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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과학교육

시간수도 많고 내용도 어렵다

통일이 온다면 가장 혼란에 빠질 부분은 교육분야일 것이다. 과학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북한의 과학교육은 어떻게 이뤄져 왔고, 남한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금강호와 봉래호가 1천여명의 승객을 싣고 남북으로 왕래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통일이 멀지 않음을 느끼게 됐다. 그러기에 통일에 대한 논의는 “한 민족이기 때문에 결합해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감정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그동안 국가가 주관하는 중앙집권식의 교육과정을 운영해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향을 주는 책이 교과서라는 말이다.

남한보다 과학수업 비율 높아

북한 교과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책 중의 하나다. 한가지 이유로 북한에서는 교과서에 ‘보-91-315’ 같은 관리상의 번호를 부여해 관리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분실한 학생은 다음 해에 교과서를 받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통일원이나 교육개발원에서 북한 교과서를 열람할 수 있는데, 관외대출이나 복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교과서의 차이는 교육과정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북한 교육은 옛소련과 동구권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뿌리를 둔 김일성의 교육원리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사회주의 교육은 흔히 증오사상의 고취, 이데올로기 교육 강화, 집단주의, 이론과 실천의 결합, 조기교육, 상호 경쟁과 집단 비판 등 6가지의 원리를 따른다고 한다. 그 틀을 북한 교육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의무교육기간은 총 11년이다. 1년은 유치원, 4년은 남한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 6년은 남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해 놓은 고등중학교를 다닌다.

인민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3-4학년 2년 동안 자연을 2백22시간 교육받는다. 전체 수업시수에서 과학교과가 차지하는 비율은 6.4%이다. 이는 11% 정도 되는 남한 초등학교 과학수업시수에 휠씬 못미친다. 그런데 북한 고등중학교의 과학수업시수는 전체의 약 21%로, 남한에 비해 월등히 높다(표1). 전체적 수업시수의 비율로 보아 북한이 남한보다 과학과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고 할 수 있다.


(표1) 남북 과학 관련 수업시수 비교


남한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과정별로 이수과목이 다르고, 같은 과정이라도 선택에 따라 이수과목이 달라진다. 이에 비해 북한은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경직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남한 과학교과서는 교과서 중에서는 호화판이다. 크기도 가장 크고(중학교 과학교과서의 경우 16.7cm×23.6cm로 다른 교과서에 비해 큼), 거의 매 쪽당 하나 이상의 그림, 사진, 표 등이 들어가 있다. 이에 비해 북한 과학교과서는 고등중학교 화학3(남한의 중학교 2학년 정도)의 경우 크기가 14.9cm×21.7cm이고, 인쇄가 선명하지 못하며 지질도 거칠다.

교과서의 글자 크기도 차이가 난다. 북한 과학교과서는 인쇄가 선명하지 못한데다가 글자까지 작아 가독성(readibility)이 매우 떨어진다. 대신 한쪽당 글자수는 남한 과학교과서보다 월등히 많다. 남한 교과서가 가독성 위주로 편집했다면, 북한 교과서는 경제성 위주로 편집한 듯 보인다. 북한은 작은 쪽수에 많은 내용을 담아 남한보다 더 많은 차시(주당 수업시간)로 수업한다.

과학교육에도 김부자의 우상화

과학교과서는 타교과서에 비해 비교적 탈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 개념을 전개할 때 남한 교과서는 탐구활동 안내를 통해 개념을 유도하는 전개방식을 많이 택하는 반면, 북한 교과서는 개념이나 지식을 소개하는 설명 중심이다. 북한의 방식은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설계했던 남한의 3차 교육과정 시기의 교과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과학교과서 내용의 또다른 특징은 교과와 직접 관련 없는 김일성 부자 우상화 등의 정치사회적 내용이 제시된다는 것이다. 고등중학교 2학년 물리의 머리말을 보면 이렇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중요한 기초과학 부문들을 적극 발전시킴으로써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더욱 높이고 인민경제 여러 분야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더 잘 풀어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수학, 물리학을 비롯한 기초과학부문을 빨리 발전시켜야 합니다.”

자연과학을 배우도록 격려하는 지도자들의 위대성을 드러낸 부분이다. 또한 교과서 내용 중 군사 관련 내용이 등장하는 것이 우리 눈에 생소하다. 다음은 고등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제시된 한 지문이다. “고사포탄이 터질 때 파편들이 공중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현상을 설명하여라.”

북한 교과서는 대체로 남한 교과서에 비해 어렵다. 고등중학교 2학년 물리의 단원은 ‘1.힘, 2. 압력, 3. 물질과 그 이름새 4. 일’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등중학교 2학년이 남한의 중학교 1-2학년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그 양이 많고 어렵다. 남한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물리에서 제1장에 해당하는 힘 부분만을 학습할 뿐이고, 그 수준도 훨씬 쉽고 낮다. 고등중학교 4학년 교과서에는 인공위성의 탈출속도를 구하고, 정지위성의 주기와 회전반경을 푸는 문제가 나온다. 이는 남한의 고등학교 물리에서나 볼 수 있는 어려운 문제다.


북한의 의학과학연구원 유전자공학 연구실.


언어의 차이 극복할 수 있다

북한 과학교과서에 기술된 내용들은 남한 교과서와 유사한 점이 많다. 많이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펼쳐보면 의외로 비슷한 그림과 비슷한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소함이 느껴지는 것은 교과서를 기술하는 언어가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와 상당 부분 다르기 때문이다. TV에 북한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면 왠지 어색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다음 서술문들은 북한 과학교과서에 등장하는 서술문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다. “지금 우리는 전기를 일구어 기계를 돌리고….”(물리2) “큰 돌이나 쇠도 힘을 주면 눈에 알리지는 않지만 모양이 변한다.”(물리2) “쓸림이 있으면 력학의 연구는 매우 시끄럽다.”(물리4) “실제의 강체는 질량이 널려있다.”(물리4)

또 과학용어의 차이도 많이 보인다(3. 과학기술용어 참조). 우선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리론, 례, 리치 등과 같은 낱말들이 있으나 이들은 사실상 남한의 용어와 같다고 봐야 한다.

가장 두드러진 유형은 우리말은 한자어를 쓰는데 반해 북한에서 순수한글로 풀어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정도르래란 말대신 ‘축이 움직이지 않는 도르래’, 탄성력 대신 ‘튐힘’, 마찰력 대신 ‘쓸림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언어의 사회성으로 인해 다른 언어를 쓰는 우리에게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고유어를 발달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외래어 표기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용어가 있다. 북한은 주로 러시아어 표기를 따르고, 남한은 영어식 표기를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뜨락또르(트랙터), 에네르기(에너지), 뉴톤(뉴턴), 그라프(그래프), 로케트(로켓), 레루(레일), 알루미니움(알루미늄) 등이 있다.

우리와 다른 한자어를 쓴 용어가 있다. 예를 들면 향심힘(구심력), 천평(천칭), 총탁(총신), 발동(시동) 등이 있다.

우리말과 다른 고유어를 쓰기도 한다. 뜨다(느리다), 늘구다(늘이다), 닭알(달걀), 양켠(양쪽), 힘재개(저울), 밀차(수레), 쇠알(쇠구슬), 마사지다(부서지다), 헐하다(쉽다), 오또기(오뚜기), 끓음점(끓는점,비등점) 등이다.

비록 북한의 과학용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다를지라도 조금만 주의깊게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아직은 남북 언어생활의 골이 그리 깊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말들은 “아! 이렇게 좋은 우리말도 있구나”라며 무릎을 치게 하는 것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많은 용어들은 우리말과 같다. 언어에 있어서의 차이는 남한에 지방 방언이 조화롭게 존재하는 것처럼 통일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으리란 전망을 감히 해본다.

이제 통일을 앞두고 남북한 과학교육과정을 어떤 방향으로 통일해야 할지 생각할 때다. 앞에서 살펴 본 차이점들을 되도록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 통합시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 옳으니 무조건 그 쪽을 따라야 한다고 편협하게 주장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학교육과 교과서를 통일하는데 선행돼야 할 것은 학제의 개편이다. 학생들의 발달단계와 현실적인 사정을 감안해 의무교육을 늘리면서 상호간에 호환이 가능하도록 학제의 개편이 있어야 한다. 그런 후 교과서 내용과 편성체제도 좀 더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해 편집돼야 한다.

지금의 추세는 중앙집권화와 대규모화에서 지방자치화와 소규모화로 옮겨지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는 점점 전국적으로 통일된 교과서에 의존하는 정도가 약해지고 각 지방별 특색을 살린 교육과정이나 교과서가 나올 것이다. 남북한의 과학교육도 지역적 특성을 살린 변화라는 점을 서로가 인정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김일성대학에서 광전효과에 대해 수업하는 모습.
 

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양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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