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독자적인 문명이 출현하면서 ‘사실적인 그림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마야, 아즈텍과 같은 문명권은 각자 나름대로의 문자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 각 글자는 사실적인 그림으로부터 변형돼 나갔다는 점이다.
그림을 모방해 만들어진 문자, 즉 상형문자는 각 문명마다 독특한 양상으로 발달했다. 따라서 현대인이 이를 해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집트의 상형문자다.
이집트는 기원전 3천1백년 경 메네스왕이 이집트의 땅을 통일하고 최초의 왕국을 세운 후 3천5백여년 동안 상형문자를 사용했다. 이 문자는 ‘신의 말씀’이란 뜻의 단어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라 불리는데, ‘신성한 조각’이란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
히에로글리프는 4세기 경 이집트 신관들이 마지막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어찌나 비밀리에 사용했는지 당시 그리스나 로마 학자들은 히에로글리프가 제식에 사용되는 주술적 기호인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1799년 8월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의 로제타라는 마을에 요새를 세웠다. 이때 기초 공사를 하던 중 검은색 석판이 발견됐다. 여기에는 세종류의 문자, 즉 이집트의 상형문자, 이집트의 민용문자(民用文字), 그리고 그리스어가 적혀 있었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되는 단초를 제공한 ‘로제타 스톤’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학자들은 세가지 언어가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는 확신 아래 해독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어느 쪽부터 읽어야 할지, 그리고 어디를 끊어 읽어야 할지 난감했다.
프랑스의 샹폴리옹(1790-1832)은 이 비밀문서를 해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제멋대로 그려진 듯한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다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라는 말을 찾아냈다. 다른 학자들은 비문의 그림이 단지 ‘의미’만을 표현할 것이라 생각한데 비해 샹폴리옹은 각 그림이 ‘음가’를 가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그림들의 음가를 알아낸 덕분에 로제타 스톤의 비밀이 풀리기 시작했다. 기원전 1백96년 개최된 멤피스의 신관 회의 석상에서 당시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기원전 2백10년경 탄생)의 즉위식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현재까지 해독된 이집트 상형문자는 3천여개에 달한다. ‘베를린 사전’에 따르면 이 상형문자의 대부분은 신(神), 사람, 신체 부분, 동식물, 천체, 건축, 장신구, 농기구 등 모든 사물을 정면이나 평면, 그리고 측면만을 표현했다고 한다. 복잡한 것은 정면과 측면을 짜맞추어 상형문자로 만들었다.
중국의 갑골(甲骨) 문자 역시 상형문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원전 18세기 경 거북의 껍질이나 큰 동물의 어깨뼈에 새겨놓은 형태다. 내용은 다분히 주술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이나 오래 전에 죽은 조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목적이었다.
집단에 어려운 일이 생겨 죽은 자의 자문을 구하고자 할 때 주술사는 잘 다듬은 거북 껍질이나 동물 뼈의 구멍에 벌겋게 달아오른 쇠막대기를 집어 넣는다. 이때 뜨거운 열 때문에 껍질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 모양은 죽은 자의 메시지로 믿어졌고, 이를 해독하는 것이 주술사의 몫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인 영어의 알파벳 역시 상형문자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됐다. 알파벳의 발명은 당시 사용되는 수백개의 기호를 단지 20-30개의 기본 기호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언어 형성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알파벳은 페니키아의 문자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있다. 페니키아는 현재의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일부 지역에서 발흥한 문명으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양 문명의 문자 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2천년대 후반 페니키아는 서쪽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설형문자(쐐기문자, 상형문자가 쐐기 형태로 변형된 형태)를, 남쪽 이집트에서 상형문자를 받아들였다. 이 내용은 그리스인들에게 전수됐는데, 현재 ‘알파벳’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알파벳 중 두 문자인 알파(α)와 베타(β)에서 유래된 말이다. 로마가 그리스 알파벳을 받아들여 부분적으로 변형시킨 21개의 철자는 중세를 거치면서 현재의 26개로 발전됐다.
바벨탑의 전설
언어가 나눠지는 분기점?
성경에 따르면 인류는 원래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가 신의 노여움을 받아 여러 언어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성경의 '창세기'는 노아의 후손이 '바벨탑 사건' 때문에 언어가 혼잡스러워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대홍수를 피해 살아난 노아의 자손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 지역에서 정착하고 인류의 도시문명을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이들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대홍수의 얘기를 실감나게 전해들었을 뿐 아니라 가끔 이 지역에서 홍수가 범람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홍수의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거대한 탑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는 하늘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들은 세계 최대의 탑을 세운 후 꼭대기에 하나님을 대신할 우상을 올려 놓고 신으로 섬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거만함을 심판하기 위해 탑을 부수고 언어를 달리해 인간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만일 성경에서 말하는 ‘언어’를 ‘상형문자’로 본다면, 그리고 바벨탑이 만들어진 시기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존재하던 때로 본다면 성경의 바벨탑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시대에 이집트 문명에서도 독자적인 상형문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바벨탑이 만들어질 때 이미 다른 문명권에서 독자적인 언어 체계가 갖춰졌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