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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의 씨름. 무더위를 잊는 방법 중에서 낚시를 백미로 꼽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낚시를 감(感)과 경험으로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월척을 건지려면 최소한 물고기의 생태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쉽고 재미있는 낚시의 과학을 붕어낚시를 통해 알아보자.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밤낚시에서 느끼는 짜릿한 손맛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댐이며 저수지며 강가에 밤낚시를 즐기는 낚시꾼(흔히 ‘꾼’이라 부름)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캄캄한 밤, 달빛이 반사되는 잔잔한 수면 위로 파르스름한 케미라이트가 솟아오르면 꾼의 마음도 덩달아 들뜬다. 게다가 줄에서 ‘핑핑’ 소리가 나도록 힘을 쓰는 굵은 붕어라도 한마리 걸리면 그 손맛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밤에 낚시를 할 수 있는 것은 붕어가 밤에도 미끼를 먹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름에는 더운 낮보다 시원한 밤에 붕어의 입질이 잦다. 결국 이 재미에 빠진 낚시꾼들은 밤을 꼬박 새고 만다.

여름밤 밤낚시를 제대로 즐기려면 몇가지 기억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아무리 여름이지만 물가는 밤기온이 10℃ 가까이 떨어지므로 약간 두툼한 외투가 필요하다는 것. 또 모기나 깔따구 같은 해충이 많기 때문에 살충제나 기피제(해충을 피할 수 있는 약) 등을 꼭 준비해야 한다.

자리에 앉을 때도 경사가 심하지 않고 주변에 나무나 잡초 따위의 장애물이 없는 편안한 곳을 택해야 한다. 밤에 낚시바늘이 옷이나 나무에 걸리면 즐거운 밤낚시도 짜증스러워진다.

이제 밤에 잘 먹히는 미끼인 떡밥을 먹음직스럽게 달고 월척의 입질을 기다려보자. 입질이 뜸하면 떡밥을 다시 달아 던지면 된다. 수면 근처에 있던 찌가 스르르 올라오면 입질이다. 대개 붕어가 입질하면 찌가 올라오나 잉어가 입질하면 찌가 쑥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잡식성인 붕어는 보리, 콩, 옥수수같은 곡류를 갈아 만든 떡밥도 좋아하지만, 지렁이나 새우같은 동물성 미끼도 잘 먹는다. 특히 월척(30.3cm 이상)은 동물성 미끼에 곧잘 낚인다.


붕어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지만 붕어낚시가 성행하는 곳은 한·중·일 동양 3국이다.


포인트는 곧 붕어의 생태

처음 낚시를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가장 애를 먹이는 것은 자리를 잡는 것. 아무리 좋은 미끼를 달고 수십대의 낚시를 드리워도 자리를 잘못 잡으면 붕어가 물지를 않는다. 그러기에 붕어의 생태를 잘 알아야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옛날에는 감(感)과 경험으로 낚시를 했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연구해야 월척을 낚을 수 있다. 낚시도 과학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낚시를 하는 자리를 흔히 ‘포인트’(point)라고 한다. 이를 고를 때는 가장 먼저 붕어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를 알아야 한다. 붕어에게는 그들이 사는 물속이 소우주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나고 생활하며 생도 거기에서 마감한다.

그런데 큰 댐이나 긴 수로, 1천평 미만의 소류지, 심지어 작은 양어장조차도 규모에 관계없이 물속의 환경이 저마다 다르다. 수온, 수심, 용존 산소량, 먹이가 각기 다르게 형성된다. 이런 여건 속에서 붕어는 그 시기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 이동과 회유를 하게 된다. 이때 붕어가 돌아다니는 길목이나 노는 곳에 미끼를 드리우면 붕어인들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붕어의 회유를 이해하려면 계절에 따라, 또는 하루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물속 여건을 잘 알아야 한다(그림 참조). 한 겨울에 수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붕어는 물속에서 가장 따뜻한 수온이 형성되는 곳으로 은신하게 된다. 저수지의 중심부나 수심이 깊은 곳으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이곳의 수온은 6-7℃ 이상을 유지하므로 겨울 붕어는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수심이 얕고 수초가 많은 수로에서는 저수지와는 다르다. 수심차로 인한 수온 상승효과보다 연안의 수초대에 의한 복사열로 수온이 상승하기 때문에 붕어는 추울수록 수초대에 붙어 생활하게 된다. 한겨울, 수로의 얕은 수초대에 얼음구멍을 뚫고 싱싱한 지렁이를 드리우면 곧바로 입질이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이 와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붕어는 1년 중 가장 왕성한 회유를 한다. 종족번식을 위한 산란을 하기 위해서다. 붕어들은 산란에 알맞은 장소, 즉 수심이 얕고 수초가 잘 발달돼 있고 새물의 유입이 없는 곳 등으로 활발히 이동한다. 이때의 붕어를 ‘오름붕어’라고 부른다. 봄철에 상류가 주 포인트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수지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빼는 5-6월이 되면 붕어는 매우 불안해진다. 급격히 줄어드는 수위로 우왕좌왕하던 붕어는 곧 안정되고 수위변동이 없는 곳에 은신하게 된다. 저수지의 제방, 골자리 같은 곳으로 숨는데, 물이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불안감을 느껴 먹이활동도 위축된다.

이때 비로 인해 새물이 들어오면 산소량이 풍부하고 먹이 여건이 좋은 상류로 올라가는데, 이런 현상을 꾼들은 ‘새물 찬스’라고 한다. 물이 마른 갈수기에 허덕이던 물고기들이 첫비가 오면 상류 냇가의 골로 모이기 때문에 이를 노려봄직도 하다.

한여름에는 수온이 25℃를 넘나들기 때문에 붕어도 더위를 탄다. 한낮에는 수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얕은 곳보다 깊은 곳에서 많이 머물고, 먹이활동은 저녁이나 밤의 서늘한 시간에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밤 조황(낚이는 상황)이 좋다. 이때 포인트를 정할 때는 낮보다 얕은 곳이 무난하다.

추수가 시작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붕어들도 꾼들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적당한 수온(18-23℃)이 유지되므로 붕어들은 왕성한 식욕을 보이고 조황도 매우 좋아진다. 이 시기의 포인트는 여름철과 비슷하지만 유달리 주변보다 움푹 패인 곳이 좋은 포인트가 된다. 아침에는 1m의 낮은 수심에서 입질하다가, 낮에는 2m 이상 되는 깊은 수심에서 입질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하루 중 시간에 따라 포인트를 옮기며 낚시를 해야 한다.


국내 최대로 기록된 64cm 붕어. 붕어인가 잉어인가 논란이 됐지만 붕어로 결론이 났다.


국내 최대붕어는 64cm

산삼을 캐는 심마니가 ‘심봤다’고 외치듯 꾼들은 ‘월척 낚았다’고 외친다. 월척은 꾼들의 소망이다. 수십년 동안 낚시를 해도 월척 한마리 구경 못한 이가 수두룩할 만큼 낚기가 어렵고 힘들다.

붕어가 자연상태에서 월척으로 자라려면 얼마나 걸릴까. 대충 10년? 그럼 40cm가 넘는 ‘4짜’는 20-30년은 족히 걸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월척은 생각보다 젊다. 서식처의 여건(먹이나 수온)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4-5년이면 월척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붕어가 다 월척으로 크는 건 아니다. 1백마리 중 4마리(4%) 정도만 월척이 될 뿐, 나머지는 아무리 커도 25cm 이상 자라지 않는다. 마치 사람의 경우 어른이 돼도 키가 작은 이가 있듯이, 붕어도 크기와 수명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월척은 희소가치에서 매우 귀하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4짜’는 얼마나 드물겠는가.

“대물붕어는 낚이는 곳에서만 낚인다”는 꾼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곳은 25cm가 넘는 붕어를 한두마리도 낚을 수 없는 저수지가 있는가 하면, 월척이 수십마리씩 떼로 낚이는 작은 못도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 동안 마른 적이 없는 저수지에서 월척 한마리 낚이지 않는가 하면, 작년에 바닥을 드러내며 바싹 말랐던 곳에서 이듬해 봄 준척(27-28cm)과 월척이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차이는 그곳에 사는 붕어의 혈통, 그리고 성장여건과 관계가 있다.

‘월척’이나 ‘4짜’를 노리며 오늘도 물가에서 새하얗게 밤을 지새는 꾼들을 망연자실하게 할 얘기가 있다. 바로 국내 최대어이다. 1988년 9월 11일 충남 아산군에 있는 송악지라는 저수지에서 낚인 64cm 붕어가 바로 그것.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국내 최대 붕어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진정한’ 꾼이라면 벌써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잠깐만, 릴 낚싯대로 낚았으며 떡밥을 미끼로 썼다는 사실도 알고가자.

붕어들의 삼국시대 - 토종붕어 구별법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붕어낚시가 성행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붕어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널리 서식하는 ,심지어 북쪽 노르웨이의 차가운 물속에도 살고 있는 어종이다. 온수성 어종인 붕어는 18-23℃의 수온에서 가장 활발히 자라지만 그보다 훨씬 차거나 뜨거운 물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얼음장 밑에서 죽은 듯 움직이지 않던 붕어는 이듬해 얼음이 풀리면 다시 살아나 활기차게 돌아다니곤 한다.

또 붕어는 생활하수나 공장폐수로 오염되고, 부영양화 현상으로 파랗게 녹조가 낀 산소가 거의 없는 물에서도 꿋꿋이 살아간다. 필요 산소량이 2mg/L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붕어의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수도권의 양어장이나 유료낚시터에는 붕어들이 신삼국시대(新三國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1970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산 떡붕어, 2-3년 사이 대량으로 수입된 중국산 붕어가 우리 재래붕어와 혼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태생이 다른 3국 붕어들은 얼핏 보면 모양이나 습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낚시를 오래한 꾼들조차 혼동할 때가 있다.

떡붕어와 토종붕어를 쉽게 구분하려면 주둥이와 눈의 위치를 보면 된다. 떡붕어의 주둥이는 위로 치켜 올라간 듯하고, 눈은 주둥이와 일직선 상에 있다. 눈이 아래쪽으로 쏠린 듯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토종붕어는 눈이 주둥이보다 높고, 주둥이도 위쪽이 약간 길게 보인다. 떡붕어를 세워놓고 위에서 등비늘을 보면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여려 개의 선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토종붕어는 그렇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구별하려면 아가미나 창자를 보면 된다. 주로 수중에 있는 작은 동식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떡붕어는 그것들을 걸러내기 위해 아가미속에 있는 새파(빨간 부위)의 수가 토종붕어에 비해 훨씬 많고 촘촘하다. 또 자기 몸의 5.7배에 달하는 긴 창자를 지닌 떡붕어의 배를 따 보면 창자 속에는 녹조류(녹색) 등이 많이 들어 있다. 반면 토종 붕어의 창자는 떡붕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낚시꾼들은 낚시하는 도중에 보지도 않고 이들을 구별해낸다고 한다. 찌가 시원스레 올라오면 토종붕어, 깔짝거리면 대부분 떡붕어의 입질임을 금방 알아차린다. 또 낚은 고기를 끄집어낼 때 토종붕어와 달리 떡붕어는 거의 힘이 없다. 잡은지 얼마되지 않아 온몸이 뻘겋게 피멍이 드는 떡붕어는 맛이나 약발도 토종붕어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붕어도 '신토불이'(身土不二)인 모양이다.

재작년부터 유료낚시터에 중국산 붕어가 눈에 띄고 있다. 씨알이 25-30cm로 굵어 인기를 끄는 이 붕어는 토종붕어와 체형이 거의 유사해 많은 꾼들을 혼동시킨다. 입술이 약간 짧고 몸의 색깔이 조금 거무튀튀하다는 것 외엔 토종붕어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감(感)으로 낚시를 하는 꾼들의 말을 들으면 미끼를 먹을 때 찌놀림이 지저분하고, 낚아 손에 쥐고 보면 왠지 토종붕어에서 보이는 '우아함'이 없다고 한다.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의 댐이며 저수지는 블루길, 황소개구리, 떡붕어, 중국붕어 등 무분별하게 들여온 외래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언젠가 붕어낚시에도 외국산 붕어만 낚이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자손대대로 찌올림 좋고 힘 좋은 붕어낚시를 즐기게 하려면 토종붕어의 보호와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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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중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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