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광학 분야 권위 있는 연구자인 난팡 유 미국 컬럼비아대 응용물리・응용수학과 교수의 세미나가 호주 멜버른대에서 열렸다. 세미나가 끝난 후, 유 교수와 필자, 데비 스튜어트-폭스 멜버른대 생명과학과 교수와 그의 딸까지, 우리 넷은 멜버른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그리곤 별안간 곤충 채집을 시작했다.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자연은 절대 필요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자연은 절대 필요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 말처럼 자연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연구적 의미가 있다. 우리 일행이 곤충 채집에 나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일행의 전공 분야는 제각각이었다. 난팡 유 미국 컬럼비아대 응용물리응용수학과 교수는 빛의 특성(광학)을 활발히 연구하고, 데비 스튜어트-폭스 멜버른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생물광학과 시각생태학을 탐구하는 연구자였다. 필자는 멜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셋에겐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광학’이다. 우리는 광학의 실마리를 자연에서 찾고자 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연구실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세 구조체들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전체 물질(dielectric material)을 주기적인 구조로 나열하면 특정한 색깔만 반사하는 거울을 만들 수 있다. 유전체 물질은 전기장에 들어가면 양전하와 음전하가 일정한 방향을 갖게 되지만, 전기는 흐르지 않는 절연체다. 금속이 아닌 대부분의 물질이 유전체 물질에 속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특정한 구조는 인간이 고안해 내기 전부터 이미 자연에 존재해 왔다. 나비의 날개, 딱정벌레의 등껍질 등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사되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푸른빛을 지닌다. 모르포 나비(위 사진)의 날개가 푸른색을 띠는 이유도 색소 때문이 아니다. 서로 다른 굴절률을 갖는 유전체 물질이 주기적으로 배열된 구조체, 즉 ‘광결정’에 푸른빛이 반사돼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를 색소가 내는 색과 구분하기 위해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부른다. 구조색은 구조체가 망가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한 변색될 우려가 없다.
그렇다면 구조색을 활용한 잉크를 개발해 그 잉크로 사진을 인쇄하거나 그림을 그린다면 평생 색이 바래지 않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오늘날 구조색을 활용한 다양한 잉크들이 개발되고 있다. 2023년 10월 일본의 카메라 기업 후지필름은 일본 잉크젯 기술 포럼에서 구조색을 활용한 잉크젯 프린터를 선보였다. 구조색 잉크젯 프린터는 종이나 사물의 표면에 유전체 물질을 형성해 구조색을 띠도록 하는 잉크를 찍어낸다. 데바시스 찬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알루미늄과 산화알루미늄의 나노구조 배열을 변형해 나비의 구조색을 모방한 잉크를 개발했다. doi: 10.1126/sciadv.adf7207 이 잉크로 색칠한 나비 조형물은 빛에 따라 은은하게 그 색이 달라졌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자동차 기업 토요타는 2018년 구조색을 적용한 승용차 ‘렉서스 LC500’을 출시했다. 차 표면에 구조색 잉크를 도포해 푸른색을 띠는 구조색인 ‘스트럭추얼 블루(Structural Blue)’를 구현했다. 푸른색의 밝기와 선명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나비의 날개는 단순히 아름다운 색만 내는 것이 아니다. 유 교수는 날개의 열 이미징과 나노구조 분석을 통해 나비가 날개로 체온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doi: 10.1038/s41467-020-14408-8 참고로 나비의 날개는 신경이 없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손톱이나 새의 깃털과는 다르다. 혈관과 신경세포가 존재하는 감각기관이다. 유 교수는 전자현미경을 사용해 살아있는 나비의 날개 속 비늘, 정맥 등의 나노구조를 확인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나비에게 태양을 모방한 열을 가하며 날개의 나노구조에서 어떤 열 변화가 일어나는지 적외선 카메라로 관측했다.
그 결과 나노구조가 있는 부분은 복사 냉각 기능을 통해 체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이 발견은 전기 없이 무언가를 냉각할 수 있는 기술 연구로 이어졌다. 2022년 고승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와 이진우 동국대 기계로봇에너지공학과 교수가 이끈 공동연구팀은 나비의 나노구조를 묘사한 전자기판을 만들어 전기 없이도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기술을 구현하기도 했다. doi: 10.1039/D2NH00166G

자연에서 찾은 실마리, 에너지를 만들다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곤충에서 멈추지 않는다. 얼룩말의 무늬는 왜 생겼을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검은 부분과 하얀 부분에서 생기는 온도 차이로 인해 뜨거워진 공기와 상대적으로 찬 공기가 움직이며 피부 표면 온도를 낮춰주는 냉각 효과가 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데, 동일한 햇볕 아래에서 검은색 옷(빛을 흡수)을 입었을 때 흰색 옷(빛을 반사)을 입은 것보다 훨씬 덥다. 이런 온도 차이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송영민 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팀과 황석원 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 교수팀은 공동연구를 통해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다. doi: 10.1126/sciadv.adf5883 먼저 흰색을 띠는 박막 위에 검은색을 띠는 물질을 입혀 얼룩말 무늬를 구현했다. 흰색 부분은 온도가 대기보다 최대 8℃ 가량 낮아진 반면, 검은색 부분은 온도가 대기보다 최대 14℃나 상승했다. 이 온도 차이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기 위해서 얼룩말 무늬 박막 아래에 열전 발전기를 결합했다. 이 열전 발전기는 전하나 이온 등 도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입자가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한다.

이렇게 온도 차이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성하는 기술의 핵심은 냉각 영역은 최대한 외부 빛을 반사하는 ‘완전반사체(perfect reflector)’로, 가열 영역은 대부분의 외부 광을 흡수하는 ‘완전흡수체(perfect absorber)’로 만드는 것이다. 이 또한 자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얼룩말에서 영감을 얻은 복사열 조절 시스템: 송영민 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팀과 황석원 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 교수팀은 얼룩말의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태양 복사열을 흡수, 반사하는 특성 차이로 전기를 생산하는 열전 발전기 시스템을 만들었다. 완전 생분해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 지속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힌트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어떤 외부 광도 모두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생물이 있을까?’ 질문하는 것이다.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모두 반사하는 완전반사체라면 우리 눈에는 흰색으로 보일 것이므로, 자연상에서 색소 없이 하얀 색을 띠는 생물을 찾아보면 된다. 예를 들면 사이포킬러스라는 딱정벌레 또는 흰색의 꽃잎 등이 있다. 이것들의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무질서한 나노구조체들로 이뤄져 있다. 반대로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는 검은색도 찾을 수 있다. 나방의 눈이 그 예로, 나방은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작은 빛이라도 흡수할 수 있는 표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자연에 존재하는 구조들을 분석하고 다시 만들어 필요한 응용 분야에 사용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앞으로는 야외에서 식물이나 곤충, 동물들을 조금 더 관심 있게 관찰해 보길 바란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난제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필자소개
김세정. 호주 멜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KAIS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호주 멜버른대에 임용돼 바쁘게 실험실을 꾸려나가고 있다. 세계 광학 단체 OPTICA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고, 2022년에는 책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를 출간했다. 학계에서 접하는 최신 과학을 한국의 미래 과학자들과 나누고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