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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피라미드, 스톤헨지 그리고 판테온

고대의 대형 축조물에는 언제나 천문학과 기하학이 숨어있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자연의 질서를 현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절대적 권위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피라미드, 스톤헨지, 판테온에 들어있는 천문학과 수학의 비밀을 추적해본다.


판테온 내부의 모형^넓고 높은 공간을 얻기위해 기둥을 적게 쓰고 아치형의 지붕을 만들었다. 기둥의 수는 완전한 수로 생각됐던 16을 엄격하게 지켰다.


고대인들은 과연 무지하고 원시적이었는가. 물론 그들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수많은 과학 문명의 이기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못 가졌던 대신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신비와 직접 내통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었다.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능력은 미신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것도 엄연한 하나의 과학으로서 나름대로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천체의 운행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그들만의 비밀스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능력은 우리를 가끔씩 놀라게 해주는 발전된 고대 문명의 형태로 나타났다. 우리는 고대인들은 무조건 무지했을 것이라는 편견에 때문에 이런 고대문명을 불가사의라고 부르며 놀라워한다. 그러나 창조자의 세계를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고대인들은 우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고대 건축물은 이러한 고대문명의 불가사의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 예다.

피라미드의 무게중심

고대 건축물은 기하 형태와 숫자를 통해 우주의 비밀을 지상에서 표현해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네 개의 정삼각형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사각뿔 형태로 구성됐다. 이 사각뿔의 밑변과 경사면이 이루는 각도는 52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피라미드의 무게 중심에는 우주의 에너지가 모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의 무게중심에 녹슨 면도날을 놓으면 녹이 지워진다.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이용하는 치료 가운데에는 피라미드의 무게 중심에 환자를 놓아 우주의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방법도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경우에도 파라오의 미라가 놓이는 무덤은 정확히 무게중심 지점과 일치했다. 미라가 수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데에는 미라 자체의 방부가 뛰어났던 것만은 아니다. 미라가 피라미드의 무게중심에 놓임으로써 우주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집트인들도 처음부터 미라를 피라미드의 무게중심에 위치시켰던 것은 아니었다. 고왕국 제4왕조의 쿠푸왕 때(기원전 2570년 경)에 피라미드는 비로소 완전한 정삼각형으로 구성되는 사각뿔 형태를 갖추었다. 그리고 미라가 피라미드의 무게중심에 매장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 이전까지의 피라미드는 불완전한 비정형이었으며 미라는 피라미드 밑의 땅 속에 묻혔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경우 묘실로 가는 통로가 중간에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 가운데 한 갈래는 지하로 이어진다. 이것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땅 속의 가짜 묘실로 인도하는 일종의 속임수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미라를 땅 속에 묻던 방식의 잔재이기도 하다. 위대한 파라오 쿠푸는 피라미드의 무게중심 속에 숨어있는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 바로 그 무게중심에 누워 영생하며 내세를 이어가 이집트 세계를 계속 보살필 수 있었다.


각 돌이 놓인 위치는 계절에 따라 태양과 달이 떠오르는 위치를 가리킨다. 스톤헨지는 천체운행을 지상에 완전히 재현한 것이다.


스톤헨지는 숫자의 조합

영국의 셀리즈베리 초원에 남아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 기원전 2000년 경)는 고대 문명의 천체 관측소였다. 스톤헨지는 여섯 겹의 동심원으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 초점에 해당되는 지점에 제단이 놓인다. 스톤헨지 밖에서는 힐 스톤(Heel Stone)이라고 불리는 선돌이 일렬로 늘어서서 직선 가로(街路)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직선 가로는 스톤헨지를 가로질러 제일 안쪽의 원에까지 이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 힐 스톤 가운데 현재는 스톤헨지 바깥쪽 멀리 하나만이 남아 있다. 스톤헨지의 중심 제단에서 힐 스톤을 바라보면 하짓날 태양의 위치가 힐 스톤의 정점과 일치한다. 이것은 이 당시 고대인들이 천체의 운행 과정을 정확히 읽고 있었으며 이 스톤헨지는 그러한 천체의 운행과정을 풀어내는데 쓰였던 일종의 천체 컴퓨터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위와 같은 내용은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기하 작도의 비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스톤헨지의 원형 평면은 4개의 정삼각형을 중심 주위로 돌려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 결과 스톤헨지 안에는 여러 종류의 12각형과 6각형이 내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스톤헨지의 원형 평면 안에는 3, 4, 6, 12라는 네 개의 숫자가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질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고대 문명을 이루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원과 정삼각형, 그리고 정사각형은 가장 완벽한 기하 형태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고대인들은 원을 천상의 신인 코엘러스(Coelus)가 사용하던 상형 문자라고 믿었다. 12라는 숫자는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설명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숫자이다. 또한 6이라는 숫자는 약수들의 합과 자신이 같아지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완전수(perfect number)라고 믿는 숫자였다. 이러한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스톤헨지의 내부 구성은 천체의 운행과 변화를 읽어내는 고도로 발전한 컴퓨터였다. 예를 들면 스톤헨지 내에 있는 여러 개의 삼각형들 가운데 어떤 한 삼각형에 태양의 위치가 일치했을 때 이들은 파종을 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미 태양의 궤적을 읽어내고 자연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추적해내는 계산판을 땅 위에 축조해 놓았다. 나아가 스톤헨지의 동심원 구도는 태양계 행성의 궤도, 즉 여신의 눈을 상징하는 천체 지도이다. 이집트인들은 네 개의 정삼각형을 52도로 세워 피라미드라는 정사각뿔을 만들어 그 무게 중심에 우주의 에너지를 모았다. 영국의 고대인들은 네 개의 정삼각형을 평면 위에서 돌려 육각형과 십이각형으로 구성되는 동심원 구도를 만들어 태양의 궤적을 읽어내고 자연의 길흉화복을 점쳤다. 스톤헨지는 절기의 변화를 알려주는 달력이자, 천지의 기운을 읽어내는 천체 관측소였으며 고도의 복잡한 계산을 행하는 컴퓨터였다.

16세기 중반에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뿌리 찾기 작업의 일환으로 스톤헨지를 복원해 그 속에 담긴 비밀을 밝혀낸 적이 있었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노르만 족이 지배하던 오랜 중세 봉건 문명이 끝나면서 근세 문명이 시작되던 때였다. 당시 영국의 앵글로 색슨 족은 이 같은 문명 변천에 맞추어 전제 군주 문명을 새롭게 시작하며 민족적 정체성을 찾는 범국가적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제임스 1세는 이러한 영국 부흥 운동을 앞장서서 이끈 왕이었다. 제임스 1세는 건축가들과 고고학자들로 하여금 스톤헨지에 담긴 위와 같은 비밀을 밝혀내게 했다. 이러한 발견으로부터 스톤헨지는 신에게 봉헌된 로마 시대의 신전이라는 역사적 정의가 내려졌다. 이로써 영국의 앵글로 색슨 족은 나름대로의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일구어낸 뛰어난 민족임이 천명됐다. 궁극적으로 제임스 1세는 자신이 그러한 앵글로 색슨 족의 법통을 이어받은 왕임을 내세워 전제 군주로서 통치 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다.


판테온의 아치형 내부 공간.


빗물이 들지 않는 원형창

로마 시대의 판테온(Pantheon, 서기 120년 경)은 구(球)가 지니는 완전성을 건축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고대 건축물이다. 스톤헨지는 원의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해석해 천체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도구로 활용했지만, 이에 반해 판테온에서는 원의 이미지가 구라는 3차원 구조물로 축조됨으로써 천상의 비밀을 지상에 축조해놓은 상징성이 확보될 수 있었다. 판테온은 범(pan) 신전(theon)이라는 뜻으로서 모든 신이 지상에 왕림해 쉬어가는 장소로 지어졌다. 이 때문에 판테온은 신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코엘러스가 사용하던 상형문자인 원의 형태로 지어졌다. 판테온의 천장 정상부에는 원형창이 뚫려있다. 이 원형창에는 창문이 없는데도 건물 내부로 빗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판테온이 완벽한 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기압 차이에 의해 상승기류가 발생해 빗물을 밀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식의 집중호우가 없는 로마의 기후적 특성 아래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 정도는 구의 비밀스런 힘에 의해서 밀쳐 올려질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판테온에서는 위와 같은 구의 형태를 지지하는 구조 골격에 16이라는 숫자가 어러 번 반복돼 쓰이고 있다. 판테온의 골격은 16개의 큰 기둥과 16개의 작은 기둥이 교대로 한 쌍씩 반복해 쓰이고 있다. 16은 로마인들에 의해 가장 완벽한 수라 믿어졌던 숫자였다. 로마인들은 10이라는 숫자를 6과 더불어 또 하나의 완전수로 믿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완전수가 더해져서 얻어지는 16을 완전수 가운데에서도 가장 완벽한 숫자로 믿었다. 판테온의 원형 천장은 16개의 큰 기둥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16개의 기둥만으로 이처럼 큰 원형 천장을 받치는 것은 구조적으로 볼 때 무리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은 16이라는 숫자에 대한 신앙적 믿음 때문에 16개를 초과해 기둥을 더 쓰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이에 따르는 구조적 무리를 릴리빙 아치(relie-ving arch)라는 그 당시로서의 첨단 구조 공법으로 해결해냈다. 릴리빙 아치란 한 마디로 기둥에 집중되던 천장의 무게를 벽체로 전환시키는 트랜스퍼 시스템(transfer system)이었다. 그 결과 판테온의 기둥에서는 16이라는 숫자가 잘 지켜졌고 로마 사람들은 이렇게 구성되는 판테온에 정말로 만신이 모여드는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판테온은 로마 시대의 사회 통합 기능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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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임석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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