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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랑이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 열정과 배신의 모습을 가진 야누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존재하기 위해 사랑을 선택하다. 정서라는 강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사랑을 과학으로 깨워본다.

일요일 아침 단잠을 포기하고 친구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A양. ‘부케 받고 3개월 안에 시집 안 가면 3년 뒤로 밀린다’는 말을 떠올리며 결혼식장을 나선다. 바야흐로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는 가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더없이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28세의 전문직 여성. 훤칠한 키에 호감이 가는 외모, 그리고 사교적인 성격의 그녀. 그 누구도 그녀를 솔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맞아, 나는 이게 문제야. 왜 모두들 내가 누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라며 위안 아닌 위안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하지만 곧이어 ‘마음의 문은 닫아두고서 누가 오길 바래?’하는 소리가 가슴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뭐든지 자신만만해 하던 그녀가 유독 사랑이라는 문제 앞에선 맥을 못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사랑이 뭐기에 이 가을 수많은 청춘 남녀에게 기쁨과 슬픔을, 환희와 좌절을, 열정과 배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문학과 예술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지겨운 사랑 타령이라고 해도 막상 영화와 모든 TV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을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 누가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까.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거짓의 신인 헤르메스가 결합해 탄생한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양성. 이 완전한 존재를 제우스가 갈라놓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사랑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손에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고, 보일 듯 하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이제 사랑을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보다 성공적인 사랑을 위해서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사랑은 능력이므로 그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면 사랑을 잘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랑의 삼각형

사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남녀가 서로 애틋이 그리는 일' 이라고 쓰여있다. 너무 막연하다 싶지만 특별히 따로 내세울 것도 없다. 이것에 대해 1986년 예일대학의 스턴버그박사는 사랑은 친밀감, 열정, 책임감이라는 세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오늘날 사랑의 삼각형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친밀감은 사랑하는 사람을 가깝게 느끼고, 서로 의지하며, 같이 있을 때 행복하게 느끼는 것과 같은 정서적 속성을 말한다. 이러한 친밀감은 서로 가까워짐에 따라 처음에는 꾸준히 상승하나 한계가 있다.

열정은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성적인 매력에 취하게 되며, 상대방에게 빠져들어가게 되는 일종의 욕망단계다. 친밀감과 달리 열정은 매우 빠른 속도로 생겨나 금방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그 열기는 얼마가지 못해 식는다. 흔히 사랑을 열병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열정에의 몰입을 두고 한 말이다.

다음으로 책임감은 누구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며, 사랑을 계속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다른 두가지 속성에 비해 비교적 인지적이다. 짐작하듯이 이러한 세가지 요소들이 조화를 이뤄야 가장 바람직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 또 친밀감, 열정, 책임감이 많을수록 삼각형은 더 커지고 사랑도 더 깊어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친밀감은 크지만 열정은 별로 없는 맹숭맹숭한 사랑을, 또 누군가는 열정은 대단하지만 책임감은 느끼기 싫다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람의 수만큼 사랑의 종류가 다양하다고 보면 친밀감, 열정, 책임감이 만드는 삼각형의 모양도 그만큼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의 근원 변연계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 사랑도 능력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 능력에는 개인차가 있고, 그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잘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발달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사랑의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유아기에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이 사랑이라는 건축물의 기초를 제공한다. 즉 부모와 가진 신체적인 접촉과 정서적인 유대가 사랑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아동기와 사춘기에 가족과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골격을 이룬다. 그러고 보면 이성간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건축물의 외벽과 실내를 장식하고 지붕을 단장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사랑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사랑의 근원은 우리 신체의 어디에 숨어있을까. 심장일까, 두뇌일까. 이에 대해 김중술교수(서울대 신경정신과)는 생리학적인 사랑의 근원으로 뇌의 변연계를 든다. 이곳은 일종의 정서적 두뇌로서 인위적인 자극에 대해 울거나 웃거나 하는 정서적 반응을 유발한다. 물론 이 부분이 손상되면 적절한 정서적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뇌의 변연계에서 분비되는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엔도르핀과 같은 화학물질은 사랑의 감정을 유지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변연계가 활성화되면 감성이 풍부해져 은유와 상징, 그리고 시적인 사고가 자극된 결과다.


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남자 친구가 결혼한다는 말에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을 깨닫는다.


친구가 연인이 될 때

사랑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상대방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방이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갖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상대방의 사랑 유형과 자신의 사랑 유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개 이별한 후에 “우린 서로 맞지 않았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코드를 못 맞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상대방 사랑의 유형과 자신의 사랑 유형이 어떤지 알아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학자인 래스웰과 햇코프는 50개의 문항으로 된 사랑 척도 검사를 제작해 수천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요인을 분석한 결과 여섯가지의 기본적인 사랑양식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 논리적 사랑, 유희적 사랑, 낭만적 사랑, 소유적 사랑, 이타적 사랑이다.

주변에서 오랫동안 친구로 사귀다가 결혼한 커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사랑을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함께 같이 지내다 보면 서로 편하고 좋고, 취미도 비슷하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통하고, 서로 감추는 것이 없이 털어놓게 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같은 학과에서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거나 직장 동료로서 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김중술 교수에 따르면 대개 이런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간에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많다고 언급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외모, 교육수준, 가정환경, 성격 등의 기준치를 정해놓고 그에 미달하면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 졸업하고 직업을 가져야 너와 부모님께 보다 떳떳할 수 있어. 조금만 참자.’ 이 경우가 논리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김중술 교수는 이런 사람들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으므로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소유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고독을 많이 느낀다. 영화 '자이언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향한 제임스 딘의 모습 속에서 잘 드러난다.


사랑의 종류에도 남녀 차이

한눈에 반했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상대방의 외모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다.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낭만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에 빠지면 두 사람은 깊은 열정에 빠져들어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면서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되기를 원한다. 마른 장작에 불붙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은 처음에 느낀 매력과 열정의 강도가 지속되지 못한다.

유희적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게임으로 여긴다. 자신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을 즐긴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며 사랑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오늘 회사일이 늦게 끝나서 당신을 만날 수 없다”는 말에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상대방을 몰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데이트에 조금만 늦거나, 다른 이성에게 친절한 것을 강하게 질투하는 것도 비슷한 예다. 이것은 일종의 중독현상인 소유적 사랑의 형태다. 김중술 교수는 “소유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고독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한 욕구에 이끌린다”고 설명한다.

노랫말 중에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라는 것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고 돌봐주며, 용서하고 베푸는 사랑. 이것이 바로 이타적 사랑으로 종교적인 사랑을 말한다. 이성간에 이런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 사랑의 형태는 어디에 속할까. 이를 두고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한가지 종류의 사랑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 개개인의 내부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혼재돼 있다.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특정한 사랑의 유형이 강세를 띨 수 있다.

사랑의 종류에도 남녀 차이가 있을까. 물론이다. 여자들에게는 논리적 사랑, 소유적 사랑, 그리고 가장 좋은 친구 같은 사랑이 훨씬 많으며, 남자들에게는 유희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이 우세하다. 또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이성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심리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사랑이 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는 것만 보인다(오스틴 도브슨)’는 명언이 있다. 실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첫사랑과 결혼한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연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진다. 이때 이뤄지지 못한 사랑은 아픈 상처를 남긴다.

권석만교수(서울대 심리학과)에 따르면 실연은 한마디로 사랑의 상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심리적인 후유증이 뒤따른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정서적인 우울이다. 동시에 슬픔, 분노, 미련, 후회가 복합적으로 표현된다. 또 주의가 산만해지고 정신집중력이 저하돼 업무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흔히 드라마에 등장하는 실연한 남녀가 직장에서 자주 실수를 하는 것과 지나간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미련과 후회에 휩싸이는 장면이 그려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실연을 하면 여러 가지 행동상의 변화가 나타난다.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그 누구와도 만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연 이후의 반응들은 대개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의 변화가 격하고 괴로워하다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상처는 치유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나간 사랑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영화 ‘프렌치 키스’의
맥 라이언이 실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사랑에 눈뜨기까지 이 과정이 모두 드러난다. 실연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본다. 인격적으로 성숙한다는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얘기는 이를 두고 한 말일까.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파격적인 사랑에는 친밀감과 열정은 있으나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이 때문일까. 사진은 '데미지'의 한 장면.


낭만적 사랑의 함정

그렇다 하더라도 실연을 즐길 사람은 없다.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아픔이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수가 있다. 특히 낭만적 사랑을 동경하는 이들에겐 실연의 그림자가 자주, 길게 드리워진다. 낭만적인 사랑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환상과 편견이 크기 때문이다.

사랑은 뜨겁고 열정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결혼 후에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나는 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이 사랑에 실패하면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낭만적 사랑을 느끼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등 이러한 생각들은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기대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을 고집한다면 상대방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므로 실연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권석만 교수는 프시케와 에로스의 전설에서 보듯이 낭만적인 사랑은 무지와 환상 속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프시케가 잠든 에로스를 보기 위해 등불을 켠 순간 사랑은 프시케의 곁을 떠난다. 낭만적인 사랑에서 눈을 뜨면서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결점 투성이의 인간임을 깨닫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나는 왜 사랑을 못 할까

실연의 고통 때문이 아니어도 사랑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한마디로 사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그 이유를 김중술 교수는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고, 상대방이 거절할 것에 대한 불안이 크고, 자기애가 부족하고 타인의 결점을 잘 지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의 상대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왜 사랑하는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면, 마음에 드는 상대는 이미 짝이 있고, 임자없는 사람들은 별볼 일이 없다고 말한다. 또 자신에게는 완벽한 상대가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타인의 결점만을 크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완벽한 상대란 만화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또 그런 완벽한 상대가 자신을 선택하리란 보장도 없다. 더구나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의 거절을 무척 두려워한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형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사랑을 아직까지 못해봤다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로는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마땅한 상대가 없어서 등이다. 그 자신들에겐 타당한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사랑을 심심풀이로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이 존재 이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학물질로 보는 사랑의 수명이 30개월이라고 한다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소중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사랑에 관여하는 물질들을 찾아내려고 하고 또 찾은 것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또 사랑과 관련된 수많은 화학물질의 성분과 역할이 밝혀지더라도 화학물질만으로 사랑이라는 정서를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보지 못하면 말이다. 이 마음이 30개월의 사랑을 30년, 50년의 사랑으로 만드는 지혜의 샘일 것이다.

Wise me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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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사진

    GAMMA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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