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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머리의 열대 사람들은 팔과 다리가 길며, 갈기머리의 한대 사람들이 팔과 다리가 짧은 것은 기후에 적응하려는 자연적인 모습이다. 뿐만 아니다. 기후는 사람들의 기질과 경제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수머리는 공기구멍이 많은 스펀지 같아 태양빛이 머리 표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


순화란 의미의 ‘acclimatization’이란 영어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기후(climate) + 응(應)하여(ac∼)+되어 가는 것(tization)이라는 세 낱말이 합쳐진 복합어로 ‘기후에 따라 자신을 적응시켜가는 것’을 뜻한다. 즉 ‘순화’란 의미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지역의 자연환경에 알맞게 자신의 몸과 정신을 무의식적으로 적응시켜가는 것을 말한다. 기후는 지구상에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후의 다양성이야말로 인류의 신체적 조건이나 문화적 다양성을 가져오게 한 근본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후는 땅의 높낮이와 넓이, 수륙분포와 위치, 그리고 위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후 구분의 가장 간단한 방법은 위도에 의한 것으로 일년 내내 여름인 저위도의 열대, 일년 내내 겨울인 고위도의 한대, 그리고 여름과 겨울이 있는 사이에 봄과 가을이 끼여 있는 중위도의 온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저위도의 열대기후는 연평균 기온이 25℃, 가장 기온이 내려가는 최한월이라도 평균 기온이 18℃ 이상이며, 습도는 연중 100%(열대기후중 사바나기후는 예외)에 이른다. 실감나게 말하면 열대지방에서는 온대지방에 사는 우리가 겪는 여름밤의 열대야(熱帶夜)가 연중 계속되고 여기에 한여름 오후 2시경에 강하게 내려쬐는 햇볕이 매일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열대기후는 사람이 항상 편안하게 느끼는 37℃의 체온을 계속 높이려고 한다.

고수머리의 역할

사람은 정상 체온보다 약 2-3℃만 높아지더라도 체내 단백질이 응고해 생명이 위험하다. 따라서 열사(熱死)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하든 체온이 상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생존 방법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육체적인 적응이다. 강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차단하고 빨리 체열을 공기 중으로 내보내야만 한다. 물론 체내에서 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사량도 낮추어야 한다. 따라서 열대지방 사람들은 걸을 때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수머리(곱슬머리)를 갖고 있다. 고수머리는 공기구멍이 많은 스펀지 같아 단열재 구실을 한다. 고수머리는 태양광선이 머리 피부에 도달하지 않도록 한다. 또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머리 피부에서 나오는 땀을 효과적으로 증발시켜 머리를 빨리 냉각시킨다.

물론 피부의 땀샘 숫자도 약 5백만 개로 온대지방 사람들의 두배나 된다. 땀샘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다. 땀의 효과적인 증발을 위해서 팔과 다리의 길이가 몸통길이에 비해 훨씬 긴 체형구조를 갖는다. 열대 지역에 사는 흑인들의 체형 구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공모양(球體)에 비해 길쭉한 장체(長體)일수록 체적보다 표면적이 넓어져 그 만큼 열을 내보내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피부색도 멜라닌 색소가 많이 침착된 검은색이다. 이는 피부가 검을수록 강한 자외선이 체내에서 체열을 상승시키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다.

부지런함은 죽음을 재촉

열대지방 사람들이 열대기후에 적응하는 두번째 방법은 기질적 적응, 즉 심성적 적응이다. 심성적 적응은 육체적 적응과 보완관계에 있다. 열대 기후에서 열 스트레스(hypotonic stress)는 육체의 모든 부분에 과이완을 요구한다. 움직이거나 긴장하거나 생각한다는 것은 곧 심장활동을 활발하게 해 혈류를 체내 깊숙이 전달하면서 체온을 상승시킨다. 이를 체득한 열대 사람들에게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온대지방 사람들이 여름에 식욕이 저하되듯이 열대 지역의 사람들은 먹는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무엇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즉 열대기후에서 부지런히 뛰고 일하고 그래서 여러 형태의 재산을 만들어 축적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재촉하는 길이다. 가만히 앉아 명상하고 때가 되면 최소한의 먹거리로 끼니만 해결하면 만족스럽다. 온대지방 사람들이 열대지방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온대에 사는 사람들을 열대로 보내면 그들도 크게 다르게 생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요가(yoga) 수행은 혹한의 계절이 계속되는 한대지방에서는 불가능하다. 세계사적으로 보아 열대기후 지대에 문명이 형성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온을 위한 갈기 머리

가장 따뜻하다는 최난월의 평균기온이 10℃를 넘지 않는다는 한대지방은 어떤가. 여기서 인체는 일년 내내 강한 추위 스트레스(hypertonic stress)를 받는다.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피부에서 온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가능한 지방질과 같은 고열량의 음식을 먹어 대사에너지의 생산을 극대화해야만 한다. 체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체형도 적절한 적응을 해야 한다. 팔과 다리는 몸통에 비해 짧아야 되고, 머리털은 열대지방에서처럼 공기가 쉽게 통하게 되는 고수머리가 아니라 보온을 위해 자신의 키 길이까지 자랄 수 있는 갈기머리(속칭 ‘돼지털머리’와 같은 것)가 적당하다. 피부색은 열대지방이 흑색이므로 한대지방은 백색일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한대 지방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외선량이 열대지방만큼은 안되나 백색의 설면에서 반사되는 자외선량이 더해지기 때문에 피부색은 황갈색계통이 최적이다. 흰색피부는 일년의 70%인 2백30일 정도가 구름 낀 날이 되는 서안해양성기후지대인 유럽에서 나타날 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한대지방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우선 몸속의 혈류량은 증가시키고 피부에 흐르는 혈류량은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몸의 표면적을 체적에 비해 가능한 적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적응 과정은 감각을 극도로 무뎌지게 한다. 결국 과긴장을 만들어 마비현상이라 표현할 정도의 무감정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즉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열대의 과이완 상태가 생각을 멈추도록 하는 것처럼 한대지방에서도 모든 근육이 과긴장 상태로 들어가 판단중지와 같은 둔감한 상태에 이른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온대지방의 학교들이 여름에 방학하는 것은 열대형의 판단 중지 상태가 오기 때문이며 겨울에 방학하는 것은 한대형의 판단 중지 상태를 고려한 처사다.

한대지방에서는 식물성 식품이 거의 없다. 또 전통적으로 유목이나 수렵으로 얻어진 육류 중심의 음식만을 그때그때 잡아서 먹어왔다. 자연 자체가 저장고 역할을 하게 돼 특별한 방법으로 음식물을 저장할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따라서 채식 위주의 음식문화를 갖는 열대지방 사람들처럼 잉여 생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의 축적 또한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이동식 농경생활을 해야만 했던 열대지방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대지방 역시 대규모의 정착취락을 형성시킬 수 없었다. 그러한 결과들이 한대지방에서 제대로된 문명이 한번도 출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온대지방의 학교들이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두는 것은 열대형의 판단중지와 한대형의 판단중지를 고려한 처사다.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

우리가 사는 온대지방은 열대와 한대의 두 지방색이 모두 나타난다. 물론 온대지방의 기후스트레스는 열대의 더위 스트레스와 한대의 추위 스트레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즉 온대지방에서는 여름에는 ‘이완’ 상태가 겨울에는 ‘긴장’ 상태가 만들어진다. 온대지방인 유럽의 예를 보자.

북부유럽에 사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침울한 느낌을 받지만 남부 독일로 내려오면서 그 느낌은 감소한다. 더 따뜻한 남부지방으로 내려가면 기질은 점차 흥분적 내지 격정적이 된다. 프랑스로 내려오면 침울감은 완전히 없어지고 더 남쪽의 이탈리아로 내려오면 오히려 소란스럽다고 할 정도. 즉 비교적 추운 북유럽 사람들의 기질적 특징은 아폴론형의 점액질, 즉 근면, 인내, 둔감, 냉담과묵과 같은 기질 등으로 표현되는데 반해 따뜻한 남유럽인은 디오니소스형의 다혈질로 나태, 민감, 쾌할, 감성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지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온대지방은 세계사적으로 문명지대를 계속 유지해 온 곳이다. 온대지방은 사계절이 있어 정신활동에 적절한 자극을 준다는 유리한 점이 있다. 여기에 정착해 목축은 물론 밀, 보리, 벼 등 오래 저장이 가능한 화본과(禾本科)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부의 축적 기회를 늘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대규모의 인구가 모여 살 수 있는 도시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서로 경쟁하며 사는 도시가 없는 곳엔 결코 문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잉여와 축적이 가능했기에 문명이 생겨났고 아울러 지배와 피지배,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불평등한 사회가 일찌감치 만들어졌다. 그에 반해 비문명지역인 열대나 한대지방은 계몽주의자들이 그린 낙원으로 천부의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오랫동안 유지된 곳이다. 그렇다고 온대 지방의 사람들이 열대나 한대에 가서 살려고 할까. 그것은 더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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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송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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