은 똑같은 넌센스라 하겠다.
현미식을 가장 이상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현미에 함유된 피틴산 성분은 이노시톨(비타미니B군의 일종)에 중인산(인산이6개)이 결합된 화합물인데, 현미를 싹티우거나(發芽) 띠울 때(醱酵) 피틴산의 중인산 부분이 소비되고 이노시톨만 남는다.
이노시톨은 탈모방지, 콜레스테롤 추방, 비만해소, 정신분열증치료, 심근과 뇌세포에 영양을 주는 등 중요한 영양성분이다.
싹틴 현미차나 현미효소 등의 자연식품은 이러한 영양학적인 고려에서 창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미를 물에 담근 후 시루에서 며칠 동안 물을 주면서 싹을 티운 다음 믹서로 잘 으깨어 죽처럼 만들어 먹으면 영양이 풍부한 현미쥬스가 된다. 이것은 날 것으로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
무턱대고 현미밥만 먹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온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