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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특허의 도입 기초연구 활성화를 위한 계기로

현원복 과학저널리스트


오래전부터 일부 전문가들이 걱정해오던 일이 바로 10개월 남짓 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년 7월부터 물질특허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질특허는 사람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창작하여 만든 물질자체를 특허법으로 보호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윤리적인 면에서 생각할 때 특허권은 발명자의 권익을 위해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물질특허제도의 도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문제는 우리의 사정에 비해 이 제도를 타의에 의해 너무 일찍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데 있다.
 

국산 신물질이 전혀 없는 우리의 형편에서 앞으로 10개월 이후에는 외국의 신물질특허 신청이 3백-4백건씩 쏟아져 들어 올 것이며 정밀화학분야를 통틀어 연간 6백억원의 로얄티(특허사용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므로 국내산업의 대외종속, 제품가격의 인상, 중소기업에 대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관련업계는 걱정하고 있다. 더우기 이 물질특허의 대상에는 화학물질뿐 아니라 생화학적 물질과 천연물질의 발견까지 포함되어 있어 겨우 싻트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유전공학분야는 봉우리도 피워보지도 못한채 다른 나라의 기술에 예속되어야 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올 외국의 물질특허 공세에 대처할 채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다. 일본의 경우 물질특허제도를 실시하기로 한 1976년 1인당 국민소득은 5천달러, 연구개발투자는 90억달러, 연구인력은 26만명이었으며 스위스는 국민1인당 소득이 1만 4천달러이던 1978년에야 비로소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했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형편은 1인당 국민소득 2천달러, 연구개발 투자총액은 16억달러, 연구인력은 3만명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에 있다.
 

정밀화학공업의 꽃이라고 하는 의약산업은 전형적인 실험산업이다. 신약을 합성하고 그 특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질을 오랜 기간에 걸처 실험하고 검증하는 일을 되풀이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의 경우 연간 4천5백만 마리의 설치동물, 2천마리의 개구리, 40만마리의 기니아피그, 20만마리의 개를 포함하여 7천여만마리의 동물이 실험용으로 쓰인다. 신약개발에 얼마나 많은 연구노력이 필요한 것인가를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는 제약회사가 약물인가 신청서에 첨부하는 서류의 양이다. 76년 미국의 어떤 제약회사가 제출한 서류는 4백 28권에 모두 66만 4천페이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4천만달러를 웃도는 비용이 든다. 이것은 우리나라 상장(上場)제약회사의 자본금을 모두 합친것과 맞먹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넋두리가 소용없는 이른바 '기술제국주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빠른 시일내에 우리의 형편에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여 모든 힘을 모아서 이 위기와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내년중 한국화학연구소 내에 1백23억원을 투입하여 새로운 물질의 약효와 유해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활성 및 독성시험센터를 설치하여 민간업계에도 개방하는 한편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유전공학 센터에 유전자은행을 설치하고 국립보건원 산하에 생물검정체제를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기술개발을 부추기기 위한 세제와 금융지원이 요청되지만 기업도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할 중대한 시기에 와 있는 것이다. 기업의 연구개발투자는 적어도 외국의 제약회사의 수준인 매출고의 5%이상으로 끌어 올려야 할 것이다.
 

한편 신물질개발에는 많은 고급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이런 연구사업은 그만큼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임금수준이 낮은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고급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들을 신물질개발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종래 응용연구에 밀려났던 대학의 기초연구를 획기적으로 부추길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첨단기술개발에서 기초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기초연구결과에 대한 선진국의 보호주의적인 태도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물질특허제도의 도입을 계기로 기초과학을 획기적으로 육성하여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균형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면 우리 앞에는 새로운 지평선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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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현원복 과학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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