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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의 생체시계는 몇 시인가

태어난지 3년, 세포 나이는 9살


돌리는 올해 3마리의 자식을 낳아 생식력이 정상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동갑에 비해 늙었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초의 복제양 돌리의 몸이 동갑 양들에 비해 많이 노화됐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지난 5월 27일 발간된 ‘네이처’에서 돌리의 경우 세포 노화의 척도로 알려진 염색체 말단 부위인 텔로미어(telomere)가 정상이 아니라는 글이 실렸다. 이 내용을 발표한 사람 중에는 돌리를 탄생시킨 주인공인 영국 로슬린연구소의 윌멋 박사가 포함돼 있었다.

한편에서는 현재 태어난지 3년 된 돌리가 6세의 어미로부터 체세포를 받았기 때문에 실제 돌리의 나이는 9세이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발표로 돌리가 조로(早老)증세를 보인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과연 돌리의 생체시계는 몇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세포 노화의 척도 텔로미어

돌리가 조로증세를 보이는지 아닌지는 상당히 중요한 현안이다. 현재 돌리는 많은 과학자 사이에서 한마디로 ‘장밋빛 미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복제기술은 우량 가축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백두산 호랑이처럼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을 보존할 수 있는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획기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다. 그러나 만일 돌리의 몸에 이상이 있다면 복제동물의 ‘실용화’ 시기가 예상보다 훨씬 늦춰져야 할 것이다.

화제의 핵심인 텔로미어의 정체를 살펴보자(그림). 텔로미어란 염색체 양 끝에 존재하는 말단 부위를 의미하는 단어다. 짧은 길이의 유전자 조각이 반복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순해보이는 부위가 세포의 노화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세포에게도 태어나서 사멸할 때까지 일생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세포는 자신의 몸을 수십회에 걸쳐 분열시킨다. 이 과정에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는 분열하기 전 2배로 늘어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염색체가 분열을 거듭할수록, 즉 세포의 노화가 진행될수록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설명이 있다.

그렇다면 생식세포인 정자처럼 짧은 시간 내에 무수히 분열하는 경우는 어떨까. 만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텔로미어가 순식간에 짧아지는 탓에 정자의 생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즈(telomerase)다. 생식기관, 조혈기관, 그리고 피부와 같이 세포분열이 왕성한 곳에서 활약을 펼쳐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세포에서 텔로머레이즈의 활성도가 낮아졌다면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텔로미어와 노화의 관계는 주로 곰팡이 같은 미생물 수준에서 활발히 연구돼 왔다. 그런데 최근 이 관계를 고등동물에 적용시킨 연구가 이한웅 박사(삼성생명과학연구소 포유류분자유전학실험실)에 의해 수행됐다.

이박사는 1997년 이후 지난 3월에 이르기까지 과학전문지 ‘네이처’와 ‘셀’에서 텔로머레이즈가 없는 생쥐의 경우 생리 기능에 심상치 않은 이상이 생겼음을 밝혔다. 그는 생쥐에서 텔로머레이즈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제거한 후 몇세대에 걸쳐 생쥐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생식기관과 조혈기관, 그리고 피부에 이상이 생겼다. 예를 들어 생식기관의 크기가 현저히 줄고 비정상적인 모양이 발생했으며, 6대에 이르렀을 때 아예 생식기능이 사라졌다. 혈액이 만들어지는 능력이나 피부의 상처 회복력 역시 현저히 떨어졌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텔로미어가 보다 짧은 생쥐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실시하자 불과 3대째에서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고등동물의 경우에도 텔로미어의 길이가 노화와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돌리의 텔로미어는 왜 정상에 비해 짧은 것일까. 사실 이 점은 돌리가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돌리에게 유전자를 제공한 어미양의 나이는 6세였다. 즉 이미 여러 차례 분열을 거친 세포의 유전자로 돌리가 탄생한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든 수정란의 유전자를 ‘원본’이라 본다면, 6세의 어미양으로부터 얻은 유전자는 수정란 유전자의 ‘복사본’에 해당한다. 원본에 비해 복사본에 흠집이 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림)염색체의 구조와 텔로미어의 위치^염색체는 DNA 이중나선과 단백질(히스톤)이 결합된 구조를 이룬다. 텔로미어란 염색체의 끝에서, 염기 서열이 같은 DNA 조각이 반복되는 부위를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진다.


“분자 수준 나이는 실제 나이와 다르다”

하지만 이런 ‘분자 수준’의 흠집이 한 개체가 비정상적으로 노령화됐음을 알리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국내에서 복제기술을 활용해 우량 젖소와 한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황우석 교수(서울대 수의학과)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황교수는 “돌리의 생식능력이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볼 때 돌리는 젊은 양으로 판단된다”고 말한다. 그는 “양의 나이를 측정하는 외양적인 지표인 치아의 마모도, 뿔과 발굽에 나타나는 나이테 등을 살펴보면 같은 또래의 양과 다를게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하고 “텔로미어와 같은 분자생물학적 수준의 연령을 곧바로 실제 생물학적 나이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라고 주장한다.

이한웅 박사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텔로미어의 길이와 노화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길이의 변화가 반드시 몸 전체를 노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이박사의 실험 대상은 생쥐였기 때문에 돌리와 같은 양의 경우에도 그런 결과가 나올지 확언할 수 없는게 사실이다.

돌리가 과연 동갑들에 비해 늙었는지 알 수 있으려면 좀더 시간을 두고 몸의 생리기능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살펴봐야 한다. 양의 평균수명은 13년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여년 동안 돌리의 건강상태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로’는 단순히 일찍 늙는 현상을 넘어서,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각종 질병마저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GAMMA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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