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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계의 공생전략

피부세균도 제역할이 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생물이란 없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들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펼치는 전략인 공생만 봐도 그렇다. 콩과식물에 비료를 제공하는 뿌리혹박테리아를 비롯해 서로 도우며 살고있는 생물들의 다살이 세계에서 삶의 지혜를 얻어보자.


물고기는 말미잘의 먹이를 유인해주고 말미잘은 물고기의 피신처가 돼준다.


생물계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나뉜다. 여기서는 고전적인 분류 개념을 사용해 세균과 식물, 그리고 동물 셋으로 나눠보자. 사람들은 식물과 동물을 서로가 필요로 하는 뗄 수 없는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세균이나 곰팡이는 우리를 괴롭히는 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필요 없는 생물이란 없으며 또 항상 해만 끼치는 생물은 없는 법이다. 모두가 필요해 태어난 것임을 먼저 인정하고 수긍해야 자연계를 편견없이 제대로 볼 수 있다. 크게 보면 이 지구상에 ‘기생생물’은 없고 하나같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공생생물(共生生物)이라는 것이다. 공생을 동물계에서는 공서(共棲)라고도 한다. 공생현상을 다시 뜯어서 상리(相利)공생이니 편리(片利)공생 등으로 나누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간 중심으로 나눈 부질없는 짓이다. 생물계는 사람 중심이 아닌 생물들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볼 때 정확하게 보이고 그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비료 비웃는 뿌리혹박테리아

공생에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개미와 진딧물, 해삼과 숨이고기 처럼 동물끼리의 예가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동식물과 세균과의 관계를 들여다보자. 대표적인 예가 제일 먼저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 관계. 콩과식물에는 콩 종류, 팥, 토끼풀, 아카시나무(아카시아의 우리말 이름), 싸리나무 등이 있다. 이것들은 공생세균이 뿌리에 살고 있어서 질소성분이 적은 땅에서도 잘 살 수 있다. 뿌리에 들어온 뿌리혹박테리아는 숙주식물에서 받은 영양분으로 살아가면서 공기 중의 질소를 붙잡아 그것을 숙주에게 제공한다. 서로 이익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보자. 콩과식물이 먼저 한 개의 세포가 늘어난 뿌리털에서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뻗어서 그 끝에다 세균의 필라멘트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구멍(‘창문’이란 말을 쓴다)을 낸다. 그러면 뿌리혹세균(Rhizobium)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필라멘트를 뿌리털 쪽으로 뻗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 서로 달라붙는 융합(fusion)을 한다.

일단 세균이 들어오면 창문은 닫아버린다. 그런데 숙주와 세균 사이에는 서로를 알리고 알아내는 그들만이 아는 신호물질(주로 단백질이나 당 성분인 만노스다)이 있다. 이것을 정해진 식물에는 어떤 정해진 세균만이 들어가 사는 종 특이성(種 特異性)이라고 한다. 즉 식물에 따라서 공생하는 세균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뿌리에 들어간 세균은 빠르게 번식해 뿌리에 혹을 만들어 공기 중의 유리질소를 고정한다. 즉 뿌리혹박테리아는 니트로게나제 효소를 이용해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바로 쓸 수 있는 암모니아나 유기질소로 전환시킨다. 이것은 세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식물과 세균은 ‘서로 없이는 못사는’ 함께살이를 한다.

사람들은 비싼 돈을 들여 이들의 흉내를 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공장에서 만든 질소비료다. 세균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세균이 가지고 있는 이 ‘질소고정 유전인자’를 벼나 보리 밀 등 곡식에 집어넣어 질소비료가 필요 없는 식물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하니 세월이 지날수록 희한한 일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런 질소고정을 하는 것에는 뿌리혹박테리아 말고도 남조류(Cyanobacteria)가 있다. 이것도 물이나 뭍에서 다른 동식물과 공생을 하며 살아간다. 이 세균은 녹색식물이 가지고 있는 엽록체의 전신(이것이 세포에 들어가서 엽록체가 됐다)으로 추정된다. 이것 덕에 지구의 동물이 식물의 엽록체가 만든 양분을 먹고 존재하는 셈이다.

10억년간의 생명 유지 비결

지금까지 식물과 세균과의 공생 관계를 논했는데, 다음은 동물과의 공생관계를 저 깊은 바다 속에서 찾아보자.

1977년에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2천8백m 심해의 분출하는 화산 분화구 근방에서 몇 종의 조개와 게, 갯지렁이 등 여러 동물이 발견됐다. 문제는 이렇게 깊은 곳은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라 그것들의 먹이가 태양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진 광합성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변 바닷물의 온도가 23℃까지 올라가는 분화구 근방의 더운 물에 동물들이 사는 것도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 동물들은 원시 지구 환경과 유사한 그 속에서 10억년간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동물들은 하나같이 창자가 없었다. 아가미는 두껍고 투명했으며 내장의 대부분이 바닷물에서 먹은 세균으로 가득 찬 ‘공생기관’으로 이뤄져 있었다.

공생기관을 채우고 있는 화학합성세균들은 분화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황화수소를 산화시키고, 그때 나오는 화학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서 유기화합물을 합성한다. 광합성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유기물을 합성하는 것이라면 화학합성은 화학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 합성 산물을 동물들이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로 괴이한 생존전략이다. 그 깊은 바다에서 살아간다니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한마디로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다 하겠다.

그런데 이런 화학합성으로 살아가는 동물은 깊은 바닷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화수소가 공급되는 바닷가에서도 무려 17종의 조개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나 많은 동물이 이런 화학합성이라는 원시적인 수단을 활용해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한 지붕 딴살림 미토콘드리아

그런데 앞의 바다 밑 동물들이 10억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진화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균의 신세를 지고 살아왔으니 내장이 퇴화해 버린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또 세균들은 언제나 그 동물들에 들어가 살아 왔는데, 주변의 분화구라는 환경이 변하지 않으니 마냥 그대로 존재하게 됐던 것이다. “변화가 진화를 이끈다”(Revolution is Evolution)라는 말이 있듯이 커다란 변화가 있어야 진화가 있는 것이다.

분화구에서는 언제나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가 쏟아지고 있으니 진화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냉혹한 환경에 놓인 생물이라야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에게 자기가 처한 환경을 바꿔 나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세포의 공생’을 간단히 살펴볼 차례가 됐다. 세포 속의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는 긴 세월에 걸쳐 진화를 하면서 동식물 세포에 들어왔다고 한다. 물론 녹색식물 세포에만 엽록체가 들어있다. 엽록체의 조상을 추적해보면 원시세포 안으로 들어가 살게된 단세포인 남조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세균은 세포에 들어가서 미토콘드리아가 됐다.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서 남조류와 호기성세균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한 예로 핵의 DNA 명령 없이도 거의 독립적으로 자기의 DNA 명령 하에서 분열이 일어난다는 점이 그것이다.

피부 보호하는 세균청소부

이제 사람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의 피부와 내장에 서식하는 수많은 세균이 우리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지 볼 차례가 됐다.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달려들어서 피부를 녹여 먹을 놈들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병원균이나 곰팡이,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아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피부를 보호해 주는 유익한 공생세균인 것이다. 사실 다른 모든 동물들도 껍질(피부)에 그 동물에만 사는 고유한 공생세균들이 있다. 그들은 피부에 살터를 잡고 지내면서 피부를 보호한다. 이러한 세균들끼리도 서로 텃세를 부리고 항생제까지 분비하면서 자리 싸움을 한다.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이렇게 고등, 하등생물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이를 놓고보면 목욕은 자주하지 않는 것이 피부에 좋은 것이고 목욕을 하더라도 비누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피부를 보호하는 세균을 모두 씻어버리면 그것들이 새로 번식하기 전에 다른 병원균이 자리를 잡아서 피부를 상하게 한다.

공생세균들은 때나 지방샘에서 분비한 기름 성분, 땀에 들어 있는 요소나 지방산을 분해하면서 분열을 한다. 그들은 우리 피부를 깨끗이 하는 청소부 역할도 한다. 즉 피부를 보호해주면서 ‘생태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필자가 어릴 때는 늦가을에서 다음 해 초여름까지 목욕을 못했다. 하지만 요새 사람들은 되레 매일 아침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니 옛날에는 너무 부족했다면 요사이는 너무 과하다 하겠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과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족함만 못한 것이니 목욕이나 머리 감기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피부를 아끼는 것이다. 피부도 생태계의 일부일진대 너무 간섭을 자주 하는 것은 곧 자연 파괴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중국의 고비 사막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에 목욕을 세번을 한다는데(태어나서, 결혼 때, 죽어서) 이 사람들에게는 피부병이 없다고 한다.


피부 표면에 공생하는 수백만 세균 중 일부(녹색)


유산균, 건강한 대장 지키는 평화군

이제 큰창자로 들어가서 그곳에 살고있는 ‘대장균’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대장균은 대략 5백여 종이 있어서 이것들은 소장에서 소화 흡수된 후에 생긴 찌꺼기(주로 섬유소)를 분해해 먹이로 삼아서 살아간다. 대장에 ‘세균의 평화’, 즉 균형이 이뤄졌을 때 장이 건강한 것인데 만일에 세균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특별한 세균이 득세를 하면) 그것이 병인 것이다.

그리고 대장균은 비타민 K나 B를 우리에게 공급해주는 중요한 공생세균인 동시에 대장의 활성을 촉진시켜서 대변을 그때그때 내려보낸다. 다시 말하지만 대장균은 설사나 일으키는 해롭기만 한 세균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간 입원을 통해 항생제를 많이 쓴 환자의 대장 속에는 대장균이 거의 없다. 세균의 생태계가 파괴된 이 곳에서는 비타민 K의 부족으로 혈액 응고과정에 필요한 트롬보겐이 합성되지 못해 응고가 되지 않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난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한구석에 지나지 않는다. 즉 여러 생체기능에 관여하는 공생세균들이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시는 요구르트라는 것도 다름 아닌 세균들이다. 한마디로 대장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평화군’인 것이다. 우유의 젖당을 세균들(Streptococcus나 Lactobacillus) 이 젖산으로 분해한 것이 요구르트다. 바로 이들 유산균이 발효를 하면서 번식을 한 것인데 이것들이 장에 들어가서 개중에 끼어 있는 나쁜 세균의 득세를 막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요구르트보다 더 좋고 수도 많은 유산균 균주가 들어 있는 식품이 김치다. 즉 설사가 날 때도 김치 국물은 좋은 약이 된다. 이 외에도 모든 발효식품은 세균이나 효모가 만든 것이 아닌가.

김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치를 담글 때 왜 풀을 써서 같이 넣는 것일까. 실험실에서 세균을 배양할 때 한천이 들어가는 배지를 쓰는 것과 같은 원리다. 풀은 곧 세균의 먹이가 되는 것으로 번식을 도와준다. 대장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으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대장균의 먹이를 충분히 공급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공생의 예로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 심해의 무척추동물과 화학합성세균, 사람의 피부와 대장의 세균 관계를 살펴봤다. 다른 생물들의 공생 메커니즘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하물며 기생충도 그 숙주가 죽으면 저도 따라서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물은 모두가 서로 어울려 도와가면서 다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권오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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