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사주와 주역

근거없는 숙명론, 실천 철학으로 이해해야

사주팔자와 주역점으로 운명을 예측한다는 점술가들이 있다. 그들이 내놓은 예측의 근거란 모든 사람이 생년생시에 처했던 환경이 다르다는 것과 신령한 점괘가 우주를 반영한다는 것 뿐이다. 과학자가 보는 눈으로 운명론의 실체에 접근해보자.

사람은 시간적 차원의 동물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또 미래를 알고자 한다. 흔히 우리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나 사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예측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는 어제도 해가 떴고 그저께도 해가 떴고, 10년 전에도 해가 떴으니,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단순한 귀납적 추리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모르나 적어도 과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천체의 운동에 적용되는 확고한 자연 법칙이 성립하는 한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없음을 안다.

자연​ 법칙에 따른 미래 예측

이렇게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또 이를 예측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따른다. 요즘 우리의 일기 예보가 많이 향상되고는 있지만 아직 불완전한 측면이 많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관측 장비라든가 계산 능력에 한계가 있음은 물론 이론 자체에서도 완전을 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혹 그렇기는 하나 우리가 부분적이나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신뢰할많나 미래 예측의 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신뢰할만한 미래 예측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만일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있고 상황변화의 법칙을 알 수 있다면, 이를 활용해 미래의 상황을 산출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체 운동의 경우, 천체들의 현재 위치와 속도를 알고, 이 천체의 속도가 어떻게 변하리라는 것을 말해주는 기본 법칙만 알게되면, 앞으로 이들이 어느 시간에 어디에 있게 되리라는 것을 수백년 혹은 수천년을 앞질러 완전히 예측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표상한다는 주역의 64괘를 보여주는 도상.


양자의 상태는 확률 예측

물론 우주 안의 모든 대상, 모든 운동에 대해 이렇듯 완전하게 예측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원자 규모의 작은 대상에 대해서는 이런 방식의 서술을 해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이 현대 양자이론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가 만일 이것의 현재 상태에 대한 그 어떤 관측을 해내고 여기에 이미 잘 알려진 '상태변화'의 법칙을 적용함으로써 이것의 미래 상태를 산출해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상태로부터 이것이 일으킬 관측 가능한 사건들에 대해 최소한 확률적인 예측만이라도 해내게 돼있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의 일기 예보에서 가령 "내일 눈비가 올 확률이 몇 %"라고 말 하는 것과 비슷한 사정이다. 일기 예보가 그러하듯이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예측 능력을 우리는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나게 될 생사화복에 대한 사항도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알 뿐만 아니라 만일 그 어떤 액운이 기다리고 있다면 이를 퇴치해낼 수 있는 복안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64괘의 기본이 되는 8괘도. 8괘 각각을 둘씩 겹쳐 놓으면 64괘가 된다.


운명도 예측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점술가들이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마 백 사람이면 백가지 다른 방식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일일이 거론할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많이 제시되고 있는 이른바 '사주 점'과 '주역 점'에 대해서만은 좀 깊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사주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시에 태어났는가 하는 네가지 데이터를 간지(干支)에 따라 표현한 것인데, 이것이 8개의 글자로 표시되는 까닭에 이를 사주팔자(四住八字)라고도 한다. 1997년 7월27일 오전 5시 30분에 태어난 사람의 사주팔자는 정축년, 정미월, 경오일, 기유시가 된다.

이른바 '사주를 본다'고 하는 것은 이것만을 통해서 그 사람이 타고난 신수, 즉 운명의 주요 부분을 찾아보겠다는 것인데, 이는 한 사람의 운명이 그가 태어나는 순간에 결정지워진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즉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여기서 시라고 하는 것은 2시간 단위로 묶은 시간 단위를 의미함)에 태어나는 사람은 일단 같은 운명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흔히 보는 '토정비결'은 한사람의 사주팔자를 모두 보는 것이 아니라, 사주팔자를 기본데이터로 해서 간단한 계산 방식에 의해 미리 규격화된 3백여가지의 운세자료에 자신의 1년 운세를 적용시켜 보는 약식 운명감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이야 어떻든 한사람의 미래 운명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이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현대적 관점에 따라 생각해보자.

출생시의 환경에 의미 부여

우선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모체 안에서 성장하던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 독자적인 방식으로 호흡하고 영양을 공급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론 일신상의 매우 중요한 변화이기는 하나, 이것 자체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어떤 계기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러한 출생이 이루어진 '시점의 성격' 이 그의 운명에는 고사하고 그의 신체에조차 그 어떤 의미있는 영향을 주는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이 항상 주변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구획된 시점에 따라 특별히 다른 영향을 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사주에 나타나는 이 시점의 값이 다르다는 것은 결국 지구에 대한 해와 달의 상대적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 위치가 조금씩 달라진다고 해서 우리 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일은 없으며, 더구나 일생을 좌우할 운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도무지 가당하지 않은 일이다.

어떤 이들은 아마 과학으로는 잡아내지 못할 신비한 이치가 숨어 있어서 그렇게 된다는 주장을 펼지도 모르겠다. 설혹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어떤 이가 도대체 무슨 수로 이를 알아냈다는 말인가? 백보를 양보해 그 어떤 신령한 존재가 이를 알아내 그 누구에게 알려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비법을 알고 활용해 왔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 예를 들어 유럽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잘 살아야 할텐데, 과연 그러한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주를 통해 신수를 알아본다고 하는 것은 그 어떤 타당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이른바 '사주팔자'에 돌리는 숙명론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해악 또한 적지 않다.


사주라는 것은 출생시의 천체배치를 근거로 한다는 측면에서 서양의 점성술과 통한다.


주역은 철학적 실천원리

이에 비한다면 주역은 훨씬 깊은 철리를 담고 있으며, 이에 바탕을 둔 '주역 점'에 대해서는 좀더 사려깊은 논의가 요청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주역에는 64가지 괘(卦)가 있으며, 한 괘 속에는 다시 6가지 효(爻)가 있어서, 이를 통해 점을 치려면 우선 설문자(점을 치려는 사람)의 상황을 대표하는 괘와 효를 먼저 찾아내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적정한 방식으로 해석해냄으로써 그가 당면하게 될 일에 관한 길흉을 가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역점을 치는 사람에게 의뢰자가 오면 점술가는 먼저 의뢰자의 고민을 듣는다. 그리고 나서 그 고민의 해답을 천지신명에게 묻기위한 제의를 행한다. 50개의 산가지가 들어있는 산통을 흔들어 섞은 다음 이들을 빼서 양손에 쥐고 규칙에 따라 덜어내고 더하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의뢰자의 상황과 앞으로의 행동방향을 제시해주는 한효를 얻는다. 주역이라는 책은 바로 이 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점술가는 이 효를 원리에 따라 해석해서 의뢰자에게 합당한 조언을 해주게 된다.

특히 주역이 설정하는 이러한 괘와 효들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들과 그에 대처해 갈 방식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어서, 만일 그 얻어진 괘와 효가 설문자가 현실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서 적지않은 교훈을 얻어낼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악조건의 바닥 상태에서 허덕이는 사람에게 복(復)이라는 괘가 나왔다면, 앞으로 희망이 보이고 상황이 호전될 것이니 용기를 가지고 정진해보라는 격려의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람의 상황이 어떤 괘와 효에 해당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느냐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주역에서는 일정한 절차에 맞추어 주역 점을 쳐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주역점을 정식으로 치려면, 특별히 준비한 50줄기의 산가지(薯)를 이 손 저손으로 옮겨 쥐어가며 이른바 연시법(演蓍法)이라 불리는 특별히 지정된 방식으로 해당하는 괘와 효를 얻게 돼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진 괘와 효가 어째서 그 설문자의 현실적 정황을 나타내는 것이냐 하는 데에 대해서는 적어도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다. 사실상 각각의 괘와 효는 마치 윷놀이에서 윷가락이 떨어지듯이 일정한 확률에 따라 얻어지는 것일 뿐, 이것이 그 사람의 정황을 대변해준다는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에 담긴 지혜 중시

그렇다면 이러한 허점에도 불구하고 주역이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 의해 연구되고 또 전수돼온 것일까? 이것은 오히려 점으로서의 효능보다는 이러한 주역의 구조 및 각각의 괘와 효를 해석하는 방법들 속에 담겨진 깊이있는 삶의 지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속에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당면할 수 있는 상황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또 이런 일들을 당할 때에는 각각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하는, 걸러지고 걸러진 삶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직접 점을 쳐보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정황이 이 가운데 어느 것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을 깊이 음미하고, 이에 해당하는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한결 더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점으로서의 주역 또한 아무런 사회적 효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국가의 대사를 놓고 적어도 우리가 가진 지혜와 정보만으로는 가부간의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에, 그러나 어느 쪽으로든 일단 국론을 통일하는 것이 필요할 때에, 이를 주역 점에 맡겨보는 것이 현명할 수가 있다. 어차피 더 이상 현명한 결정의 방식이 ㅇ벗을 바에는, 설혹 무작위하게 결정되는 것이라하더라도 이것이 말해주는 것을 따르는 것이 결코 손해 볼 일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주역 자체가 지닌 그 어떤 '신성'의 권위에 힘입어 손쉽게 국론을 통일하고 이를 소신껏 밀고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련에도 점을 거부한 정약용

이것이 점(占)으로서의 주역이 그 액면적 효능 여하에도 불문하고 역사적인 명맥을 유지해 온 이유이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옛부터 주역 점은 국가적 대사(大事)를 결정하는 일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활용해 왔다. 주역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연구를 했고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이 엄청난 개인적 시련이라 할 수 있는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번의 주역 점도 쳐 본 일이 없다고 하는 사실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의 말에 따르면 주역은 오직 성인(聖人)이 하늘의 명(命)을 물어 그 뜻을 따르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성패와 화복이 분명할 때에 행해서는 안되며, 또 그 목적이 불순하거나 사사로운 것일 때에도 행해서는 안되고, 오직 일이 공정하고 선한 목적을 가졌고, 그 성패와 화복을 미리 헤아릴 수 없을 때 이를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사주나 주역은 물론 별별 이상스런 방법들을 다 동원하는 점술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이들이 우리가 염원하는 바의 그 내용을 채워줄 수 있다고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도 절실한 궁금증을 가질 수가 있다. 유괴당한 아이가 아직 살아있는지, 엄청난 자금을 들여 시작하는 사업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에 이 사실들을 알아 볼 방법이 있다고 하는 유혹은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다. 이들은 대개 '속는 셈 치고'라는 단서를 달고서 이 유혹에 이끌리게 된다.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는 속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심리적 혹은 사회적 순기능들마저 굳이 배격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가져오는 역기능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점술사의 말을 믿고 그 성패가 분명치 않은 미지의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 보자. 이 일의 성공에 대한 소신이 어쩌면 일의 성취를 위해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보다 크게 우려되는 점은 이에 대한 맹신이 엄청난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없다. 운명학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위험에 우리를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60갑자와 사주팔자

육십갑자는 10간(干), 12지(支)를 서로 조합해 만든 60진법의 한 묶음이다. 10간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10글자를 나타내고, 12지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12글자를 나타낸다. 고대에는 10간이 태양, 즉 날짜를 구별하는데 쓰이고, 12지는 달을 구분하는데 쓰였으나, 이 둘이 결합해서 60개의 서로 다른 조합을 만들어 여러 경우에 쓰인다. 연도에 대해서는 간과 지를 하나씩 순서대로 연결하면 갑자, 을축, 병인, 정묘를 시작으로 임술, 계해년까지 60갑자가 끝나게 된다. 달은 보통 정월을 인원, 2월을 묘월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60간지를 적용해서 갑인월, 을묘월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시에는 자정전후 1시간씩 2시간 간격을 자시로 한다. 보통 밤 11시부터 1시까지를 자시, 1-3시까지를 축시로 해서 12시를 매긴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60갑자를 적용해서 갑자시, 을축시로 나타낸다.

어떤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를 그의 운명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해서 사주(四柱)라고 하는데, 이들 각각을 모두 갑자(甲子)년, 을축(乙丑)월, 병인(丙寅)일, 정묘(丁卯)시 등 60갑자로 나타내면 모두 8자(字)가 되어 둘을 합해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 한다.

1999년은 토끼띠해 기묘(己卯)년이라 한다. 60갑자의 기산점을 어디로 잡느냐는 역술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해의 이름에서만은 거의 통일이 돼 있고 옛날부터 셈해온 것을 이어서 쓰면 되므로 거의 착오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월, 일, 시는 중국력과 우리나라 역이 차이가 생겨 몇번의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은 만세력이라고 하는 조선시대부터 써 왔던 역법을 기준해서 나타낸다. 달력이 개력되거나 혼란이 생길 때에는 간지의 표기에 착오가 생기므로 역술가들 사이에서는 특히 커다란 논란이 일어난다.

199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장회익 교수

🎓️ 진로 추천

  • 철학·윤리학
  • 종교학
  • 문화인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