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집에 4집이 PC를 가지고 있는 세상에 아직도 컴맹이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사회 최소 구성단위인 가정에 '컴퓨터 마인드'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 컴퓨터를 보다 편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개발 · 보급된다면 이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PC, 즉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때는 1981년 IBM이 16비트 개인용 컴퓨터인 IBM PC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그후 15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는 컴퓨터 기술 경쟁의 결과 개인용 컴퓨터는 사무 환경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개인용 컴퓨터를 구입하는 가장 큰 소비자가 회사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말은 가장 많이 보급된 곳 역시 회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포화상태에 이른 사무실을 떠나 머지 않아 가장 큰 소비자는 가정으로 바뀌게 될 것이 확실하다.
PC 제조업체들도 이런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그동안 가정용 컴퓨터(홈PC)를 판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컴퓨터 판매업자들이 홈PC의 장점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가정에서 컴퓨터를 활용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회사에서 다하지 못한 밀린 업무를 저녁이나 주말에 처리한다거나 몇가지 게임을 즐기는 것이 가정용 컴퓨터가 가정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컴퓨터 통신과 멀티미디어 기술의 보급으로 홈PC가 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PC는 글을 쓰고 자료를 관리하며 숫자를 계산하는 업무용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통신 서비스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는 등 영역이 확장됐다. 드디어 개인용 컴퓨터를 가정에 판매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개인용 컴퓨터가 홈PC로 변신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성능은 좋아지고 가격은 저렴해진 다양한 주변 장치 덕택이다. 개인용 컴퓨터는 사운드카드 덕분에 저장되어 있는 소리를 내거나 마이크로 입력된 소리를 녹음할 수 있으며, 컬러프린터 덕분에 화면에 나타난 멋진 그림을 종이에 인쇄할 수 있다.
그림을 읽어 들이는 화상 입력 장치인 스캐너(scanner)의 경우 과거에는 몇백만원이나 하던 가격이 몇 십만원대로 내려왔지만 성능은 더 좋아졌다. 최근 미국에서는 아예 키보드에 스캐너가 붙어 있는 제품도 등장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필름없이 사진을 찍는 디지털카메라가 가정용 시장을 넘보고 있고,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사회적인 변화는 가정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몰아가고 있다. 컴퓨터 통신의 발달로 부분적인 재택 근무자가 많아지고 있으며, 통신 업체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와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은행에 가지 않고 계좌 조회나 이체를 할 수 있는 홈뱅킹의 이용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며,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한 외국어 학습이나 어린이 학습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홈PC는 더욱 더 많이 보급될 것이 분명하다.
홈PC는 가전제품
홈PC의 발전 추세로 보면 머지 않아 개인용 컴퓨터는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전제품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홈PC를 위한 다양하고 우수한 홈소프트웨어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하드웨어는 홈PC를 구성하는 기계적인 요소일 뿐이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사업의 초기가 그러하듯이 지금까지의 멀티미디어와 홈PC 사업은 하드웨어 측면만 강조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간과돼 왔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일체형 홈PC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름은 홈PC지만 그 내부에는 유용한 홈소프트웨어들이 별로 없다.
홈소프트웨어는 우수한 성능을 싼 값에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하드웨어를 이용해 컴퓨터를 보다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컴맹’ 의 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공급돼 온 소프트웨어들은 대개 업무용 분야에 속하는 것이었고, 프로그래머들도 이런 류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홈PC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들과는 그 개념과 외관이 모두 가정용에 맞는 홈소프트웨어들이 등장해야 한다.
홈소프트웨어는 다양해야 한다는 점에서 업무용 소프트웨어와 다르다.
비교적 정형화돼 있는 업무용 소프트웨어와는 달리 홈소프트웨어는 취급 범위가 매우 넓으며, 형식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다. 유아를 위한 간단한 그림그리기 프로그램에서 성인을 위한 칵테일 만들기 프로그램까지 가정 생활과 관련이 되는 모든 분야를 다룰 수 있다. 또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대상층과 용도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홈웨어, 누가 만들 것인가
상업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장 큰 시장을 목표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홈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가장 많은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팔릴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현재 이런 제품으로는 게임이나 어린이용 학습 프로그램이 꼽히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프트웨어 시장이 상업용 소프트웨어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상업성이 적은 제품들은 공개 소프트웨어 혹은 셰어웨어(shareware)의 형태로 공급되어야 하고, 사용자의 요구에 맞추어야 하는 주문 소프트웨어 중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는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가 맡으면 된다. IBM PC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편리한 업무용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다양한 공개 소프트웨어들이 무료로 제공됐기 때문이다. 홈소프트웨어 분야에도 이 공식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독립적으로 팔기는 어렵지만 절실하게 필요한 홈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소프트웨어들은 사용자 중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공급할 수 밖에 없다. 가정에서 어떤 홈소프트웨어가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라기 보다는 가정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당사자들이다.
현재 국내에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홈소프트웨어가 많지 않은 것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사용자들이 적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았거나 홈소프트웨어에 대한 아이디어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도 큰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홈 소프트웨어 공모전과 같은 행사를 통해 홈소프트웨어에 대한 필요성을 널리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또, 명예심이나 봉사정신을 자극한다면 최소한 당장 필요한 정도의 홈소프트웨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홈소프트웨어 시장이 활성화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