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반응(chemical reaction)은 A라는 화합물(반응물)내의 원자간 화학결합들의 조합을 재구성해 새로운 화학적 성질을 지닌 B라는 화합물(생성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학반응에 의한 반응물에서 생성물로의 변화에는 화학결합의 소멸과 생성이 반드시 수반되며, 대개의 경우 이러한 화학결합의 소멸과 생성은 약 50펨토초(1펨토초 = ${10}^{-15}$초 = 일천조분의 1초)에서 5백펨토초 정도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이렇듯 엄청나게 빠르게 일어나는 화학결합의 소멸과 생성 과정을 실험적으로 직접 관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많은 화학자들이 연구해온 분야는 화학반응에서의 출발점(반응물)과 종착점(생성물)에 대한 것이었을 뿐, 출발점과 종착점사이의 ‘중간과정’에 대한 지식은 이론적인 가설과 간접적인 실험적 자료가 전부였던 것이다.
분자들의 반응과정도 볼 수 있다
그러나 1976년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즈웨일 교수는 이전까지 불가능하게 여겨왔던 화학반응의 시간에 따른 변화, 즉 ‘새로운 분자 탄생의 역사’를 직접 관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그 즈음(1980년대초) 새로이 개발되고 있던 펨토초레이저기술을 ‘기체상 반응동역학’이라는 학문분야에 접목시키는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펨토초레이저기술은 펄스형 레이저로, 한 펄스당 시간폭이 약 10-50펨토초에 불과한 극초단 레이저펄스를 발생시키는 기술이다. 또한 기체상 반응동역학이란 분야는 분자끼리의 충돌에 따른 에너지 분산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에서 분자를 형성시키고 화학반응을 유발시킨 다음, 화학반응의 속도 및 에너지의 여러 양자역학적 상태로의 분포 등을 연구한다. 이로써 화학반응의 미세한 반응경로를 분자수준에서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체상 반응동역학분야에 펨토초레이저기술을 응용함으로써 즈웨일 교수는 화학반응의 과정을 시간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펨토화학(femtochemistr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초고속 사진촬영과 같은 원리
즈웨일 교수가 이룬 펨토화학의 대표적 업적을 가장 기본적이고 매우 간단한 예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X와 Y원자의 화학결합으로 이루어진 X-Y라는 이원자분자를 생각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10펨토초(1백조분의 1초)를 1초로 환산해보자. X-Y분자에 1초 동안 레이저펄스를 주사하면, X-Y분자는 빛을 흡수해 레이저 빛의 진동수에 준하는 에너지를 얻게된다. 빛을 1초 동안 흡수한 X-Y분자는 이제 X와 Y원자를 연결해주던 화학결합이 분해되며 X와 Y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X-Y분자는 화학반응의 출발점(반응물)이며 완전히 분리가 종료된 X원자와 Y원자는 화학반응의 종착점(생성물)이 된다.
X-Y분자가 완전히 분리된 X와 Y원자로 변화되는데는 약 50초가 걸린다고 하자. 그렇다면 1초에서 50초 사이에 존재하는 X…Y분자는 반응물도 아니고 생성물도 아닌 중간상태(또는 전이상태)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처음 분자에 쬐어준 1초 동안의 레이저를 기준으로 약 10초 뒤에 다시금 1초 동안 두 번째의 레이저를 주사한다. 두 번째 레이저는 처음 반응을 유발시킨 첫번째 레이저와 파장이 다르다. 이 때 우리는 빛과 분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분광학적 특성들(빛의 흡수 및 방출, 이온화 등)을 통해 레이저가 주사된 시점에서의 분자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두번째 레이저로 얻어지는 분광학적인 특성을 조사하여 얻어지는 정보는 반응이 10초간 진행된 상태, 즉 전이상태의 분자구조에 대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을 반응의 시작점인 1초에서 반응종료점인 50초까지 1초의 간격으로 계속 반복하면, 반응이 진행되는 상황, 즉 분자의 화학결합이 분해되는 과정을 연속적인 시간의 함수로 관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펨토화학은 초고속카메라에 의한 고속촬영에 비유할 수 있다. 즉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분자의 모양을 1백조분의 1초에 한 장씩 사진으로 계속 찍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매우 천천히 돌아가는 슬로우 비디오로 관찰하면 화학반응에 의한 분자구조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의 초고속카메라는 물론 펨토초레이저펄스에 해당한다.
펨토화학의 진가 높여
펨토화학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위해 매우 간단한 예를 들었으나, 즈웨일 교수가 연구해오고 있는 분야는 화학의 전반에 걸쳐 매우 다양하다. 광분해반응, 단분자반응, 이분자반응, 양성자전이, 전자전이 등 매우 빠르게 일어나는 자연계의 많은 현상들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가 지난 23년간 즈웨일 교수 실험실에서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펨토화학을 통해 이루어지는 많은 자연계의 현상들에 대한 분자수준의 근본적인 이해는 결국 화학반응을 제어하고 생명현상을 이해하며, 환경을 보존하는데 있어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금번 즈웨일 교수의 노벨화학상 단독수상으로, 펨토화학 및 관련분야(반응동역학)의 기초과학으로서의 높은 가치가 다시 한번 확인된 계기가 되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즈웨일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즈웨일 교수 자신의 미래연구방향을 예측하는 선각자적인 안목과 강한 추진력, 그리고 그와 공동연구를 수행해온 많은 제자들의 땀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을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젊은 시절 즈웨일 교수의 ‘꿈’을 뒷받침해준 미국 과학정책 담당자들의 뛰어난 안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