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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오르는 과학

숨 한번 쉴 때마다 생사가 오락가락

8천m 이상의 고봉에서는 산소가 평지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한발짝을 옮겨놓기가 무섭게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듯하다. 그런데도 8천m급 고봉 14개를 모두 오르는 철인 등반가들이 있는가 하면 에베레스트 정상을 산소통 없이 오르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1953년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당시의 헐러리.


19세기까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과 마터호른(4,505m)에 머물렀던 유럽의 산악인들은 새로운 세계 히말라야로 몰려들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8천m급 고봉, ‘신들의 세계’가 놓여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8천m급 고봉에 오른 사람은 1951년 안나푸르나(8,091m)를 등정한 모리스 에르조그(프랑스)였다. 그리고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산소마스크를 쓰고 오름으로써 인간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어디를 오르느냐’보다 ‘어떻게 오르느냐’로 옮겨갔고, 산소 없이 완전히 인간의 신체능력만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1978년 오스트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올랐고, 한국의 박영석도 1993년 무산소로 등정을 성공시켰다.

두세 발만 떼어도 숨이 가쁘다

엄청난 추위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희박한 산소로 한발짝도 떼기 어려운 8천m급의 고봉을 인간이 오르는 것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산악인들에게 “고산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누구나 ‘산소부족’을 첫손에 꼽는다. 1천m 오를 때마다 대기압은 약 93hPa(헥토파스칼, 1기압은 1013.25hPa)씩 떨어져 해수면에서 1기압인 대기압은 해발 5천5백m에서는 절반으로 떨어진다. 당연히 대기 전체에 퍼져있는 산소의 양도 해수면의 절반밖에 안 된다. 때문에 부족한 산소를 받아들이기 위해 숨을 가쁘게 쉰다. 또한 부족한 산소를 가지고 온몸에 보내기 위해 심장이 빨리 뛴다. 두세발짝만 떼어도 해수면에서 1백m를 전력질주하고 난 후의 숨가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지난 1988년 원정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산악인 정승권(정승권등산학교 교장)씨는 이런 상태를 한마디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이 막혀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소의 부족을 가중시키는 생리법칙이 들어있다. 대기압이 낮고 산소량이 해수면의 절반이라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숨쉬는 속도를 해수면에서보다 2배로 하면 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호흡한 공기에서 산소가 차지하는 부분 압력은 ‘(대기압-허파내수증기압)×0.2093(대기중 산소비율)’으로 정의된다. 허파내 수증기압은 그대로이고 고산으로 갈수록 대기압은 감소해가므로 호흡으로 빨아들인 공기에서 산소분압은 계속 줄어든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기압은 약 346hPa로 해수면의 34%로 떨어진다. 그런데 빨아들인 공기의 허파내 산소분압은 해수면에서 193hPa였던 것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는 52hPa로 떨어져 해수면의 약 26%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고산으로 갈수록 산소의 절대량도 부족할뿐더러 허파에서 혈액 속으로 산소를 녹여줄 압력도 줄어드는 것이다.

의학상식 뒤집은 무산소 등정

호흡된 공기에 있는 산소를 허파가 혈액에 옮겨주는 능력은 호흡한 공기의 산소분압과 폐정맥 혈액에 포함된 산소의 분압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허파가 피에 산소를 옮겨주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대 체육교육과 김기형교수에 따르면, 고소에서 생활하면 처음 2-3주 동안에는 폐의 산소운반능력이 증가하는 듯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은 증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고소 적응력이 높은 사람도 결국 산소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2차대전 이후 히말라야 등정에 관심이 쏠린 초기부터 8천m 이상에서는 산소마스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화돼 있었다. 아무리 고소적응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산소량이 해수면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8천m의 고소에서 인공적인 산소의 보충 없이 무산소로 등산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1953년 영국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이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를 때 산소마스크를 사용하자 이러한 믿음은 정설이 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28년 후,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마침내 산소마스크 없이 무산소 등정을 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이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르겠다고 했을 때 ‘불가능한 일’로 치부했던 의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쾌거였다.


고산에서의 식사. 정상 근처로 올라가면 이러한 망중한은 어림없다.


하루에 6백m 이상 못 올라

대한산악연맹 전두성이사는 “8천m급 고봉의 무산소 등정은 인간의 신체능력을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산악인들은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 국내에서는 박영석(37)씨가 1993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올라 세계적인 산악인의 반열에 올랐다. 허영호(44)씨도 마나슬루(8,163m)를 무산소로 올랐고, 남선우(44)씨가 초오유(8,201m)와 시샤팡마(8,027m)를, 여성으로 변미정(31)씨는 초오유(8,201m)를 무산소로 올랐다. 특히 지금까지 8천m급 고봉을 12개나 오른 엄홍길(39)씨는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7개의 봉우리를 무산소로 오르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반인이 아무런 훈련 없이 곧바로 오를 수 있는 높이는 약 2천4백-3천m 정도라고 한다. 이 이상의 높이를 오르려면 1일 고도 상승량은 훈련된 등산가라도 3백-6백m가 고작이다. 갑자기 고도를 올리면 여러 가지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정승권씨에 따르면, 보통 숙련된 등반가들은 약 3천8백m 정도에 곧바로 헬리콥터로 도착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한다.

등반가들은 보통 저지대에서부터 고소적응을 하면서 높이를 올려 5천2백-5천4백m 근처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다. 그런데 고산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면, 보통 훈련된 등반가도 4천-5천m 높이면 고소감각이 곧바로 전해진다. 머리가 띵하고, 식욕이 감퇴되며, 멀미, 구역질, 현기증, 불면증, 숨막힘, 소변감소, 무력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고도를 낮추어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때문에 고산등반시 등반가들은 베이스 캠프에서 상위 캠프를 계속 오르내리면서 고소적응을 한 다음에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근래 인공적으로 기압을 높여주고 산소량을 많게 해서 하산하는 효과를 만들어주는 가모우백이 등장해 고소적응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장비의 값도 비싸고 고산에서는 짐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등반가들 사이에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한다.

5천2백m가 생리적 한계

에베레스트 등반의 경우 완전히 이상적인 조건에서는 베이스캠프(약5천4백m)-캠프1(약6천1백m)-캠프2(약6천4백m)-캠프3(약7천2백m)-캠프4(약8천m)-정상정복의 순서를 밟는다. 각 단계마다 3-4일 정도 적응하고 캠프4에서 하루만에 정상정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약 17일이 걸린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이상적인 조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에베레스트의 경우 몸을 고소환경에 적응시키면서 올라가야 하므로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는 약 1개월을 소비한다. 이것도 기상, 장비, 신체상태 등 다른 조건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일 뿐 상황에 따라 훨씬 오랜 기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오래도록 그곳에 머무르면서 고소적응을 해 오르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는다.

생리학적으로 인간이 순응해서 살 수 있는 고도 한계는 약 5천2백m로 알려져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주거지인 안데스산맥의 탄광촌은 약 5천2백m의 높이에 있다. 광부들은 5천5백m 높이의 광산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하고 생활한다. 이곳은 산소분압이 해수면의 50% 밖에 안되며 최대산소섭취량(1분간 1kg의 신체가 받아들이는 산소의 양)도 해수면의 40% 정도다. 고려대 체육교육과 김기형 교수에 따르면, 5천2백m보다 높은 곳에서는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고소적응이 되지 않으며 신체의 건강상태가 나빠질 뿐이라고 한다. 충분한 식량과 장비를 가지고 있더라도 8천m의 캠프4에서 며칠이고 기다렸다가 오를 수가 없는 이유다. 또한 산악인들이 고봉을 등정할 때 베이스캠프를 5천-5천5백m 근처에 설치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5천8백m 이상에서 6개월 이상 머무르며 등반활동을 한 한 등반가는 1주에 1kg씩 체중이 감소했다고 한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정상을 오르는 산악인. 8천m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저산소증에 걸릴 수 있다.


마라톤 선수와 고산 등반가

한국산악회 전두성 이사는 엄홍길, 박영석, 허영호씨 등 산악인들이 남달리 고봉등정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요인을 심폐기능의 월등함에서 찾는다. 심폐기능이 좋다는 것은 어떠한 운동에서도 유리한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데, 특히 피로회복이나 저산소 상태의 적응에 더욱 그러하다.

서울 중앙병원 운동처방사인 김명화씨는 고산 적응에서 중요한 요소는 단순 폐활량보다는 최대산소섭취량이라는 기준으로 봐야 정확하다고 말한다. 심박수와 심박출량, 동정맥 산소차 등을 복합적으로 계산해 신체가 단위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산소를 받아들이는가가 정확한 고산능력의 잣대라는 것이다. 즉 산소는 많이 흡입했다고 하지만 피 속의 헤모글로빈이 부족하고 심장이 한번의 박동으로 쏟아내는 피의 양이 적다면 그만큼 몸에 퍼져 가는 산소의 양이 적고 고산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1996년 중앙일보의 의뢰로 한국스포츠과학연구원이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산악인 엄홍길씨는 1분 동안 몸무게 1kg당 산소를 72.8mL(최대산소섭취량)를 빨아들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82.5mL)와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78.5mL), 그리고 정상급 마라토너인 김완기(77.5mL)보다는 약간 떨어지지만 중장거리 육상선수 평균치인 67-70mL보다 높고, 20대 남자의 평균치(43-45mL)보다는 70% 이상 높게 나타났다. 또한 산소를 온몸에 옮겨주는 능력으로 볼 수 있는 최대심장박동수에서 엄홍길씨는 1분간 2백3회를 기록, 1백94회를 기록한 황영조씨보다 오히려 높았다.


K2봉의 위용^히말라야에서 가장 험준한 봉우리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으로는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가 1986년에 오른 것이 유일하다. K2는 카라코룸 산맥의 제2봉이라는 뜻. 1958년 측량 결과 세계 제 2위 봉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K2라는 이름이 더욱 널리 쓰이게 됐다.


수분 섭취가 필수

고산에서 고소적응이 됐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척도는 두통이다. 머리가 아픈 것은 가장 전형적인 고소상태의 증거로 기압이 낮고 산소량이 적은데 따른 효과다. 고소상태에서는 산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운반하기 위해 혈장성분이 줄어들고 적혈구가 많아진다. 때문에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 농도가 증가하지만, 혈액의 점성이 높아져 혈액이 온몸으로 퍼져가는데 장애가 온다. 이로 인해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치 못해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다.

또한 고소상태에서는 물의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 히말라야에서 최고 험난한 봉우리로 유명한 K2(8,611m)봉의 등정과정을 다룬 영화 ‘K2’에서도 주인공이 계속 물을 마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온도가 낮을 때는 콩팥을 통한 수분배출이 증가한다. 한 실험에서는 4천3백m에서 12일 있었을 때 체중감소가 3.5-4kg이나 됐지만, 하루 1L의 물을 마셨을 때는 약 1kg밖에 체중이 줄지 않았다. 고산에서 물을 마시는 것은 혈액의 점도를 유지하고 탈수증세를 예방하는데 필수인 것이다.

흔히 고산에서는 만년설과 눈보라로 매우 추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날씨가 쾌청하면 영하 5-10℃ 정도여서 계속 움직이는 등반가들에게는 오히려 덥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이스캠프 부근은 한낮에 햇빛이 나면 옷을 벗어야 할 정도까지 오르기도 한다(약 15-20℃). 정승권씨는 “낮은 온도는 적응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특히 보온이 잘되는 오리털 침낭과 방한복, 고어텍스 겉옷 등으로 철저한 방한을 하기 때문에 영하 30℃라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산악인들에 저온보다 큰 어려움은 강풍이다. 능선 부근의 바람이 통과하는 지역은 초속 30-40m의 강풍이 불어 몸이 날아갈 지경. 때문에 능선을 따라가는 등산은 편하기는 하지만 바람 때문에 위험하고 벽을 따라 오르는 등산은 등산기술과 체력이 문제가 된다.

예측불능의 눈사태와 크레바스

눈사태 또한 무서운 위험이다. 약 30-40도 경사의 언덕배기는 가장 위험한 눈사태지역이다. 이보다 경사가 급하면 눈은 쉽게 쌓이지 못하고 흘러내려 버린다. 이보다 낮은 경사에서는 눈이 차곡차곡 쌓여 흘러내리지 않으므로 비교적 안전하다. 때문에 경험자들은 지형의 특성을 잘 보아서 눈사태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이런 곳에서 쉬거나 캠프를 설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조심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은 표층눈사태라는 복병이다. 일단 쌓인 눈이 표면이 가늘게 녹아 다시 얼어붙으면 표면은 얼음처럼 반질거린다. 여기에 다시 눈이 내리면 미끄러운 아래층 위에 새로운 눈이 두껍게 쌓이게 된다. 이렇게 서로 불안하게 붙어있는 눈에 힘이 주어졌을 때 단층이 미끄러지듯이 일시에 미끄러져 내려가는 눈사태가 발생한다. 이는 표면의 눈 상태만 살펴서는 알 수 가 없으므로 산악인들에게는 '매복해 있는 적군' 같은 존재다.

또한 멀리서 보면 거대한 눈 평원 같은 지대가 가까이 가보면 무수한 균열을 이루고 있어 한발짝을 내딛기에도 겁이 나는 지역이 있다. 바로 크레바스 지역이다. 보통의 크레바스는 경사가 약한 평지 근처에 발달한다. 고산지대는 흔히 만년설이라고 하는 수백년의 눈이 쌓여 얼은 빙하가 있다. 이 빙하는 계속해서 조금씩 움직여 가는데 지표면에서의 압력과 마찰로 조금씩 녹는다. 해빙이 어느 한계에 이르면 자체 중력에 못 견뎌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얼음장이 깨지듯이 쩍쩍 갈라지게 된다. 갈라진 틈새는 수십 cm에서 수십m에 이르고 깊이는 끝을 보기 어려울 만큼 깊다. 크레바스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사라진다. 수년 전에는 크레바스가 없는 눈 평원이었지만, 어느 순간 쩍쩍 갈라진 크레바스 지역으로 변해 엄청난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크레바스는 양반이다. 갈라진 크레바스 위에 강풍과 눈보라가 내리쳐 표면을 살짝 덮으면서 내부에는 크레바스를 숨기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눈평원을 이루는 '숨은 크레바스' 지대가 존재한다. 이런 곳에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여지없이 수십m 아래의 깊숙한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만다. 등반가들은 서로의 몸을 자일로 연결해 앞사람이 빠졌을 때 신속하게 제동을 해서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때문에 산악인들에게는 체력, 정신력 외에도 순발력이 필수다.

동상으로 손발 잘라

눈, 추위, 강풍 속에서 크레바스를 건너고, 빙벽을 올라 정상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체력 소모가 많아지고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이 발생할 수 있다. 체온이 떨어져 가면 몸은 잃어버리는 열을 보충하기 위해 근육을 떨게 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데, 흔히 몸서리 현상이 이것이다. 그러나 체온이 34℃ 이하로 떨어졌을 때는 몸서리마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3-25℃까지 떨어지면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무력감, 피로, 몸서리가 나타나고 등산의 속도가 저하돼 급기야는 몸이 완전히 풀려버리는 현상이 이어진다. 많은 등반가들이 정상 정복 후 하산과정에서 조난을 당하는 것도 정상공격 도중 과도한 체력소모로 탈진해버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위험은 동상이다. 고산등반가들은 눈보라, 습기, 추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만일 그들의 옷이 추위와 눈보라를 막지 못하고 땀이 찬다면 엄청난 추위에서 얼어죽거나 동상에 걸리기 십상이다. 1950년 프랑스의 등반가 모리스 에르조그는 세계 최초로 8천91m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 인간이 8천m 이상에 오르는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격한 나머지 장갑을 끼는 것을 잊어버렸다. 베이스 캠프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은 동상으로 완전히 마비됐다. 그는 결국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야 했고 다시는 산에 오를 수 없었다.

북극의 에스키모나 극지방 탐험가들이 손발이 물에 젖었을 때 재빨리 습기를 없애고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동상에 걸려 신체를 잘라내야 한다. 저온에서 습기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외부의 비바람을 막아 체온을 유지해주고 몸에서 나는 땀이나 체액은 밖으로 배출해 몸을 쾌적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의류가 있다면 고산 등반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런 기적의 소재가 요즘 각광받고 있는 고어텍스다.

고어텍스는 원래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복 소재로 개발된 것으로 아폴로 탐사때부터 우주복에 쓰여왔다. 영하 1백50℃에서 영상 1백80℃까지 급격하게 변하는 우주환경에 적응하도록 개발된 소재이기 때문에 강풍과 폭설이 상존하는 영하 수십℃의 고산환경에서도 끄떡없다. 이 소재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스키, 골프, 조깅용의 일반 스포츠에도 고어텍스 소재의 의류들이 많아지고 있다.

고산에서의 또 다른 어려움은 강렬한 자외선에 피부가 못 견딘다는 점이다. 온도는 1천m 당 6℃씩 감소하지만 태양복사는 고도에 따라 증가한다. 대기오염과 구름이 줄어들고 더 많은 자외선복사가 대기를 뚫는다. 고산에서의 눈도 태양복사를 증가시키는 요인, 자외선이 눈에 반사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외선-B(파장 2백90-3백20mm)가 증가해서 살을 태운다. 3천m에서 자외선은 7백m에서보다 2배이고, 눈 쌓인 해수면에서와 비교하면 무려 4배나 많은 양이다. 고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이 하나같이 썬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고글을 끼고 있는 이유다.

산이 허락해야 가능

지금까지 8천m급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산악인은 6명에 불과하다. 산악인의 전설인 라인홀트 메스너(오스트리아, 1986년), 예지 쿠크츠카(폴란드, 1987년), 에르하르 로레탕(스위스, 1995년), 카를로스 카르솔리오(멕시코, 1996년), 크지슈토프 비엘리키(폴란드, 1996년), 훠니또 오르자발(스페인, 1999년)이다. 우리나라 산악인들 또한 고산등반에서는 세계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엄홍길은 현재 8천m급 히말라야 14개 고봉 12개를 올랐고, 박영석은 10개를 오른 상태다. 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등 지구상의 3대 극지 탐험으로 잘 알려진 허영호씨도 8천m급 고봉을 6회나 등정했고, 한왕룡씨도 4회나 올랐다.

그러나 만년설이 쌓인 고산은 인간이 쉬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이 5천2백m보다 높은 곳에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적응이 되지 않는 사실에서 그곳은 신의 영역임에 분명하다. 인간은 다만 자연이 마련한 위험과 어려움을 뚫고 잠깐씩 신의 영역에 닿을 뿐이다. 8천m급 고봉을 12개나 오른 엄홍길씨는 이렇게 말한다. "히말라야는 신들의 영역입니다. 숨한번 쉴 때마다 삶과 죽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신의 영역에 접어들기 전 인간은 겸허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준비를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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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GAMMA 외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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