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애견 찰리를 데리고 미국 일주를 할 때 겪은 이야기다. 오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현지 토박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타지에서 온 것을 알고 현지인들이 텃세를 부리기 때문이다. 그날도 스타인벡이 현지 국경 관리인과 다툼이 생겼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대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대꾸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선 스타인벡은 잠들기 직전까지 국경의 관리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되뇌었다. 그는 그날의 심정을 여행기에 “기막히게 멋들어지고 요점을 찌르는 응수도 더러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후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재밌다.
 

목욕 하다 “유레카”를 외치다

존 스타인벡과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매우 흔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중요한 순간이 지나간 다음에야 ‘왜 그때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왜 그때 이렇게 말을 못했을까’라며 자책을 하곤 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말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도 뒤돌아서서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필자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예전에 방송을 잠깐 했었는데, 함께 하는 작가가 일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아 얼마 뒤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 작가는 꼭 방송 30분 전에야 원고를 주는 스타일이었다. 필자처럼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은 대본을 일찍 받으면 대본에만 얽매여 재미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출연자가 방송 직전에 대본을 받아야만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송 직전에 대본을 받으면 내용에 맞는 이야기를 미리 구성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부족해진다. 스타인벡의 경험이 증명하듯 진짜 중요한 생각은 그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시간을 두고 한 가지에 집중한다고 해서 꼭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흔히 머리를 쥐어짠다고 한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거나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 골똘히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떠오른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나중에 보면 정말 쓸모없을 때가 많다. 오히려 전혀 다른 행동을 하거나 마음을 비웠을 때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목욕을 하다가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운전을 할 때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스티븐 킹의 책을 보면 “난 샤워하는 동안에 최고의 그림들이 나온다. 이른바 내겐 자궁과도 같은 공간인 셈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인슈타인은 아예 “왜 난 샤워할 때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야!”라며 한탄한 적이 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생각나지 않다가 나중에야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한 가지에 집중하면 창의적인 생각을 펼치는 데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집중과 유연성의 합작품
그렇다면 창의적인 생각은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왜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그 생각을 집중할 때가 아니라 운전이나 샤워처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할 때 더 잘 떠오르는 걸까. 이에 대한 결과들이 뇌 연구학자들에 의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뇌과학자들은 창의성을 측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원격 연상법(remote association test)을 사용한다. 2~3개의 단어를 제시하고 이들과 연관 있는 또 다른 단어를 찾는 검사다.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제시어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결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 과정에는 뇌의 우반구가 주로 작용한다. 지난 호에 숲을 보는 능력은 뇌의 우반구가, 나무를 보는 능력은 뇌의 좌반구가 담당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국소적으로 집중된 관심에는 좌반구가, 넓고 전체적이고 유연한 관심에는 우반구가 관여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겠다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는 좌반구가 주로 작용한다. 하지만 좌반구만 작용할 때는 오히려 관심의 범위가 좁아져 적절한 단어가 더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집중할 때 떠오르지 않던 단어가 어느 날 무심히 운전을 하고 가다가 불쑥 떠오르는(마치 스위치가 반짝 하고 켜지는 것처럼) 이유는 우반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유명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운전이나 샤워 등 무의식의 동작을 하는 순간에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털어놓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오른쪽 전두엽이 사고의 유연성에 관여하는데, 이 부분이 손상을 입으면 한 가지에 매달리는 반복성 장애(perseveration)가 생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좌반구에 발작이 일어나서 자기 기능을 상실할 경우 창조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남아 있는 우반구가 사물들 간에 더 폭넓은 연결을 만들어내고 사고의 유연성 역시 높인다. 결론적으로 우반구의 기능이 창조성의 근본 요소가 된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떠오른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것은 좌반구의 힘이다. 즉 두 반구가 균형 있게 작용할 때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실례로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뇌 구조인 뇌량을 손상시키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좌반구와 우반구가 고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잠깐 드라이브를 가거나 샤워를 해보는 건 어떨까.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도 말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느슨해지지도 않는 자세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우리의 뇌는 안정되고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좌우 균형을 이루며 원활히 작동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윤미|글 양창순 원장 기자

🎓️ 진로 추천

  • 심리학
  • 문화인류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