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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한밤중 모기의 습격, 불임수컷으로 완전정복


모기는 꽤나 오래 전에 지구에 등장한 곤충이다. 현재 모기와 가장 가까운 조상은 79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광물, 호박에서 처음 발견됐다. 영화 ‘쥐라기공원’이 아예 근거가 없진 않은 셈이다. 이후 몇 개의 조상 화석이 더 발견됐는데 모두 현재의 모기와 해부학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오랜 시간 지구에 살아남은 모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흡혈 대상을 공룡에서 포유류로 갈아탔다.


26일이면 새로운 모기가 태어난다

우리나라 도시 주택가에 사는 모기는 크게 두 가지 종류다. 하수로, 집수정, 정화조 및 물이 고인 플라스틱 용기에 의존해 사는 빨간집모기(Culex pipiens pallens)와 지하집모기(Culex pipiens molestus)다. 반면 논, 웅덩이, 수로, 늪지대처럼 자연에 있는 고인 물에는 중국얼룩날개모기(Anopheles sinensis)를 비롯한 얼룩날개모기류, 작은빨간집모기(Culex tritaeniorhynchus), 금빛숲모기(Aedes vexans) 등이 살아간다. 또 숲에는 흰줄숲모기(Aedes albopictus)와 한국숲모기(Ochlerotatus koreicus)가, 바닷가에서는 토고숲모기(Ochlerotatus togoi)가 주로 서식한다. 벌써 8종이나 되는 모기를 언급했는데, 세계적으로 약 3500여 종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54종의 모기가 서식하고 있다.

모기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물속과 땅위를 오가며 살아간다. 애벌레(유충) 시절에는 물웅덩이에서 살다가 성충이 되면 육지에서 살아가는데, 주기가 매우 빠르다. 물에 낳은 알은 2~3일 뒤면 부화한다. 애벌레는 물속에서 약 7~14일 동안 4번의 탈피를 거쳐 번데기가 된다. 번데기는 약 이틀 뒤에 성충이 된다. 알에서 성충까지 20일 정도 걸리는 셈이다. 성충이 되면 2~3일 안에 교미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동물의 피를 빨기 시작한다. 흡혈을 마친 모기는 3일간의 알 성숙기간을 거친 후 알을 낳는다. 따라서 모기가 알에서 태어나서 성충이 된 뒤 산란하기까지 26일 정도 걸린다. 암컷 모기는 살아있는 동안 여러 번 알을 낳는데, 수시로 교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교미를 했을 때 수정낭에 저장해 놓은 정자를 평생 사용한다.

겨울엔 어떨까. 모기는 보통 알과 성충으로 월동한다. 성충은 가을이 되면 글리세롤이나 지방 같은 월동에 필요한 영양분을 몸에 가득 쌓은 후 온도가 유지되는 깊은 동굴이나 하수구에 들어가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겨울을 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간혹 한 겨울에도 날아다니는 모기가 보인다. 바로 지하집모기다. 1989년 12월, 서울의 한 대형건물 내에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필자를 포함한 조사팀이 현장에 도착해 탐색한 결과 건물 지하에 있는 대형 정화시설에서 모기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겨울철에도 활동하는 지하집모기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지하집모기는 좁은 공간에서도 교미가 가능하고, 맨 처음 알을 낳을 때는 흡혈을 하지 않아도 산란이 가능하다. 온도와 습도만 유지한다면 먹이 없이도 번데기에서 부화한 성충끼리 만나 교미를 하고 한 차례 알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심의 지하공간은 지하집모기에게 이상적인 공간이다. 일단 한 차례 알을 낳은 모기는 다음 산란에 필요한 피를 얻기 위해 환기통로나 출입문으로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화수분처럼 지하실에서 계속 새로운 모기가 튀어나오는 셈이다.
 

매년 200만 명 모기 때문에 죽어

한밤중에 한 손에는 살충제를 들고 매의 눈으로 방을 훑으며 모기와 싸우고 있노라면 ‘물려도 가렵지 않고, 귀에서 시끄럽게 굴지 않으면 얼마든지 피를 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다. 하지만 설령 가렵지 않더라도 문제는 질병이다. 모기는 병원성 바이러스를 비롯해 원충, 선충을 매개하는 능력이 다른 곤충보다 월등하다. 흡혈능력 때문이다. 모기가 병원성 미생물에 감염된 뒤, 동물이나 사람의 피를 빨면서 자기 몸에 들어온 병원체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옮기는 병도 가지각색이다. 황열, 뎅기열, 치쿤구니아, 뇌염, 웨스트나일열, 사상충증 등이 모기를 통해 전염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삼일열 말라리아와 일본뇌염이 문제다.

우리나라는 과거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선포한 말라리아 청정지역이었다. 그러나 1993년, 경기 북부 비무장지대(DMZ) 철책에서 근무하던 군인 1명에게서 말라리아가 발생한 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 퇴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일본뇌염의 경우 1946년 인천 지역의 주한미군에서 최초의 환자가 보고된 이래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매년 환자 수천 명이 생겼다. 다행히 1971년 백신 도입 뒤 환자는 급감해 2009년까지 연간 1∼6명 정도만 발생했다. 다만 2010년에 27명, 2012년에 20명, 2013년에 15명 등으로 최근 들어 환자 수가 다소 증가했으며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지속적인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모기가 전파하는 질병에 걸리는 사람이 연간 700만 명에 이르며 매년 약 2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리카와 열대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열대열말라리아가 가장 많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모기 방제 등 다각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발생국가의 경제적 어려움과 낮은 수준의 원조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모기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말라리아 발생 현황
모기와 공존하는 길


모기는 해충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없애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모기는 다양한 생물의 먹이로, 숙주나 종족번식의 수단으로 생태계에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와 번데기는 물속에 사는 물고기, 잠자리 약충, 물방개, 게아재비, 플라나리아, 히드라 같은 다양한 생물의 먹이원이다. 심지어 다른 종류의 모기 애벌레를 먹고사는 왕모기나 식중집모기도 있다. 성충이 되어서도 각종 새, 박쥐, 거미, 잠자리 등의 먹이로 생태계 먹이사슬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모기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곰팡이, 선충은 모기가 없다면 종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기가 아무리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도 인간에게 해로운 부분만 방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살충제는 더 이상 답이 아니다. 모기는 끊임없이 내성을 키워왔다. 그 결과 살충제는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호르몬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도심에 광범위하게 조성된 인공 구조물과 정화조, 농촌에 드넓게 조성된 논에서 주로 모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정화조나 인공용기 등에서 발생하는 모기는 적극적인 방제로 없애고, 자연 상태에서 지나치게 많이 발생할 경우에는 생태계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적정수준을 유지하도록 모기를 방제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유력한 방법 하나가 불임모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모기가 평생에 한번 교미하는 습성을 이용해 불임수컷을 방사하면 교미한 암컷은 무정란을 산란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모기의 공생미생물인 볼바키아(Wolbachia)를 이용한 방제연구도 활발하다.

볼바키아는 모기뿐 아니라 다양한 곤충과 절지동물의 체내에서 공생하는 생물로 이들의 체내에 살면서 암수결정, 개체 발생, 수명 등 생리적 현상을 조절한다. 모기의 경우 정상적인 암컷과 볼바키아에 감염된 수컷이 교미하여 태어난 개체는 죽거나 수명이 단축된다. 연구자들은 황열과 뎅기열의 주요 매개체인 에집트숲모기(Aedes aegypti)와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류를 대상으로 인공적으로 공생균에 감염된 수컷 모기를 만들어 자연계에 방사시켜 모기를 방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모기를 아예 박멸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는 파괴된 환경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의 힘을 빌어 친환경적으로 모기의 발생을 근본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더 낫다. 실제로 살충제를 사용해온 논보다 친환경 유기농으로 경작된 논이 모기의 밀도가 낮았고 다른 생물의 다양성도 더 높았다. 모기 방제는 모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201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신이현
  • 에디터

    오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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