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정상에 비해 2배 이상 뚱뚱한 쥐, 암 연구를 위해 개발된 면역성 없는 누드쥐, 간질병에 걸려 1시간에 1백번 이상 발작을 일으키는 쥐. 최근 미국의 한 실험동물연구소에서 ‘상품’으로 선보인 대표적인 쥐들이다. 연구소는 이들을 포함한 6백여 종류의 돌연변이 쥐를 개발했다. 모두 인간의 난치병을 극복하기 위해 몸에 병을 하나씩 달고 태어난 동물이다.
이런 ‘가혹한’ 생을 타고난 동물은 비단 쥐에 그치지 않는다. 1989년 인간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보유한 돼지의 경우 스트레스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몸이 무거워진 탓에 발을 절뚝거리는 수난을 당했다. 한국에서 개발된 산양유전자 이식 돼지 역시 비슷한 처지다. 무거워진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이 돼지는 서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한다. 태어난 동물은 둘째치고 수많은 실험 과정에서 폐기되고 있는 수정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지난 4월 5일 미국의 한 동물애호단체 회원들은 미네소타대학 실험실을 부수고 48마리의 형질전환 쥐를 훔쳤다. 알츠하이머 치매 유전자를 이식한 개체들이었다. 한 연구원에 따르면 이 사건 때문에 알츠하이머에 대한 연구가 2년 정도 미뤄졌다고 한다. 실험동물의 생존을 보장하고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동물권’(animal right) 주창자들의 수많은 활동 사례 가운데 하나다.
선진국에서는 시험관실험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실험법을 개발하는 등 실험동물을 보호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예로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약물의 치사량을 결정하기 위해 2백마리의 동물실험 자료를 요구해 왔었는데, 최근에는 그 수를 18마리로 대폭 줄였다.
한국의 경우 동물실험에 대한 법적 규제는 없다. 해마다 어느 정도의 실험동물이 사용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도 없다. 매년 국내의 많은 연구소들은 실험동물의 넋을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위령제'를 지내지만 그저 인간의 죄스러운 마음을 위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